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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6/29 17:29:29
Name 오디세우스
Subject [일반] [경매이론2] 선택의 기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는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예산이라는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 팀원들의 역량과 만족도를 동시에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정된 월급으로 저축과 투자, 그리고 현재의 삶의 질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너무나 복잡하고 정답이 없어 보여, 우리는 종종 직감이나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 결정을 내리곤 한다. 하지만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끌 수 있다. 놀랍게도 그 실마리는 우리가 학창 시절 어렵게만 느꼈던 '경제학' 속에 숨어있을 수 있다.

이 글은 폴 밀그롬 교수의 통찰이 담긴 '대체재, 가격, 그리고 안정성'의 원리를 빌려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복잡한 선택의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여정을 제안한다.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작동 원리를 분석하기 위해 고안한 모델들이 어떻게 우리의 직장 생활과 개인의 삶에서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선택의 기술'이 될 수 있는지 함께 탐험해보겠다. 이상적인 시장에서부터 현실의 제약이 가득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 지적인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복잡성 속에서도 현명한 균형점을 찾아낼 수 있는 단단한 관점을 얻게 될 것이다.


1부: 모든 것이 명확했던 시절 – 완전 대체재의 이상적 세계

경제학의 출발점은 종종 현실을 단순화한 이상적인 모델이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세상. 케네스 애로우와 레오 허위츠가 제시한 신고전파 모델은 바로 그런 이상적인 시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델의 핵심은 '총대체재(Gross Substitutes)'라는 개념이다.

총대체재란 한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다른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즉 서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버터 가격이 오르면 마가린을 더 많이 사게 되는 것과 같은 관계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마케팅 팀장이고 온라인 광고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겠다. 광고 채널로 네이버 검색 광고와 구글 검색 광고, 단 두 가지만을 고려하고 있다. 두 채널의 성격이 매우 유사하여 사실상 완전한 대체재라고 가정해 보겠다. 이때 구글 광고의 클릭당 비용(가격)이 오르면, 당신은 자연스럽게 예산을 네이버 광고로 옮길 것이다. 반대로 네이버 광고 비용이 오르면 구글로 예산을 돌린다.


타토느망 과정과 균형점

이러한 가격 조정 과정을 경제학자들은 '타토느망(tâtonnement)'이라고 부른다. 이는 프랑스어로 '더듬다, 탐색하다'라는 뜻으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균형 가격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두 채널에 예산을 배분했을 때 최대의 광고 효과를 내는 '안정적인 균형점'에 도달하게 된다. 어느 한쪽으로 예산을 더 옮겨도 더 나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최적의 지점이다.

이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의사결정이 비교적 간단하다. 가격이라는 명확한 신호에 따라 자원을 움직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를 줄이고, 내리면 늘리는 단순한 원칙이 최적의 결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경매 메커니즘의 작동 원리

낮은 가격에서 시작해 점차 가격을 올리며 구매자를 찾는 '상승 경매(Ascending Auction)'는 가장 낮은 균형 가격을 찾아주고, 높은 가격에서 시작해 가격을 내리는 '하강 경매(Descending Auction)'는 가장 높은 균형 가격을 찾아준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명확하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완전 대체재의 시절'이 있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A라는 회사에 입사하든 B라는 회사에 입사하든 '안정적인 월급'이라는 가치만 충족된다면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야근 수당(가격)을 더 많이 주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책임이 무거워지면서, 우리는 점차 깨닫게 된다. 세상의 많은 중요한 것들은 쉽게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2부: 팀원 한 명의 가치 –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문제

현실 세계, 특히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직장에서의 문제들은 신고전파 모델처럼 단순하지 않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사람'이라는 변수다. 사람은 결코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켈소와 크로포드의 노동 시장 모델은 바로 이러한 '대체 불가능성'을 다루며, 우리에게 팀 빌딩과 인력 관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준다.


이산재의 개념과 특성

당신이 신규 프로젝트를 위해 팀을 꾸리는 팀장이라고 가정해 보겠다. 당신에게는 5년 차 개발자 A와 10년 차 기획자 B, 그리고 신입 디자이너 C가 필요하다. 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기술과 경험, 그리고 성향을 가진 '이산재(Discrete Goods)'다.

이산재란 연속적으로 분할할 수 없는 개별적인 재화를 의미한다. 즉, 반 명의 개발자나 1.5명의 기획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발자 A를 다른 개발자 A'으로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생산성과 팀워크 능력은 결코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개발자를 기획자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팀원들은 서로 대체재 관계가 아니며, 오히려 특정 조합에서는 서로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보완재(Complementary Goods)'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안정적 매칭의 의미

켈소-크로포드 모델은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적 매칭(Stable Match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안정적 매칭이란, 팀이 구성된 후에 (1) 어떤 팀원도 현재의 역할과 보상에 불만을 품고 팀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며, (2) 서로 역할을 바꾸거나 다른 사람과 짝을 이루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두 팀원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모든 구성원이 현재의 팀 구성에 대해 최선이라고 동의하는, 매우 견고하고 만족도 높은 팀의 모습이다.


동적 경매 과정

어떻게 이런 '꿈의 팀'을 만들 수 있을까? 모델은 '동적 경매 과정(Dynamic Auction Process)'을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한다. 각 팀원(노동자)이 자신의 가치(원하는 연봉과 역할)를 제시하고, 팀장(기업)은 여러 팀원들의 조합을 고려하여 최적의 팀 구성을 제안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예를 들어, 팀장은 개발자 A에게 특정 연봉과 역할을 제안하고, 기획자 B에게도 제안한다. 이때 개발자 A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프로젝트 팀으로 가버린다면(경매에서 이탈), 팀장은 남은 인력 풀에서 새로운 조합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조정 과정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누구도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안정적인 팀 구성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 적용: 총대체재 vs 보완재

'안정적 매칭'의 개념을 일상적인 팀 관리 상황에 적용해 보겠다. 당신의 팀에는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연봉 인상 요구가 잦은 스타급 직원 '김 과장'과,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팀의 살림꾼 역할을 하는 '이 대리'가 있다. 만약 당신이 김 과장의 연봉을 인상해주는 결정(가격 상승)을 내렸을 때, 이 대리에 대한 필요성이나 가치가 줄어든다고 느껴진다면 두 사람은 대체재 관계에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김 과장이 인상된 연봉만큼의 역할을 해내어 이 대리의 업무 일부를 흡수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두 사람의 역할은 고유하여 대체 불가능하다. 김 과장의 연봉 인상은 회사의 인건비 예산에 부담을 줄 뿐, 이 대리의 역할을 불필요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김 과장의 높은 성과는 이 대리의 지원 업무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 수 있다(보완재 관계). 켈소-크로포드 모델의 핵심 가정인 '총대체재' 조건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분석하는 렌즈를 제공한다.


증강 매칭의 확장된 관점‘증강 매칭(Augmented Matching)'이라는 개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는 현재 팀에 합류한 사람들의 계약 조건뿐만 아니라, 면접에서 떨어졌거나 합류를 거절한 잠재적 후보자들과의 '가상의 계약'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김 과장을 현재의 연봉으로 채용했다면, 그 결정의 타당성은 '만약 김 과장보다 연봉을 더 달라고 했던 박 차장을 채용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김 과장보다 연봉을 적게 불렀지만 실력이 부족했던 최 사원을 채용했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수많은 대안과의 비교 속에서 평가된다.

안정적인 팀이란, 현재의 팀원 구성이 이러한 수많은 가상의 대안들보다 낫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다. 팀장인 당신은 '이 구성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팀원인 김 과장 역시 '다른 팀으로 가는 것보다 이 팀에 남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상태. 이것이 바로 안정적 매칭의 본질이다.

따라서 훌륭한 리더는 단순히 눈앞의 팀원들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인재 시장 전체를 조망하며 끊임없이 최적의 조합을 시뮬레이션하는 '가상의 경매'를 머릿속에서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사람을 단순한 부속품이 아닌, 고유한 가치를 지닌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바라보게 하며, 더 깊이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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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29 22:50
수정 아이콘
무한 자원과 무한 선택이 있다면, 이상적 균형점에 도달하지만, 한정적 자원에서의 부분 최적화는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기회도 한정적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전략적 측면에시는 공유되는 부분이 많고, 몬테카를로 실험이 아닌 수학적 최저화를 통해 한방에 최적의 경로를 탐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슬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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