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5/04/19 10:40:36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151
Subject [일반] 광무제를 낳은 용릉후 가문 (1) - 한경제에서 용릉후 가문이 나오기까지 (수정됨)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직항으로 4시간을 가면, 후난성의 성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창사시에 이릅니다. 삼국지의 손견이 바로 이곳의 태수였으며, 관우와 황충이 서로 승부를 겨룬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더 작고, 더 희미한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창사시에서 쉬광고속도로(许广高速), 취안난고속도로(泉南高速), 얼광고속도로(二广高速)를 따라 남쪽으로 약 4시간 차를 몰고 가면, 바이자핑진(柏家坪镇)이라는 작은 마을에 이르게 됩니다. 이 마을은 융청시(永州市) 닝위안현(宁远县)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로 후한을 세운 광무제의 직계 조상이 봉해진 곳, 용릉(舂陵)입니다. 경제의 손자이자, 장사정왕 유발의 아들인 용릉절후 유매는, 기원전 124년 이 지역에 봉해졌습니다.

후난성의 성도 창사시에서 광무제의 조상이 봉해진 용릉후국이 있는 바이자핑진까지 가는 길.
후난성의 성도 창사시에서 광무제의 조상이 봉해진 용릉후국이 있는 바이자핑진까지 가는 길.


경제에게는 황후가 있었지만 아들을 얻지 못했고, 총애하던 여러 후궁에게서 아들 열네 명을 낳았습니다. 그중 정희(程姬)는 특히 총애를 받는
후궁이었고, 노공왕 유여(劉餘), 강도역왕 유비(劉非), 교서우왕 유단(劉端) 등 유력한 황자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경제가 생리 중이던 정희를 불렀습니다. 정희는 자신이 들어갈 수 없자, 시녀 당아(唐兒)를 곱게 꾸며 대신 들여보냈습니다. 경제는 술에 취해 당아를 정희로 착각했고, 하룻밤을 보낸 뒤에야 그녀가 정희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 밤으로 당아는 아이를 가졌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바로 유발(劉發)입니다. 황제의 아이를 낳은 당아는 당희(唐姬)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정희처럼 총애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유발이라는 이름은, 경제가 정희가 아님을 ‘발각(發)’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실제로 열네 아들 가운데 이렇게 간단하고 무뚝뚝한 이름을 받은 이는 유발뿐이었습니다.


경제는 여러 아들들을 제후왕으로 봉하면서, 유발에게는 장사 땅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초칠국의 난을 앞두고 강한 왕국을 경계했던 경제는, 이전에 오씨 가문이 다스렸던 광대한 장사국 대신, 무릉군(武陵郡)과 계양군(桂陽郡)을 제외한 좁고 습한 지역만을 유발에게 떼어주었습니다. 이 지역은 지금의 창사시를 중심으로 웨양시(岳陽市), 샹탄시(湘潭市), 주저우시(株洲市) 일대에 해당합니다.

기원전 127년, 무제는 제후왕국의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추은령(推恩令)을 반포했고, 이에 따라 장사정왕의 뒤를 이은 장사대왕(長沙戴王) 유용(劉庸)은 형제들에게 봉지를 나누어 주어야 했습니다. 유매는 기원전 124년, 다른 세 명의 형제들과 함께 제후로 봉해졌고, 지금의 닝위안현 근처에 있는 영도(泠道)에 속한 용릉향(舂陵鄕) 땅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장사국의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이었으며, 더구나 '도(道)'라는 단위는 당시 한나라에서 현(縣)과 동급이되, 한족이 아닌 비한족이 사는 지역에 설치되던 특수 행정구역이었습니다. 유매는 사랑받지 못한 황제의 아들을 아버지로 두어 궁벽한 땅에 봉해졌고, 그 땅에서도  가장 먼 곳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유매의 자손들은 약 80년 동안 이 용릉후국, 즉 오늘날의 바이자핑진에서 조용히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지대가 낮고 습하며, 산림이 깊고 공기가 탁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독기’가 많아 사람의 건강에 해롭다고 여겨졌지요. 결국 유매의 손자인 유인(劉仁)은 황제 원제에게 글을 올려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봉토를 줄여도 좋으니, 서울에 가까운 곳으로 옮겨주시옵소서.”

80년을 지켜온 땅이지만, 거주에 적합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오늘날에도 바이자핑진은 후난성 남부의 한적한 시골로 남아 있습니다.

바이자핑진(구 용릉후국)에서 우뎬진(신 용릉후국)으로 가는 길.
바이자핑진(구 용릉후국)에서 우뎬진(신 용릉후국)으로 가는 길.

원제는 먼 친척의 청을 받아들여, 지금의 허난성 짜오양시에 해당하는 남양군 채양현(蔡陽縣) 백수향(白水鄕) 일부를 봉토로 내렸습니다.  유인은 자신만이 아니라 용릉후국 전체의 자손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새로운 용릉후국의 중심, 오늘날 짜오양시 우뎬진(吴店镇)이었습니다.
현재도 고속도로를 타고 8시간 넘게 걸리는 먼 길입니다.


이 이주에는 유인의 직계뿐 아니라, 용릉절후의 아들 유외(劉外)의 자손과 손자 유리(劉利)의 자손도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유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종가를 꾸리고, 채양 땅에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로부터 후한을 세운 광무제를 비롯한 유씨 종친들은 모두 남양군 채양현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다음부터 이어지는 글은, 바로 이 남양군 채양현에서 태어나고 자란 용릉절후 유매의 자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광무제의 형으로 그보다 먼저 거병했던 유인(劉縯),
유인의 경쟁자로 먼저 황제가 되었던 경시제 유현(劉玄),
가문의 장손으로 종친 세력을 이끈 유지(劉祉),
유지의 사촌이자 한중왕으로 생존을 위해 분투한 유가(劉嘉),
광무제가 하북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준 유사(劉賜),
광무제보다 어린 아저씨였지만 경시정권에 맞섰던 유무(劉茂),
그리고 광무제의 두 누나 유황(劉黃), 유원(劉元), 누이동생 유백희(劉伯姬),
덧붙여, 유씨는 아니지만 유원의 남편, 곧 광무제의 매형으로 광무제와 처음부터 함께한 등신(鄧晨).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격동의 시기를 살아갔습니다.
신나라가 무너지고 한나라가 다시 일어나는 격랑의 시대,
광무제는 어쩌면 이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이 응축된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광무제의 직계 조상, 용릉절부군 유매의 가계도.광무제의 직계 조상, 용릉절부군 유매의 가계도.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5/04/19 10:48
수정 아이콘
마지막 매형의 이름이 크크
如是我聞
25/04/19 13:18
수정 아이콘
글 잘 읽고 갑니다
조던헨더슨
25/04/19 13:19
수정 아이콘
피지알에서만 보기 아까운 글이네요
VictoryFood
25/04/19 14:29
수정 아이콘
마지막 그림의 마지막에 나오는 중산왕이 유비의 조상이라는 그 중산정왕 인가요?
이름이 다른거 같기는 한데 그냥 중산왕이 여러명이었나?
계층방정
25/04/20 07:18
수정 아이콘
유비의 조상인 중산정왕 유승은 저 계보도에서 유발의 형제입니다. 아들과 손자가 100명을 넘었다는 기록이 무색하게 직계가 단절되었기에 중산왕은 다른 황실 방계를 계속 집어넣습니다. 저 계보도의 중산왕은 후한 시대의 중산왕이기도 하고요.
럭키비키
25/04/19 14:59
수정 아이콘
경제가 시녀 당아를 정희와 구분하지 못했던 이유와, 당아가 황제의 아이를 가진 이후 정희에게도 섭섭함이 있었을텐데 둘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는지 궁금하네요.
닥터페인
25/04/19 15:37
수정 아이콘
후한 건국설화의 인트로네요.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4096 [일반] 아청법 관련) 슬슬 또 스텝을 밟기 시작하는 제도권 [52] 실제상황입니다15280 25/04/20 15280 13
104095 [일반] 이게 그거였구나 [6] 如是我聞6672 25/04/20 6672 22
104094 [일반] 저물가의 시대 이제는 끝인걸까? [20] 김홍기10395 25/04/19 10395 0
104093 [일반] 인터넷이 거대한 망무새가 되어간다 [83] 고무닦이13141 25/04/19 13141 47
104092 [일반] "문과 놈들이 해먹는 나라"…이국종 교수, 국방부에 사과 [204] Davi4ever12714 25/04/19 12714 7
104091 [일반] 콜드플레이 2일차 후기 [28] aDayInTheLife3666 25/04/19 3666 2
104090 [일반] 광무제를 낳은 용릉후 가문 (1) - 한경제에서 용릉후 가문이 나오기까지 [7] 계층방정2466 25/04/19 2466 8
104089 [일반] 최근 사용한 AI툴들 목록 [36] Kaestro4999 25/04/19 4999 31
104088 [일반] (로이터 통신) 외계 행성에서 생명체 존재 가능성의 가장 강력한 증거 발견 [39] 잉어킹6634 25/04/18 6634 3
104087 [일반] 백종원씨 사태에 대한 대중 반응 변화 [113] 깐부9774 25/04/18 9774 2
104086 [일반] '메탄올 실명' 노동자 이진희씨 별세 [38] 수리검6934 25/04/18 6934 52
104085 [일반] QCY 무선 이어폰 품질 생각보다 괜찮네요 (광고글 X) [51] a-ha5434 25/04/18 5434 1
104084 [일반] 건법 앞의 평등 - 미국 유나이티드헬스케어 [61] 맥스훼인6537 25/04/18 6537 1
104083 [일반] 인구구조 문제는 절대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일까요 [81] liten5322 25/04/18 5322 1
104082 [일반] 영남권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기부 인증 이벤트 결산 [7] 及時雨2461 25/04/17 2461 12
104081 [일반] 폭싹 속았수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약스포) [50] 빵pro점쟁이6378 25/04/17 6378 2
104080 [일반] '한 문제에 50만원' 현직교사 포함한 사교육 카르텔 100 여명 검찰송치 [42] EnergyFlow9286 25/04/17 9286 6
104079 [일반] <야당> - 뻔하다는 건? 말아먹진 않는다는 것. (노스포) [25] aDayInTheLife7832 25/04/16 7832 3
104078 [일반] 출생아가 두 배로 늘어나는 방법? - 적극적 이민 정책을 촉구하며 [283] 사부작12396 25/04/16 12396 12
104077 [일반]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 지중화비 70% 국비 지원 [94] 깃털달린뱀10488 25/04/16 10488 20
104076 [일반] 26학년도 의대 정원 동결... 17일 발표 [167] 교대가즈아12676 25/04/16 12676 2
104075 [일반] 대화의 방식 : SRPG와 RTS [42] 글곰8594 25/04/15 8594 22
104074 [일반]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일상 7 [11] Poe6131 25/04/15 6131 3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