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을 읽고 왔습니다. , <비행기_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나>, <우리 시대의 포크로어_고도자본주의 전사>, <가노 크레타>, <좀비>, <잠>. 6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은 기담과 괴담, 호러와 코미디가 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독특했던 점은, 하루키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하루키의 이야기에서 대체로 하루키의 주인공은 하루키를 너무 닮은 인물들이었거든요. 앞의 세 단편은 남성 주인공, 뒤의 세 단편은 여성 주인공을 배경으로 하는 글입니다. 다만, 그걸 빼놓고 보면 약간씩은 하루키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레코드판(물론 작품 자체가 80년 대 말의 작품이지만), 취향에 대한 애호, 판타지, 섹슈얼한 요소 등등.
하루키의 소설에서 보통, 남성은 남겨진 자들이고, 여성은 떠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소멸에 가까운 갑작스러운 증발과 판타지적 세계관의 결합이 (대체로) 하루키의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이 스타일을 철저하게 따라가는 표제작을 제외하고, 뒤의 세 편은 외려 여성을 주인공으로 놓았던 점이 독특합니다.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는 마지막 작품 <잠>에서요. 모든 것이 괜찮다고 믿었던 상황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받고, 그 흐름 속에서 괴담 내지 기담으로 마무리하는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이 단편은 하루키의 이야기를 시점이 바뀐 상태로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그러니까, 이 단편은 '일상의 균열'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내가 알지 못했던 것, 내가 알지 못했던 결점, 내가 깨닫지 못한 진실과 감정들을, 상대방(이성 파트너)은 알고 있던 상황을 다루는 6편이니까요. 혹은 몇몇 작품은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그런 성격의 것들을 알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류의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p.s. 다음 책으로 소설을 읽을 지, 교양서를 읽을 지 고민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