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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9/20 11:49:37
Name Neuromancer
Subject [일반] 로마제국의 멸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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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BC. 753 ~ AD. 476)

역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로마 제국이 어떤 나라인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고 조금 더 나아가면 로마 제국이 얼마나 거대한 나라였고, 그만큼 세계사적으로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해서 단편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외로, 그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로마 제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만 보더라도, 고대 로마가 끝나가는 시점을 그다지 비중있게 다루지 않아서, 본인이 직접 관련 서적이나 논문을 찾아보지 않고서는 그 당시 정황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대 로마가 멸망한 원인을 민족주의적 시각이나(ex. 게르만족 때문에 망했다.), 종교적인 시각(ex. 기독교 때문에 망했다.)이 담긴 잘못된 통념을 끼워넣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해석이 조금만 생각해보면 왜 불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지 이야기해보겠다.


무엇이 로마 제국을 쇠락하게 만들었나?

대략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초반 사이의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훈족으로 인해 촉발된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분명 로마 제국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요소였던 것은 분명하나,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한 몰락은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로서 봐야한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그리고, 단순히 이것만으로는 완벽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게르만족은 이미 약 200년 전 부터 지속적으로 로마 제국을 침입해왔고, 특히나 3세기의 위기라고 불리우는 혼란이 거의 1세기 가량이나 장기화되면서 로마 제국은 언제든지 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기를 겪었었다. 정말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로마 제국의 몰락을 촉발시킨 결정적인 원인이라면, 3세기의 위기, 다시 말해 내부적으로는 각지의 군벌들이 각지에 난립하며 제위 계승을 주장하고, 외부적으로는 게르만족이나 사산조 페르시아같은 위협적인 적들이 사방에서 제국을 짓누르고 있을 시기에, 이미 로마는 멸망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로마 제국은 3세기의 위기를 견뎌냈고, 그 뒤로도 약 200년가량이나 더 지속되지 않았나? 그렇다면,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제외한다면 그 밖에 어떠한 것들이 멸망의 단초가 되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하나가 아닌,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로마 제국은 갑자기 붕괴하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나도 컸고, 무엇보다도 뚜렷한 몰락의 징후들이 관찰되던 시기마저도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판도를 뒤집을만한 기회가 여럿 존재했다. 그런데 왜 그 좋은 기회들을 활용하지 못했는가?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두어 설명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계승 원칙의 불확실성은 잦은 내전을 초래했다.

로마 제국은 세계사적으로 봐도 상당히 특이한 체제로 운영되던 국가였다. "공화정의 전통"이라고 표현되는 여러 요소들, 예컨대 황제의 권한이 동방의 전제군주제에 비하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던가 혹은, 시민과 원로원의 지지가 있어야만 황제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던가 하는 것들이 일반적인 군주제 국가와는 꽤나 대비되는 모습이다. 바로 이 점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는데, 장점으로서 기능할때는 비교적 인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황제로 선출될 여지가 생겼겠지만, 단점으로서 기능할때는 명확한 계승 원칙이 없어서 상시 내전의 위험성을 안고가야만 하는 측면들이 있었다.

이것이 고대 로마 후기로 들어서면서, 사실상 원로원은 유명무실해지고 그 공백을 군대와 군단장들이 채우게 됨으로서, 원수정으로 대표되는 고대 로마의 전통적인 계승 원칙이 사실상 무너져버리게 되었다. 이를테면, 실질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있는 사령관들이 군대의 지지를 받고 황제에 오른다던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3세기의 위기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로마 제국이 100년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수 많은 황제들이 난립했다가 사라지는 대혼란의 시기를 겪어야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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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티아누스

이것을 최종적으로 정리한 황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로서, 그는 장장 100년동안 이어진 혼란기를 종식시키고, 기존의 대안으로서 제국을 4분할하여 각각의 통치자를 두는 사두정치 체제를 내세움으로서 국가 운영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꾀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권력에서 물러나자마자 제국은 다시 쟁쟁한 실력자들에 의해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다시 제국을 통합하였고, 그는 대제라고 불릴만한 화려한 업적을 남기고 떠났으나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죽자마자 그의 아들들에 의해서 제국은 또 다시 사분오열된다. 이후, 제국은 몇 차례 분할되어 통치되다가 다시 합쳐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중과부적으로는 점차 동-서가 단절된 형태로서 나아갔는데 이것이 로마 입장에서는 크나큰 불행이었다.

한 편, 학자에 따라서는 로마 제국에서 벌어진 수 많은 내전들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고대 로마를 붕괴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필자는 그러한 주장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내전이 로마 제국에 가져다준 해악과 폐혜는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치명적이었다고 본다. 로마 제국이 오로지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멸망했다고 표현하기엔 다소 지나친 감이 있고, 그렇다고 외부적인 요인이 결정적이었느냐 하면, 이 또한 학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더 중대한 멸망 요인이었는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내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의 역량과 잠재력을 제 스스로 깎아먹는다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내전이 발발하는 그 순간부터 그 국가는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내부 분열로 나라가 순식간에 무너졌던 사례는 의외로 꽤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만큼, 내전 역시 직접적인 로마의 멸망 원인으로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제국의 분할 통치가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을까?

콘스탄티누스 1세 사후, 그의 아들들에 의해 벌어진 내전도 결국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종식되긴 하지만 그마저도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발렌스와 발렌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제국은 다시 동-서로 분할되었으며, 테오도시우스 황제때 다시 합쳐졌다가 또 그의 아들들에 의해 쪼개진 형태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는 동-서 로마 간의 영구적인 분단으로 굳어졌다. 물론 동-서로마가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긴밀한 협력 관계에 놓여있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로마는 영토를 방위할 군대가 부재한 상황에서 동방의 부유한 재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겹치니, 모든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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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최종 분할: AD 395.

한 편, 의외로 제국의 최종 분할이 있고 난, 395년 직후에만 한정해서 본다면 동-서로마간의 편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양 측이 보유한 인구 밀도도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웠고, 오히려 서로마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타격이 되었던 사건은 다름아닌 북아프리카 속주의 상실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 학계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는다. 다만, 그럼에도 서로마의 입장에서는 라인-도나우강을 따라 길게 늘어진 국경선을 방어하는게 결코 쉽지 않았으며, 이를 제대로 지켜낼 군대조차 변변찮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아프리카의 상실은 결과적으로 피할 수 없었다고 본다. 예컨대, 서로마 제국의 명장이자 충신인 스틸리코가 살아있을 때 조차도, 게르만족은 빈번히 라인-도나우강을 도하하여 제국 영토 깊숙히 침범해 들어왔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결국 부족한 군대와 물자로 간신히 버티고 있던 스틸리코마저 정적들의 모함을 당하고 처형되면서 서로마의 국경선은 사실상 무너져내린다. 이런 치열한 궁중 암투와 권력 투쟁은 서로마가 멸망하기 직전까지도 이어지는데, 이는 서로마 제국의 중앙 정부가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후에도 서로마에게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 아에티우스와 마요리아누스의 사례만 보더라도, 당시 서로마에 만연하던 내부 갈등만 해결되었다면 충분히 제국은 조금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을 만한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다. 또 이를 뒤집어 말하면, 서로마 입장에서는 그나마 아에티우스나 마요리아누스같은 걸출한 인재들이 등장해주었기에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인물들 조차도, 궁중 암투에서 비롯된 갖은 정치적 술수를 피해갈 수는 없었기에, 그들을 시기하던 정적들로부터 비참하게 살해되고 만다. 이로 미루어 볼때, 결국 서로마 제국은 외부의 침입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이미 내부 상황에서 몰락의 징후들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게르만족이 한창 제국 국경을 침범해 들어오고 있을 때도, 제국의 권력 암투는 어김없이 발생하곤 했는데, 본래라면 동로마 황실 측에서 황제 임명 권한을 행사해야 했으나,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제위에 올랐다는 이유로 동로마 측에서 서로마를 공격한 일도 있었다. 가령, 호노리우스의 후임자로 서로마 제국 내에서 지지받았던 요안네스는 당시 이에 반발하던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라벤나에서 죽임을 당했고, 이후에도 이를 비호하던 제국의 장군, 아에티우스와 끊임 없이 신경전을 벌였다. 문제는 이런 비슷한 일들이 한, 두번으로 그친게 아니었고, 로마 제국을 지키기 위해 활용되어야 할 귀중한 재원들이 이런 식으로 지속적인 소모를 겪으면서 제국에 만성적인 불안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분할 통치가 로마 제국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이었을까?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 분할 통치 이외에 다른 묘수가 있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의 두 아들들에 의해 로마 제국이 영구적으로 분단되기 이전에도 이미 제국은 합쳤다가 쪼개졌다가를 반복하였으며, 당시 제국을 통치하던 황제들도 로마의 영토가 한 개인이 다스리기엔 그 크기가 너무나 거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동-서를 기준으로 제국을 분할하여 두 사람이 통치하는 것이 빈번했고 실제로도 그러한 정책들은 적어도 각자 자기가 맡은 구역에서 외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방어해낼 수 있게끔 해 주었다. 그러나 분할 통치도 결국은 한계가 명확했다.

분할 통치가 오래 지속될 경우, 앞서 이미 이야기했지만 양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내전이 발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고,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행정부를 둔다는 것은 그만큼 행정 체계의 복잡성과 규모가 비대해진다는 단점도 있었다. 바로 이것이 로마 제국에 있어서 극복하기 어려운 딜레마였음은 명백하다. 이렇게 늘어난 관료 체계와 복잡해진 행정 구조는 필연적으로 제국에 있어 비효율을 가져왔고, 이를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기술의 발전, 혹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같은 획기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제국이 멸망할 때 까지도 로마 사회는 별다른 혁신이 이뤄지지 못했던 반면, "게르만족"을 비롯한 로마의 적들은 로마의 제도와 기술력을 모방하여 여러 방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어내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한정된 재원과 정체된 사회라는 두 가지 딜레마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가 다르게 강력해지는 외부의 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불리한 싸움을 로마는 강요받았던 것이다. 결국, 제국의 분할 통치는 그 당시 기준으로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긴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고 후대에 들어설수록 오히려 서방과 동방 행정부 사이의 정치적, 군사적 공조를 방해하는 벽으로 작용하기도 했음을 고려해본다면, 이런 극단적인 조치조차도 결국 이미 기울어진 판도를 뒤집기엔 부족했다고 본다.


유럽은 왜 중국처럼 재통일되지 못했나?

지도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려 동양의 사례를 보면, 당대 로마와 비견되는 또 다른 패권국이었던 한나라가 동양의 헤게모니를 꽤 오랫동안 쥐고 있었는데, 비록 한나라 자체는 멸망했지만 이후, 수나라를 비롯한 중국 통일 왕조들이 한나라의 영역권을 다시 수복하는데 성공하고, 한족으로 대표되는 중국만의 독특한 민족적 정체성을 보존해왔음을 떠올려본다면, 왜 유럽은 로마의 멸망 이후 그런 통일 국가가 다시 나타나지 못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는 한 가지 이유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 여러 복합적인 원인에 기인한 결과이겠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설득력있는 요인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먼저 지리적인 요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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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시기의 서로마 제국 영토.

서로마 제국이 당시 점유하고 있었던 영토는 지금의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방에 걸쳐져 있는데,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서유럽이 동유럽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부유하고 안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나 고대 로마 시기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당시에는 지중해 무역과 실크로드 무역이 대세였기에,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서로마는 동로마 영토들에 비해 도시화 비율도 떨어졌고 무역량 부분에서도 동부의 그것에 비해 한참 뒤쳐져 있었다. 또한, 로마 제국 서부는 라인-도나우강과 알프스 산맥을 제외하면 자연적인 경계선이랄만한 것이 없기에 라인-도나우강 전선이 뚫리면 영토 내부로 침입해오는 이민족들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도 없었다.

특히나, 라인강 전선이 뚫리게 되는 것은 서로마 제국에 있어서 상당히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는데, 침략자의 입장에서 일단 라인강만 넘게 되면 갈리아 지방을 거쳐서 이베리아와 이탈리아 반도까지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라인강 전선은 서로마에게 있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사수해야만 하는 지점이었다. 일례로, 서로마 제국의 명장 스틸리코마저, 이탈리아로 침입해오는 이민족 군대를 막아내기 위해 라인강 주둔군을 차출하여 이탈리아로 불러들임으로서 (*그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원로원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질타를 받게 된다. 이처럼, 당대인들도 라인강 전선이 돌파당하면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서로마 제국은 드넓은 영토를 관리할만한 역량도, 그것을 지켜낼 군대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졌던 라인강 전선마저 붕괴함으로서, 제국의 영토 곳곳에는 온갖 이민족들이 들어와 눌러앉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고 만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서로마의 영토는 점점 쪼그라들어 나중에 가서는 실질적으로 이탈리아 반도와 갈리아 북부로 권역이 제한되어 버리는데, 이 시점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생산력만으로는 잃어버린 서로마 고토를 되찾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서로마에게 그런 힘이 있었다고 해도 서로마의 행정부는 리키메르, 오도아케르같은 권신들의 폭정으로 이미 정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한 대대적인 정복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질리도 만무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비추어 짐작해봤을 때, 로마 제국의 영역권, 즉 유럽 대륙은 지리적인 요건에 의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영토를 방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설령 그것이 이뤄지더라도 막대한 자원과 인력이 소모된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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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지도.

반면, 세계 반대편에 있던 중국은 어떠했는가? 비록, 위진남북조나 5대 10국같은 혼란기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왕조들은 유럽과는 달리 매번 통일된 형태로서 나아갔다. 이러한 사실 또한 지리적인 요인에 기반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히 있어왔는데, 핵심적인 부분만 간추려 설명하자면 중국 대륙은 유럽 대륙에 비해 외적이 내부로 들어올 수 있는 길목이 매우 좁고 제한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쪽에는 험준하고 척박한 티베트 고원이 빽빽하게 솟아있고, 동쪽으로는 바다와 접해있으며, 남쪽으로는 숲과 밀림들이 우거져 있어 자연스레 이민족의 주요 침입 경로는 산해관으로 대표되는 요서 지방의 작은 틈 정도가 고작인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일단 한 번 통일이 되면 그것을 유지하고 지켜내기는 비교적 수월하다는 이점이 있다. 단적인 예로, 송나라가 요와 금을 상대로 요서 지방의 연운 16주를 탈환하기 위해 왜 그리 집착적인 태도를 보였는가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설명이 되는 것이다.

유럽이 통일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로는, 로마 제국에 살던 이들이 "로마인"이라는 하나의 기치 아래 단합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던 점도 한 몫 했다. 그나마 후대에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해냈던게 기독교였고, 실제로도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지만 이후에 벌어진 신학 논쟁, 교파간의 갈등 등으로 지속적인 분열의 위기를 겪었기에 이 조차도 완벽한 해답이라고 볼 순 없었다. 예컨대, 한나라만 하더라도 "한족"이라는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이 로마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뚜렷했고, 이후에도 이 "한족"이라는 정체성은 끝까지 살아남아 한 왕조가 멸망한 이후에도 그를 계승한 국가들이 탄생하고 소멸하고를 반복한다. 그런데 로마는 어디까지나 그러한 정체성이 당대인들의 관념 상에서만 머물 뿐이었지, 고대 로마의 부활과 계승을 주요 기치로 내걸고 로마 제국의 재건을 시도했던 나라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못했다. 물론, 이는 아직 로마 제국 그 자체인 동로마 제국이 멀쩡히 살아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동로마 제국 조차도 결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지중해의 패자로 군림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유럽의 헤게모니를 일방적으로 장악한 국가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또 다른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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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의 언어 지도

무엇보다도, 동로마 제국은 본질적으로 다민족, 다문화 국가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도에서 보여지듯, 이미 제국 내에서 사용되는 언어만 하더라도 한 두개가 아니었고 이는 같은 "로마인"이라 할지라도 서로 문화적 동질성을 체감하기 어려운 요소로서 작용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듯 제국 내 종교 문제도 로마인들의 단결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원인이었는데, 예컨대, 니케아 공의회를 비롯한 여러 신학적 논의가 국가 차원에서 여러 번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교구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이는 영구적으로 제국의 여론이 분열되는 결과를 야기시켰다.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들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기독교를 통일된 하나의 카테고리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기독교가 카톨릭과 개신교로 분리되기 한참 전에도 기독교는 굉장히 다양한 분파가 난립하여 서로 반목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었어서, 로마 제국 입장에서 이를 중재하고 관리하는데 굉장한 부담이 되었다. 일례로, 로마 제국에서 공인된 기독교의 종파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한 "칼케돈파"로 명목상 합의가 진행된 바 있지만, 그럼에도 제국 내에서는 "비-칼케돈파"로 불리우는 여러 종파들이 각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상황이었다. 로마 사회의 통합을 위해 기독교를 공인한 것인데, 오히려 그것이 의도와는 다르게 제국 내 통합을 방해하기도 했던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사회가 전반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갈등과 분열을 반복하니 로마 제국은 불안한 토대 위에 세워진 기둥과 다를 게 없었다. 그나마 제국 서부는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이러한 복잡한 논쟁들로부터 상당 부분 벗어나 있었다는게 서로마의 입장에선 작은 위안이라고나 할까.


로마 제국의 후예들

로마 제국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국가들이 이후에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샤를마뉴 대제 시기의 프랑크 왕국을 꼽을 수 있을 것이고, 그보다 더 후대에 등장하는 신성로마제국도 샤를마뉴 대제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로마 제국 그 자체였던 동로마 제국은 이를 상당히 아니꼽게 여기긴 했는데, 어차피 동로마 제국은 이 시점에 와서는 과거 강력했던 지중해 패권을 잃어버린 상태였기에, 몇 차례의 소규모 국지전을 제외하면 두 나라가 대규모 군세를 동원하여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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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제국을 계승하였음을 천명한 프랑크 왕국.

한 편,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중세의 시작을 열었던 동로마 제국은 그 이후에도 1천년 가량을 더 버티는데 성공한다. 흥미롭게도, 동로마 제국이 그렇게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던 것 또한 지리적인 요인에서 기인하고 있다. 비록, 매번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동부에 걸친 이중 전선의 압박에 시달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제국은 비단길 무역을 통해 얻어지는 막대한 부는 그러한 단점조차 상쇄시킬 수 있었고, 유사 시 양측 전선 중, 어느 한쪽이 뚫리더라도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천혜의 요새가 반대편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줌으로서 나머지 다른 한 쪽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콘스탄티노플은 과거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의 위상을 가뿐히 뛰어넘은 셈이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 서유럽에서는 많은 이민족 왕조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독자적인 세력권을 구축했지만, 로마 제국의 구속력과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어서 실제로 서고트 왕국과 동고트 왕국은 로마 제국의 화폐 양식을 그대로 가져다가 쓰기도 했다. 로마 제국이 멸망했다지만, 그 곳에 살던 로마인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기 때문에 로마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동고트 왕국을 비롯한 몇몇 이민족 왕조들은 명목상 동로마 제국의 신하국임을 분명히 하였으나, 시간이 흘러 이조차 유명무실해지거나 심지어 부정되기도 하면서 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발발한 고토 수복 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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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무너져가는 동로마 제국

결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때 발발한 고토수복전쟁에 의해 반달 왕국과 동고트 왕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고, 서고트 왕국과 프랑크 왕국만이 살아남아 지중해 세계는 다시 한번 로마 제국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조차도 잠시뿐이었고, 이후 동로마는 역병의 대규모 창궐과 전쟁으로 인한 파괴, 사산조 페르시아의 대대적인 침공과 그로부터 50년도 채 안 되어 이슬람의 발흥까지 겹치게 되면서 영영 이전과 같은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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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되고싶다
+ 24/09/20 13:56
수정 아이콘
로마 제정 보면 동양에서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장자상속제 고집했는지 알 수 있죠. 훌륭한 사람을 뽑는다는 게 말은 좋아도 매번 내전을 일으켜버리니. 그나마 오스만처럼 핏줄에 의한 제한이라도 확고했다면 모를까 그마저도 없으니 군사 쿠데타로 즉위한 황제가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고...
개인적으론 저런 말도 안되는 계승 방식을 가지고도 저렇게까지 오래 버틴 게 오히려 로마의 저력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중화의 한족급은 아니더라도 '로마인'이라는 정체성이 뿌리박혔기에 알렉산드로스 사후 마케도니아꼴은 안났겠죠. 생각해보면 다들 지가 로마 황제 해먹겠다고 달려들었지 다른 정체성으로 독립해서 동네 짱 하겠다고 생각한 놈은 거의 없었던 거 생각하면(아예 없진 않았음) 그만큼 로마란 토대가 확고하지 않았나 시프요. 결국 로마가 쪼개진 게 아니라 동로마든 서로마든 외부로부터 붕괴한거니.
더히트
+ 24/09/20 14:04
수정 아이콘
정성스런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히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샤를마뉴 대제 -> 샤를 대제, 또는 그냥 샤를마뉴 로만 고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샤를마뉴 대제는 샤를대제 대제로 중복 표기라 흐흐흐.. 글 내용은 너무나 좋습니다!! 다른 것도 써주세욥
o o (175.223)
+ 24/09/20 14:13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에 포카스를 얹었어도 할리드만 없었으면 이집트와 레반트 상실은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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