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후기입니다.
저는 어떤 컨텐츠를 접하고 마무리할 때, 장르 및 매체와 무관하게 '내게 얼마나 큰 감정의 울림을 주었는지'를 잣대로 나름의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따로 기록하는건 아니고, 컨텐츠 제작자에 대한 소비자 개인의 존중을 표하는 느낌으로요.
하지만 굳이 소감을 남겨두고픈 좋은 컨텐츠들이 있는데, 림버스 컴퍼니(이하 '림버스')도 그랬기에 두서없는 후기를 남겨봅니다.
서두에 쓴 것처럼 아래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입니다.
림버스는 장단점이 매우 뚜렷한 게임입니다.
극초반부(0~1장)은 진입 절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죠.
개발사인 프로젝트문은 유저별 진척도를 로그로 남기고 있을텐데, 리세를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유저가 0장, 혹은 1장 초입에서 떨어져나가고 있을걸로 추정됩니다.
장점이 강렬한 게임이지만, 많은 게임들이 그 장점을 어떻게든 극초반에 어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프문은 극초반 폴리싱에 별다른 고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경험이 없었거나요..
동시대 발매된 한국 / 중국 / 일본의 모바일, 좀 더 구체적으로는 수집형RPG들과 비교했을때
최저 퀄리티의 일러스트, 조악한 스크립트, 정신없는 전투, 그리고 유저 이해도를 높이기보다는
하고싶은 얘기만 늘어놓는 튜토리얼과 수십장의 시스템 설명 페이지들이 극초반 유저 경험을 매우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습니다.
림버스에 유입된 유저들은 개발팀의 전작인 로보토미 / 라오루를 즐긴 프문의 팬층이거나,
'스토리 좋은 서브컬쳐 수집형 게임' 으로 기대하고 유입된 사람들, 혹은 아무 생각없이 신작이라 해본 사람들의
세가지 그룹 정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데, 적어도 라이브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 오래 유지하고 싶었다면
초반 폴리싱과 유저의 시스템 이해도를 높이는데 훨씬 더 공을 들였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0~1장의 거지같은 콘텐츠를 뜷고 나온 유저들은 2~3장은 무난하게 플레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투 시스템은 여전히 이해가 안될테지만, 어쨌든 '승률' 딸깍으로 넘어갈 수 있고, 힘들면 레벨좀 올리고 다시 도전하면 되고.
성장 방법과 성장에 따른 피드백이 잘 느껴지는 구간이라, 그냥저냥 플레이해서 4장까지 가거나.. 아니면
여전히 별로라고 생각하고 이탈하거나 하겠죠. 그래도 이탈자의 비중은 0~1장 이탈자에 비하면 굉장히 많이 줄었을겁니다.
저도 여기에서 접을 뻔 했지만, 4장 칭찬이 많아서 4장까지만 해보자고 꾸역꾸역 진행했습니다.
4장은... 업뎃 시점에 즐긴 림할배들은 당연히 극찬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연출 방식과 스토리텔링 모두 0~1장, 2~3장에 비하면 엄청나게 스텝업했어요. 전투가 너무 많다는 게 치명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텐션이 끊길 정도는 아니라서 마지막까지 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기승전겨어어어어어얼 느낌으로 극후반에 스토리 몰빵이 되어 있지만, 던전까지 진입하면 그런걸 잊게하는 몰입도 좋았고요.
특정 보스부터 본격적으로 보스전의 난이도가 상승하는 요소도 좋았습니다. 보통은 0~3장을 거치면서 순차적으로 난이도를 올리며
게임 시스템을 학습시켰겠지만... 갑자기 어려워진만큼 클리어했을때의 쾌감도 올라가니 이건 프문의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림버스의 최대 장점중 하나가 나오는데, 일반 일러스트의 퀄은 심각하게 안좋고 전투 장면의 가독성도 뇌를 빼고 만든건가 싶지만
(합 맞댈때는 크게 보이는게 중요하지만, 합 끝나고 데미지 판정 넣을때는 당연히 데미지가 잘보여야 하는거 아닌지. 그리고 여러 캐릭이 동시에 합, 공격등의 행동하는건 유저가 인지할 수 있는 정보량의 한계에 대해 고민이나 했는지 모를 정도..)
전투 화면에서의 SD 캐릭터, 타격감, 디테일은 훌륭합니다. 이런 장점을 십분 활용해서 '스토리 연출'을 전투 애니메이션으로 녹여낸 점은
50명이라는 소수 개발팀의 한계를 굉장히 좋은 방식으로 극복한 사례라고 생각해요.
5, 6장은 4장에서 보여준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완급조절도 한층 발전했습니다.
둘다 원작의 요소를 잘 녹여내면서,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도 끌어올려주고, 결말도 극적이면서 깔끔하게 내줘요.
만족스러운 스토리, 연출을 보면서 림버스를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7장도 좋았는데 스토리의 재미만 보면 5, 6장보다는 조금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종반 돌입부는 정말 괜찮았는데, 종반부는 좀 급전개 아닌가? 핍진성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7장은 전투씬을 통한 스토리 연출이 한층 더 올라가서.. 결과적으론 만족스러웠죠.
정리하자면 4장까지는 언제 이탈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5장부터 본격적으로 스토리 때문에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스토리와 전투씬 연출의 완성도는 다른 대기업 / 중국회사의 AAA 모바일게임과 비교했을때에도 강점이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러스트의 처참한 퀄리티와 초반부 폴리싱은 지금와서 프문이 손대기는 어려운 부분인 것 같고... 아쉽지만 참고 해야할 것 같아요.
스토리외에는 거울던전과 거울굴절철도, 채광이 있긴한데.. 채광은 억지로 하는 숙제에 가깝고(스킵에 재화 2배 소모시킬 필요가 있나 싶어요)
거던 노가다가 생각보다 덜 지루하긴 했습니다. 어차피 하드만 한번 돌면 노말은 유튜브보면서 딸깍이 되서...
이것도 다른 게임에서는 컨텐츠를 횡적으로 늘리면서 스킵을 시키긴 하는데... 뭐가 옳다고는 할수 없긴 합니다.
거울굴절철도는 반복 컨텐츠라고 할수는 없어서.. 일종의 도전 컨텐츠 개념으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쉽지만 스토리 모드에서 보여주는 컨텐츠의 깊이와 서브 컨텐츠의 깊이가 굉장히 많이 차이나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 모델은.. 아마 패키지 게임만 제작했던 스튜디오여서 많이 고민하지 않은 티가 좀 나는 것 같습니다.
저같은 일개 유저 입장에서야 패스만 지르고 거던 노가다만 돌면 인격 / 에고 수급에 어려움이 없으니 좋지만,
장기적으로 회사에 독이 될 수 밖에 없는 모델입니다. 가능성은 낮겠지만 8장 이후부터 스토리의 흡입력이 줄어든다면
지금의 모델이 치명적일 수 있어요.
그밖에도 이중 접속 처리라던가... 깔끔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넘어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합과 코인 시스템은 아이디어가 참 좋다고 생각하는데 비슷한 게임이 있었나 싶습니다.
전투 비주얼과 정신력, 침식등의 요소는 다키스트 던전에서 일부 영향받은 티가 나는데, 저 두개는 전투의 핵심적인 요소인데
다른데서 못본것 같아서... 전투의 전략성과 운빨을 동시에 높이는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합니다.
요약해보자면,
- 일러스트와 초반 유저 경험(스토리, 학습, 전투, 비주얼, 동선등 전반적으로)은 너무 아쉬움. 인디 게임 스튜디오의 한계긴 하겠지만.
- 세계관과 스토리(+연출)는 림버스의 최대 강점. 역설적으로 스토리가 재미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게임의 최대 위기겠죠.
- 이외에도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스토리 보는 맛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만 길게 썼지만... 사실 팬이 됐으니까 하는 얘기였구요,
접었다면 이런 글 끄적거리지도 않았겠죠..
사실 7장에서 눈물 찔끔할뻔 했고,
5장하면서는 AAA급 패키지 액션RPG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