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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02 16:58:03
Name 라쇼
Subject [기타] 내가 가본 이세계들 (2) 노라쓰의 추억 (수정됨)




에버퀘스트 일본 유저  robin01jp가 그린 만화 모두 노라쓰의 하늘 아래입니다. 이 작가는 울온 만화도 그렸었는데 울온, eq 유저 모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었죠. 참고로 1, 2화 캘러씬에서 떨어져서 죽는 내용은 저도 겪은 경험담입니다. 후술하겠지만 에버퀘스트는 정말 불친절한 게임이라 아차하면 죽는게 일상이었죠. 불편한 시스템과 인터페이스가 게임 난이도를 올려주는 하드코어한 게임이었습니다. 더 많은 만화를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bbs.ruliweb.com/best/board/300143/read/42539504




에버퀘스트 오프닝 테마


에버퀘스트 캐릭터 메이킹 테마. 이 노래를 들으면 지금이라도 노라쓰에 첫 발을 내딛은 것처럼 가슴이 설레어 오네요.







전설의 시작, 에버퀘스트 오리지널. 일러스트에 보이는 여성 하이엘프가 본작의 주인공인 피리오나 비(Firiona Vie) 공주입니다.



브리타니아에서 보내던 용사 아빠딸의 모험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제게 그닥 유쾌하지 않은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입영 통지서였죠. 군 입대를 하기 전에 음주가무에 빠지며 화끈하게 즐기던가, 아니면 미래를 대비하여 공부를 했으면 좋았겟지만, 이미 이세계의 삶에 익숙해져버린 저에겐 현실의 삶은 별로 매력적이지 못했죠. 이미 서드돈이란 재앙으로 망가져버린 브리타니아로 돌아가긴 싫었고,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세상이 없을까 하고 정보를 검색하던 와중에 어느 미모의 여성 하이엘프가 저를 송환하는 마법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피리오나 비. 노라쓰 행성 왕국의 공주이며, 선한 이들을 대표하여 악과 맞서싸우는 정의의 모험가였죠. 여기서나마 고백하는 거지만 용산 마굴에서 본 에버퀘스트 패키지에서 그녀의 가슴 부분만 볼록하게 엠보싱 처리 되어있어서 혹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 저는 혈기넘치던 스무살 청춘이기도 했지만, 결코 불순한 동기에 비롯해서 노라쓰 행성으로 향한 것은 아니었죠. 오직 노라쓰에 평화를 가져다줄 일념만으로 두 번째 이세계 행을 결심했습니다. 이제 다시 제 앞에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울 긴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라쓰에서 저는 진실과 용기의 신 미싸니엘 마르를 섬기는 정의의 팔라딘 아빠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한데, 그당시 저는 정의의 용사 컨셉에 심취해 있던 것 같았습니다. 무슨 게임을 해도 인간! 직업은 팔라딘!! 절대 타협해서도 마음을 바꿔 먹어도 안 될 저만의 불문율이었죠.

이번엔 저 혼자만 이세계로 간 게 아니었습니다. 친구도 함께해서 다크엘프 네크로맨서 봉봉쓰도 함께였지요. 근데 이녀석은 무슨 게임을 하든 조루인 녀석이라 금방 찍 싸더군요. 힘들게 품앗이해서 모은 아이템과 골드도 섭섭지 않게 주었건만 성의도 몰라주는 매정한 녀석입니다.

여하튼 인간을 고르면 시작지점이 대륙 서쪽의 퀴노스와 동쪽의 프리포트, 자유항 두 군데 중 한 곳을 선택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과 거리도 멀고 길도 불편한 퀴노스 대신 이동이 용이한 자유항을 선택했죠. 자유항 부둣가에서 런닝티셔츠에 쫄쫄이 바지를 입고 노라쓰에 전송되었지만 저는 자신만만했습니다. 브리타니아에서 드래곤과 바론을 양학했던 제게 무서운 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건 에버퀘스트의 노라쓰란 세계를 너무나도 만만히 본 뉴비의 만용이었습니다.





에버퀘스트의 첫 확장팩 쿠낙의 폐허. 고대 리저드맨 종족들이 다스리는 정글이 우거진 대륙이죠.





에버퀘스트를 키워드로 표현하자면, 파티 플레이, 무한 퀘스트, 레이드, 하드코어 등 입니다. 옛날 게임이라 시스템이 낡고 불친절하기도 했지만 그 특유의 시스템 때문에 정말 난이도가 하드코어급이었죠. 디아 하드코어 모드라고요? 그거야 죽으면 카우방에서 쫄받고 다시 키우면 그만이지만 에버퀘스트는 초보시절에 힘들게 모은 장비를 단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잃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게임이었습니다. 일단 미니맵과 지도 자체가 없고, 자기 위치를 찾으려면 채팅 명령어로 좌표를 보고 기억해야합니다. 근데 노라쓰의 몬스터들은 지나가다 발에 채이는 잡몹 고블린A라고 해도 초보 모험가들보다 월등히 강력합니다. 절대 혼자서는 죽었다 깨나도 이기지 못하죠. 소환수를 다루는 클래스인 네크로맨서나, 매지션이 아니고선 솔로잉할 엄두도 못냅니다. 파티를 못구하면 렙업이 막히는 거나 다름 없는데, 이놈의 몬스터들은 새벽의 저주에서 나온 좀비들처럼 뭐를 잘쳐먹었는지 달리기도 겁나게 빠릅니다. 그리고 와우처럼 어그로 초기화도 없어서 한 번 어그로가 끌리면 지구 끝까지 쫓아오죠. 살아남으려면 존이라고 하는 지역 서버를 넘어가는 방법 밖에 없었는데, 초보 모험가의 느린 발놀림으론 몬스터를 따돌리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럼 남은 운명은 결국 사망 밖에 없는데 죽으면 시체에 고스란히 모든 장비와 골드가 남겨집니다. 시체를 찾으려면 맨몸으로 공포스러운 몬스터 밭을 헤쳐나가야 하고 죽기전에 채팅 명령어를 쳐서 시체 좌표를 기억해야하는 거죠. 뭐이런 XX 게임이 다 있냐고? 놀랍게도 사실입니다. 약한 자는 결코 노라쓰의 험난한 자연에서 살아 남을 수 없었죠.

오크 캠프에서 파티플레이를 하여 순조롭게 성장하는 저 아빠딸은 자신만만했습니다. 뭐야, 난이도 SSS급 세계라더니 너무 쉽잖아? 그러나 교만에 빠진 초보 모험가에게 큰 코를 다치는 순간이 오는 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초보존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노라쓰의 모험가들이 장비를 물물거래하는 커다란 터널이 있습니다. 그 근처에 던전이라고 하기엔 조금 빈약한 동굴이 하나 있었죠.

한 번도 죽지 않고 렙업과 파밍을 하다보니 간댕이만 커져서 저는 던전 탐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사실 그 동굴은 던전도 아니라서 1층엔 변변한 몬스터도 없었죠. 1층 탐사를 마친 기념으로 스샷이나 찍을까 하고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던 참에 좋은 자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왠 말라버린 우물이었는데 그 위에 올라가서 포즈잡으면 딱 이겠더라고요. 스샷을 찍으려고 올라가는 어어? 미끄려집니다? 그리고 떨어집니다? 아니 무슨 끝도 없이 떨어지네요? 대충 지하 3층 이상 깊이로 떨어졌는데 뭔놈의 뉴비존에 이딴 그지 같은 장소를 만들어 둔답니까??? 무덤에서 빤스바람으로 부활한 저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번민에 사로잡혔습니다. 좌표도 기억 못했는데 어떻게 찾지? 떨어지면서 보니 몬스터도 많던데 맨몸으로 어떻게 쓰러뜨리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에 해답은 하나라고 결론을 내렷죠. 그것은 헬프 요청. 마침 저는 irc로 한국인 길드 채널에 들어가있었기에 시체를 찾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채널 속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이야기 하기 바빳고 저를 신경써주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죠. 그때 당시는 몇일 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란 충격에 휩싸였던 터라 그 사람들을 많이 원망했지만, 사실 채널에 접속한 지 얼마안되는 터라 친분도 없는 저를 도와줄 이유는 없었죠. 저도 딱히 그사람들에게 해준게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안 도와줘도 야속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어쨋든 제게 가장 중요한 지상 과제는 시체와 장비를 되찾아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불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잊고 있었죠. 바로 영어를 못한다는 점입니다. 게임 상에서 바디랭귀지로 도와달라고 의사전달 할 수 도 없고, 오또케 오또케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대화가 들리더군요. 그들은 바로 노라쓰에 찾아온 일본인 모험가들이었습니다. 저는 만화와 애니로 단련된 재플리쉬를 구사하여 그들에게 도움을 요쳥했죠. 그랬더니 그들은 흔쾌히 하이! 와카리마스, 하고 대답하더니 저를 데리고 동굴로 향했습니다. 알고보니 그 동굴은 초보자에게 악명 높은 장소였더군요. 우물에 빠지면 자력으로 시체를 찾는 건 블랙홀에 빠져서 탈출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난이도였습니다. 저는 지하 3층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깊기는 또 얼마나 깊은지 일본인 모험가들이 꽤 고렙으로 보였는데도 시체를 찾는데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리더군요. 결국 시체를 찾는데 성공했고 저는 감동의 눈물을 왈칵 흘리며 연신 도모, 아리가또, 도모, 아리까또를 외쳤습니다. 감사의 사례로 전 재산의 절반인 10실버를 내밀었는데 그것도 거부하고 오히려 1골드를 주더군요. 그때까지 일본인에게 안 좋은 선입관이 있었는데 천사로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한국인은 모른척 외면하는데 일면식도 없는 일본인들이 긴 시간을 할애해가며 도와주니 감동은 더욱 배가 된 것이지요. 이후로 파티플레이를 하며 던전도 자주 가보고 레이드도 가봤지만 노라쓰에서 가장 기억에 남던 추억은 그들 친절한 일본인이었습니다.





두번째 확장팩 벨리어스의 상처. 노스랜드의 npc펙션 구도와 흡사합니다.





교만을 버리고 신중해진 저는 그 이후에 동굴 사건처럼 위태로웠던 순간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무난하게 쑥쑥 커가면서 남부 오아시스와 개구리 인간들의 던전을 돌파하며 40렙을 넘겼죠. 이제 노라쓰 대륙에선 더 볼일이 없었습니다. 강해진 모험가에겐 새로운 모험의 장소가 필요했죠. 새 확장팩 쿠낙의 폐허를 깔 때가 왔습니다. 쿠낙은 사악한 도마뱀인간 종족 이크샤들이 지배하는 대륙이었죠. 과거에 영화를 누렷지만 몰락한 고대 종족이란 컨셉은 와우에서 트롤 제국이 오마쥬 했습니다. 쿠낙 대륙 다음엔 북쪽 얼음 대륙 벨리어스 차례였죠. 온통 얼음과 눈만 뒤덮인 설원에서 서로 세력 다툼을 벌이는 드래곤과 거인, 그리고 벨리어스로 진출한 이주민들의 삼파전. 이 구도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네, 리치왕의 분노 노스랜드가 딱 벨리어스의 상처 확장팩을 오마쥬한 거죠. 그 다음 확장팩인 루클린의 그림자는 노라쓰 행성의 위성인 루클린에 진출하는 내용인데 sf에서나 나올법한 자연환경과 몬스터들은 와우 첫 번째 확장팩 불타는 성전의 무대인 아웃랜드와 흡사합니다. 탱딜힐이라는 파티 역할 분담과, 딜과 힐의 어그로개념, 그리고 레이드까지 와우가 에버퀘스트를 참고한 시스템이 많았지만, 확장팩의 컨셉도 비슷했지요. 이는 블리자드가 와우를 개발하면서 에버퀘스트에서 열렬히 활동하던 공격대 유저들을 대거 채용했기 때문입니다. 오버워치를 개발한 제프 카플란이 에버퀘스트 유저 출신이죠. 즉, 에버퀘스트 폐인들이 와우를 만들었기에 시스템이나 확장팩 컨셉이 비슷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세번째 확장팩 루클린의 그림자. SF적인 배경과 몬스터들이 와우 불타는 성전 확장팩의 아웃랜드를 떠올리게 하죠.




사실상 에버퀘스트의 후속작은 에버퀘스트2가 아니라 와우라고 해야 맞는 말입니다. 와우는 에버퀘스트의 불편한 시스템을 상당히 개선해서 호평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히트하는 성과를 이룩해내죠. 출시 전에는 나때는 솔로잉은 꿈도 못꿨고, 와우는 에버퀘스트를 마이너 카피한 뉴비들이하는 게임이다하고 엣헴하는 꼰대영감님들이 많았지만, 저는 유저 편의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한 와우 개발진들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nc소프트의 창업자 김택진이 에버퀘스트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 국내에 들여왔지만, 아무리 편의성 좋게 수정해도 에버퀘스트는 하드해도 너무 하드했죠. 마나채우려면 물빵 이런 것도 없이 무한정 앉아서 마법책 화면만 들여다 보고 있어야하는데 성질 급한 한국인 성격에 누가 이걸 계속 하겠습니까. 에버퀘스트의 국내 참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죠.

그래도 와우에서 받아들였으면 하는 참신한 시스템은 에버퀘스트에 많이 존재했습니다. 탱커, 힐러, 딜러, 메저, 아무 쓸때도 없는 하이브리드 클래스 등 이런 파티 포지션은 와우에도 있지만, 몬스터를 유인해오는 풀러라는 개념은 와우에선 좀 희박해졌죠. 에버퀘스트엔 몽크라는 직업이 있는데 딜도 맺집도 어중간했지만 죽은 척하기라는 엄청난 스킬이 있었습니다. 어그로 초기화 개념이 없는 에버퀘스트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어글 갱신 기술이었죠. 몹을 땡겨와서 신나게 도망치다가 파티원 근처까지 오면 철푸덕하고 쓰러져서 죽은척하여 탱커에게 인계하는게 몽크의 아이덴티티였습니다. 탱도 딜도 힐도 다른 직업에게 한참 밀리는 팔라딘 같은 똥캐보단 몽크는 파티에 필수인 귀족 직업이었죠. 귀족 직업하니 인챈터란 클래스도 기억이나네요. 인챈터는 파티원 모집시 손만 들어도 부리나케 모셔가는 귀족 중의 귀족 직업이었는데 클래리티라는 마나리젠 부스트 스킬이 있었습니다. 마나를 채울 방법이 마법책보고 메디테이션 밖에 없는데 인챈터의 클래리티는 정말 가뭄의 단비 같은 꿀 스킬이었죠. 그 뿐만 아니라 메즈도 가능했기에 인챈터를 고르면 파티원 못 구하는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습니다. 노라쓰에서 모험을 하면서 처음으로 팔라딘 고르지 말고 인챈터나 할 걸 하고 후회를 해봤네요. 지금이라면 무조건 성능충으로 직업을 고르겠지만 그때 당시엔 롤플레잉 컨셉에 한참 빠진 터라 성능 좋은 직업은 고를 생각도 안했었는데 처음으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나하고 의심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에버퀘스트를 하면서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는데, 그건 팔라딘이 에픽 퀘스트를 수행하여 최종적으로 얻는 에픽 무기 홀리 파이어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에버퀘스트의 퀘스트를 수행하는 방식은 그냥 말걸어서 지문을 읽고 수락하는 와우와 달랐는데, 울티마 시리즈의 대화 시스템과 비슷했죠. hail 하고 npc에게 채팅을 치면 npc가 반응하여 대화를 시작하고 대화 중에 [키워드]를 말하는데, 이 키워드를 계속 물어보다 보면 퀘스트를 받게 되는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창고에 보관한 곡식을 쥐가 파먹어서 고민이야. 개중엔 어찌나 [큰 쥐]가 있는 지 덩치가 송아지 만하더라니까? 무서워서 잡을 생각도 못하고 도망쳤지 뭐야." 이런 대화가 나오면 키워드 큰 쥐를 물어보면 술술술 대화가 이어지다가 괴물 쥐를 잡으란 퀘스트를 받게 되는 것이죠. 홀리 파이어 퀘스트는 자유항의 우두머리인 npc를 처치하고 목을 얻어와야 하는 임무인데, 앞서 말했다시피 에버퀘스트의 몬스터와 npc는 유저보다 훨씬 셉니다. 특히 가드는 왠만한 던전 몬스터보다 강력하죠. 자유항npc를 공격하면 자유항의 평판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경비병부터 지나가는 가몬까지 유저만 봤다하면 공격부터 하고 보는데 이 npc 수장을 잡으려면 수십 명의 길드원이 모두 동원되야 했지요. 이 평판이란게 와우의 평판을 생각하면 큰 오산인게 올리기가 무지 빡셉니다. 몬스터들을 수만마리 잡아도 약간 올라갈까 말까 할 수준이죠. 즉, 홀리 파이어 퀘스트를 수행하려면 길드원 전원이 자유항 평판을 포기해야 가능한 어마어마하게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였습니다. 길드에서 좋은 평판과 인맥을 쌓아두지 않는 이상 퀘스트를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했죠. 그렇다고 홀리 파이어가 와우 전설 무기처럼 성능이 좋기라도하냐? 아닙니다. 쿠낙의 폐허만 가도 홀리 파이어 뺨치는 무기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저 칼날에 불길이 활활 타오른느 간지 때문에 얻는 팔라딘 직업의 상징적인 무기였을 뿐이죠. 뭐, 에버퀘스트는 울티마 온라인보다 플레이한 시간이 적었기에 평판 페널티를 감수하고 길드원들이 저를 도와줄 이유는 없었습니다. 더 오래했다면 얻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조금 아쉬울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죠.

얼음 대륙 벨리어스와 노라쓰의 달 루클린까지 가서 레이드 보스도 잡아보고, 월드 이벤트인 투명 드래곤 케라핌도 잡아보고 했지만, 역시 기억에 남는 추억은 친절한 일본인들과 곡괭이로 백스탭(배후에서 기습)을 특기로 하던 드워프 도적 주석 뿐이네요. 수염은 덮수룩하게 해가지고 쌍 곡괭이로 현란하게 몬스터 똥꼬를 후비더니만 현실은 귀여운 고딩이었습니다. 가수 주석을 좋아해서 캐릭터 이름도 주석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던데 그 친구를 통해서 주석을 처음 알게 됐었네요. 당시엔 말투나 행동도 귀엽기 짝이 없는 동생이었지만 어느덧 그 친구도 수염이 덮수룩한 아저씨가 됐겠군요.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반면에 잘 살고 있으려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세계 노라쓰 편도 이만 끝내볼까합니다. 다음은 전장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암흑기의 카멜롯과 야만인 왕 코난이 다스리는 하이보리아 세계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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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고민많을나이
20/07/02 17:2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7/02 17:25
수정 아이콘
타우렌 마을들도 첫 만화같은 식이던데 크크크
20/07/02 17:31
수정 아이콘
썬더블러프도 낙사하기 딱 좋은 맵이었죠 크크. 근데 에버쿼스트가 더 악랄한게 도시 길도 복잡한데 조명도 어두컴컴해서 조심한다고 신경써도 툭하면 떨어져서 죽어요. 미니맵도 없어서 시체가 어딨는지 찾기도 어려워서 기피 도시 1순위였죠.
20/07/02 17:43
수정 아이콘
에버퀘스트 초반 퀘몹들이 너무 강력해서 무조건 파티플을 해야 했죠 크크 5렙짜리 벌들부터 생긴게 에일리언 뺨치게 생겨서 강하기도 내 캐릭이랑 거의 1대1이 되는.
20/07/02 17:52
수정 아이콘
몹을 1대 1로 잡을 수 있는 구간이 스타트 지점 뉴비존 밖에 없었죠. 그 뉴비존 몹들도 한 마리 잡고 오래 쉬어야 하긴 했지만요. 한국 버전은 체력 마나 리젠을 늘려나서 쉬웠지만요. 스타트 지역에서 바로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기만해도 무조건 풀파티로 잡아야해서 비주류 직업은 파티구하느라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지나가는 고렙유저가 버프걸어주면 버프빨로 암사자 같은 걸 혼자서 잡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BlazePsyki
20/07/02 17:55
수정 아이콘
(2) 보고 다시 (1)을 보려니 없네요...? 지우신건가 ㅠㅠ
20/07/02 17:58
수정 아이콘
1편 울티마 온라인은 자게에 있습니다. 게임 게시판에 더 맞다고 생각되서 2편은 겜게에 올렸네요.
BlazePsyki
20/07/02 18:02
수정 아이콘
아....... 잠결에 1을 봤더니 크크크크크
20/07/03 00:48
수정 아이콘
어린시절 게임피아 같은 잡지를 보면 마지막 광고란에 에버퀘스트 확장팩이라면서 항상 헐벗고(?) 묶여(?)계시던 분이 계셨는데 이름을 이제야 알겠네요.
20/07/03 01:32
수정 아이콘
듣고보니 게임잡지 쿠낙의 폐허 광고가 항상 실려있던게 기억나네요. 피리오나 공주님이 쿠낙 확장팩 일러스트에만 잡혀있는 히로인 포지션이지만 다른 시나리오에선 능동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걸크러쉬 캐릭터였습니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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