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올렸던 글을 드디어 이어서 씁니다.
이전에 올렸던 글은 여기 (
https://pgr21.net/?b=6&n=58107 )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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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본 궤도에 접어들었던 제 일을 써야겠네요. 저는 지난 1편에서 거론했다시피 기록원에 대한 연락을 받고 제가 맡았던 리그는 GSTL입니다. GSTL에 관한 많은 기록을 예전 커뮤니티에 올려서여도 있었고 선수의 승리에 대한, 즉 전적에 대한 것을 펼치기에는 개인리그보다는 팀리그가 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 더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당시 GSTL에서 보여드렸던 기록은 GSTL만의 다승과 승률 그리고 9전 5선승 승자 연전이라는 특성에 맞게 1번부터 5번 주자로 섰을 때 승률 그리고 제가 처음 들어와서 승자연전 테마에 가장 잘 맞았다고 생각하는 평균 연승이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지표였습니다. GSTL 다승/GSTL 출전 횟수니까 야구의 타율과 같은 방식에 희생타나 사사구를 고려할 필요도 없는 녀석이었죠.) 다른 곳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승패를 아주 세세하게 쪼개서 보여드린 데이터로 회사 내에서는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플레이어 별로 승패에 대한 지표도 뚜렷했는데 특히 제가 자유의 날개 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박수호 선수의 경우 oGs를 상대로 단 한 세트도 GSTL에서 내준 적이 없으며 대장으로 출전했을 때의 승률이 어마무시 했었습니다. 당시 MVP팀의 수호신이 누구냐고 물으면 백이면 99는 박수호를 지명했을 때니까요. 그래서 그걸 바탕으로 당시 GSL을 가장 성실하게 보도했던 TIG에 기사 소스도 제공했었던 기억이 가장 크게 남습니다. 그 이후 GSTL이 종료되고 2013 GSTL S2에서 엔트리 예고제를 도입하기 전까지 제가 확립해놓은 체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리그의 방식은 때때로 변했지만 제가 추구했던 테마 '승자연전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팀리그로 시작했던 저의 업보(?)는 프로리그 2014 시즌의 대부분을 책임지면서 이어지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시간 순으로 흘러가는 흐름상 조금 있다가 나오게 되겠습니다.
애초에 GSL 기록원은 제가 GSTL 그리고 저보다 먼저 그래텍에서 컨택된 한 분이 개인리그를 맡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이직을(전혀 다른 분야였습니다.) 하는 것이 결정되면서 저는 개인리그와 팀리그를 모두 책임지는 기록원이 되어야 했습니다. 물론 개인리그 기록도 같이 논의하고 엑셀로 기록을 모으는 함수의 설계는 제가 했으니까 그렇게 큰 부담은 안 되겠거니 했습니다. 사실 제가 꽃을 피운 녀석이긴 하지만 이직하셨던 분이 리플레이 분석기를 통해 기록을 분석하는 것은 씨를 심으셨거든요. 그러니까 뭐 이어받아서 하면 되겠지 했는데.... (김상중씨 톤으로)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해운대로 내려가는 일정으로 인해, 주 5일 3시간 통근이라는 것이 있음을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때 새롭게 시도했던 리플레이 기록들을 8강에서부터 신나게 풀어내면서 시청자 분들이 보여주셨던 반응들이 아니었다면 쉽게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새롭게 시도했던 여러 가지 기록들이 여러분의 큰 반응을 이끌어냈고 그래서 조금 더 약을 빨아보고 저그에 대한 별별 기록들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승현 선수가 우승했던 2012 GSL S4에서 시도했던 저글링 대 맹독충 비율, 분당 점막 종양, 분당 애벌레 생성 등등이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예전 인벤 인터뷰에서도 밝혔다시피 변현우 선수의 해병, 불곰, 공성전차 비율 기록이 되겠습니다. 아틀란티스 스페이스쉽 전장에서 뛰쳐나가는 테란 병력에 맞춰서 넣었던 그 기록은 제가 의도한 바와 장면이 정확하게 맞은 속된 말로 '아다리'가 딱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유의 날개 황금기와 함께했던 2012년은 제게는 못 잊을 한 해였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반응과 연맹 대 협회라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화제를 뿌린 경기들. IPL과 함께 했던 두 번의 결승.(물론 저는 상황이 이차저차해서 못갔습니다.) 물론 2012년의 마지막 대회였던 블리자드 컵은 '워커힐 대참사'(...)와 함께 마무리 되었습니다만 뭐 해운절도 경험해 본 스태프들은 그냥 넘길 수 있었습니다. 2012 GSL 시상식 때 했던 별의 별 시상식에 나왔던 여러 상들에 제 아이디어가 많이 녹아있어서 기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2013년은 저와 그래텍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기간이었습니다. WCS 체제로 인한 기존 스타들의 해외행은 리그를 꾸미는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는 요소였죠. 여태까지 형성되었던 캐릭터들이 더 이상 조명해 줄 수 없고 게다가 기록을 뽑기에도 게임의 변화 폭이 너무 컸습니다. 결국 2013년에 저는 군단의 심장과 함께 역할의 변화를 꾀하기 시작합니다. 선수의 예전 가십과 스토리를 조명해주기로 한 겁니다.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던 내용을 인 게임 자막으로 쓰는 시도는 별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Pgr에 따로 올린 적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계속해서 개인리그와 팀리그를 담당하고 도타 2로 펼쳐진 NSL(스타터, 스폰서십)까지 맡았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제한이 되던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2013년은 별로 쓸 이야기가 없군요. 어윤수 선수의 준우승 전설 시작이 된 시즌인 2013 WCS KR S3 GSL 말고는 흠... 그래텍에서 했던 리그들보다 시즌 파이널이 더 화제가 되고 재미도 있었던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저는 2015 WCS 모델처럼 한국에서 양대리그를 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밝아온 2014년... 저는 그래텍을 부 수입으로 스포TV 게임즈를 주 수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에 대한 사정은 뭐 너무나 복잡한 관계로 다 쓸 수가 없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아무튼 2014 GSL은 서브로 도와드리는 식으로, 프로리그 2014는 2라운드부터 통합포스트시즌 4강 2경기 끝까지 책임지고 KDL은 시즌 2까지 담당했습니다. 프로리그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주3일 방송이었고 게다가 일요일 프로리그는 KDL 끝나고 쉬지 않고 진행했으니 실상 4일 방송이었지만 방송 회차로 생각하면 5회차 방송에 송고하는 자료도 Code S가 개막하면 더 많아졌으니, 저 때도 열심히 살았군요. 프로리그는 담당 PD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컨디션 그래프로 선수의 기세를 반영했고 프로리그 최근 5전으로 국내 유일무이의 팀리그라는 점을 조명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안타까운 이름이 된 프라임의 연패와 특히 허약했던 저그라인의 기록도 냈었는데 제발 분발해달라는 의미였는데... 그럴 줄은 또 몰랐네요. 그리고 포스트 시즌에서는 팀 별로 종족, 선수별 기여도를 보여드리면서 이 팀에서 이번 시즌에 이 선수가 제일 잘했고 어떤 쪽으로 편중되었거나 혹은 골고루 활약했다는 점들을 보여드리려고 했었습니다. 물론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프로리그 2014 4라운드 쯤 8월 5일 입대영장을 받고 입대 일주일정도 전까지 미친 듯이 일하다가 군에 입대해서 지금 1년을 넘기고 휴가 나와있습니다.
2016년 5월에 전역을 하면 제가 어디로 가게 될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스포츠 업계로 돌아오겠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제가 선택한 저를 가장 기쁘게 하는 일 들 중 하나니까요.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