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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16 16:58:41
Name 일모도원
Subject [기타] 오랜만에 발더스 게이트를 해봤습니다
사실은 '오랜만에'는 아닙니다; 이젠 아예 모든 분기와 대사, 이벤트 npc가 출현하는 좌표까지 욀 정도인데 '아 이제 좀 지겹네' 하면서도 또 엔딩까지 보는 이 미친 짓거리란..-_-;

수도없이 다시 할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계열의(?) 게임 가운데 완성도가 정말 독보적입니다(그래봐야 토먼트, 아이스윈드 데일 정도지만;). 사실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는 위대하기까지 한 시나리오에 비해 게임성은 매우 부족하고, 아이스윈드 데일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좀 떨어집니다.

1편은 밀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광막한 세상에 맨몸으로 던져져 방황하는 막막함이 매력적입니다. 큰 줄기는 있지만 곁가지로 붙는 서브 퀘스트들도 많고, 새로운 지역으로 진입해서 어디서 뭐가 나올지 모르는 숲과 산속을 헤매는 그 묘한 기분이란...

사실 완성도가 정점에 달하는건 2편 이후죠. 시나리오의 매력이나 뚜렷한 캐릭터성, 매우 만족스러울 정도의 볼륨까지...

이번에 처음 느낀건데, 대단원의 막을 장식하는 2편의 확장팩(바알의 왕좌)이 정말 멋진 마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장팩 치고는 볼륨도 준수하고, 무엇보다 (매우 전형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멋집니다. 일단 오프닝부터 비장미가 넘칩니다. (이하 스포) 엘프 왕국의 파멸을 막아내고 가히 신의 경지에 도전하는 초유의 악당을 지옥의 밑바닥까지 쫓아가서 처단한 주인공, 그럼에도 (1편의 엔딩에서도 그랬듯) 세상은 그것을 인정해주기보단 여전히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아무리 영웅적인 행동을 해도 그놈의 '더러운 핏줄' 때문에...

그 와중에 1편의 보스 사레복이 획책했던 음모(설정에 어두워서 자세히는 설명 못하지만, 세상을 피와 전화에 휩싸이게 해서 죽은 악신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실행에 옮긴 5명의 '바알스폰'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과 한 핏줄인 형제이기도 한 이들은, 경쟁자가 될 바알스폰들을 깡그리 잡아죽이려는 한편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켜 세계를 절망에 빠뜨립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영웅의 행보를 걸었던 주인공조차 이 악당들과 도맷금으로 묶여 혐의를 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사실 2편 확장팩까지 오면 캐릭터들의 능력이 소위 '에픽' 급이 되어서 현실감이 없어져버립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게임 중후반부에 슬쩍 지나가는 흥미로운 이벤트가 있습니다. 5명의 이복형제들을 한명 한명 처단해나가는 주인공과 동료들을 갑자기 왕국의 군대가 가로막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대혈전(실제 게임상에선 쉬운 전투;)을 벌여 이기고 적들의 막사를 뒤져보니 주인공에게 (다른 형제가 저질렀던 짓인) 학살과 파괴의 혐의를 씌워 포상금을 건 현상수배 전단이 나옵니다. 1편에서 사레복같은 희대의 괴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음에도, 자기가 구한 사람들로부터 의심받고 배척받아 쫓겨나다시피 터전을 떠나야 했던 주인공은 게임이 다 끝나가는 시점까지도 안습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온갖 핍박과 고난을 기적처럼 이겨낸 주인공은 마침내 아버지 바알의 왕좌 앞에서 최후결전을 치릅니다. 아버지를 섬기던 심복이었다가 뒤통수를 치고 자신이 그 바알의 신성을 독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민 다크스토커 아멜리산과...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결전답게 어려운 싸움입니다. 이미 무수하게 살해된 바알의 자식들로부터 모인 '에센스'를 잔뜩 손에 넣은 아멜리산은 죽여도 에센스를 가지고 부활하고, 또 죽여도 부활하고, 무려 세번에 걸쳐 좀비처럼 되살아나 주인공 일행을 극한으로 몰고갑니다. (....라지만 물론 실제 게임은 바닐라 판에선 그렇게 어렵진 않습니다;)

결국 아멜리산의 되잖은 음모는 수포로 돌아가고, 이 모든것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신의 사자가 나타나서 주인공에게 최후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아 신의 반열에 오를 것인가, 이토록 영웅적이었지만 언젠가 먼지로 스러질 필멸자로 남을 것인가.

어느 것을 선택하든 명분이 있고 엔딩도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필멸자로 남는 것이 이 게임의 眞 엔딩이 아닌가 합니다.

게임상에서 '부성'이 부각되지는 않지만, 이 게임의 중요한 테마는 '아버지'입니다. 주인공에겐 아버지가 두명인 셈입니다. 낳아준(정말 끔찍한 불운이지만;) 아버지인 대악신 바알과, 짧은 시간이지만 길러준 아버지였던 마법사 고라이언... 간과하기 쉽지만 주인공에겐 항상 두개의 칭호가 함께 붙었습니다. 바알스폰, 그리고 고라이언의 양자.

그리고 두 아버지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사실 친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야말로 상속의 권리도 확고하고 유산의 질과 양이 압도적입니다. 무려 '신성'이라니... 그 핏줄은 타락한 것이고 많은 고난을 안겼지만, 덕분에 주인공은 보통의 인간은 상상도 못하는 강자가 될 수 있었죠. 그리고 너무나 많고 강력한 형제들과 단 하나뿐인 상속권 확보를 위한 죽음의 경쟁을 해야 했지만, 어쨌든 이 '바알스폰'은 승리했습니다. 이것으로 좋은 것일까?

한편으론 짧은 시간동안 자신을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려 노력했던 양아버지의 유산이 남습니다. 고라이언이 양육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아버지였는지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게임상에서나 그리고 이 게임 설정의 판권사가 딱히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제 상상일 뿐입니다만, 고라이언의 유산이 간과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간과된다면 (그냥 게임 주인공이니까요! 라는 편한 설명을 배제한다면) 왜 주인공만 다른 바알스폰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였는지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곁에는 온갖 배경을 가진 여러 동료들이 모여들어 삼림과 사막, 지옥과 이차원을 넘나드는 모험을 함께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핍박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항상 소수나마 의인들이 있어 주인공을 믿어주고 도왔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훨씬 더 아버지를 닮은(=악신의 자손다운) 형제들을 이기고 승리한 것은 주인공이었죠.

그저 보통 수준의 교육을 받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 악신이니 세계의 운명이니 하는 것과 무관한 삶을 살길 바랬던 양아버지 고라이언의 양육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 동료들의 조언(?)도 흥미롭습니다. 동료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른 조언을 합니다. '선한 신이 되어 정의를 펼치게!'라든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순 없다. 너야말로 바알의 왕좌에 어울린다!'라든지...

어떤 선택을 내리든 '타임 오브 트러블'이라 불리는 재난과 절망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엔딩 크레딧처럼 뜨는 주인공과 동료들의 후일담은 언제봐도 사뭇 감동적입니다. 만약 주인공에 게임중에 여성 캐릭터와 연애상태를 유지했다면 더더욱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비극적인 결말인 비코니아 엔딩이 제일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오랜만에 주절주절 생각나는대로 써봤는데... 새 게임 시작을 또 누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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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Mk2
14/11/16 17:03
수정 아이콘
전 BG2EE 한글화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글화가 언젠가 완료된다면 BG1EE와 같이 동시 구매해서 신캐릭터들 대사도 좀 봐야 될텐데;;
축생 밀수업자
14/11/16 17:07
수정 아이콘
하지만 실제 주인공 압델 아드리안은 천하의 개...
일모도원
14/11/16 17:10
수정 아이콘
아.........'그거'는 입에 담고 싶지도 않습니다ㅠ
카롱카롱
14/11/16 19:16
수정 아이콘
그러나 압델 아드리안은 D&D 넥스트의 공식 시나리오에까지 등장합니다(..) 정사가 되어버렸죠!
14/11/16 17:29
수정 아이콘
그 당시 최상의 게임이었죠 하면서 얼마나 감탄을 하면서 플레이 했던지..
Special one.
14/11/16 17:35
수정 아이콘
노공략 플레이로 승승장구하다가 투명드래곤 (드라코니스?) 앞에서 거대한 좌절을 맛보고 공략을 참조한뒤 카르소미어를든 켈돈옹과 함께 왔던 기억이 나네요 크크크.
재플레이 할때 주인공(버서커) , 켈돈옹 , 사레복 3톱으로 나서니 뭐 3톱앞에 적들은 그거 추풍낙엽
14/11/16 17:47
수정 아이콘
ee에 니라 캐릭터도 한 번 해보세요. 일단 일러가 예쁘..
Lelouch Lamperouge
14/11/16 17:52
수정 아이콘
진짜 기가막힌 게임이죠
삼국지 시리즈밖에 모르던 저를 판타지와 RPG의 세계로 끌어들인 게임입니다 하아...
Special one.
14/11/16 17:55
수정 아이콘
비코니아는 게임내에서도 비극 크크크. 켈돈옹이랑 시비붙으면 육편행.
탱구와댄스
14/11/16 17:56
수정 아이콘
저도 rpg라면 jrpg밖에 모르던 게임 인생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해준 게임이었습니다. 이거 이후로 서양 rpg의 매력에 빠져서 토먼트, 아이스윈드 데일, 네버윈터, 드에 시리즈 하다 보니 이제 rpg하면 jprg보다는 서양rpg가 먼저 떠오르네요
14/11/16 18:08
수정 아이콘
이 게임 요즘 해보려면 뭐를 할 수 있을까요?
윈도우7에서 되고 한글화 되있는게 있을까요?
14/11/16 19:27
수정 아이콘
합법적인 경로는 steam에서 ee버젼으로 1,2 모두 팝니다. 다른 쪽의 경로는 중고 마켓 정도나 해외에 GOG 같은 사이트일걸요?
내일의香氣
14/11/16 18:43
수정 아이콘
켈든옹한테 있어서 카르소미어는 장미칼 그 이상의 포스죠.. 크크크크
1편에서 드리즈트 시미터가 탐나서 미안함과 주저함도 없이.. 백스탭질과 호숫가에서 활질을 하였건만...
2와서 잘 쓰게 되더군요.. 죄송해요 드리즈트씨....
카롱카롱
14/11/16 19:20
수정 아이콘
그런데 신기한건 발더스게이트로 TRPG를 시작했다! 라는 사람은 적은거 같아요. 해당 커뮤니티를 가도 '관심'은 있는데 보통 설정 놀이에서 멈추고...
제 주변사람들 한정 일수도 있겠지만요(..)
14/11/16 20:18
수정 아이콘
저같은 경우에도 고등학교때 만화부에서 trpg를 한번해보긴해는데..발더스광팬임에도 발더스게이트때문에 하게 되었던건 아니군요...
지금 그때 생각하면 오글거립니다;; 역활놀이하고 대사하던게 크크
14/11/16 22:52
수정 아이콘
저도 시리즈 중엔 발더스 2를 가장 재밌게 한 것 같습니다. 확팩에서 드래곤 바알스폰 아바지갈과 처음 싸울때 만신창이가 돼서 간신히 죽여놨더니만 스크립트로 힐을 써서 멘붕했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네요. 슈로대 4차에서 오제 박살냈더니 블러드템플 나왔을 때와 비견될 만한 멘붕...
I 초아 U
14/11/17 09:28
수정 아이콘
한때 파이어와인 들락날락하며 모드도 이것저것 깔면서 정말 재미있게 했었죠.
특히나 1과 2를 합쳐버린 BGT는 신세계...

1과 2 모두 확장팩을 포함해서 집에 갖고 있는데 CD롬이 없어서 플레이를 못하고 있습니다. 크크
저도 enhanced edition 한글화만 기다리고 있네요.
14/11/17 10:42
수정 아이콘
저랑 느낌이 비슷하네요. 게임적 완성도랑 캐릭터 키우는 재미는 2가 더 있는데,
1은 진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던져진 그 느낌이랑, 자연을 떠돌아 다니는 재미가 있어서(처음엔 늑대 무서워서 도망가는 현실적인 재미)
가끔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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