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https://pgr21.net/?b=6&n=49741)
------------------------------------------------------------------
2.
임성춘이 무너진 이후에도 그의 그림자는 아직 대부분의 프로토스들에게 남아있었다. 그만큼 그가 남긴 족적이 컸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의 방법론 이외엔 다른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는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때부터 프로토스들은 어떻게하면 러커밭을 좀 더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뚫을것인가에 집중했고, 옵저버 관리에 최대한 신경쓰며 드라군 한기 질럿 한기라도 더 살리기위해 노력했고 최적의 위치에 사이오닉 스톰을 뿌리기 위해 연습 또 연습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영웅 박정석이 있었다.
박정석은 명실상부 당대 최강의 피지컬을 가진 프로토스였다. 임요환과의 전투에서 확장기지가 더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병력을 생산해냈던 일화는 유명하고 그 뛰어난 생산능력을 앞세워 당시 프로리그의 2:2팀플 최강자 반열에도 올랐었다. 비단 생산능력 뿐만이 아니라, 그의 초반 질럿컨트롤과 드라군무빙, 리버아케이드 등 소수유닛 컨트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또한 무당스톰과 무당리버로 대표되는 중대규모 교전에서도 그의 마우스놀림은 빛을 발했다. 박정석은 병력의 진형, 옵저버의 위치등에 정말 세심하게 신경을 썼고 반드시 대량살상이 가능한 곳에만 사이오닉 스톰을 썼다. 당시 그의 교전능력은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한치의 모자람도 없었다.
그렇게 박정석을 위시한 프로토스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갈고닦은 눈부신 교전컨트롤을 앞세워 러커밭을 뚫고 나오는데 성공했으나, 저그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그 러커밭을 자신들의 기지 앞으로 후퇴시켰다. 그리고 성큰콜로니와 스포어콜러니를 건설해 러커와 함께 방어진영을 형성했다. 그것은 박정석의 교전컨트롤, 아니 프로게이머 4명이서 팀밀리를 하며 컨트롤을 해도 뚫을수 없는 프로토스 입장에서는 말그대로 철의 장막이었다. 절대 뚫을수 없다. 그러나 저그는 이미 4가스를 확보한 상태이다. 그리하여 프로토스는 울며 겨자먹기로 추가확장을 가져갈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자원을 확보한 저그가 프로토스의 자원확보를 가만히 놔둘리가 없었다. 저그들은 프로토스가 중앙을 점거하고 있으면 드랍으로, 드랍을 막기위해 중앙을 비우면 풀업 저글링을 앞세워서 프로토스의 추가확장과 게이트웨이지역을 쉼없이 공략했다. 대부분의 프로토스는 여기서 힘없이 무너졌으며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컨트롤과 병력운용으로 이것을 버텨내는데 성공한 극소수의 프로토스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뚫을수 없던 철의 장막이 이제는 울트라리스크라는 공성무기가 되어 돌진해오는 것을 목도할수 있었다. 이쯤 되면 프로토스에겐 패배를 인정하는것 외에 다른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른바 한번 당하면 몸과 영혼(soul)이 분리된다는, 그 유명한 소울류 운영이다.
또한 영악한 저그들은 소울류 운영에서 그치지 않고 테란전에서 얻은 간단한 아이디어로 프로토스들이 갈고닦은 교전능력을 손쉽게 무력화시키기에 이른다. 테란과 저그의 싸움에서, 저그는 레어테크 이후 바이오닉 테란에게 러커/뮤탈로 이지선다를 걸수가 있다. 러커라면 앞마당에 벙커를 깔아야 하고, 뮤탈이라면 미네랄필드에 터렛을 지어야 한다. 그러나 테란에게는 1.5테크에서 건설하는 컴샛 스테이션이 있으므로, 저그 본진의 건물을 보고 저그의 다음 테크를 파악할수 있다. 그래서 저그들은 이를 최대한 숨기기 위해서 레어테크 이후 히드라리스크 덴과 스파이어를 동시에 올리는 훼이크를 썼다. 사실 선뮤탈이라고 하더라도 뮤탈은 시간벌이용 유닛일 뿐이었고 결국엔 러커는 뽑아야 하니, 히드라덴에 투자하는 100/50의 자원은 그리 큰게 아니었다. 문제는 테란의 바이오닉은 저그를 상대로 너무나도 효율적인 조합이라서, 히드라덴과 스파이어를 동시에 지어도 두경우에 모두 대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바이오닉의 효율성은 둘째치더라도 스캔으로 뮤탈리스크가 생산된것을 확인한후 터렛을 지어도 뮤탈리스크가 본진에 당도하기 전에 터렛이 완성되기 때문에, 저그의 저런 얄팍한 훼이크는 자연히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그들이 이내 이 방법을 프로토스전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테란을 상대하기 위해 고안되었던 간단한 훼이크가 결국에는 프로토스의 목을 조르게 되었다.
질럿이 저글링의 눈을 피하고 성큰콜로니의 촉수를 견뎌가며 저그 진영으로 들어간뒤 히드라덴과 스파이어를 동시에 발견하고 장렬히 산화한다. 히드라덴을 봤으니 히드라리스크도, 러커도 대비해야 하는데 스파이어까지 있다. 이같은 경우 히드라와 러커 뮤탈리스크 셋 중 무엇을 방어해야 하는가? 세가지를 모두 대비하는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한개를 제외하고 두가지를 방어하는것조차 불가능하다. 만에 하나 캐논위치가 잘못되면 게임은 거기서 끝이며 캐논을 과도하게 건설하면 뒤에 이어지는 러커밭을 뚫을수가 없다. 또한, 프로토스가 히드라리스크덴과 스파이어 둘 중 하나밖에 보지 못하고 산화했을 때는 사태가 더욱 심각해진다. 히드라덴을 보고 앞마당에 캐논을 지었는데 뮤탈이 날아오고, 뮤탈대비를 위해 본진에 캐논을 지었는데 히드라리스크 웨이브가 들이닥치게 되는것이다. 이른바 '레어트라이던트'라 불리우는 저그의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훼이크의 탄생이었다.
이 레어트라이던트앞에서, 컨트롤로 상대를 괴롭히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악마 박용욱은 버티지 못하고 마우스를 던져버렸으며 그당시 프로토스중 피지컬 최강이라던 영웅 박정석은 교전을 할 병력조차 모으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릎을 꿇을수밖에 없었다. 이 소울류와 레어트라이던트는 당대의 모든 프로토스를 절망에 빠뜨렸으나 시력도 나쁘고 손빠르기 조차 느렸던, 하지만 머릿속은 아이디어와 실험정신으로 가득찼던 한 프로토스 게이머는, 이를 숙명이 아닌 숙제로 받아들이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힌다. 모두가 예상했겠지만 그는 바로 몽상가 강민이다.
필자가 처음 강민을 본것은 스타우트배 MSL 결승에서인데, 당시 해설진의 말을 빌리면 정말 '피아노 연주하듯' 키보드를 두들기던 이윤열을 상대로 정말 당시 필자와 비슷해 보이던 apm으로 승리를 거두는것이 정말 인상깊었다. 대개 데뷔 초 손이 느린 게이머들은 게이머생활이 길어질수록 손이 점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손이 느린것보다 빠른것이 게임하는데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민은 은퇴직전까지 apm이 220안팎이었다. 그는 박정석을 위시한 당시의 다른 동료 게이머들처럼 이미 알려진 운영-임성춘식 한방병력 순회공연 운영-을 반복적으로 연습하여 변수를 줄이고 더욱 정교하게 갈고닦는 대신,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더욱 시간을 투자했는데, 초기에는 그런 연습에서 나온 일회성 전략을 많이 사용했기에 강민이 팬들에게서 몽상가의 이미지를 얻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느린 손빠르기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기본기역시 자랑했으며 기본기를 바탕으로 정석적 운영과 일회성 전략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좋은 성적을 낼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일회성 전략을 고안하는것은 여타 다른 프로토스들도 모두 하는 것이었지만 강민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일회성 전략으로 소울류를 회피하는 것보다는 아예 소울류 자체를 격파시킬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강민이 맨 처음 생각해낸것은 바로 저그의 자원확보속도를 따라잡는 것이었다.
토스는 왜 저그보다 항상 적게 먹고 시작해야 하는가. 초반 자원확보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도저히 없는 것인가. 강민의 시작은 김동수의 그것과 같이, 토스의 태생적 한계를 깨기 위한 것이었다.
------------------------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