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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VEOOV - 프로게이머 최연성의 이야기
나에겐 형이 하나 있다.
큰 키에 훤칠한 외모, 그리고 어려서부터 뭐든지 잘해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우리 형.
사춘기 시절, 고지식하시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에, 갖가지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도둑질에, 패싸움까지. 그저 생각이 어려서였을까?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행동들이, 이제는 기억하기도 부끄러운 마음의 멍이 되고 말았다.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수퍼 마켓에서 도둑질 하다 잡혔던 날.
아버지가 처음으로 회초리를 드셨다. 고지식하셨지만, 자식은 사랑으로 기르는 거라며,
단 한번도 자식들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날 밤, 아버지의 사랑의 매는
멈출 줄 몰랐다. 설마 여기서 더하시겠어, 이젠 그만 하시겠지, 몇 번을 그렇게 생각
했을 때였을까? 순간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나는 그만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잡으러 나오시지 않았다.
“아...아버지”
실망감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힘없는 얼굴. 다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 했지만, 차마 들어갈
용기가 없어, 오랫동안 쓰지 않던 다락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어두컴컴한 다락으로 들어간 후, 빛이 스며 들어오는 작은 창문에 얼굴을 갖다 대니
창문에 어머니와 동생의 얼굴이 비춰졌다. 실망감이 가득한 모습.
‘모두들 알아버렸다. 이젠 다 틀렸어’
동생도 어머니도, 모두들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도둑질한 아들이라고, 오빠는
도둑이라고. 아버지께 맞으면서도 울지 않았던 나는, 갑작스레 몰려오는 서러움에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때 홀로 울던 나를 어루만져 주었던 사람... 그것은 누구보다도 다정했던 우리 형이었다.
형은 울고 있는 나의 등을 두드리며 말한다.
“짜식아, 왜 이런데 박혀있어? 야. 너 우냐?”
“........”
“서럽냐?”
“시끄러워.”
형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서러우면 울어라. 마음껏 울어야지. 이 형 앞에선 더 울어도 괜찮다. 대신에,
저 방문 나서서는, 다시는 울지 마.“
“........”
“아버지, 너 혼내시고 나서 방에 혼자 들어가서 끙끙 앓고 계신다.
그런데, 거기에 너 우는 모습까지 보여야겠어?
짜샤. 너 맨날 네가 연주 오빠라며. 맨날 오빠라고 부르라고 난리 법석을 치는놈이
오빠가 동생한테 눈물을 보이면 어떻게해. 동생 앞에서 울면 안되지.
우리 터프가이 최연성군이.“
방문 나서면서 다시 웃는 거다. 연성아. 응?
.
.
그렇게, 형의 도움으로, 다음날부터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가족들 앞에서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런 이해심 깊고 다정한 우리 형이 너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형은,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중학교때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어 결국 한양대 전체수석까지 차지하였고, 운동이면
운동 의리면 의리,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었던 우리 형은 항상 동네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왔다. 아버지는 그런 형에게 거는 기대가 그 어떤 것보다 컸고, 나도 그런 형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주변인들은 다들 내가 형을 닮기를 바랐다.
특히, 아버지가 자주 나와 형을 비교하며 질책하곤 하셨다.
“형은, 했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며.
형이 지나간 길을 내가 그대로 따라 가주길 원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형과 멀게 만들 뿐이었다. 나는, 형이 아니니까. 나는 형과 달랐으니까.
형은 우리 익산에서 소문난 수재중의 수재였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그리고, 형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형의 분신이 아닌 그냥 최연성
으로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고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나는 명문고인 남성고에 지원하게 된다.
남성고는 아버지와 형의 모교였다. 당연히 내가 형의 모교에 입학하길 바라셨던
아버지는, 성적이 좋지 못했던 나를 남성고에 입학시키기 위해 혹독하리만큼 심하게 공부를
시키셨고, 오직
‘남성고에 입학하게 된다면 나도 형과 대등하게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그 혹독했던 나날들을 이겨 나갔다.
남성 고등학교의 합격자 발표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나는 입학시험에서 200점 만점에 총 181점을 얻으며 남성고에 합격하게 된다.
‘아버지와 형의 모교인 남성고에 합격했다. 이로써 아버지도 나를 인정하시 겠지.’
그러나, 착각은 몇 배 더 커다란 실망감만 불러올 뿐.
남성고에 입학한 뒤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형과 나를 비교하셨고,
나 자신을 인정받기는커녕, 학교에서 조차 익산의 수재로 알려진 형에 비해
성적이 터무니없이 낮았던 나와 형을 비교해대기 일쑤였다.
특히 수학교사는 대체 나의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했는지. 입학 초기 때부터
내가 잘했건 못했건, 칭찬이란 전혀 없었고, 그저 매 시간마다 나를 깔보고
비웃어대기만 했다.
그렇게, 한달 두 달...매번 괴롭혀대는 수학교사의 행동에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고,
결국 사건은 터지게 된다.
“네 형은 모범생이었는데 넌 그게 뭐냐? 좀 반만이라도 닮아봐라 최 연 성. 이
문제아 자식아. 공부 잘하는 애들 꼬셔서 공부 못하게 방해하지만 말고!
니 아버지가 형만 가르치고 넌 안 가르쳤나보다? 너는 주워다 기른 자식이야?“
수학교사는 그날 기분 나쁜 일이라도 겪은 건지, 이전보다 훨씬 심한, 도를 넘어선 말들을
내뱉어댔고, 계속된 수학교사의 괴롭힘에 화가 극에 달했던 나는, 얼굴에 핀 노기를 숨기지
못하고 매서운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이 새a끼(필터)가 노려봐?”
툭
툭
그 자식은 상대방이 어떻게 하면 기분나빠하는지 아는 놈이었다. 분명 이전에도 많이 해본
솜씨겠지. 괴롭히던 대상이 졸업이라도 했던 것일까? 녀석은 감각이 겨우 올정도로 내 머리
를 툭 툭 쳐댔다. 희열에 가득 찬 표정으로..,
저 깔보는 듯한 수학교사의 희열에 찬 표정은 분명 뭔가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 나는 알고 있다, 네가 뭐라 하고 싶은지.
‘최연성, 왜 가만히있어? 더 대들어 봐’
툭
툭
녀석의 장난은 끝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반응을 하거나 수업시간이 끝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또한 이번엔 그냥 넘어갈 생각 없다.
나는 교사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해라.”
“뭐?”
수학교사의 얼굴이 살짝 꿈틀댄다.
“당신도 선생이야?”
그 미동은, 분명 기쁨의 표현이었으리라. 어부의 물고기를 낚아챈 고양이의 묘안 같은,
기분 나쁜 미소. 녀석은...역시 이것을 기다렸던 것이다.
“지금 나한테 반항 하냐? 안 되겠네 이 자식, 뺀질거리는 거 형 얼굴 봐서 참아주려
했더만, 너 오늘 나한테 좀 맞아야겠다.”
그날 나는, 자료실로 끌려가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매를 맞았고, 그 후휴증으로
다리가 제기능을 하기까지 약 3주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사건 이후, 수학교사의 괴롭힘은 이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그리고 나는, 강압적인 공부의 연속과 숨 막히는 명문고 생활에 지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일부러 학업을 멀리하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방황하던 날 바로잡아준 것은 바로 내 삶을 바꾼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나의 형이다.
어려서부터 가정용 게임기를 갖고 있지 못했던 내가 스타크래프트를 접하기 이전 플레이
해 봤던 게임이라 해봐야 고작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에 불과했고,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화려한 그래픽과,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주는 신선함, 짜임새 있는 게임성을
지닌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해본 그 당시 소감을 말하자면, 그야말로 충격이라고 표현
할 수 있겠다.(무엇보다, 네트웍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여러 명이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 시기부터 나는, 한 시간에 1500원씩이나 하는 PC방에 매일 매일 출입하게 되었고,
돈이 부족 해질때면 아버지에게 타낸 참고서비를 전부 PC방비로 쓰기도 했고, 생일 껌장사
로 목돈을 마련하기도 하며, 게임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시험기간엔 친구의 참고서를 빌려 공부를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힐 수밖에 없다고 했다. - 그중에 내 꼬리는 더 길었으리라 생각된다.-
앞뒤 생각하고 그냥 게임만 했으니까. 생일 때 친구들에게 껌장사했던것, 참고서비를 전부
PC방비로 써 버린것도 전부 아버지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시긴 커녕, 오히려 게임은 집에서 하라며 컴퓨터를 하나
장만해주셨다. 나중에 형이 말해준건데, 아버지는 입학 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지켜보며 늘 안타까워 하셨다고 한다.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인문고교로 보내 고생을 시킨다고.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게임에 빠진 것이, 그런 아버지의
부담을 한층 덜어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나는 그렇게 경제적,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집에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학교 생활은 여전히 순탄치 않아
고 2때 결국 자퇴를 하게 되었고, 점차 수능 공부를 하기 시작한 친구들과 교류가 뜸해
지며 몰려온 공허감과 검정고시 이후 수능공부를 준비 하며 느끼는 고단함을 잊기 위해,
스타크래프트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그렇게 게임을 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gamei 라는 곳에서 꽤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여러개의 아이디를 상위랭크에 올려놓았고, 가끔은 프로게이머들이 연습요청을 해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게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가 그 당시 였던 것 같다..
마치, 무림 문파의 문주처럼. 만화의 주인공처럼, 각 채널의 강자들을 꺾어 나가고,
반대로 채널의 ‘짱’인 나에게 도전해오는 도전자들을 모조리 격파해내던 시기.
그러던 중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들에서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이 퍼지고 있다는걸
알게된다. 내가 맵핵을 사용하는 악질 치터 게이머 라는 것 이었다.
나는 그동안 맵핵을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거니와, 컴맹이었던 관계로 맵핵을 어디서
다운로드 받는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치터 새퀴’라니.
처음엔 나의 뛰어난 실력에 대한 반증이려니 하며 오히려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녀석들이 이곳 저곳에 내가 맵핵을 사용한다는 헛소문들을
마구 퍼트리고, 지인중에서도 나를 의심하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그 맵핵 게이머라는
어처구니 없는 별명에 대해 정식으로 반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네들이 제시하는 맵핵 사용 증거란것은, 오랫동안 다져온 타이밍러쉬와, 온라인 강자가,
변변찮은 오프라인 대회조차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따위 웃기지도 않는 쓰레기같은 억측으로 사람을 ‘치터새퀴’로 몰아?
스타크래프트 대회같은거, 별로 관심 없다. 그냥 게임은 즐기려고 하는 건데, 그따위
대회 우승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프로 게이머도 아니고 고작 아마추어들 대회 따위.
오히려 그딴 대회 우승 하겠다고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아마추어 대회 출전하는 녀석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솔직하게 ‘귀찮아서 출전하지 않는다.’라고 답변을 했더니, 그 뒤로 ‘I LOVE OOV는
맵핵‘이란 헛소문은 더욱 기승을 부려댔다.
그렇게 맵핵 게이머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채, 게임도 못해가며 어이없는 인신공격들과
홀로 싸워가던 때, 나의 인생에 두 번째 장을 열어준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텅 빈 채널에 홀연히 나타나 나에게 게임을 요청하는 처음 보는 ID의 게이머.
랭크에도 없었고, 한번도 본적이 없는 ID였기 때문에 그저 어디 인터넷 게시판에서
OOV 맵핵사용 루머글을 보고 호기심에서 찾아온 바보라 생각하고 그냥 강퇴해 버렸다.
하지만 그 게이머는 그것으로 단념하지 않고 연속으로 메모를 날려왔고, 결국 그의
성화에 못 이겨 가볍게 한게임 스파링 해주면 되겠거니 하고 게임 요청을 승낙했다.
하지만 게임에 돌입하자, 나는 그 안일한 생각을 뒤엎어야 했다.
극초반부터 시작되는 송곳같은 찌르기에 완벽한 멀티 체킹, 꾸준하고 집요한 견제,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그는 내 타이밍을
완전하게 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뭐야 이거, 맵핵 아냐?’
iloveoov : u map?
Slayers_xellos : no. no map.
분명히, 맵핵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이 날카로운 플레이는...대체 뭐지?
뒤이어 테란의 병력들이 서서히 조여들어 왔다. 이미 역전하기는 어려운 상태.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이 사람에겐 오랫동안 내 주무기가 되어왔던 히드라 럴커 쌈 싸먹기도, 본진 폭탄
드랍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까지 보아왔던 것 중 가장 뛰어나다 단언할 수
있는 이 환상적인 병력 컨트롤은.... 그렇다, 이 사람은 분명 프로 게이머. 그리고
.
.
iloveoov : Good Game
.
.
그는 바로,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시작했던 때부터 줄곧 나의 우상이었던,
임 요 환.
새로운 목표를 향한 발걸음이 시작되다 - 2002년 12월 28일 최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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