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2/12/09 08:27:45
Name 김태훈
Subject [잡담] 말, 그리고 글
말(言)이라는 건 참 묘합니다.
같은 내용을 담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받아 들이는 사람의 반응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지요.
또한 뱉었다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특성 때문에
무심코 말한 것이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글, 특히 인터넷 게시판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읽는 글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글에는, 말에는 없는 "지속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지요.
말의 경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그 말을 듣기 때문에, 실수를 할 경우 그 영향이
상대적으로는 작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글은 쓰여진 순간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기 때문에
어쩌다 실수를 한다면 그 여파가 더 커질 수 밖에 없지요.

게다가 말실수의 경우에는,
상대가 그 실언(失言)을 들은 순간 화가 났더라도
그 순간 이후 잘 사과하고 그에 맞게 처신한다면
상대는 그 순간의 말실수를 용납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로 실수를 한 경우에는
상대가 글을 본 순간에 기분이 상할뿐 아니라
"지속적"이라는 글의 특성상, 상대가
그 글을 되풀이 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는 그 실수를 곱씹으면서 더더욱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상대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실언의 경우보다 배는 더 힘든 경우가 종종 있지요.

방금 저희 학교 비비에스의 게시판에 제가 올린 글이
어느 분의 심기를 언짢게 했습니다.
인터넷과 통신을 사용한 지난 4년 동안
저의 생각 없는, 혹은 생각이 모자란 글로 인해서
수많은 난처한 상황을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다시는 이런 실수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굳게 굳게 다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어리고 미숙한지라 그런 실수들을 반복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분이 자주 하시는 말씀중에,
"글은 자신의 아바타(avatar, 化身)"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그리고 자신의 인격이 빚어내는 것이
바로 말이고 글이기에, 그 표현은 정말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만큼, 자신의 말과 글에 대한 책임을
확실하게 져야 하고, 또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글을 생각 없이 써버리게 되면
그건 자신의 인격과 생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격이 됩니다.
그걸로 끝이라면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러한 무책임한 글은, 타인의 마음에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남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말, 그리고 글이라는 건 정말 강력한 도구이니까요.

지난 1년 남짓한 기간동안 손님 자격으로
이 pgr21.com이라는 곳을 방문하고 여기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면서,
여기에는 남들의 입장을 고려할줄 알고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는
그런 좋으신 분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영진 분들께서는 이 곳에 대한 적절한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계시고,
여기 드나드시는 분들은 그러한 부분들을 잘 이해하고 계시며
그 룰들과 생각에 맞추어 이 사이트를 멋진 곳으로
가꾸어 나갈 줄 아는 분들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pgr21.com에 쓰는 첫번째 글로
이러한 내용의 글을 남기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물론 pgr21.com의 여러분들께 훈계를 하고자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절대 아니지요. ^^
제가 굳이 이런 글을 올리지 않아도 이 곳에에 드나드는
대다수의 분들께서는 충분히 생각이 깊고 책임감이 강하신데다,
아직 미숙한 실수들을 되풀이하곤 하는 이런 제가
남들을 훈계할 생각으로 이런 글을 올린다는 건 어불성설이기에. ^^;

다만 저는 조금 전에 또 다시 제 글로 인해
어느 분의 감정을 상하게 한 일을 계기로 삼아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겠다는 맹세를 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이런 미숙한 제 생각이라도 혹시나
pgr21.com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두서없이 졸필으로나마 이 곳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글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m(_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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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02/12/09 13:23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입니다. 읽으면서 엄청 부끄러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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