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참 좋기는 합니다. 게시판을 통해 자기 주장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그걸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평가받을 수도 있지요. 피지알 게시판에서는 물론 다른 게시판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관전태도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심각하게 생각해 볼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먼저 다른 이야기 하나 해보겠습니다. 월드컵 붐이 막 조성되려는 즈음에 백의의 천사라는 단체가 생겼습니다. 기독교 단체에서 만든 응원단이었죠. 만든 이유는 악마를 이름에 내건 붉은 악마 응원단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홈페이지가 만들어졌고, 메스컴에서도 보도를 했죠. 그리고 응원장면도 잡혔습니다. 당시 대부분 사람들의 의견은 '이건 아니다' 였습니다. 엇박자 응원에 붉은 악마 응원단과 따로 앉아있는 모습은 정말 이상하긴 했죠. 그곳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스포츠 게시판에서도 백의의 천사를 질타하고 욕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월드컵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의의 천사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습니다. 호응도 없고 해서 없어졌다는 이야기만 살짝 들려올 뿐이었지요. 월드컵 당시 경기장은 온통 붉은 바다였습니다. 그 모습이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고, 우리나라에서도 경기가 있건 없건 붉은 악마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마다 넘쳐났지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고, 열정과 질서를 동시에 갖춘 한국인들의 응원문화에 대해 세계는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일부 극성 팬들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거론되었죠. 선수들의 포지션도 제대로 모르면서 유행처럼 축구팬이 되어 단지 선수들의 외모에만 신경 쓰며 응원과 관계없이 소리만 질러대는 일부 팬들 때문에 다른 응원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시판에서 욕들이 난무했죠. *순이가 이제 경기장까지 물을 흐린다 어쩐다 그런 것이었지요. 저 역시 경험이 있었습니다. 서울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기차를 탔는데 저녁시간이라 대부분 잠이 들어 있었지요. 그런데 중간쯤에서 탄 두 명의 여학생들이 문제였습니다. 붉은 옷에 얼굴에는 페인팅까지 한 그 학생들은 시종일관 축구에 대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목소리를 높여서 말이죠. 그나마 하는 이야기가 '홍명보 오빠 멋지지 않니?' '난 남일이 오빠 머리스타일이 더 멋져' 등등 정말 무슨 연예인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도 오지 않아서 짜증부터 났죠. 다른 사람들도 짜증 섞인 얼굴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차에서 내려 전 중계를 보기 위해 집으로 갔고, 그 두 학생들은 입장권을 쥐고 경기장으로 갔습니다.

  그 학생들에게 월드컵 입장권 가격은 어느 정도의 부담일까요? 물론 부모님이 사주셨을 수도 있지만 직접 용돈을 모아 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적어도 무엇인가를 양보하거나, 사고 싶은 것을 사지 않고 대신 구입한 것이겠지요. 월드컵 기간동안 내내 티비로만 시청을 한 저로서는 그 학생들이 경기장에서 엇박자 응원을 하든, 생각 없이 소리만 질러 대든 질타를 할 자격은 없었습니다. 물론 기차에서 시끄럽게 한 것은 잘못이었지만요. 그러나 그것 이외의 면에서 전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었습니다. 입장권이 비싸서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집에서만 시청을 한 저로서는 말이죠. 백의의 천사가 있을 당시 인터넷에 욕을 해대던 사람중 대부분은 그냥 티비로 축구를 시청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시간으로 경기를 보면서 그 장면이 나오자 욕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과연 욕을 할 자격이 있을까요? 적어도 백의의 천사 응원단은 경기장에 가서 응원을 했고, 엇박자 응원을 했든, 붉은악마와 따로 응원을 했든 돈을 내고 들어갔습니다. 붉은 악마와 백의의 천사가 그렇게 뚜렷하게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경기장 내 다른 좌석이 대부분 비어있었기 때문이었죠. 그 빈 자리에 모두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면 백의의 천사 응원단은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들의 응원 역시 붉은 물결의 응원 속에 묻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월드컵 기간에도 흰 옷을 단체로 입고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장객의 대부분이 붉은 악마 셔츠를 입고 다 같이 대한민국을 외쳤기에 그들의 모습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면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냥 인터넷 게시판에서 비판만 해봐야 소용없는 짓이지요.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순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지요. 이 단어는 그리 좋지 않은 단어이지만 이젠 가수등 유명 연예인을 따라다니는 극성 팬들의 닉네임이 되었습니다. 서로 상대 가수를 욕하고 상대 팬클럽과 다투기도 하는 등 정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 생각 없는 이들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야말로 연예 게시판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단어죠. 많은 기성세대들이 개탄합니다. 저 *순이와 댄스가수들 덕분에 진정한 가수들이 가요판에서 사라지고 있다구요. 립싱크가 판을 치고 그런 립싱크만 하는 가수들이 연말에 주요 상을 독식한다구요. 그런데 그렇게 개탄을 하는 사람 중에 과연 자신이 좋아하는 그 가수들의 음반을 얼마나 사주었을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대부분 mp3으로 듣고 있는 건 아닌지요? 방송사에서 대부분 아이돌 가수들을 출연시키는 것은 그것이 돈이 되고, 시청률이 되기 때문입니다. ARS를 통해서도 꽤 짭짤한 돈을 벌겠죠. ARS를 누르는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흔히 *순이라 말하는 중고생들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아이돌 가수들의 음반이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가수들보다 훨씬 많이 팔립니다. 요즘 게시판에서 자주 회자되는 가수 문희준씨의 음반이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에, 그리고 콘서트 예매가 성황리에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에, 가요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이야기에 비웃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음반 많이 팔리고, 인기투표에서 많은 사람들이 찍어주고, 방송에 자주 나오면 주는 것이 가요상입니다. 문희준씨는 분명 받을 자격이 있지요. 그의 판을 사준 팬들은 그 판에 해당하는 돈을 다른 곳에 쓰지 않고 희생을 한 것이고, 그렇게 한 희생에 대해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중고생들보다 경제사정이 좋은 2,30대들 중에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가수의 판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인터넷을 통해 쉽게 다운 받을 수 있으니까요. 트로트계가 죽어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4,50대 이상의 트롯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가요무대나, 전국 노래자랑을 시청하는 것과,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짜가 음반을 사는 일 뿐입니다. 판을 많이 사주고 그들의 공연을 보러 가고 한다면 트로트계가 죽어갈 일도 없습니다.

  사실 인터넷의 발달은 참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습니다. 한 달에 3,4만원 정도만 내면 못할게 없지요. 최신영화, 최신음악도 언제든지 보고 들을 수 있으며 최신 게임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음반을 사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죠. 그리고 우리가 아무 생각도 없는 *순이라 부르는 중고생들은 적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은 꼭 정품으로 삽니다. 가요계를 살리는 방법이요? 간단합니다. 동생에게 줄 용돈 한 번 안주고, 담배값 모으고, 술자리 한 번 피해서 모은 돈으로 좋아하는 가수 음반 사면 됩니다. 동생이 댄스가수 음반을 두 장 사면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 음반 세 장 사면 됩니다. ARS도 지긋이 한 번씩 눌러주면 됩니다. 판 많이 팔리고 인기 좋으면 방송사에서 알아서 가수 데려와서 노래 부르게 합니다. 맨날 조폭영화라고 개탄할 필요 없습니다. 작품성 높은 영화 단체로 열심히 보고, 홍보하고 하면 됩니다.
  패키지 게임들이 사라지고, 국내 패키지 게임 제작사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불법복제 덕분에 이젠 온라인 게임으로 대부분 발길을 돌리고 있지요. 결국 손해는 우리들이 보게 됩니다. 가요계도, 그리고 영화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슬슬 프로게이머들에게도 열성 팬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임요환 선수를 비롯해 몇몇 선수들은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은 팬클럽 회원들을 거느리고 있지요. 그리고 선물도 많이 받고, 경기가 있는 날에는 직접 가서 응원을 합니다. 그러나 응원문화에 있어서 조금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생기는 모양입니다. 극성 팬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타 선수를 비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응원을 하는 경우 그것을 못하게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예전에 이런 공익 광고가 있었습니다. 무단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모두가 한심한 듯 쳐다보고, 새치기를 해서 버스에 오른 아가씨를 모두 쳐다봐서 무색하게 만드는 내용이지요. 한 명이 잘못한 것을 수십 명이 질타의 눈으로 쳐다보며 잘못을 바로잡아 주면 자연스레 고쳐집니다. 그러나 수십 명이 잘못하고 있는데 한 명 두 명이 질타의 눈길을 보내봐야 끄떡 없는 일이지요. 군중심리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힘을 얻는 법이지요. 올바른 관전문화가 되어있지 않다면 직접 가서 올바른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러지 못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나선다면 조용해질 것이고, 남이 들릴 정도로 비방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질책의 눈길을 보내면 됩니다. 40명이 구경하는 중에 20명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을 제지하기 힘들겠지만 100명이 구경하는 중에 20명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제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가보지도 않고 티비로만 보는 사람들이 직접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질타를 할 자격은 없겠지요. 관전문화가 잘못되었든 어쨌든 그들은 귀중한 돈과 시간을 할애해서 그곳에 가서 응원을 했습니다. 거기에 올바른 관전태도가 함께 해주면 금상첨화겠지요.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은 팬들일 것입니다. 특정 선수보다는 경기 자체를 즐기는 많은 팬들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간다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일 듯 하군요.

  경기장에 한 번이라도 직접 가본 이가 아닌 다음에는 거기에 대해 동조하며 비판하는 사람도, 거기에 반대하며 비판하는 사람도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듯 합니다. 행동이 중요합니다. 말로는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
  지금 이렇게 길게 나불거리는 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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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금년 봄에 메가웹에 갔을 때는 꽤 좋은 분위기였는데 요즘 가끔 보이는 게시들을 보면 많이 달라졌나 보군요. 올바른 관전태도에 대해 토론란에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그것에 관한 내용을 홍보하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만...... 겜비씨나 온게임넷에서 캠페인이라도 해주었으면 싶군요^^

  그리고 이곳은 피지알입니다. 가끔 보이는 가시돋힌 글들이 섬뜩하군요. 남에게 상처주는 글은 되도록 없었으면 좋겠네요.

  ps :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더군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전 오랜만에 유행을 탔습니다. 주사맞고 약먹어서 골골 거리고 있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