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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01/24 21:06:43 |
Name |
fender |
Subject |
GSL의 위기와 블리자드의 판단 착오 |
처음 스타2가 출시되고 스타1에 대한 지재권 논란이 이슈화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장래에 e스포츠의 무게 중심이 스1에서 스2로 옮겨가게 될 것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마침 시기적으로도 스1 리그의 오프 시즌이어서 관련 사이트에는 경기 뉴스 대신 연일 스1의 암울한 미래를 예언하는 기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지재권 분쟁에 대한 기사는 물론 감독들의 연이은 사퇴, 팀의 해체, 그리고 정상급 선수의 은퇴까지, 드디어 10년이 넘게 e스포츠의 중심 역할을 했던 스1의 시대가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 스1 리그는 언제 위기가 있었냐는 듯이 정상으로 돌아간 반면, GSL로 야심차게 출발한 스2는 이런 저런 이유로 처음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분명 시간이 지났을 때 e스포츠 판에 남아있을 게임은 스1가 아닌 스2가 될 것입니다. 특히 스1에 대한 애착이 강한 어느 유명 커뮤니티에는 스2와 관련된 거의 모든 기사들엔 두 게임을 비교하면서 스2가 재미가 없어서 망할 것이라는 저주의 글이 잔뜩 달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스1 중심의 기존 e스포츠 리그의 위기의 본질은 스2가 스1보다 뛰어난 게임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2가 아무리 재미가 없고 스1이 아무리 계속해서 팬들의 관심을 붙잡아 두는데 성공할 지라도 블리자드가 스2로 야심차게 e스포츠 판에 진입할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두 번의 확장팩도 출시가 예정된 이 시점에, 단지 스2가 스1보다 '보는 재미가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 모든 계획을 포기할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재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블리자드를 배제하고 케스파 단독으로 언제까지나 스1 리그를 운영할 수 없는 이상 스2와 스1의 운명은 결정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문제는 그 중심 이동의 시점이 언제가 될 것이냐, 또 그 시점에 e스포츠 판이 기존에 비해 얼마나 확장될 것인가 혹은 축소될 것인가, 그리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블리자드와 그래텍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스2의 발매 시점부터 지금까지 e스포츠 시장 진입이라는 관점에서만 블리자드와 그래텍의 행보를 따져 본다면 여러 가지 판단 착오로 인해 최악의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화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케스파는 지재권 분쟁의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전제할 때 스1리그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최대한 법적 소송을 길게 끌면서 e스포츠 판의 남은 마지막 단물까지 빨아 먹으려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e스포츠 관련 커뮤니티와 언론사등의 힘겨루기가 일어날 것이고, 스타1의 미래가 암울하게만 보이던 지난 오프시즌과 달리 스1진영의 자신감이 상당히 회복된 지금, 이런 저런 텃새로 인해 스2 리그의 활성화를 방해하려는 많은 시도가 일어날 것입니다.
법원의 판결, 그리고 어쩌면 다시 항소에 항소를 거듭하면서 수 년이 지난 후 정말로 스1 리그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때가 되면 스1 리그를 운영하던 기업들은 협회를 해체하고 발을 빼겠지만 그 동안 활성화 되지 못한 스2 리그 역시 스1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e스포츠 판은 전성기의 몇 분지 일로 축소되고 그 간 우리나라가 e스포츠를 정의하고 키워나가면서 쌓아나간 인프라와 명예도 축소된 파이 만큼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블리자드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처음 저지른 실수는 그래텍을 파트너로 삼았다는 사실입니다. 심정적으로, 그리고 약간의 정의감에 입각해서 보면 곰티비야 말로 스2 리그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파트너였을 지도 모릅니다. 이전부터 블리자드와 우호적인 관계였으며, 스1 진영의 중심인 케스파에 의해 리그가 무산되는 피해를 받은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 e스포츠 판의 인프라를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스1 진영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리그를 활성화 하는 최적의 주체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 e스포츠 컨텐트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중심 매체는 어디까지나 케이블 티비였고, e스포츠의 인기에는 중계진의 역량이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기존 케이블이 아닌 곰티비를 선택했을 때는 이 두 가지 문제, 즉 기존에는 다시보기 제공과 같은 부차적인 역할만을 하던 인터넷을 e스포츠 컨텐트의 주요한 전파 매체로 끌어 올리는 것, 그리고 기존 양대 방송사의 유명 중계진 조합과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의 문제가 남게 됩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어느 정도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특히 후자의 문제에 있어서 곰티비는 초창기에 비해 정말 많은 발전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2 리그 활성화를 위해선 무한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GSL이 장족의 발전을 했다 쳐도 그것은 초창기에 비해 지금 수준까지 이르기 피나는 노력을 했을 관계자들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것이지, 결과적으로 현재 곰티비의 중계진 조합이 양대 방송사 어느 쪽이건 대등하게 경쟁을 할만큼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블리자드 입장에서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존 게임 방송 채널, 특히 지재권 문제에서 어느 정도 전향적 태도를 보였던 온게임넷을 어떻게든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곰티비가 없었다면 언젠가 온게임넷과 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고스란히 기존 시청자들과 유명한 '엄전김' 조합을 그대로 스2로 옮겨오는 일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스2의 중심리그를 곰티비가 독점해서 운영하는 지금, 케이블로 매체를 확장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기존 양대 방송사가 아닌 제 3의 채널을 택할 경우 스2 리그의 활성화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온게임넷과 협상이 생각만큼 여의치 않았기에 훨씬 호의적 입장이었던 그래텍에게 독점권을 넘긴 것이겠지만, e스포츠 판 자체의 파이가 아직까지 한정적이고 그 파이의 대부분을 기존 스1 중심의 선수와 게임단, 그리고 방송사 등 스2 리그에 적대적인 주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온게임넷이 아닌 그래텍의 선택은 처음부터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르는 무리수였다고 봅니다.
곰티비가 있는 이상 설사 온게임넷과 협상이 성공한다 치더라도 온게임넷에서 곰티비의 GSL을 그대로 방송하는 것도, 곰티비에 주었던 GSL리그를 뺏어서 온게임넷에 주는 것도, 곰티비의 중계진 일부를 온게임넷 인력으로 대체하는 것도, 그리고 가뜩이나 작은 판에 많은 리그를 더욱 쪼개서 양 방송사에 나누는 것도 모두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온게임넷에 어떠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어떤 특혜를 베풀더라도, 그리고 그로 인해 차라리 스2 리그 출범이 기존 GSL보다 몇 달 쯤 더 늦어졌다 치더라도 어떻게든 '온게임넷 GSL 리그'를 성사 시켰다면 스2리그 활성화는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기존 스1 진영의 아성을 약소 신규 세력인 곰티비로 공략하는 그림과 기존 기득권 세력의 큰 중심축 하나를 무너뜨려 아군으로 삼고 싸우는 그림을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유리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더구나 e스포츠의 대표 방송사와 대표 게임리그가 스2로 전향했다면 실리를 떠난 명분 측면에서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블리자드는 어떠한 양보를 해서라도 그래텍이 아닌 온게임넷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해야했습니다.
두 번째 블리자드의 실수는 소송을 제외하면 기존 스1 진영을 무너뜨릴 어떠한 카드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분명 스1리그를 둘러싼 법리적 정당성은 블리자드와 그래텍 측에 있습니다만, 앞서 말한 대로 최종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장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스1 리그를 중단 시킬 수 있는 카드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재권 소송의 최종 승리에 대한 확신만으로는 스2 리그 활성화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소송의 최종 판결까지 몇 년이 걸린 다면, 그 시간은 신작 게임과 신규 리그에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질 수 있는 충분한 기간입니다. 곰티비와 그래텍이 언제까지나 스2리그 활성화를 위해 리그당 수억원씩 투자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임요환이나 이윤열 선수의 전향 같은 호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지금 스2 리그에 대해 제기되는 밸런스 조절 실패라던가 지나치게 작은 규모의 맵, 타격감 부재, 순식간에 끝나는 전투 등의 비판들은 모두 스2 리그 활성화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만일 처음부터 기존 방송사와 협상의 여지가 적고 법적인 카드가 즉각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면 차라리 악역을 자처하더라도 케스파 중심의 기존 리그와 전면전을 선언했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6개월의 유예 기간 이후에도 적법한 라이센스 없이 스1 리그를 개최, 방송, 혹은 참여하는 방송사나 구단, 선수들은 향후 몇 년 간 스2의 어떠한 공식 리그에도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면 당장 욕은 먹겠지만 최소한 기존 스1 중심의 e스포츠 판은 단기간에 붕괴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설사 그런 일로 일정 부분 팬들이 떠나고 일부, 혹은 전체 프로팀이 해체되는 일이 발생한다 치더라도 적어도 방송사와 선수들은 고스란히 신규 스2 리그로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스1의 종말과 함께 게임 방송을 포기하거나 프로게이머 생활을 접는 다는 결정을 그렇게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물론 블리자드의 공식 입장으로는 스1이나 스2나 같은 자사의 게임이고 두 게임의 팬들 모두 소중하단느 명분은 있겠습니다만, 어차피 GSL로 스1 리그와 경쟁하면서 두 게임의 팬들간에 감정 싸움이 벌어지고 법적 소송까지 가게 되면 욕을 먹는 건 불가피한 일입니다. 당장 e스포츠의 판이 확대되서 스2와 스1이 공존할 수 있다거나 아니면 단기간 내에 스2 리그 활성화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없는 상황이라면, 리그당 몇 억씩 상금을 쏟아 부으면서도 스1과 같은 e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몇 년씩 질질 끄는 것보다야 위와 같은 최후 통첩을 통해 한 번에 욕을 먹고 한 번에 판을 가져오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아마도 케스파의 전략은 최대한 지재권 소송의 판결을 지연시키면서 남은 이득을 챙기고, 한계에 달했을 때 언론 플레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e스포츠를 무너뜨리는' 블리자드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e스포츠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일 겁니다. 그 때까지 몇 번의 GSL이 열리고 스2에는 몇 번의 패치가 적용될지, 혹은 몇 개의 확장팩이 발매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모습으로 그런 시간을 허용한다면 그 때 가서 최종적 승자로 결론이날 스2 리그는 결코 지금의 스1 중심 e스포츠 만큼의 저변과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직시해야할 현실은, 현재의 e스포츠 판이라는 파이가 갑자기 스1과 스2를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커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단기간에 스2 리그의 무명의 선수들이 '택뱅리쌍'이 될 수도 없고 곰티비의 중계진이 '엄전김'이 될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스2 리그에는 그런 가능성이 현실이 되기까지 기다려 줄 여력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런식으로 GSL이 2-3시즌 만 진행되고 디아블로 3만 발매되도 스2 리그에 모이는 관심이 지금보다도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면, 혹은 언제까지나 리그당 몇 억씩 홍보비를 쏟아 부으면서도 리그 활성화에 실패하는 상황을 유지할 수 없다면 필요한 것은 스1과의 어설픈 공존이 아니라 정면 대결입니다. 그리고 그 대결에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앞서 말한대로 기존 스1의 중심축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편으로 가져오는 것, 즉 방송사나 선수들을 포섭하는 것입니다.
덧말:
위의 글이 상당히 극단적 입장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특히 GSL을 운영하는 곰티비의 노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싶고, 지재권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나던 간에 기존 스1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윗 글은 블리자드가 스2의 발매와 GSL의 운영을 통해 e스포츠 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전제로, 순수하게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지금 상황의 위험성과 해결책을 생각해 본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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