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밝혔듯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의 풀스포 리뷰입니다.

바로 시작부터 결말까지 다 까발리고 시작합니다.

혹시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당장 이 리뷰를 닫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이 노래부터 박고 시작해야겠군요. 작품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정말 슬픈 노래였습니다.
다들 말하듯이, 처음 들을때는 '어 노래 괜찮네?'라고 시작해서는
결국 마지막화에서 다시 들을때는 '크흐헉어억으아아앙하아아아'라고 울게된다는데
저도 상남자답게 지금 질질 울고 있습니다.

제가 리뷰를 쓸수 있는 원동력은 오직 "나만 당할 수 없지 흑흑"입니다.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정말 잘만든 애니메이션입니다. 여러분도 여유가 되면 한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의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25분 내외의 분량으로 10화로 완결이며,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저도 요즘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해서 많이 나눠보려고 했지만,
워낙 한화가 끝나면 사건이 하나씩 크게 터지는 작품 특성상 3-4일 만에 보고 말았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 작품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야기가 기발한 작품입니다.
영화나 애니를 보고나서 이야기를 하나로 정리해보면 치밀한 짜임과 설정에 감탄하는 종류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작품은 막상 직접 보다보면 '연출을 왜 이렇게 했을까?',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라고 되묻게 되곤 합니다.

반면 '엣지러너'는 두번째 종류인 상당히 대중적인 작품에 속합니다.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며 복잡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기 멀리서부터 무슨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가 잘 보이고 뻔합니다.
그렇게 엣지러너라는 비극은 덤프트럭의 형태로 저를 저기 멀리 사거리에서 달려와서 저를 쳐버렸습니다.



마법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어쩌다가 일에 휘말리고 힘을 얻은 소년'이
그 힘으로 '사랑하고 싶은 여성'을 만나서 쟁취하는 왕도적인 줄거리로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사랑스러운 남녀는 별로 사랑스럽지 않은 사이버펑크의 세상을 함께 누비면서,
이런저런 모험 끝에 뜻이 통하고, 그나마 착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룹을 만듭니다.



자 이렇게 대단한 선수들을 구했으니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려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서
한탕하고 도망가서 해변가에서 음료수나 마시면서 수다떨고 노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죠?

비극을 위해서는요? 일이 계획대로 안되서 한명씩 죽어나가거나 마지막에 몰살당하는 이야기가 나와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성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인 사이버펑크라는 주제를 가진 만화를 킨 우리도 다 어느 쪽인지는 예상했잖아요?

예상 못하셨다고요? 이런 작품 보려고 한거 아니시라고요?
적어도 5편부터는 여러분에게 "2부 시작했습니다. 착석하세요"하고 알려줍니다.

허먼 멜빌이라는 미국 작가는 한 평론가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작가님, 요즘 그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어떤 젊은 여성이 마차에 치여 유명을 달리했다더군요."

그러자 멜빌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고 합니다.
"아주 슬픈 일이군요. 그러나 그건 비극이 아닙니다.
비극은 단순히 슬픈 사실이 아닙니다. 등장인물의 성격이 파국에 일조를 해야만 합니다."



메인은 다른 인물들이 말하듯 '쓸때없이 정이 많아서'
키위는 '배신자로 가득한 도시에서 아무도 믿지 못해서'
레베카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주인공이 뭐가 좋다고 끝까지 믿어줘서'

시간과 사건을 들여서 조금씩 조금씩 얼마나 인간적인지 공들여서 소개하고는
'바로 그것 때문에 오래 살지 못했어'라면서 하나씩 부수기 시작합니다.



한 화가 진행될수록, 잠시의 방황 뒤에 온전해졌던 것 같던
주인공 데이비드의 일상과 동료무리는 허깨비였던 것처럼 박살나기 시작합니다.

성격 비극은 두 남녀 주인공 데이비드와 루시도 예외는 아닙니다.
루시는 처음으로 상처많고 싸늘한 도시 여자에서, 자신을 해치지 못할 정도의 풋내기 데이비드 앞에 무장해체하고는
자신의 감정적이고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것에 데이비드는 빠져서 해서는 안되는 계약에 서명하고 맙니다.



노출 높은 복장으로 사랑 이야기에서 파멸을 가져오는 '팜므파탈'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은 루시는
오히려 반전 없는 게 최고의 반전이라는 말처럼  
데이비드와 연인이 되면서는 더더욱 그를 보호하고 싶어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파멸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죠.
비극,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비극입니다.

여러분은 미국작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두 남녀의 가난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적어도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해주고 싶던 서로는,
결국 남자는 시계를 팔아서 여자에게 머리 장신구를, 여자는 머리를 팔아서 새 시계줄을 사줍니다.
둘 사이의 불타는 사랑을 가장 부조리한 방법으로 확인하게 된 두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오열하며 끝납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을 멀게 만듭니다. 데이비드와 루시 둘 중에서 한 명도 그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둘은 돈을 벌고, 동거를 시작하고, 처음에는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있던 관계에서 대놓고 서로 알몸으로 침대에 들어가지만
오히려 이어지는건 편안하지 않은 대화, 엇나가고 있는 서로의 목표 뿐입니다.



루시는 달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공유하면서 데이비드를 홀렸지만,
루시 본인은 어느새 달은 단순히 나중에 둘이 가보면 좋을 장소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비드의 생존이 되었습니다. 이 더러운 바닥에서, 사람이 파리목숨 같은 도시에서 '살아서 달을 가자'라고요

그런데 이미 홀려버린 데이비드는 '루시를 달에 보내주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는
달에 가기 전에 루시가 다쳐서도 안되니까, 더 높은 자리, 더 좋은 장비, 더 많은 예비금을 생사를 넘어다니며 장만하죠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의 결말은 왜 항상 비극을 향해서 달려나가는걸까요?]

이미 앞선 에피소드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 시궁창 세계관인걸 우리 모두 배웠지만
결국 정해진 몰살을 향해서 나아가는 주인공을 향해 '아니야, 그러지마!'라고도 말해보고,
'설마 작품이 그렇게 처참하게 끝나겠어?'라면서 스스로를 속여보기도 합니다.

그러자 이야기는 최종화에서 '선수입장'을 외치면서
게임판에서도 등장하는 도살자 '아담 스매셔'를 출격시키죠



[하 아담 스매셔가 아니라 엑스트라 아라사카 병사가 막아섰어도 결국 이렇게 끝날거란건 다 알았잖아요?]

결국 유일한 생존자인 루시와 함께 잘 만들었던 사람(이었던것)들을 추모하는 추모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루시는 데이비드에게 '이 바닥은 어떻게 사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었냐가 중요한거야'라고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고, 우리는 모두 데이비드의 삶에 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꽤나 잘 만든 이야기였지요.



(트위터: @ireading62님 작품)

아까 예시에서 '비극은 단순히 슬픈 사건 이상이다'라고 주장했던 작가 허먼 멜빌은
자신의 장편소설 '모비 딕'을 이렇게 마무리짓습니다.



"오직 나 홀로 살아남아 당신에게 이야기를 전하러왔나이다 - 욥기"

가슴이 간만에 아픕니다. 안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