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2012)> vs <신세계(2013)>

<범죄와의 전쟁>과 <신세계>는 둘 다 깡패 누아르에 개봉 시기마저도 1년 차이라 묘하게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둘 다 걸작이라 어느 영화가 더 나은지는 취향에 따라 갈린다. 나는 재미 면에서 <신세계>의 손을, 의미 면에서 <범죄와의 전쟁>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두 영화의 차이를 극명하게 가르는 단어를 고르자면 '국적'이라고 하고 싶다. <신세계>는 무국적 영화다. 배경이 꼭 한국일 필요가 없다. 똑같은 이야기를 홍콩이든, 일본이든, 시카고든 어디에서 풀어내도 어색하지 않다. 사실상 <무간도>와 <흑사회>에서 많은 것을 차용했으니, 이 영화에서 국적을 느끼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반면 <범죄와의 전쟁>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느그 아부지, 그러니까 우리 형님의 할부지의 9촌 동생의 손자가 바로 익현 씨인기라." 나는 이 대사가 <범죄와의 전쟁> 최고의 명대사가 아닐까 싶다. 이건 정말 한국에서 밖에 안 나오는 카르텔이지 않은가? 나는 이 지극히 한국적인 느낌이 윤종빈 감독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구 반대편의 한국, 수리남

나는 실제 수리남이 어떤지 모른다. 다만 윤종빈 감독이 그려낸 수리남은 마치 한국 같았다. 특히 안 좋은 것들만 압축해 놓은 느낌이다. 식민지 시절을 거쳐 군사 독재가 이어지는 곳. 부정부패가 만연한 곳. 법보다 뇌물이 합리적인 곳. 내 아버지 세대가 숱하게 겪어 온 부조리가 2010년까지 이어지는 곳이 바로 수리남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수리남>에서도 윤종빈 감독은 아버지 세대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그 부조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세대에 대한 작은 연민을 내비친다.

이에 더해 한국식 교회의 막장성도 보여준다. 이게 꼭 한국 교회만의 모습인지도 모르겠고, 국내 교회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국내의 몇몇 목사들이 어떻게 교회를 카르텔처럼 운영하는지 이런저런 소식을 통해 들어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수리남>에도 등장한다. 차이가 있다면 이 목사놈은 마약을 사고파는 진짜 카르텔을 만들었다는 점이랄까?

이런 면면들 때문에 수리남이 한국처럼 느껴진다. 야자수가 빼곡한 화면인데도, 외국어가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도, 그들이 벌이는 추잡한 행태가 지극히 한국적으로 느껴진다.


몰입을 부르는 이야기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까지 윤종빈의 각본은 정말 좋았다. 이후에 나온 작품들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수리남>에서 다시 전성기의 모습을 되찾은 느낌이다.

특히 내용이 전개되는 면에서 <범죄와의 전쟁>이 많이 떠오른다. 시청자를 절로 몰입하게 하는 극단적인 전개가 펼쳐지지만, 이를 납득하게 하는 우연적, 필연적 상황들이 적절하게 이어진다. 개연성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는 각본이었고, 그 덕에 절로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성은 좀 익스큐즈 해야 하지만...)

여기에 앞서 말했듯이 한국적인 느낌까지 녹여냈다. 이 정도면 브라보 소리를 들어도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덧. 칭찬할 점을 더하자면, 윤종빈 감독 특유의 탄탄한 연출, 적절한 캐스팅, 넷플릭스 자본의 힘이 느껴지는 때깔이 있다.

덧2. 아쉬운 점을 꼽자면 연기다. 캐스팅이 너무 적절해서 배우들의 연기가 식상한 느낌이 없지 않다. 하정우는 또 하정우 같고, 황정민은 또 황정민 같다. 근데 이건 연기를 기대한 만큼 매우 잘했다는 것이기도 해서, 큰 단점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이 와중에 조우진은 또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