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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3:57
그냥 나이죠. 선조가 승하할 무렵에 영창대군 나이는 3세. 광해군은 34세. 거기다가 10년 이상 이어온 세자로서의 경험까지. 이걸 뒤집겠다는 건 그냥 나라를 혼돈으로 몰고가겠다는 소리밖에 안 됩니다. 영창대군이 후계자가 되려면 선조가 10년은 더 넘게 살아야 언급이라도 가능할 이야기일 겁니다.
24/08/23 13:59
임란을 거치며 선조의 권위가 이미 추락한 상황이었죠. 광해군은 서자출신이라는 페널티를 임란기간 분조 활동을 통해 극복하는데 성공해서 후계자로서의 권위를 세웠고, 당파를 가릴것 없이 조정에 지지층을 다수 확보하는데 이미 성공한 상황이었고. 임란 기간에 대놓고 광해군에게 선위하라는 상소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창대군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세자였던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세운다? 아무리 선조라도 어려울 수밖에 없죠.
24/08/23 14:30
열살도 안된 아이입니다
그래도 태평성대라면 문제가 없겠는데 당시는 임란이라는 미증유의 전란이 끝난상태인데 전란으로 엄청난 경제적타격 국고는 고갈 저잣거리에는 불구자 미망인 전쟁고아 사생아 그중 왜자라고 일본군사이에 태어난걸로 낙인찍힌 아이들도 엄청났죠 등등 사회 그냥 나라전체가 여전히 풍전등화같은 절망감 불안감 증오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민심은 나락을 넘어 지하로 뚫고 들어가고 있고 이런상황에서 코흘리개 어린아이를 왕으로? 진짜 나라 망하게 할거냐고 사대부들부터 들고일어났을겁니다 광해군 즉위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죠
24/08/23 14:33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피난가면서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하면서 의인왕후의 양자로 입적시킴으로써 적장자의 지위까지 주어버렸죠.
게다가 명의 지지를 받고 있는 광해군이었습니다. 만약 선조가 광해군을 폐세자하면 선조가 먼저 폐위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 상황에서 30살 넘게 차이나는 영창대군이 뭘 할 수 있는건 없습니다. 선조가 승하할 때 3살뿌니 안된 어린 아이라...
24/08/23 15:01
왕이 반정당해 축출된 경우를 제외하고 건재한 상태에서 왕의 아들이었던 세자가 폐세자로 강등된 경우는 태종 이방원의 아들 양녕대군 그리고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있겠군요. 이 둘의 사례를 보면 아시겠지만 누가 봐도 막장일 정도의 문제가 있어야 폐세자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세자에게 큰 흠이 없다면,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했다고 알려진 것처럼, 남몰래 죽이는 방법 말고는 쉽지 않습니다. 광해군이 어린 애도 아니고 이미 장성한데다 임란으로 정치적 기반도 제법 닦아 놓았기 때문에 독살은 커녕 꼬투리 잡아서 폐세자 시키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선조 입장에서는 이미 첫째인 임해군을 제치고 광해군을 세자로 내세운 마당에 다시 꼬투리 잡아서 폐세자 시킨다는 건 태종 이방원처럼 권력이 막강했어야 가능했을 텐데 왜란 후 선조의 입지는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죠.
24/08/23 16:19
궁궐에서의 암투극 독살 암살 이런 게 매력적이긴 하지만 조선왕실은 역대 어느 왕조와 비교해도 이런 사건들이 극도로 적었습니다. 암투보다는 대부분 정치적 싸움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죠. 선조의 권력이나 입지와 별개로 광해군 대신 영창군을 세자로 밀기에는 영창군의 나이가 너무 적었고 당연히 정치적으로 세력을 모을 방법도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 선조의 의지 뿐인데 선조가 생각하는 것 만큼 막장의 왕이 아닌지라 현실을 택했을 뿐인 거죠. 선조가 아니라 태종이었어도 만약 충녕군의 나이가 3살이었으면 당연히 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24/08/23 16:34
조선시대에는 [정실부인에게서 나온 적장자]라는 지위가 오늘날 알려진것만큼 그렇게까지 확고한 정통설을 담보해주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왕조를 들여다보면 그런 지위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는걸 알 수 있고, 그렇다고해서 세자로 책봉되거나 즉위 할 때마다 신하들이 '부당하옵니다!!'하고 난리가 나지도 않는다는걸 알 수 있죠...... 그리고 광해군은 왕세자로 책봉된 것을 넘어서 임진왜란 와중에 선조를 대신해서 조정 국무를 관장하기까지했고, 심지어 명나라에서조차 광해군을 사실상의 조선 국왕으로 대우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뒤늦게 태어난 영창대군이 개겨볼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24/08/23 16:43
선조가 최소한 15년 이상 더 생존했다면야 뭐, 뒤집을 각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니었겠습니다만 그러지 못한 이상은 말도 안 되는거였죠.
24/08/23 17:04
선조가 15년은 더 살았었던가, 영창대군이 20년은 더 일찍 태어났어야 (왜란발발 1592년, 영창대군 출생 1606년) 가능했지 않을까 싶은 정도... 흐흐
24/08/23 17:19
뭐 나이가 적당히 어느정도는 되야...적장자라는 명분가지고 어떻게 왕이 밀어부쳐서 여론을 만들던지 뭔지를 하죠...
보통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는게 9살 10살인데...
24/08/23 19:40
선조가 죽을당시 영창대군이 너무 어렸고 임란중 광해군이 쌓은 공도 상당했기 때문에 이 두가지를 무시하고 영창대군을 왕으로 만드는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24/08/23 19:44
세자가 되면 그 사람이 적장자입니다.
광해군이 세자 될 때 영창대군이 태어난 후라면 모를까 영창대군이 태어나기 전에 세자된거라 적장자 논란은 없어지는 거죠.
24/08/23 22:38
숙종은 왕권도 강했고 경종을 꽤나 맘에 안들어했고 영조라는 장성한 아들(적자는 아니었지만)조차 있었지만 세자 교체는커녕 운도 제대로 못띄고 죽었습니다. 유교 이념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세자 교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죠, 양녕이 그만큼 개차반이었다는 얘기기도 하고
24/08/24 14:00
엄청난 기반을 갖고 그 비슷한 걸 하려던 창업군주도 아들한테 칼맞았는데 3살배기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영창대군의 죽음도 국정 안정을 위한 모두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고 봐야죠. 그 이후 광해군이 정치를 잘 못해서 다시 까일만한 일이 된 거죠.
24/08/24 18:51
하나 더 첨언하면 영창대군의 탄생은 어찌보면 시작부터가 선조의 무리수에서 출발한 거기도 합니다. 영창대군의 생모인 인목왕후는 기존의 왕비였던 의인왕후가 승하한 뒤 새로 간택되어 계비가 되었는데, 당시 기준으로 계비는 기존의 후궁들 중 하나를 승격시키는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죠.(숙종 때 장희빈 이후 후궁을 계비로 승격시키는게 금지됩니다.) 실록상에도 전쟁이 끝나 나라 사정도 안좋은 마당에 굳이 왕비를 새로 간택하는게 이해가 안된다고 까는 사관의 평이 있을정도죠.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603017_001) 선조는 임란 이후 광해군의 입지가 왕좌를 위협할 정도로 커지는것을 경계해서 수차례 양위파동을 벌일정도로 광해군을 견제했는데(이것도 양위한다는거 말리지 말고 그냥 세자(광해군)에게 자리 넘겨주지 왜 말리냐고 까는 사관의 기사가 있을 정도입니다.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2609007_005), 인목왕후의 간택과 영창대군의 탄생도 이 연장선상에 있긴 합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임란 이후 광해군의 입지는 단순 세자를 넘어 선조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컸다는 이야기...
24/08/24 19:05
광해군이 임진왜란 시작하면서 세자로 책봉되는데, 전쟁기간동안 지도부역할을 합니다. (분조)
선조가 왕이면서 한것도없고 똥만 싼거랑 대조적이죠. 이정도면 이미 뭐 혈통 이런거 이전에 차기 왕으로서 입지를 다졌다고 봐도 되지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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