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PGR21 관련된 질문 및 건의는 [건의 게시판]을 이용바랍니다.
- (2013년 3월 이전) 오래된 질문글은 [이전 질문 게시판]에 있습니다. 통합 규정을 준수해 주십시오. (2015.12.25.)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4/03 11:47
모택동의 삽질의 삽질의 삽질이 있었기에 한국이 그 사이 먼저 발전을 할 수 있었고
이후 뒤늦게 성장하는 중국에 수출을 하면서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보는데. 그런 과정이 사라진다면 한국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무언가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4/04/03 12:21
일단 질게로 가는 게 맞다고 보고...
이래저래 재밌는 주제죠. 당장 중국 내부가 어떻게 정리될지부터가 난관... 국민당은 단일 세력이 아니라 거의 봉건제 수준의 군벌 연합체였는데 얘네가 제대로 된 하나의 국가로 통합될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극중앙집권적 국가의 모습일까도 그렇고요. 한반도의 분단 자체는 소련 주도로 했으니 분단 자체는 됐을지언정 625는 없었을텐데 과연 자유진영에 둘러쌓인데다 스탈린이 별 관심도 없던 북한이 과연 제대로 살아남을 수는 있었을까도 그렇고...
24/04/03 12:43
최고의 시나리오는 남 중화민국 북 중공으로 갈리는게 아닐까요. 6.25는 없거나 중공군 지원이 약해져서 북진통일로 끝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북쪽에 휴전선이 형성될듯 하고요.
24/04/03 12:57
일단 중국에 비해 경공업 경쟁력이 있을 수가 없으니 경제발전 1단계부터 막힐 것 같은데요...
최대한 대한민국에 유리하게 가정해보면 국민당이 통일-> 장제스가 정신을 못 차림 -> 심각한 부패 + 난립한 군벌 -> 자원 팔이 및 경공업 집중으로 중진국 함정에 빠짐 정도인데 그래도 경공업 경쟁력이 우리보다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아서 우리나라는 좀 힘들것 같아요. 그리고 중화사상 특성상 아무리 경제가 망해도 인도처럼 군사우주기술은 최첨단으로 유지할 것 같고 주변국과의 마찰이나 해양진출 욕구도 지금과 별 차이 없을테니 미국과의 마찰은 오히려 더 빨라질지도 모르겠네요.
24/04/03 13:05
어디서 줏어듣기론 장제스가 2차대전 종료당시 뜬금없이 한국의 독립을 주장한 이유가 사실상 중국의 지배하에 두려는 선발작업이었다고 했던걸 봤어서 그게 사실이라면 한국이 지금처럼은 절대 안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24/04/03 13:45
대만시절 장제스가 한국에 해준 걸 보면 정치적 고려라기보다는 진짜로 호감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합니다.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분들이 큰 일 했죠.
24/04/03 13:23
너무 스케일이 큰데요? 크크크...
일단 중국이 공산화가 안 됐을 경우 소련과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냉전시대 구도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바뀌었을거라.. 그쯤돼면 왠지 영국이나 프랑스도 식민지들 독립 안시켜주고, 동남아는 여전히 유럽국가들의 지배권하에 있었을수도?
24/04/03 13:27
중화민국이 국공내전 승리해서 중국 전토를 차지했으면 당시 쥐뿔도 없는 거지국가였던 우리나라는 나락으로 갔을겁니다.
윗댓에서 언급되었다시피, 일단 경제성장 첫 단추를 꿰려면 경공업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중국 앞에서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을리가 없어서;; 지금보다 우리가 더 꿀을 빠는 대체역사이려면 북 - 중공 / 남 - 중화민국으로 장강 경계로 중국이 두 쪽 나는 경우여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요즘 근현대 대역물 트렌드가 중국 두동강, 혹은 셋 이상으로 분해하기인게 괜히 그러는게 아니죠.
24/04/03 13:45
중국이 소련을 막는 자유진영의 방패가 되면 현대 동아시아랑 너무 달라져서 예측이 힘듭니다.
당장 일본서 역코스로 불리는 전환이 안생겼을 공산이 있어서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도 중국중심으로 굴러갈거고, 중국 덩어리 생각하면 냉전구도 자쳬도 완전히 바뀔겁니다.
24/04/03 13:53
1. 다들 장제스가 윤봉길 의사 훙커우 공원 의거에 감동..이야기 많이 들으셨지만, 장제스 입장에서 임정을 지원한 이유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놓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어쨌든 간에 중국 전체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반도가 중국에 우호적이어야만 했으니까요
2. 남북 분단은 중국이 가타부타 끼어들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당시 만주진공작전으로 이미 만주 전역은 소련군의 수중에 들어와 있었고 일부는 이미 한반도 경내까지 들어와 있었거든요. 명분도 미국의 요청에 의해 대일전 참전이라는 명분도 있었고, 이후로는 38도선 북방의 일본군에 대한 무장해제 명분도 있었으니까요. 3. 전 한국전쟁 역시도 일어났을 거라고 보는게, 한국전쟁 발발의 가장 큰 의지는 김일성, 마오쩌둥이 아닌 스탈린의 결정이 더 강했을 거라 보거든요. 실제로 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김일성의 남침 관련 의지에 대해서 스탈린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박헌영까지 들러붙었음에도요. 핵개발 성공 이후로는 스탈린은 다른 지역에서 전쟁이 필요하다 여겼고, 그 이유는 동유럽을 비롯한 다른 중동 지역에서의 소련 영향력을 확고화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서유럽의 이목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4. 일본의 부활은...아무리 봐도 언젠가는 이루어 질 예정이었고 한국전쟁은 거기에 부스터를 달아준 거라 봅니다. 이미 미국은 일본에 GHQ 통칭기간 동안 현 가치 22조원 가량의 무상원조를 시행했었고, 닷지라인이라는 여러가지 경제적 편의를 봐줬거든요. 이런 지원책은 한국전쟁이 아닌 1948년까지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국전쟁이 터진거죠. 다른 것에 있어서는 저는 대답하기 불가능한 것들이 깔려있어서 대답을 못하겠지만 제 짧은 식견으로는 저정도가 한계...
24/04/03 13:53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1949년에 최종 승리했다면..
1. 이승만이 북진통일을 외치며 미국과 중국에 지원 요청 2. 쏘련의 영향력을 끊어내기 위한 장개석과 트루먼(?)의 협상에 의해 대한민국에 군사 지원 감행 3. 1953년 대한민국 군대의 북한 침공 4. 1954년 대한민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 정부 수립 5. 한중미 대 쏘련 공동 군사 동맹 구축 6. 동남아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프랑스는 2차대전 후 이 지역의 독립 요구를 받아들여 개별 국가를 탄생시켰으나 영향력을 유지 7. 프랑스 지배를 받던 독립국가들은 왕조국가로 국가체계를 세움. 그러나 공산계열 반제국주의자들의 봉기가 발생, 공산계열 반정부주의자들은 외부 지원이 없이 발생한 탓에 일부 지역을 장악한 채 정권 타도에 이르지 못함. 8. 중국은 국민당의 부정부패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지식인들과 이를 탄압하는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정권 타툼이 반복되어 벌어지고 중국 각 지역은 군벌을 비롯한 유력자들이 반 자치적인 성격을 띄며 중앙정부와 대립함. . . . .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동아시아는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의 민주화 요구와 이에 대응한 봉건주의적 기득권 세력의 탄압이 반복되어 매우 어지러운 정국이 계속 유지 됨.
24/04/03 15:24
현재 대한민국의 성장은 거의 생명 탄생급 기적에 가까워서 약간의 변수만 있었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거 다 어찌어찌 실제 역사와 비슷하게 넘긴다 쳐도 박정희 사망과 1980년대 민주화는 아마 두 번은 안되지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