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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9 19:23
김택용 자체는 갑툭튀 까지는 아니고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다만 결승에서 저그전 풀어낸 방식은 뜬금없었지요.
한편 당대의 모든 관심이 마재윤 본좌등극여부에 쏠려있었고, 토스의 경우는 강민이 건재했기 때문에 주목을 더 못 받았다고 봐야겠죠.
20/01/19 19:28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왜 아무도 김택용이 압살은커녕 이길거라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지금 경기 다시보면 명백한 수준차이가 보이는데 그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이런 얘기인데 그게 잘 이해가 안됩니다 그시절에도 분석은 다 했을텐데.. 그저 마레기의 아우라에 다 눌려서 김택용 조명을 못한건지.. 아님 실력이 확 늘은건지 하하 참 어렵네요
20/01/19 19:41
일단 시기가.. 성전이라고는 하지만 프로토스는 이미 개박살 났음.. 조용호가 우승 한 번 저지했지만 그 후로 더 강해짐.. 결정적으로 온게임넷에서 롱기 리템 끼고 이윤열 압살.. 근데 결승 상대는 신예토스.. 결국 이랬기 때문에 그 누구도 김택용에게 관심을 안줬을겁니다. 결국 누구였어도 기대를 못받았겠지만 김택용은 더 그랬죠. 근데 사실 이 상황에서 김택용이 저그전을 딱히 보여준게 없어서.. 말씀하신 2가지 요소 다 있다고 봅니다. 실력 상승 + 주목도 낮음
20/01/19 19:43
그 당시 김택용은 프로리그에서 오영종의 뒤를 이을 질럿공장 공장장 느낌으로 주목을 좀 받았었죠. 테란전을 자주 해서 그랬었는지 저그전 개념은 부각이 좀 덜 되었던 것 같네요.
20/01/19 19:49
그당시 관심도가 낮은게 젤큰이유죠. 아마 결승이 아닌 단판에서 그런 게임이 나왔다면 그냥 그날 전략이 잘통했나보다 하고 지나갔을겁니다. 결승에 예상을 벗어나서 비수류에 대한 분석이 시작되었죠
20/01/19 19:53
굳이 찾자면 준결승에서 강민 3:0일텐데...이래놓고서도 마씨의 압도적인 우승 여론에 별 영향이 없긴 했죠. 아마 마씨가 당시에 워낙 강자로서의 어그로를 다 끌고 있어서 아닌가 싶어요
20/01/19 19:55
그 당시 홍보용으로 사용된 문구 "2.69%"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봅니다.
사실 저는 이 문구를 싫어하는데요. 이 숫자는 마xx의 대 프로토스전 승률만 가지고 산출된 숫자로, 김택용 선수의 전적은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프로토스 종족으로 결승에 갔더라도 2.69%였겠죠. 당시 김택용 선수의 대 저그전 승률을 기억은 못 하지만 50%는 넘었던 것으로 알고요. xx위키를 좀 다시 읽어보니 당시 테란과만 붙게 되어서 저그전이 3개월만이었다고 하네요. 김택용 선수는 결승 전에 푸켓 관광을 다녀올 정도로 자신이 있어 했는데 3개월 동안 김택용의 저그전을 본 사람이 없으니 다른 프로토스와 별 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이유일 것 같네요. (이 날 이후에도 마의 대 프로토스 전적은 굉장히 좋았다고 합니다...) 요약 1. "2.69%" 마케팅으로 마쪽으로 실력이 엄청나게 뻥튀기되어 보이는 상태로 결승전이 시작 2. 김택용의 저그전 실력이 향상된 후 결승전까지 대 저그전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음. 덧붙임) 아... 위 내용에 암시적으로만 들어있고 빠뜨린 게 있는데, 마 대 김택용은 결승 전까지 상대전적이 없었습니다.
20/01/19 22:33
그당시 정확한 워딩은
'[일반적인 프로토스]가 5전 3선승제에서 마재윤을 이길 확률' 이어서 틀린말이 아니죠 김택용이 마재윤을 이길확률이 아니라요 마재윤 2006년 프토전전적 이럼 개쩜 플토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하지만 김택용 기적을 연금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죠
20/01/19 20:05
엠겜이 진짜 엄청~~~~나게 김택용 선수 포장을 못 한 거죠. 온게임넷이면 절대 그렇게 안 됐을 겁니다. 절대 강자 마신 VS 비수를 가진 떠오르는 신예 구도로 어떻게든 기대감 끌어올렸을 거예요. 물론 당시 브로커 마가 토스전도 잘 했고 한껏 최강자의 면모를 자랑했을 때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은 엠겜도 상대 토스를 띄워야지 무슨 2.69%로 브로커 마를 절대자로 만들 필요는 없었죠.
20/01/20 01:35
근데 '마'를 띄운 덕분에 결과적으론 택신이 더 포장이 되버렸죠.
온겜 스타일로 택신 기대치를 높여놨으면 저 정도 임팩트는 절대 없었을꺼구요.
20/01/19 20:17
전 이미 그 직전에 한 vs 박지호 전부터 낌새가 보이던데요
박지호가 상황 엄청나게 잘만들어놓고 특유의 새가슴으로 아쉽게 졌는데 그냥 판단 조금만 더 잘했어도 충분히 이겼겠다 싶더라구요 그 당시에 김택용이 비수류로 다크 집어넣기 안하고 힘싸움 위주로 했어도 무난하게 승리했을겁니다 피지컬차이가 워낙 넘사라
20/01/19 20:36
음.. 제생각에도 김택용이 한두단계는 더 위인것 같은데 그런게 전혀 조명받지 못한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다크 아니었어도 이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20/01/19 20:54
다른거 다 제껴둬도 됩니다.
프로토스는 저그에게 다전제를 이겨본 적이 거의 없어요. 마재윤이 김택용에게 패배하고 나서도 1년 뒤인 클럽데이의 토스전성기 육룡시대 이전까지 토스는 저그에게 다전제 쪽도 못 쒔습니다. 심지어 박성준 김정우 이제동 이 3명은 커리어 내내 토스와의 다전제에서 져 본 적이 없죠. 크크 심지어 김택용을 만나서도 다 이겼습니다..... (수정. 검색해보니 이제동 선수는 신인시절 안기효선수에게 하부리그에서 진 적이 있네요. 엌크크크크) 당시 김택용에게 아무런 기대를 가지지 않는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뭔가 엄청난 전략을 가져오면 1경기 잡고 3:1이라고들 생각했죠. 크크
20/01/19 21:05
그 저그 놈의 테란전이나 토스전이나 공략 포인트는 분명했는데, 기성 선수가 아닌 새 선수들이 올라오는데 시간이 필요했었죠. 세대 교체 시기였죠.
당시에는 스토리가 중요했지, 차가운 분석은 좀 뒷전인 시대기는 했습니다. 물론 압살인 것은 예상 외였죠.
20/01/19 22:06
김택용이 4강 강민 전만 해도 비록 토스전이지만 프로토스 최강자라는 강민을 실력으로 압살하는 포쓰를 보여주었고, 그 동안 해온 경기에서도 압도적인 물량 등 기본기 탄탄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죠. 그래서 공공연히 실력만큼은 정상급 프로토스라고 여겨졌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던 건, 실력 문제가 아니라 종족이 '프로토스'라는 점이 컸다고 봐요. 프저전 패러다임은 3.3 전후로 나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시대에서 돌려보면 무난히 실력 앞선 토스가 저그를 압살한 경기였지만 그 때만 해도 토스가 저그를 5판 3선승제 그것도 결승전에서 상대방은 당대 최강 저그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아무도 예상 못했을 것입니다. 박지호, 송병구, 오영종, 박정석, 박용욱 등 잘나가던 토스들도 B급 저그들한테 간간히 발목 잡히는 게 전혀 이변이라거나 이상하지 않은 시대였었죠. 오래살린 프로브, 커세어-다크 활용 극대화로 인한 줄어들은 정보격차와 현란한 견제 후 동등한 자원 확보를 보여준 후 그제서야 사람들이 '프로토스를 잘 다루면 저그랑 할만 하구나'를 깨우치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나온게 육룡의 전성시대였죠. 그래서 3.3이 단순히 이변이 아닌 '혁명'이라 불리면서 아직도 기억되는 것이구요. 단순히 김택용이랑 영웅이 탄생했다기보다는, 저-프전 패러다임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경기라고 봅니다.
20/01/19 22:26
저프라는 상성, 저그뿐만 아니라 그냥 당대 원톱 플레이어, 당대 원톱 프로토스 플레이어라고 생각했던 강민도 사실 마재윤 상대로 승률이 높진 않았지만 마지막 희망처럼 부각되고 있다가 그 강민마저 떨어져버림으로써 단판제라면 모를까 다전제에서는 못 이긴다라고 생각을 해버리게 되었죠.
20/01/19 22:54
결국 OSL, MSL 역사상 프로토스가 결승전에서 저그를 꺾고 우승한 것이 3.3 혁명 밖에 없습니다. 뭐 이래서 저래서 김택용이 이겼을 것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건 같은 팀 동료들 빼고는 없었다고 봐야죠.
20/01/19 23:46
보통은 패러다임 전환이 예선이나 본선 16강부터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김택용은 그걸 결승전에 와서야 꺼내들었죠.
그래서 예측하기 힘들었을겁니다.
20/01/19 23:50
제 생각에는 커세어의 재발견이 제일 컸던것 같습니다.
8강 4강에서 김택용선수가 저그를 만나서 조금이라도 보여줬다면 분명 게임양상은 조금은 달랐을 겁니다. 이 전까지는 토스가 더블넥을 하더라도 질템 or 커리버 단순하게 플레이를 했는데 공발업 질럿을 하면서 커세어를 모으니 막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처럼 973 이런 빌드는 당연히 없었고요. 2000년대 초반 사설서버에서 프로 아마 가리지않고 다 뚜드러 패고 다니던 아마추어 최연성이 정립한 1마린 더블, 1팩더블 같은 획기적인 게임운영이었던것 같습니다.
20/01/20 00:33
결승 전에 푸켓으로 휴가 다녀오고 사전 인터뷰에서 3대0 안나오게 연습 잘하고 와라, 프로토스가 저그에게 왜 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던 말도 임팩트에 꽤나 영향을 끼쳤죠. 강민이 이렇게 했으면 뭔가 있다는 기대감이라도 들었을텐데 오히려 기대치를 바닥까지 끌어내린 행동들이라..
20/01/20 01:11
3.3 몇주전 마레기가 큰 대회 전날 피시방에서 친구랑 놀고 있었다는 제보를 들었습니다.
3.3 하루전날 클챗에서 김택용선수랑 직접 얘기 했었습니다. "자신있으세요?" "네 자신있습니다" 지금와서 얘긴데 터질게 터진거라고 봅니다.
20/01/20 01:39
어떤 시대나 "스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짜이고 구도가 형성되는데
당시 MSL 몇시즌간 프저전의 스토리는 "독재자 마재윤에 도전하는 강민", 소위 [성전]이었죠. 그래서 4강에 마재윤 강민이 각각 올라간 이상 다수의 기대에 의하면 당연히 결승에서 성전이 나와야 했는데.. 김택용이 4강에서 이긴데다 마재윤이 온게임넷 우승을 하니깐 이제 팬들이 관심을 갖는 스토리가 "마재윤의 통합 본좌 대관식"으로 바뀌어버렸죠.
20/01/20 01:59
그 당시 마가놈의 포스란...
저그 죽이겠다고 이상한 맵을 넣어둬도 다 때려잡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포스에 한몫했다고 생각하는게 아이디는 savior 별명은 마에스트로...
20/01/20 02:40
걍 잘째고 잘막고 뮤탈띄우면 이기던 시대여서 강민식 커리버같은 수비체제도 아닌데 커세어 모은다는 개념에 대응을 못했죠.
마재윤은 3경기 다 뮤탈을 모았으니.. 물론 이후에도 마재윤과 김택용은 자주 붙었지만, 김택용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음에도 마재윤이 계속 지는건 실력에서도 밀린다는걸 김택용은 증명하긴 했습니다
20/01/20 07:05
그 당시의 패러다임은 온통 마에 쏠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마의 팬이었어서 기억합니다만... 임요환-이윤열-최연성으로 이어지는 테란 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저그 구세주였죠. 물론 박성준이 있기는 했지만 외모도 그렇고 팀도 비인기팀이었어서 실력 대비 인기가 없었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그 즈음은 홍진호의 영향력이 건재한 시점이어서 저그 첫 우승은 홍진호가 해주기를 바라는 저그 팬들이 많아서 그 견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가 떠오를 때에는 그런 것도 없었어요. 거기다가 CJ, 그 당시 슈마지오 팀도 서지훈-강민을 필두로 한 팀팬들이 많아서 그 비호도 컸구요. 그래서 진정한 '포스트 임요환은 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거기다가 엠겜 최강자가 이제 온겜을 접수하러 온다! 근데 맵은 롱기-리템으로 유명한 저그 죽이기 맵, 결승 상대는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테란의 상징과도 같은 이윤열, 모든 스토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화룡점정을 찍으며 우승을 해버려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본좌였어요. 그 뒤에 말장난처럼 온풍기좌네 뭐네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절대 본좌요. 더구나 엠겜은 마재윤 앞마당이었던 데다가 당시 플토 최강으로 꼽히던 강민도 마재윤에게는 힘을 못 썼으니... 어느 누가 1주일만에 비교적 신예 토스가 이 절대 포스를 내뿜는 마를 이길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근데 생각해 보면 엠겜이 포장을 못한 감도 있기는 합니다. 김택용이 외모도 출중하고 플레이도 화려해서 소위 스타성이 있었던 데다가 그 뒤에도 지속적으로 우승을 해서 (사실 이게 더 중요하지만) 그렇지 그 한 번이었으면 리그 브레이커로 남았을 거에요. 아레나 박지수만 해도 이영호-이제동을 잡고 우승했는데도 비아냥만 들었죠.
20/01/20 09:07
강민를 바르고 올라오는게 그 전조증상이였지만
팬덤은 그때 광빠와 광까의 첨예한 대립이 심각한 상태여서 그 강민을 바르고 온 김택용에 포커싱이 맞춰진게 아니라 신인에게 발린 강민을 까는데 모든 포커싱이 맞춰져있었습니다. 상대가 강민만 아니였어도 조금더 냉정하게 김택용을 볼수있었을지 모르겠는데 하필 당시 스갤 갤주에 가까운 강민이여서.. 마야 바로 얼마전에 이윤열 이기면서 본좌로드에 올라선 터라 절대자취급을 받고있었구요. 팬덤크기와 기대치의 정도가 워낙 압살수준의 차이라 선지지가 있었다한들 어그로취급 받았겠죠.
20/01/20 10:06
강민을 이긴건 동족전이라서 그렇습니다.
보통 동족전은 이상하게 잘하는 스페셜리스트들이 가끔 있었고, 또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고요. 그렇지 않더라도 동족전은 준비나 운에 따라서 승패가 갈리기도 해서 이겨도 크게 주목을 못받았죠. 아마 그 전에 대 저그전 다전제를 그렇게 바르고 올라왔으면 조금 주목을 받았을꺼 같아요.
20/01/20 13:18
저는 그당시 친구들과 내기해서 김택용에 베팅했습니다.
10만원빵이었는데 쏠쏠했어요. 3.3혁명이 충격적이었던건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이미 이스포츠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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