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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5/26 18:03:01
Name 유쾌한보살
Subject 실종.




엊그제가  친정아버지 15주기 제삿날이라 간만에 친정 걸음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둘째딸을 본다는 기대감에 후끈 달아 올라 계셨....... 을 리는 만무하고,
눈이 침침한 와중에도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지요.
 
저는 호박오가리시루떡 1되와 쑥떡 2되 그리고 새우튀김을 해왔으이 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부엌 작업群 3인 1조ㅡ 어머니, 올케, 언니 ㅡ 의 움직임을 한가로이 구경하면서,
소파에 드러누워 계속 와신상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내 시야에 잡힌, 지름 3.5㎝ 정도의 공터 !!
 

어머니의 정수리 약간 아래 지점.
 

영감님 오신다고 염색까지 하셨건만,
뒷머리의 실종 상태가 저 정도인 줄은 미처 모르고 계시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입고 계신 셔츠도 눈에 익은 것이... 착용 개시 년도가 꽤 되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  70년대 배삼룡씨 사루마다보다 약간 긴, 저 - 꽃무늬 칠부 통바지.
여름엔 늘 저 바지였자나.....
그간 언니가 백화점표 의상으로 꾸준히 사다 나르고,
저도 해마다 세일 상품으로  더러 사다드린 것 같은데..
왜 어머니 모습은 화사하게 고우신 적이 거의 없을까...
 
 
 
그 때가 중학교 1학년이었었나..
씻어논 체육복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
안방 장롱 서랍까지 마구 뒤지다가 발견하게 된 어머니의 팬티들.
 
헉 !!!!
그 팬티들 중 성한 게 없었죠.
여러 번 덧대어 기운 흔적.
아마도 아버지와 우리의 낡은 런닝셔츠에서 헝겊을 오려 내셨으리라...
 
아우 ~ C !!   

내가 후제 돈 많이 벌모, 실크빤스로 10장, 20장 왕창 사줄끼다 !!!
꼭 !!  사드리고 말끼다 !!

두 주먹까지 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비장한 결심을 했었더랬죠.
그리 결심한 순간도 있었건만, 순면빤스 1장도 안 사드렸... 다기보다, 이후 어머니 팬티에 대해선 잊고 살았습니다.

새삼스레 어머니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당신 인생에 뭘 한 가진들, 멋대로 아니, 마음대로 아니, 제대로 누린 게 있었을까.. 싶더군요.
 
필 꽂혔다고, 마음에 꼭 든다고, 한 번이라도 망설이거나 주저없이 옷을 사 보기는 하셨을까.
화장품 내지 구두를 사 보셨을까.
꼭 구경하고 싶다고, 스스로 마음내어 어디 여행 한 번 가셨을까. 
그래봐야 노인대학 또는 친목계 단체여행 아니면, 남동생1과 우리 딸들이 간간히 모시고 간 여행 정도입니다.

이제 비행기 타기엔 연세가 너무 많으십니다.
어머니 70대~80대 초에 저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그저 내 살기에 그토록 바빴을 뿐인가...

 
아우 ~~ C !!! 

옴마 !!
 
이제부터 잡숫고 싶은 거, 무조껀  다아 잡수셔야 됨니더.
꽃등심이고 복어회고 신선로고 용봉탕이고 자라붕알조림이고간에 다아 드시는 김니더.
아, 친구분들 하고 같이 가이소. 
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다아 쏘시는 김니더.
그라고 ..마음에 드는 옷이고 핸드백이고 있시모, 망설이지 말고 다아 접수 하이소.   마, 가격 따지지 마이소.
그라고 .. 괜찮은 영감님 계시모,  마, 같이 영화도 보고 맛난 거 드시고 여행도 다니시이소.
한 번이라도 멋대로 쪼대로 살아보는 김니더 !!! 
 
이렇게 당당히 소리치면서 거금 드리고 싶지만,
문제는, 이제 치아도 시력도 관절도... 어머니가 맘대로 사시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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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6 18:05
수정 아이콘
왜 내눈에서 땀이 나오는가;;
그리움 그 뒤
19/05/26 19:03
수정 아이콘
지천명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이에도 아직도 엄마 엄마 거리고 좋게 대화하는 것보다 투닥투닥 거리는게 훨씬 많은 상태.
서른 두 살 이전에는 세상 둘도 없던 보물이 그 이후(당연히 결혼..) 세상 싸가지 없는 놈이 되었다며 못된 놈을 입에 달고 살지만 엄마표 칼국수 먹고 싶다 하면 두 말 없이 시장에 가셔서 바지락 사오고 밀가루 반죽도 직접 밀고 있는 엄마.
엄마보다 마눌님 편들어 주며 뒤에서 같이 험담을 늘어놓지만...
그래도 말없이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 제일 가슴 먹먹한 울 엄마.



이제 나 애취급좀 그만 하시지요. 쳇...
내가 나이가 몇 갠데..
사악군
19/05/26 19:0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추천..

시간은 기다려주지를 않지요..
이르미르
19/05/26 19:34
수정 아이콘
저도 어머니 70되시고야 모시고 바다며 꽃이며 보여드리러 다녔는데 어머니가 이리 데리고 구경 다니는것도 좋긴한데 이제 당신이 연세가 있어서 가만히 차만 타도 오래 있으면 힘들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하시네요‥ 왜 좀더 젊으셨을때 그리 못했나 후회가 되더군요.‥
Katana maidens
19/05/26 23:20
수정 아이콘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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