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2/18 16:07:17
Name 이쥴레이
Subject [일반] 일상에 작은 쿠데타 (수정됨)
[프랑스어에서 정변(政變)을 뜻하는 Coup d'État에서 유래된 말로 원어로 해석을 하자면 '나라에 한 방 먹인다'는 뜻이 된다.
프랑스어 원어 발음은 '꾸 데따'에 가깝다. 영어에서는 간단히 쿠(coup)[1]이라고 표현하며,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부 세력에
대해서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훈타(junta) 혹은 군부 정권(military regime)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조선 시대 때는 반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주 '쿠테타'라고 잘못 표기하는데, 아마 바리케이트나 포르투칼의 예처럼 앞 음절의 거센소리 때문인 것 같다.]



첫줄에 있던 너를 처음 봤을때 붉은 윤기와 함께 그 뽀얀 속살을 나에게 자랑하였지만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차디찬 얼음속에서 모두에게 잊혀졌었지

두번째줄 구석에서 성게에 끼어 있던 너는 나에게 아픈 아이 같은 녀석이었어, 청명한 가을산에서 널 처음 만났을때
나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너를 발견하고는 너와 너의 친구들을 한가득 업고 다녔지, 하지만 너 역시 빛을 보지 못하고
여기에 있었구나

세번째줄에 있던 너는 3년전 보았던 녀석이었지,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너를 좋아하지 않았고 집안 권력자에게
잔인하지만 너를 커다란 분쇄기에 넣어 갈아버려 개먹이로 주자고 하였단다. 하지만 너는 여전히 그자리에 있구나

그뒤를 이어 죽어버린 커다란 눈동자와 머리만 남아 나를 멍하게 바라보는 녀석을 바라보니 확실히 때가 되었다고
느껴졌다.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자니 지난 몇년간 잠깐 얼굴을 보았거나 주류에 밀려 이제는 어느덧 기억속에 잊혀져
그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있던 너희들..

오늘은 3년전부터 계획하였던일을 드디어 실행으로 옮길수 있던 날이며 그동안 계획하고 여러차례 예행 연습과 미리
들키지 않도록 구입한 도구들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이 드디어 빛을 보는 날이야

그래 처음 너희를 인지한것은 아주 오래전이었고, 계속 희생자들은 늘어만 갔어, 그 아귀비환속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3년동안 작은 시도들을 하였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였지..
하지만 드디어 오늘 그 기회가 왔어

주요 상부인사들은 2주간 행사로 인해서 부재하는것이 절호의 기회였고 오늘이 아니면
일주일에 세번 오는 지원차량도 나에게 결단력을 강요하였지..

최상단부터 빠르게 하단까지 내려간다. 괜찮아 수십번 시뮬레이션 하였고 항상 아쉬워하던 저 권력자들과 다르게
나는 결단력 있게 남김없이 처리할수 있다. 라는 생각으로 멘탈을 추스리며 첫 덩어리들부터 조심스러게 옛생각을
뒤로 하고 하나하나 분리하고 있었다.































[아빠 뭐해?]


응 냉동실 정리..

할머니나 엄마한테 말하지 말어..
아빠는 집안에 건강과 비명지르는 냉장고를 위해 쿠데타를 하고 있는거야

언제 사온지 알수 없는 고기 덩어리
분명히 3년전 선물 받아 한점도 못먹고 아깝다고 아껴먹는다고 냉동실에 넣은 한우
언제일지 기억도 안나는 가을산에 따온 밤덩어리들
분명히 몇년전 본듯한 홍시와 사과 토마토 냉동덩어리들..
몇년동안 계속 같은 자리에서 본 말라비틀어져 수분이 없어보이는 빵덩어리들
알수없는 2년전에도 본듯한 육수 냉동덩어리, 분명히 작년에도 본듯한 동태 머리 덩어리와
오랜 햇수만큼 매번 명절때마다 쌓여가던 떡과 남은 명절 음식등등..

[괜찮아 유통기한 지나도 냉동실에 얼리면 되, 괜찮아 냉동실에 얼리면 되
괜찮아 냉동실에 얼리면 언제가는 먹어! 괜찮아 냉동실에 얼리면 됨! 언제가는 먹을거야 놔둬!
냉동실에 얼려~!]


꽉차 버린 냉장고를 음식쓰레기 봉투에 넣고 해동시키면서 얼마전 구입한 냉동실 정리함을 이용해서 가장 최근에
구입하였다고 기억하는 음식들을 남기고는 일주일에 세번오는 음식물 쓰레기차에 모두 인계 하였다.

3년전 썩은게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냉동실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동태머리를 보고 마음먹었던일을
3년이 지나고 나서 드디어 오늘 깨끗히 정리 할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그동안 여러차례 냉동실 정리를 위해 움직이다가 제지당하였지만... 빈집을 노린 오늘은 아주 성공적인 쿠데타였습니다.

어차피 집안 주 권력자인 장모님은 여행가셔서 2주뒤에 오고, 몇년동안 안쓴 언제가는 먹는다는 정체불명덩어리가 된
녀석들은 기억도 못하실거라고 예상하며, 그거 제가 다 요리해 먹었습니다. 라고 변명 시뮬레이션도 머리속에서 완료가
되어 있습니다.

아내요?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저는 일상에 작은 쿠데타가 오늘 성공하였습니다.

냉동실을 열었을때 그 환희는 이제 잊지 못할거 같네요.

여러분 냉동실 정리 합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9/02/18 16:18
수정 아이콘
저도 이사한 김에 한번 정리를 감행한 적이 있습니다.
대용량 냉장고 공간의 반이 비더군요.

사후보장을 위해 유통기한 5년 지난 쌈장 등등 사진 찍어놨었는데 어디갔더라..
복슬이남친동동이
19/02/18 16:26
수정 아이콘
저는 주거 독립했음에도 결코 이런 종류의 쿠데타는 벌이지 않는 자아민주주의자입니다.

고기는 많이 사다놓고 부모님은 계속 가져다주시고 나는 밥을 밖에서 먹고..의 콜라보로..
냉동실 1년근 삼겹살 드셔보셨습니까??
삼겹살은 삼겹살입니다.
덴드로븀
19/02/18 16:33
수정 아이콘
여러분 냉장실도 안심하지 마세요. 정리해야합니다.
Zoya Yaschenko
19/02/18 16:33
수정 아이콘
비워야 채운다!
소와소나무
19/02/18 16:36
수정 아이콘
이 쿠데타는 좋은 쿠데타이다!
쥬갈치
19/02/18 16:41
수정 아이콘
냉장고 안에걸 버리려고하시면 그냥 화내고 누워버리시니 냉장고를 손도댈수가없어요 크크
아웅이
19/02/18 16:44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크크크
중간에 '아비귀환'표현은 혹시 일부러 쓰신건가요?
뒹구르르
19/02/18 16:46
수정 아이콘
냉동실을 창고로 쓰는걸 극혐하는 1인으로서, 이 쿠데타 지지합니다
우중이
19/02/18 17:00
수정 아이콘
이거 안먹지? 그럼 좀 치워버려
아냐 나중에 먹을꺼야(2년지나도 안먹음)
월급루팡의꿈
19/02/18 17:21
수정 아이콘
문득 저는 냉장을 정리하고 싶네요... 진짜 빌런들은 의외로 거기 있더라구요.
19/02/18 18:01
수정 아이콘
고기는 어는순간 끝입니다 냉장보관하고 최대한 빨리먹는게ㅜ이득이죵!
Eyelight
19/02/18 19:41
수정 아이콘
살림살이, 음식 관련된 것 중에 제가 가장 싫어하는 두가지 중 하나네요.

1. 냉동실 안 언제 쌓였는지 알지도 못할 검고 흰 비닐봉지들. 언젠간 먹을텐데 아깝다며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 결국 냉장고는 꽉꽉 봉지로 터져나가도 열어보면 정작 먹을 게 하나 없음.

2. 탄수화물 중심 식단으로 잔뜩 해놓고서, 먹다 배불러서 남기면 아까우니 먹고 치우자며 자꾸만 강요하는 것. 내가 먹을 수 있는 칼로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냥 과하게 한 음식을 버리는게 아까운건지, 남은 음식을 돼지처럼 꾸역꾸역 먹어 없애서 살찌고 몸에 손실 끼치는게 더 아까운건지, 아직도 모르겠음.
19/02/18 20:24
수정 아이콘
이건 쿠데타가 아니라 레볼루숑...
vanillabean
19/02/18 20:30
수정 아이콘
이번에 집에 가서 냉동실 문을 열었는데 십 년쯤 전에 사다드린 연어가 턱하니 보일 때 숨이 진짜 막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집에 큰 냉장고 한 대, 김치 냉장고 한 대, 냉동고 한 대 돌려요. 그런데도 냉장고 하나 더 갖고 싶단 말을 하시는데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비닐봉지에 쌓인 것들이 진짜 꽉꽉 들이차 있는데 저 연어는 버리란 소리만 했어요.
Thursday
19/02/19 09:09
수정 아이콘
'발효' 된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죠.
음식물 쓰레기를 사랑해 마지 않는 이들.
저렴한 기억력으로 반드시 먹을 거라는 식품을 또 구입하는 이들.
차곡차곡 냉장고 안 쪽부터 다시는 보지 않은 역겨운 것들을 배양하는 분들.
그러면서 괴랄맞은 고집을 부리는 이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게시판을 오픈합니다 → 오픈완료 [53] jjohny=쿠마 24/03/09 27721 6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49840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25978 8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48913 28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19205 3
101344 [일반] 고인 뜻과 관계없이 형제자매에게 상속 유류분 할당은 위헌 [14] 라이언 덕후1405 24/04/25 1405 1
101295 [일반] 추천게시판 운영위원 신규모집(~4/30) [3] jjohny=쿠마15015 24/04/17 15015 5
101343 [일반] 다윈의 악마, 다윈의 천사 (부제 : 평범한 한국인을 위한 진화론) [47] 오지의4169 24/04/24 4169 11
101342 [정치] [서평]을 빙자한 지방 소멸 잡썰, '한국 도시의 미래' [17] 사람되고싶다2263 24/04/24 2263 0
101341 [정치] 나중이 아니라 지금, 국민연금에 세금을 투입해야 합니다 [47] 사부작3495 24/04/24 3495 0
101340 [일반] 미국 대선의 예상치 못한 그 이름, '케네디' [59] Davi4ever8573 24/04/24 8573 3
101339 [일반] [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15] *alchemist*4580 24/04/24 4580 10
101338 [일반] 범죄도시4 보고왔습니다.(스포X) [41] 네오짱6533 24/04/24 6533 5
101337 [일반] 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결심했고, 이젠 아닙니다 [27] Kaestro5967 24/04/24 5967 16
101336 [일반] 틱톡강제매각법 美 상원의회 통과…1년내 안 팔면 美서 서비스 금지 [32] EnergyFlow4139 24/04/24 4139 2
101334 [정치] 이와중에 소리 없이 국익을 말아먹는 김건희 여사 [17] 미카노아3438 24/04/24 3438 0
101333 [일반] [개발]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2) [14] Kaestro2879 24/04/23 2879 3
101332 [정치] 국민연금 더무서운이야기 [127] 오사십오9740 24/04/23 9740 0
101331 [일반] 기독교 난제) 구원을 위해서 꼭 모든 진리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87] 푸른잔향4203 24/04/23 4203 8
101330 [일반] 교회는 어떻게 돌아가는가:선거와 임직 [26] SAS Tony Parker 2991 24/04/23 2991 2
101329 [일반] 예정론이냐 자유의지냐 [60] 회개한가인3814 24/04/23 3814 1
101328 [정치] 인기 없는 정책 - 의료 개혁의 대안 [134] 여왕의심복6287 24/04/23 6287 0
101327 [일반] 20개월 아기와 걸어서(?!!) 교토 여행기 [30] 카즈하2776 24/04/23 2776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