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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4 17:36
숫자 20을 지나고 있을때 아 30 지나갈때 스페이스
눌러야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것도 변화가 없던 뇌파가 숫자 20을 지나면서 변형을 일으킨 게 아니라 숫자 20을 지나기 0.3초 전에 그러니까 내가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기 전에 뇌가 먼저 신호를 내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 짧은 딜레이가 엄청난 차이라고 볼 수도 있는거고 뭐가 다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거고 생각하기 전에 뇌파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와 뇌가 다르다는 전개도 가능하다는 게 저 몇 십년 전의 실험의 재현실험이 말하고자 하는 바로 보입니다
25/03/04 17:51
예를 들어서 chatGPT 가 있잖아요
걔도 메모리가 있고 파워가 있죠 그런데 우리가 chatGPT에게 입력 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해요 그러니까 만약 chatGPT에게 30이 되는 순간 스페이스를 눌러 라고 사람이 입력한 게 0.3초 전이고 20이 되는 순간 chatGPT는 그걸 입력받은거라고 볼 수도 있는거죠 그리고 나아가서 이건 망상의 영역인데 이제 인간 뇌에 누군가가 전기 신호를 원격으로 줄 수 있다면? 으로 이어지는거죠
25/03/04 17:48
많이 단순화해서 이야기하자면, 단순한 반사 같은거요. 영화에서 보면 의사가 무릎 쳐서 반사 되는지 보는거 있는데, 그런거랑 마찬가지 아니냐는거죠.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여러가지 문화나 기타등등을 보고 내 의지가 있는 존재인데, 실제로는 그냥 머리 속의 두뇌장치가 상황판단 다 하는거고 난 그걸 내 의지라고 착각하는 것일 수 있다는..
25/03/04 18:34
뇌의 무의식에서 누르려는 의지 발생(0.3초 전) -> 뇌에서 '누를 결심'이라는 구체적인 개념의 형성.
비유를 들자면, 이름도 모를 말단 실무진에서부터 기획보고서가 올라가서 최종 회장님의 결재 도장이 찍히고 공표. 외부에 보이는 것은 회장님의 결단이지만 사실 그전부터 내부의 의지가 있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예로, 죽을 위기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 인터뷰를 들어보면 딱 그 찰라의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아주 위급하고 다급한 순간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결심을 뇌에서 구체화시킬 시간마저 부족한 채로 행동이 나갔다면 뇌에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25/03/04 18:52
결심 이전의 신호를 외부입력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보시는 거군요? 그런 해석이 가능할거 같은데 왜 실험에선 언급이 없는건지 다음 영상과 이어질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25/03/04 19:00
무의식은 컨트롤이 안 되니까 자유 의지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로 입장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실험을 무아(無我)의 근거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므로 무아다라는 불교적 관점에서 색,수,상,행(의지),식 중에서 행(의지)이 무아다라고 설명할 때 이 실험 얘기를 하곤 합니다. 영상은 요약해서 전달하려다 보니 생략된 게 많은 것 같습니다.
25/03/04 19:49
근데 이제 의식적으로 한 선택도 사실은 무의식의 결정에 따른 것이고 의식은 거기에 대한 변명과 이유만 갖다 붙힌 것일 수도 있다능...
25/03/04 21:16
(수정됨) 사실 유물론적으로 보면 모든 것은 컨트롤 불가능한 외내부적 환경의 조건화일 따름이죠.
인간의 그 의지라는 것도 그저 어떤 설정값들이 주어진 결과일 뿐이구요. 그 어떤 설정값들의 발현이 다양하고도 복잡다단한 불확정값을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비결정론 내지 확률론적 결정론은 자유의지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랑 일부분 상통하죠. 대가리에 난수발생기 박아넣는다고 그게 자유의지냐? 라는 게 대표적인 설명방식입니다. 그래서 나온 게 행위자원인론 같은 건데 (결정론과의) 양립가능론처럼 그게 무슨 자유의지냐? 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 편이죠. 또 그래서 자유의지는(인류 절대다수가 이제껏 믿어온 자유의지라고 하는 것은) 영혼론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고 말입니다.
25/03/04 20:45
보통 자유의지를 뭘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곤 하죠.
발명이나 창작같이 연속적이고 시간이 많이 드는 고차원적인 두뇌활동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을때 이런 실험으로 설명하려면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 있습니다.
+ 25/03/04 21:29
문제는 사실 자유의지 담론에서 자유의지 개념의 정의는 생각보다 명백하며, 유물론적 세계와 양립가능한 형태의 자유의지는 인류 절대다수가 믿어온 자유의지와는 다른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류 절대다수는 컨트롤 불가능한 조건화를 자유의지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게 그 자신의 컨트롤인가 아닌가가 간혹 주요 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컨트롤 불가능한 조건화를 행위자원인론을 통해 그 자신의 컨트롤로 재정의하는 것은, 예컨대 사이코패스처럼 공감능력이 심히 뒤떨어진 사람이 보여주는 일련의 무감각 내지 냉혹함조차도 그 자신의 컨트롤인가 하는 의문을 낳습니다. 대부분이 직관상 컨트롤 불가능한 것으로 해석하죠(사실 자유의지가 뭐냐는 게 대체로 이런 '삘'의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그게 자유의지라는 '삘'은 지극히 소수적인 삘, 다시 말해 지극히 소수적인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컨대 머리가 쇠파이프에 꿰뚫려 인격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한 사례가 있습니다.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단절적으로 조건화되어서 변해버린 사람의 행동양태도 자유의지의 발현인가 하면 대부분이 고개를 내저을 것입니다. 의지는 의지인데 그 어떤 의지들이 정녕 자유롭냐의 문제입죠, 그걸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다고 느끼느냐 하는 삘의 문제고요. 일종의 공리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공리에 기초해 봤을 때, 자유의지란 유물론적 세계와는 양립불가능한, 이원론 내지 영혼론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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