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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14 22:10
흠.. 저도 저번에 저런 내용의 책을 본적 있었는데요. 거기선 한국역사는 중원에 존재했던 역사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는 '중국인' 의 역사라더군요...덜덜덜;, 책 제목이 한국인에게 역사는 없다...였었던......
05/12/14 22:18
오.. 지난번에 한번 올라왔던 거네요.. 실제로 여기 있는것중 몇가지는 어설픈 저의 역사 지식으로도 반박할 수 있는것이긴 하지만.. 올리신 분도 웃으라고 올리신거 같으니 더는 말 안하겠습니다만.... 이 글을 진짜라고 믿으실 분도 계실거 같아 내심 걱정입니다.
05/12/14 22:36
제가 전에 올렸던 내용하고 똑같은 내용인듯..
저 위의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국내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모두 거짓이 되는것이죠. 거기다가, 한단고기라는 역사서는 아직 검증이 안됐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학생들이 보고 믿을까 겁나는군요;
05/12/14 22:36
사실과 많이 다른것들이 조금 있군요. (정확히 역사적으로 어떤것이 사실인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43,45번 대륙백제의 대한 이야기 37,39금(金)나라의 시조는 동이족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9.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신라중심으로 알고 있습니다. 살수의 논란은 아직도 있는것 같습니다. 5. 가능합니다. 4. 100만명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북위의 관구검이 1만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적이 있습니다. 또 수 양제가 100만을 이끌고 고구려와 전투를 벌인적이 있었지만 을지문덕과 여러 장수의 활약으로 잘 막아냈습니다. 이상한 점이 40년이 지난 후 당 태종이 10만을 이끌고 고구려를 함락시켰다 하니..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뻥치기에 뭔가 있는듯..
05/12/14 22:38
임나일본부설이 이것보다는 신빙성 있겠네요.차라리 말입니다...
사학이라는 것 자체가 누구라도 기존 이론에 들이댈 수 있다는데에 장점이 있지만..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네요.. 우리나라가 중국에 영토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없었다는 걸 증명하는게 빠르겠습니다. 이 글에서 웃을 부분은 아마도 그러면 한반도에는 누가 살았을까? 이겠네요 아마도..아무도 없었나?..저는 지금 이 땅도 사랑스러운데 말입니다.
05/12/14 22:53
분명한건 우리의 사서는 너무도 부족하죠...그리고 분명한건 그 원인은 대부분이 섬나라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글을 보는 청소년들이 걱정되서 하는 말인데 지나친 역사의 우상화는 본질의 우수성마저 왜곡한다라는 점을 양지하였으면 합니다.
05/12/14 22:56
금나라 시조인 아골타의 성은 울나라밖에 없는 성씨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테무친은 보돈차르의 후손아닌가요?(치우천왕기에 써있어서리..소설이지만 그래도.,;) 또한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북쪽으로 잽싸게 튀었다고 써있는데(조선왕조실록에요) 대동여지도 관련은 김정호가 발로 걸으면서 썼다는데요 대동여지도 만드니까 흥선대원군이 외적이 알까봐 두려워하여 모두 불태웠으니 일제시대에 나올법한 하지 않을까요?? 22번은 요동/서 문제는 요하강을 중심으로 나눈것이 아닌지요? 15번은 수출가능하지못할 이유가??
05/12/14 23:45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
이글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과도한 감정을 대입이랄까... 그냥 웃고 넘어가는게 이로울 듯 싶습니다.
05/12/14 23:51
좀 말이 안되는게 많긴 합니다만... 요동이 지금의 중국 해안지방이 아니라 더 남쪽이라는 설과 백제의 영토가 한반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설은 꽤나 신빙성이 있습니다.
05/12/15 00:44
16번.. 박창범 교수님의 연구는 비교적 신빙성이 있습니다. 책으로도 나와 있구요. 참고로 박창범 교수님은 서울대 천문학과와 카이스트 교수를 역임하신 분입니다. 고천문학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죠.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자손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부분이 허황돼 보이지만 몇몇은 꼭 그렇지만도 않네요
05/12/15 01:37
대동여지도는 절대 발로 걸어다니면서 만든게 아니라던데요..그 당시에 발표되어있던 지도들을 수정 보완해서 만든거라고 들었습니다마는..(잘못들었나?)
05/12/15 01:50
지금껏 댓글은 한번도 안달았는데, 이런 글에 처음으로 댓글을 다네요..
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생인데요.. 흠..박창범교수님의 실험은 맞습니다. 당시 천문기록을 보면 중국의 위치가 더 정확한 것도 맞구요..그런데, 당시의 역사서 서술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합니다. 중국의 기록..이 그대로 당시 역사서에 들어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분명히 당시 시대에 직접 쓰여진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당시의 자료들을 정리하여 쓴 책이기 때문에, 사료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중국의 천문기록이 혼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박창범교수님의 연구는 딱 거기까지..당시에 중국의 천문기록이 우리나라 사료에 실려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사실 못찾겠네요..그리고 제가 전공이 근현대사 쪽이라 잘은 모르지만서도..저런 이야긴 사실 자신들의 근거들끼리 모순되기도 할뿐더러..그래서 그다지 신뢰안하고 한번 웃고 넘어가시는 게 더 좋을 듯 생각되네요.. 중간에 어의없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까지 우리나라의 영토가 중국이었다면..과연 언제 이 한반도에 온 것일까요? 허허..참..
05/12/15 02:43
이런식으로 제기되는 의혹들은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www.coo2.net www.coreestory.com 등에 가시면 이런식의 주장이 나오게 된 근거! 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뭐 인터넷의 정보이기 때문에 믿고 안믿고는 바로 당신!!의 몫이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우리나라의 소위 강단사학 이시라는 분들은 바로 윗 분과 같은 의견으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그리고 역사적 근거가 서로 모순이다 라는 이유로 그냥 헛소리라고 치부한다는 것이지요 AD수첩처럼 확실한 헛소리라고 파해쳐주었으면 합니다. 차라리 본문의 이야기들이 모두 헛소리다!! 라고 근거를 제시하면서 반박해준다면 강단사학이 말하는 소위 '국사'를 믿어주겠습니다. 전 돈도 없고 능력도 없기때문에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만을 모아서 보고 있습니다만.. 대다수의 분들은 학교에서 배운내용과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은 시험문제답을 틀리게 쓸수도 있기때문에 실생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다는 이유로 역사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05/12/15 03:07
한단고기를 필두로한 상고사 논쟁...... 영원히 끝이나지 않을거 같습니다....
저도 한동안 상고사를 공부했고.... 지금도 공부하는 중이지만.... 어느게 사실이다! 라고 확실히 말 못하겠더라구요...... 살수나 요하의 위치.... 이젠 어느정도 밝혀졌다고 보구요..... 살수가 아직도 지금의 청천강이라고 교과서에 나와있다면... 그건 고쳐져야할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고서를 보아도 청천강은 확실히 아니죠..... 상고사를 공부할때마다... 끝이 없다는걸 느끼지만..... 언젠가 답을 얻을수있도록... 끝까지 공부하렵니다....
05/12/15 03:35
고대사는 많은 부분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사료들이 한계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하는 문제가 관건이지요. 거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사료들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정합하게 설명할 수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재야사학의 큰 문제는 여러 사료들을 모아서 나름의 논리로 설명하지만 그 논리로 다른 역사적 사실을 설명할 수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저런 부분에 대한 비판은 있어왔습니다. 사실 저 역시 국사교과서를 좋아하고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근현대사 부분에 있어서는요.. 고대사 부분은 저희 과 교수님의 의견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데, -특히 고구려나 백제, 옛 나라들의 정치,사회체제부분에서요.- 이제 학부 졸업할 때가 되었지만, 전 고대사 쪽은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딱히 하나하나에 반박하거나 코멘트를 달만한 실력은 안되어서 안타깝네요.. 저 역시 저희 과 교수들이나 기존의 사학의 입장에 상당히 비판적이지만, 저런 식의 고대사 해석은 역사'학'적으로 그다지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고 생각이 드네요.
05/12/15 04:04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위의 내용들에 대한 코멘트를 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전 국사학과라도 전공이 근현대사라 고대사쪽은 잘 모르구요, 또 지금은 사료나 참고문헌도 없는 상태라 추상적인 수준의 담론 정도밖에 못쓰겠네요..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건 그 기록을 제가 못봐서 모르겠는데요, 천문기록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뭐 그건 다른 이야기구요.. 일단 삼국시대에 대한 기록은 기본적으로 고려시대에 서술된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고려시대에 과거의 사료를 모아서 정리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듯이요..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다 제가 사료를 접해보지 않아서 함부로 말씀은 못드리겠지만, 저 기록이 사실이라면, 저것은 중국의 입장에서 신라의 역사를 왜곡한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이 드네요. 저 기록대로라면 저것은 만주가 우리나라 땅이다라는 근거보다는 신라가 중국나라였다는 기록이 더 적절할 듯 합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당연하지요..우리 나라 지명은 대부분 중국에서 많이 따왔어요.. 그 고지명들은 일제 시대를 겪으며 많이 바꼈구요..결국 중국에만 지명이 남아있을 수밖에요..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단고기가 위서다라는 말밖에는...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무엇을 수출했는지요? 한반도는 중계무역도 했습니다. 일본과 중국의...그것을 말씀하는 것이라면...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이건 위의 댓글에서 말씀드렸는데, 중국의 천문기록이 한국사서에서 발견되는 것은 서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의 증명은 분명하나 당시 삼국이 중국에 있었다는 기록은 아니라구요.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이것 역시 한단고기는 위서. 박창범 교수님의 논의에 대한 부분까지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현재의 관점으로 그대로 보면 안되요..1000년전의 역사서에 기록하는 수 개념은 자체가 다르고, 과장도 심하지요. 이는 중국의 사서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저희 학교에 있는 규장각에 고지도는 아마도 최고 많이 남아있을 텐데요. 이런 분명한 증거를 본 기억이 적어도 저에게는 듣고 본 기억이 없네요..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고려, 조선, 신라 들어가는 지명 다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중국명 들어가는 지명 역사적으로 있습니다. 이름을 그렇게 짓기도 하구요, 아님 사신들과 관련이 있을 수가 많습니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근거를 한번 보고싶네요..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중국 지명은..앞에서 말씀 드린 것 같네요..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청나라가 아직 요동에 있을 때 후금을 세웠지요..전 아이신 교로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데 어떻게 애신각라가 신라를 잊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 되나요? 한자를 암만 해석해봐도 저렇게는 안될 것 같은데요..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어떻게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가 존재할 수 있었나요.. 저때 누르하치는 만주에 있던 부족장이었습니다. 만주에 후금을 세운 것이 1616년이구요, 중원을 정복 청나라를 세운 것은 그 한참 뒤이지요.. 저 편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하려면 임진왜란때 만주에 있던 누르하치라는 족장이..라는 게 정확하지요.. 그리고 그때 누르하치가 실제로 조선에 파병을 할까?라는 제의를 한 적이 있구요, 조선은 명의 눈치를 보느라 적당히 회유하며 거절했습니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이건 정확히 모르겠지만, 옛날 지도를 한번 보셨나요? 조선은 거의 정사각형입니다. 이는..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동서의 거리가 훨씬 길다는 거지요..뭐 이런거와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흠..임진왜란까지 이런식으로 설명하면 도대체 우리는 언제 요 한반도에 자리잡았나요? 중간에 한중일 모두 새까맣게 까먹은 역사적 큰 사건이라도 있은 것인 가요? 단군 신화를 믿으시나요? 단군'신화'이지 않습니까? 근데 이것이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료 하나를 가지고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05/12/15 10:53
愛新刻羅란 얘기는 저도 들어본 얘기입니다..
저 한자를 뭐 그대로 풀면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한단 얘기는 절대 나올수 없겠으나 신라라는 글자를 뒤로 뺀다면 맞는 얘기도 된다.. 란 얘기를 들은적이 있죠.. 그것도 수업시간에 들은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오호~~ 하고 꽤 흥미를 가졌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의태자의 행적이 정확하지 않은데 요즘들어 밝혀지는 것을 보면 뭐 애신각나란 성이 마의태자로 부터 나왔다고 하는 얘기가 꾀나 설득력이 있다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 저 또한 그 얘기가 사실이다라고는 생각치는 않습니다만... 그럴수도 있지는 않겠습니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니... 일단의 가능성을 갖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05/12/15 10:54
삼국시대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고대사에서는 한번쯤 지금까지 배웠던 사실에 대해서는 되짚어볼 필요가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치우천황과 황제에 얽힌 이야기는 신화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근거가 많더군요 솔직히 교과서 역사나 저런 이단적(?)학설이나 고대사로 올라갈수록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희박한 자료로 추측한 가설의 열거일뿐이죠. 어느것이 옳고 그르다는 섣부른 판단은 트인 시야를 막을수 있는 고정관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단고기를 읽어본 저로서는 책에 있는 학설들과 근거들이 정말로 사실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많이 들더군요 분명한 것은 하나만 알고 있는 것보단 둘을 알고있는게 더 좋다는 것입니다. 고금의 진리이죠.
05/12/15 11:36
치우는 지나족의 조상이라고 봐야 옳죠. 지나족 신화에 등장하던 인물이, 언제 우리 민족의 시조로 둔갑했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러다가 한국에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고, 관우도 우리 조상 되겠습니다.
05/12/15 12:19
이불안에너있다//그렇게 확정은 못하죠,역사는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없는것입니다.심지어 우리가 외계인의 후손이라는 말도있으니-_-
05/12/15 13:43
뭐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다가 조선쪽부터
임진왜란얘기나왔을땐 좀 황당하네요. 하지만 위에 chilsang2님의 코멘트는 대부분은 반론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지만 chilsang2님의 근거나 의견또한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든지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식의 반론이 대부분이군요. 그리고 38번은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를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가 된 누르하치가.. 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게되면 그럴듯하지 않을런지~
05/12/15 14:14
재밋는 소설 잘읽었습니다.
역사전공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일이라는건 역사가라는 분들께서 최대한 기록물들을 이끌어내서 만들어낸 소설 아닙니까 -_-;; 그 자료가 정말 사실인지도 알수없고. 과거의 일은 그사람이 살아보지 않은 이상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추측하여 정리할뿐이죠.
05/12/15 15:21
근데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있어야한다. 란 이야기는 뭐죠? 고2인 제가 알고있는 백제땅에는 200개 성이 못들어 가는데...
05/12/15 19:46
성에 대해서는.. 실제로 의자왕때 백제 말아먹으면서 수십, 수백개의 성을 뺏았다는둥, 빼앗겼다는둥 하는 글들이 있지요. 그건 어렸을 때부터 계백장군 전기 같은걸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성이 그렇게 많나?' 하면서 신기해 하던 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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