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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를 보다가 생각나서 적는 글입니다. 지니어스에서 영감을 얻은 터라 지.게에 올립니다.
지니어스를 보며 문득 올림푸스가 떠올랐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
하지만 그 모습에 대해 느끼는 팬들의 아쉬움.
결승 1경기의 9드론 경기의 ppp에 대해 재경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인디언 홀덤에서 상대의 올인에 폴드하고 다음 판을 기약했더라면,
하지만 그는 항상 정면승부를 좋아했었고, 우리는 그에게 열광했다.
모든 승부에서 항상 논란이 없었고, 논란이 있는 경기에 대해 재경기 혹은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
올림푸스 이전이든 이후 그 때 스타판을 회상하면,
홍진호는 이런 매너 좋은 모습 때문에 과도하게 까였다. 그들은 논리를 앞세워 비난을 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궤변일 뿐, 이유없이 비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스케일이 컸던 대회들에서 우승을 한 게 공식리그가 아니라고 이벤트전이라고 폄하하는 모습.
스니커즈 올스타전에서 우승을 했을 때, 그의 우승은 축하보단 조롱이 많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그들은 여전히 그를 비난했고,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반박을 했지만,
이젠 누가 그를 까는 건지, 옹호하는 건지 구분이 애매할 정도로 궤변이 뒤섞였다.
나는 그의 게임 스타일을 좋아했다. 주종족이 저그가 아님에도..
마치 복싱에서 그로기로 몰아붙히는 인파이터 스타일이라고 할까..
카운터를 허용할 틈 없이 미치듯이 공격하는 스타일..
스타크래프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따라할려고 했다가 낭패보는 스타일.
쟤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되지? 하면서 다시 공방을 두들기게 만들었던 그의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04년,
저그 최초 우승의 떡밥은 박성준이 차지하며 그는 더 심하게 까였다.
당연히 그가 최초 우승을 하겠지라는 기대심이 물거품이 되자 그 기대심이 다시 조롱꺼리가 된 것이다.
그 때 스타판은 정말 재밌었다. 지방투어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라는 스케일이 엄청 큰 이벤트전을 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타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내가 사는 곳에서 스타리그 16강 경기를 한다고 했다.
3만명의 사람들이 왔지만 난 그 중 1명이 아니었다.
16강 2주차에 왔으면 봤을텐데, 그 어린 나이에 시험기간에 일탈을 하지 못 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한채, 그 해 연말..내가 사는 그 곳에서 또 한 번 경기를 한단다.
프리미어리그 단일리그 챔피언십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그 경기에서 홍진호가 있었고, 박성준이 있었다.
그가 이기고, 최초의 저그 우승자와 통합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해서 최초 우승의 한을 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박태민을 넘지 못 했고, 박성준은 이윤열을 꺾었다.
그리고 박성준은 통합 챔피언이 되버렸다.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올림푸스에서 우승을 했어야 한다.
그랬어야 최초 우승이라는 떡밥도, 박성준을 꺾으면서 획득하는 명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이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근데 참 아이러니하게 홍진호가 이겼던 그 곳은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되었고,
홍진호가 졌던 그 곳은 나에겐 재미있는 행사를 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 가지 않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지니어스에 그가 출연했을 때 본방사수를 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예능 최초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나와서 열광했던 것일까? 홍진호가 나와서 열광했던 것일까?
난 전자, 후자 둘 다 답이 되겠지만, 후자가 더 강하게 와닿아서 봤던 것 같다.
그 이후 그는 라디오와 케이블에서 출연하고 있다. 고정 게스트가 됐단다.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라이벌 리벤지 영상에서 성우의 목소리로 덮어버린 그의 딕션이 걸리지만, 방송을 잘 하고 있다.
내 일이 아님에도 뿌듯한 건 2000년대를 스타판을 바쳤던 그의 모습을 생각나기 때문인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