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그란 투리스모>의 영화화를 기대하신 분은 몇이나 될까요? 생각해보면 이 게임은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닐 블롬캠프 감독도 멋진 데뷔작을 이후로 꾸준히 우하향 중이었고, 게임 원작 영화들은 왠만하면 망해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단적으로, 우리는 팬데믹 이전에 아주 멋진 레이싱 영화를 봤었습니다. <포드 v 페라리>라구요. 이 영화를 보고서 <포드 v 페라리>를 떠올리지 않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실화 기반에, 르망 24 레이스가 하이라이트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요.
물론, 저는 이 영화보다 <포드 v 페라리>가 더 재밌고, 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찌되었건 이 <그란 투리스모>는 제 기대치보다 훨씬 좋은 오락영화라고 생각이 드네요.
이 영화에서 '그란 투리스모'라는 소재를 제외하고도 영화는 성립합니다. 크크크 물론 뭐 실제 이야기의 소재가 그거고, 소니의 제작인 걸 생각하면 어찌보면 성립 안 하나 싶기도 한데, 여튼, '게임 원작'이라는 점 보다는 게임에서 뻗어나간 이야기가 핵심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어요. 어떤 측면에서는 게임의 두 가지 측면, 그러니까 레이스와 경쟁이라는 측면과, 중간, 뉘르부르크링에서 911의 드라이빙 장면에서 '원하는 차를 여유롭게 몰아본다'라는 측면을 모두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란 투리스모>는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보면서 <포드 v 페라리>가 많이 떠올랐고, 아마 먼저 보신 분들도 많이 떠올리셨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깐 제가 전에 <무간도> vs <디파티드> 관련 글을 올렸을 때 어떤 분이 <신세계>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을 빌려와도 될 것 같은데요. <포드 v 페라리>가 깊고 진한 맛을 내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음식이라면, <그란 투리스모>는 조금 더 자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맛을 내는 인스턴트 음식 같습니다. 물론 완성도의 차이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꽤나 흥미롭고 맛이 괜찮은 음식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란 투리스모>는 그런 점에서 감각적이고, 또 현대적인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레이싱의 박진감이 조금, 한 끗 아쉬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싶기도 하구요. 직접적으로 덜컹거리고 소음을 내고, '엔진과 심장'이 동치화 되던 <포드 v 페라리>의 그 감정선 대신에 조금은 뻔하지만 효과적인 가족의 감정선이 드러나 있기도 하구요. 앞서 '게임을 빼도 영화가 성립한다.'곤 했지만, 게임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따온 연출도 꽤 감각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닐 블롬캠프 감독의 장단점이 감각적 연출과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 수준의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후자가 억제되고, 전자가 강화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게임 원작 내지 소재 영화' 혹은 '올해의 발견' 같은 거창한 닉네임을 가져다 붙이기에는 저는 아마 올초에 개봉했던 <던전 앤 드래곤>의 손을 들어줄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제가 본 레이싱 소재 영화 중 최고작이라는 칭호도 <포드 v 페라리>가 꽤 오랫동안 지킬 것 같습니다만, 분명 오락영화로서 상당히 인상적이고, 또 준수한 오락영화라는 점에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지 않으실까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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