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첫날이구나. 환자를 배정해줘도 되겠니?”
“네”
참 오래 준비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4년 동안의 간호학 공부, 실습, 국가 고시, 병원 입사와 교육, 중환자실로 부서 배치, 그리고 한 달의 중환자실 트레이닝 기간까지. 이미 입사한 동기들에게 소위 ‘태움’과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들어서 실제로 겪게 될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얼른 똘똘한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트레이닝 기간 후 혼자 담당 환자를 맡아 보는 것을 ‘독립’이라고 일컫는다. 그동안 오래 준비 했다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도 새로운 모르는 것들은 계속 생겼다. 환자들 상태가 좋지 않아 의사는 추가로 처방을 내고 필요한 처치를 하면, 나는, 그 처방을 수행하고 처치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보조해야 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필기한 수첩도 뒤져가며 시간이 지나는 만큼 어느정도 혼자 일을 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었다.
어느 날 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의식을 잃고 쓰러진 40대 여성이 위급한 상태로 중환자실로 빠르게 입실했다. 중환자실에 입실하게 되면 대부분 보호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필요한 처치를 하고 있는 바쁜 와중에도 걱정이 되는 보호자들은 계속 초인종을 누르고 환자 또는 환자 담당 의료진을 찾는다. 하지만 이 여성은 입실 후 그 어디 찾는 분 하나 없었다.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중환자실에 있는 기계란 기계는 모두 적용중이었고, 담당 교수님도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지금까지 병원을 오지 않았을지 가여워 하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연락이 닿은 보호자는 아들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들은 학교 수업으로 연락을 못 받았다고, 연락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왔다. 다른 보호자는 없다하여 교수님은 학생에게 엄마 상태를 설명했다. 아들은 덤덤히 끄덕였고 의식이 없는 엄마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3일이 지났다. 교수님은 이미 환자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소생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여 아들과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를 작성한 상태였다. 사실, 중환자실에서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환자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고, 예상된 수순대로 환자의 맥박이 느려졌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바깥에서 대기하던 아들을 인터폰 너머 호출하여 임종이 가까워졌다고 안내하고 면회를 시켰다.
이내 맥박이 0이라는 알람이 울렸다. 나는 능숙히 환자가 있는 방에 들어가 알람을 끄는 버튼을 누르고, 아들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기 위해 자동문을 열고 나갔다. 나가기 직전까지도 아들은 미동도 없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뒤에서 들렸다. 자동문이 닫히기 직전 아들의 포효를. 나혼자 남기고 가면 어떡하냐는 울음이 섞인 포효. 이내 자동문은 닫혔고, 밖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