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혹은 재능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면 얼마나 간단하고 명료하겠습니까만은, 현실이란 그렇게 이분적이지 않아서 노력-재능의 스펙트럼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겠죠. 어떤 일이 둘 중 어디에 가까운지에 대한 많은 갑론을박과 연구도 있지만, 개인의 생각이란 바뀌기 어렵고 완고하기 마련입니다.
제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대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력론자의 경우, 대개 "공부는 노력이나 운동은 재능" 정도의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들 모두가 프로 운동선수가 되고자 노력하기보다는 먹물을 묻히고자 하는 친구들이었으니 당연히 편향이 묻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예전에 지방에 내려갔을 때 잠시나마 교류했던 한 친구는, 바로 윗 문단에서 언급한 "공부노력운동재능"의 보편적 노력론을 한참 벗어난 '노력만능예찬론자'였습니다. 이 친구의 이념은 모든 것-곧 예시를 들겠지만 정말 [모든 것]-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으며, 모든 실패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는 대학생이자 부모님이 (친구와의 대화로부터) 추정 연수입 수십 억원 이상의 중소기업 사장인데도 대학생 때 용돈을 받지 않고, 하루 6시간씩 자며 과외로 용돈을 하고, 운동하는 시간 외에는 모두 공부에 집중했죠. 그 친구는 학벌에 만족하지 못해서 편입을 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넌지시 "왜 노력을 했는데 서울대가 아닌가?"라고 물어봤고, 그 친구는 자신은 고등학교 때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저는 그 대답이 친구의 평소 이념에 부합한다고 여겨 수긍했습니다.
그 친구는 독특한 노력만능론적 인생관과 직설적 화법 때문에 당시 같이 어울리던 다른 사람과 충돌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예를 들면 "집이 가난해서 음악을 포기했다"는 사람에게 "(본인은 용돈을 스스로 벌어서 쓰니까) 노력이 부족했다, 노력하면 집에 돈이 없는 것 정도는 누구나 극복할 수 있다"고 책잡거나
롤 승급전을 수 차례 실패하고 팀탓을 하는 저에게 "(본인은 마챌이니까) 노력이 부족했다, 노력하면 70세 노인도 마챌까지는 개나소나 달 수 있다"고 힐난하는 등 일이 있었죠.
그리고 한 번 더 논쟁이 생겼죠.
이 친구는 노력만능론자답게, 한국인 간 재능의 차이는 물론이고 인종 간 차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NBA에 아시아계 선수가 적고 흑인 선수가 많은 것은 아시아계 선수가 다들 흑인 선수에 비해 제대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아시아계 선수가 충분히 노력만 한다면 NBA에 누구든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죠.
'누구든지'가 또 중요합니다. 노력만능론자로서 나이 또한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데, (당시 기준) 20세 초반까지 농구를 해본 적 없는 본인도 지금부터 충분히 노력을 한다면 NBA 주전으로 입성할 수 있지만, 단순히 농구가 재미없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는다고 내세웠죠.
성별 간 차이를 인정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건 스포츠 얘기는 사내애들끼리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갑론을박-이라기보단 4대1 융단폭격-으로 이어졌고, 결국 수많은 위키문서와 인터넷출처와 4명의 경험을 견뎌내지 못한 그 친구는 "니들 재능만능론자는 천년만년 재능탓이나 하고 아무 것도 안하다가 굶어죽으라"고 저주한 뒤 탈주했습니다.
뭐 그 사건이 사실 관계의 종말은 아니었고, 남자애들이 으레 그렇듯 그러고도 또 다시 만나다가 지방을 떠나오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게 된 흔한 케이스입니다만,
그 친구의 노력만능론적 인생관은 아직도 종종 생각납니다.
여러분은 세상이 얼마나 노력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