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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05/15 10:00:22 |
Name |
소이밀크러버 |
Subject |
[일반] 비혼주의의 이유 |
- 가정사
약 20년 전쯤 고등학생일 때 부모님에게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아버지의 문제, 어머니의 사고 등 여러 가지 일들로 일어났고 그 후로 두 분의 결혼 생활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같은 라인의 부모님 친구가 부부 싸움을 하거나 친구 부모님이 이혼하는 것도 봤다.
그런 모습들을 보니 나의 결혼 생활도 저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다.
- 외모
고등학생, 대학생일 때 외모에 썩 자신이 없었다.
눈이 작고 머리카락은 엉망이라 거울을 보면 영 꾀죄죄 해 보였다.
그래도 가끔 나 정도면…? 이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직간접적으로 외모 품평을 받아보면 영 좋지 못했다.
이런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여자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 게으름
여자와 사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싫었다.
천성이 게을러서 많은 부분을 귀찮게 여기고 하기 싫어했는데,
여자를 만나려면 자기를 가꾸고 어떤 면으로든 멋진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냥 안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책임감
좋은 남자,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를 유지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연인 혹은 배우자에게 맞춰 좋은 사람이 되기는 너무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연애나 결혼의 끝이 어둡기만 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 내향적
혼자가 좋았다.
누군가에게 맞춰서 행동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이 보기 싫어하는 행동, 듣기 싫어하는 말은 하지 않아야 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때때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을 때가 있어 답답했다.
친구들은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서로 조심하고 양보하는 좋은 사람들만 남아 만나면 재밌었지만,
그래도 난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 이혼의 가능성
나와 너무 안 맞는다 싶으면 꽤 친한 사람이었어도 쉽게 인연을 정리하는 편이었다.
잘 맞는 것들도 있었기에 친구로 지냈는데 선 넘는 행동들이 한계치를 넘어서면 단칼에 정리했다.
혹시나 결혼해서도 아내에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취미
취미가 너무 많았다.
축구,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프로레슬링을 봤다.
플스, 스위치, PC를 모두 구비했고 모바일 게임과 대작 타이틀을 챙겨서 하는 편이었다.
보드게임을 좋아해서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서 해보지 못한 보드게임을 즐겼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그리고 써봤다.
살찌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주 5일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해서 관련 용품을 사고 비교해서 음악을 듣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시간도 돈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야 하는 이성과의 만남이 끌리지 않았다.
- 구두쇠
돈을 쓸 때 경험보다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좋은 것도 연애나 결혼이 싫은 이유였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여행을 가는 등 즐거운 체험을 하는 곳에 쓰는 돈이 좀 아까웠다.
돈을 모아서 물건을 사면 경험에 쓴 것에 비해 훨씬 긴 시간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고로 판다면 회수할 수도 있으니 훨씬 남는 장사인 셈이다.
돈을 적게 벌기 때문에 내가 사고 싶은 것을 다 사는 것과 연애는 양립하기가 어려웠다.
연애나 결혼은 돈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였기에 참 매리트가 없는 일이었다.
- 이성 관계의 무지
여자를 몰랐다.
남중, 남고를 졸업하고 대학교는 여학생이 절반을 넘는 학과로 갔지만 여자는 어색한 존재일 뿐이었다.
대학에서도 남자 녀석들과 노는 게 재미있어서 여자를 멀리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또 여자와 엮일 일들이 없어졌다.
그냥 친구를 사귈 때도 사람을 오래 보고 그 사람을 파악해야 친구로 지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여자와는 오래 볼 일이 없다 보니 친구 관계가 될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귀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만한 사람이 생길 수가 없었다.
- 만족
외롭지 않았다.
회사 때문에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올라왔을 때, 2주에 한 번 동생이나 친구를 만나면 그걸로 좋았다.
1박2일, 2박 3일로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할 때는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외로울 일이 없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 지금도 행복한데 굳이 삶을 바꿔보고 싶지도 않았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 운동하고 / 게임하고 / 혼자 편하게 자는 일정한 루틴은 나에게 안정감을 줬고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서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일상을 벗어난 즐거움이 되어줬다.
굳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더 불행해질 수도 있는 쪽으로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다.
- 자아 성찰
어릴 때 비혼주의였던 건 그저 주변의 결혼 생활이 행복해 보이지 않을 뿐이었는데,
커서는 나의 취향이나 기회비용을 고려했을 때 비혼 쪽이 더 맞아 보였다.
위에 적었던 여러 가지 것들이 합쳐져 굳이 연애나 결혼을 찾아서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오랫동안 연애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서른 중반을 넘겼다.
- 비혼주의의 완성
주호민 작가는 비혼주의의 완성은 결혼이라고 했다.
굳이 비혼주의를 완성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나라도 좋다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했고 나는 완성형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친구들이 비혼주의라고 했으면서 여자 한 번 만나더니 바로 결혼했다고 놀리는데
주호민 작가 덕분에 장난스럽게 비혼을 완성했다고 답할 수 있었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나는 비혼주의자라고 생각하며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자기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p.s 여보 사랑해. 내 맘 알지?? 과거로 돌아가도 난 다시 당신이랑 결혼할 거야. 진짜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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