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과 함께 높이 세길이 넘는 바위가 박살났다.
화씨세가 곳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호위 무사들이 몸을 드러냈고, 소리난 곳으로 몸을 날리는 사람과 제 자리를 지키며 검을 뽑아든 사람, 문을 닫아걸고 기관진식을 가동시키는 사람 등등 어수선해졌다.
굉음이 난 곳에 달려간 이들은 가주 화진천이 조용히 납검納劍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적이 아니라 가주셨군. 다음 순간, 부서진 바위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저걸 검으로 해냈다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노인이 다가왔다.
ㅡ 가주, 경하드립니다. 적룡출검의 화후가 십성에 이르셨군요.
ㅡ 모두 매장로 덕입니다. 장로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의 성취가 있었겠습니까?
ㅡ 허허, 노부가 아니었더라도 가주께선 대성하셨을 겝니다. 옛날 종남파의 진산월은 형산파의 사결검객을 삼재검법만으로도 꺾지 않았습니까?
가주의 자질이라면 무슨 무공을 익혔더라도 이 정도 성취는 이루셨을 겝니다. 저야말로 가주의 은덕이 아니었다면 적룡출검을 완성하지 못했겠지요.
ㅡ 과찬이고 과공過恭이십니다. 매장로의 적룡출검을 처음 본 순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 개안開眼이 뭔지 그 때 깨달았습니다.
적룡출검은 장로 매선이 창안한 무공이다. 원래 매선은 화산파 문도였다. 화산파에 있던 시절, 매선은 매화검법을 벗어난 무공을 꿈꿔왔다. 구파일방의 경쟁이 치열했다면, 아니 마교와의 전쟁이라도 있었다면 매선은 사랑받았을 것이다. 장문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세 장로로 잘 나갔을 것이다.
헌데 무림은 태평성대였고 구파일방은 썩어가고 있었다. 피바람이 불지 않으니 무림인들은 거의 백수를 넘겼다. 윗대는 내외공을 수련한 덕에 늙어도 죽지 않고, 아래 제자들은 늘어만 간다. 구파일방에서 화산파의 몫으로 인정받은 지역에 표국과 주루는 이제 더 차릴 곳도 없다. 사람은 많아졌는데 돈 나올 구멍은 그대로. 이걸 누가 먹을 것인가?
살벌한 시대였다면 무공이 강한 자가 대주니 각주니 하는 자리를 맡을 테고, 자리에 앉았으니 돈줄을 쥐었을 것이다. 허나, 이른바 천하에 재해가 없으니 성인聖人이라도 별 수 없는 시대 - 연고항존자年高行尊者가 나섰고 곧이어 연줄과 정치가 날뛰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무공이 약한 자도 칼맞지 않고 좋은 대접 받는 건 바람직했지만, 연줄 좋은 놈이 강자로 둔갑하고 정치질이 모든 일을 판가름해버린 것은 큰 문제였다.
화산파 내에서 파벌 다툼은 순혈논쟁으로 나타났다. 화산파 하면 매화검법, 매화검법을 벗어난 자가 화산파에서 대접받을 수 있겠냐는 논리.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매화검법의 순수혈통 논쟁까지 가면서 도를 넘어버렸다. 매화검법 자체는 천하 오대검공에 들 출중한 검법. 허나 이기고는 싶었지만 서로 피는 보기 두려웠던 사람들이 매화검법으로 우열을 가리려다보니, 검리劍理가 아닌 초식에서 피어나는 검화의 모양으로 승부를 짓기 시작했다. '검법의 완성도'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그렇게 매화검법은 시들어갔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매선은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화산파의 불매향은 옳은 길을 가는 것이지 매화검법만 검법이라 믿는 아집은 아니다. 그리고 검화의 모양을 검법의 완성도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라는 매선의 주장은 따돌림으로 돌아왔다. 매선은 붉은 검기를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검법을 꿈꾸었다. 만약 매선이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면, 매화처럼 붉은 검기라고 칭송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선에게는 단지 검기가 붉다는 이유로 '혈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매선은 화산파를 떠나야 했다. 매선의 주장이 옳은 건 누가 봐도 뻔했으니 단근절맥을 당하지는 않은 게 다행일까. 갈 곳 없던 그는 신흥세력으로 인재에 목말랐던 화씨세가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가주의 전폭적인 지원 - 가주는 심지어 백년하수오까지 구해 먹였다 - 속에 붉은 검기가 용출하는 검법을 완성해냈고, 붉은 검기를 적룡에 빗대 적룡출검赤龍出劍이라 이름붙였다.
화씨세가는 현 가주 화진천의 아버지 화국번이 세운 곳이다. 사실 2대 밖에 되지 않아 세가라 부르기엔 민망한 곳이었으나, 세력도 좋고 민심도 얻다보니 사람들은 존중의 의미로 세가라 불러주었다.
화국번은 몰락한 사족士族의 자손이었다. 과거를 볼 자격까지는 있었으나, 홀어머니가 침모 노릇을 해 간신히 사는 집안의 외아들. 대단한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자신은 삯바느질로 밤을 새면서도 아들은 공부를 시켰다.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지만, 아들 못지않은 재능에도 여자란 이유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한을 아들로 풀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한번은 비단을 맡겼던 부잣집에서 이 옷 짓는데 그 비단 다 쓴 것 맞냐며 누명을 씌웠다. 가난하지만 도둑질은 꿈도 꾼적 없던 그의 어머니는 바느질을 다시 풀어서 옷감을 일일히 맞춰가며 빼돌린 것이 아니라 해명해야 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화국번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공부로 돌렸다. 천재가 한을 품고 공부를 하니 이루지 못할 것이 없었고, 장원으로 급제했다. 그의 실력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장원급제로 유가遊街 행차를 할 때, 아원과 탐화랑은 노복 수십명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화국번은 홀로 유가행차를 이끌고 어머니께 인사를 드린 다음, 어머니를 모시고 성안 곳곳 유가 행차를 계속했다. 하인 하나없이, 입던 옷을 깨끗이 빨아 잘 다려입은 어머니와 함께 했을 뿐이었지만,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다. 부자로 태어난 자들을 재능으로 내려다 보며,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울분을 깨끗하게 쓸어버리는 줄 알았다.
장원급제 후 만나는 모든 사람이 입지전적인 성공을 칭송했다. 그런데 똑같은 말이라도, 그의 성공에 대한 칭찬 속에 한미한 집안에 대한 비웃음이 담긴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부잣집 돌대가리들에게 기죽지 않았다. 한림원으로 들어가 황제를 직접 모시게 되었을 때, 육부의 실무부서나 지방 관직을 제수받는 명문가 자제들을 보며 내가 승리했다고 믿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천자는 현 홍인제의 아버지 연락제였는데, 모든 정책은 자신이 결정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한림원에서 하는 일은 황상의 지시를 고사성어가 들어간 멋진 문장으로 다듬어 칙서勅書로 쓰는 수준에 불과했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이야 그럴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다음. 제갈공명이 명과는 비교도 안될 촉한을 다스리다 과로사했는데, 연락제가 혼자 명을 다스리는 건 불가능했다. 가보지도 않은 지역과 뭔지도 모르는 분야의 일을 주청 몇장 읽어보고 결정하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그렇게 일이 어그러지면, 그 칙서를 쓴 한림원의 관료들이 책임을 지고 귀양갔다. 한번은 어느 한림원 수찬이 글을 쓰다가, 무심코 쓰지 않아도 좋을 '홀로 獨'을 쓴 일이 있었다. 그냥 오기誤記였는데, 연락제 눈에 띄더니 문자옥文字獄으로 둔갑했다
ㅡ 홀로 독은 대머리 독禿과 소리가 같다. 짐이 대머리인 것을 비꼬는 것 아닌가!
그렇게 수찬 하나가 어이없이 죽어나가고, 한림원 관원들 사이에서는 필사의 탈출에 불이 붙었다. 슬그머니 천자 곁으로 아들을 밀어넣었던 명문가들은 결사적으로 자식을 빼냈고,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뛰어난 천재 화국번'이 추천된 것이었다. 그렇게 화국번이 한림원에서 피 말리는 날들을 보낼 때, 귀한 댁 도련님들은 실무관서와 지방에서 한가로이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연락제가 제멋대로 지시를 날릴 수록 그들은 더 돈 벌기 쉬웠다. 문외한의 엉뚱한 지시는 으레 과격하기 마련, 걸리면 끝장이었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컸다. 누가 걸리고 누가 빠져나갈지 정할 수 있는 관료에게 녹봉은 용돈만도 못했다. 부패를 잡아야 할 도찰원은 상납만 잘하면 친근한 형님이었고, 금의위와 동창도 연락제에게 폐위당하고 사라진 건운제를 쫓느라 다른 일을 할 틈이 없었다.
화국번도 한림원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만 둘 생각도 안한 건 아니다.
하지만 비단으로 누명을 씌웠던 부잣집에서 비단 열필을 '급제 축하 선물'이라며 들고와서는 눈도 못 마주치고 덜덜 떨더라며 통쾌해 하는 어머니, 치가 떨리는 바느질 그만두고 어린 시절 읽지 못한 책을 보는 어머니, 동네 삯바느질 아줌마에서 황상 모시는 아들 둔 귀한 마나님으로 된 어머니께 그만두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