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10/31 01:29:12
Name 무한도전의삶
File #1 하늘공원_2.HEIC (2.31 MB), Download : 216
File #2 하늘공원_3.JPG (2.68 MB), Download : 178
Subject [일반] 상암 하늘공원에 다녀왔습니다.



토요일 오후, 상암 하늘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선선한 날씨와 저녁 시간을 맞춰 찾아가면 황금빛 노을로 불타는 억새밭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6년 전 기억임에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다시 갈 날을 손꼽다 이번에 기회를 잡았습니다.
6년의 시간이 지나 유부남이 되었고,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습니다. 사람도 적고, 풍광이 끝내주는 곳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좋은 날씨 덕분인지 첫눈에 들어온 것은 장사진을 이룬 맹꽁이열차의 대기줄이었습니다.
맹꽁이 열차는 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공원 입구를 향해 걸어올라가야만 했어요.

하늘공원 입구로 가는 길은 크게 3코스가 있는데, 2코스는 쉬운 평지길을 아가는 길이고 하나는 계단을 통해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저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직선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선택했습니다.
내려오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의 어깨가 닿을 정도로 폭이 좁은 계단이었지만
계단 입구, 중간, 끝나는 곳에 안전 요원이 상황을 통제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걸음을 멈추는 사람, 숨이 가빠 한쪽에서 쉬는 사람, 애견을 동반해 계단을 오르는 사람을 발견하면 간격을 조율하면서 사고를 방지하고 있었습니다.

15분 정도 올라갔을까, 하늘 공원의 입구가 보입니다. 커다란 네모형 들판에 사이사이 길이 뻗어 있었지만
어느 길목 하나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들판 전경을 보여주기 위해 2층짜리 전망대인 하늘전망대 부근으로 갔지만
안전등급에서 좋지 않은 평가가 나왔다는 이유로 임시폐쇄가 되어 있었습니다.
깔끔한 데이트를 약속했는데 인파는 많지, 전망대는 못 올라가지 조금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 한강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야경을 보여주마. 아내의 손을 잡고 공원 끝 난간으로 갔지만 나무 바운더리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기대 사진을 찍고 있는 걸 보고 아내에게 기대지는 말라고 얘기를 하려던 차에 안전 요원이 다가와
한 명씩 뒤로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투덜댔지만 한 걸음 뒤에서 찍어도 여전히 잘 나왔을 겁니다.

억새는 충분히 봤다 싶어 다시 계단을 통해 외부로 내려가려니 수백 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게 보입니다.
안전 요원에게 물어보니, 날씨가 어두워져 계단 하행이 위험할 수 있어 통제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내려가는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으로부터 100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30분을 서서 기다렸으니 꾀나 천천히 내려보낸 셈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야식을 먹으며 사진을 정리하면서 이태원의 사고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저 역시 가본 길이고 살면서 익히 해본 경험인데 누군가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하늘공원에서의 일을 되돌아보니
떠오르는 것은 억새와 노을이 아니라 안내 요원들이 보여준 모습이었습니다.

계단에서 안내를 맡아주던 요원들, 맹꽁이 열차의 승하차가 있을 때 앞뒤로 시민이 있는지 여부를 살피던 요원들
난간에 수십 명의 사람이 기대자 떨어지라고 안내해주던 요원들, 사고를 대비해 폐쇄해 놓았던 전망대의 조치까지.
사고는 어디서나 생길 수 있지만 예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잊고 지나쳐 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당연한 것처럼 누리는 일상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도움이 떠받치고 있는 결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습니다. 저 사고를 두고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요.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지만, 안전한 행사를 위해 힘써 주신 요원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적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사소하게 여기지 말아야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10/31 02:13
수정 아이콘
평범한 일상의 환경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래저래 씁슬하네요.
곧미남
22/10/31 05:59
수정 아이콘
일상이란건 진짜 참 소중하죠 입맛이 씁니다.
22/10/31 07:5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정말 쓰라립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태원 관련 뉴스는 물론이고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사건 소식 글, 댓글 전부 보기가 너무 힘들어요. 당분간 인터넷을 아예 좀 줄여야 하나 생각이 들정돕니다.
거친풀
22/10/31 10:20
수정 아이콘
회사에 20대들이 많고 친하게 지내는 이들도 많고, 거기다 코스프레도 좋아 하는 이들도 있으니 자연스럽게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걱정되서 카톡을 보내려는 데, 이게 참, 혹시라도 사고가 났으면....이 걸 보낸다고 확인할 수 있나....싶은 생각이 미치니....
그런데 다행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돼지만, 그날 이태원에 간 친구들이 없더군요. 다들 오늘 홍대를 벼르고 있던 게 불행 중 다행인지...
회사에 출근했는데 다들 출근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심정이 참 쓰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7052 [일반] 건물주가(?) 됐습니다. 이벤트 [350] 꿀깅이15068 22/11/01 15068 3
97051 [일반] J-POP 여성보컬 밴드의 차세대 여왕으로 떠오르는 녹황색사회 Best Song [12] 환상회랑14121 22/11/01 14121 8
97050 [일반] 판협지의 시초작들이 웹툰으로 다시 살아나다 - 웹툰 추천 [30] LuckyPop12495 22/11/01 12495 2
97048 [정치] 경찰청 감찰팀 용산경찰서 감찰 착수 [55] kurt18795 22/11/01 18795 0
97047 [일반] 경북 봉화 매몰 사고 2차 시추 실패 [27] 똥진국13006 22/11/01 13006 4
97046 [일반] 이태원 사고, 불법 건축도 한 원인이다? [64] 이른취침15701 22/11/01 15701 2
97045 [정치] 강원도 발 금융 경색이 터져나오는 모양새입니다. [177] 네야21591 22/11/01 21591 0
97044 [정치] 이태원 사고 이전, 112 신고 요약 [297] 27730 22/11/01 27730 0
97043 [일반] 이태원 사고, 119 최초 신고자 녹취록 공개 [98] Leeka18298 22/11/01 18298 10
97042 [정치] 한 총리, 외신에 "치안 인원 더 투입했더라도 한계 있었을 것" [130] 빼사스17915 22/11/01 17915 0
97041 [일반] 소상공인 항체 무료 검사 피싱 (보험 가입 ) [7] 한사영우6493 22/11/01 6493 1
97040 [일반] RTX 4080이 미국에서 1200달러, 핀란드에서 1621유로 등록 [19] SAS Tony Parker 10644 22/11/01 10644 0
97039 [정치] 행안부 “객관적 상황 확인되지 않아 중립적으로 ‘사망자’ 표현” [79] 선인장18534 22/11/01 18534 0
97038 [일반] 오랜만에 제 자작곡 올립니다. [12] 포졸작곡가6626 22/11/01 6626 13
97037 [일반] [인도] 구글 깨갱 [12] 타카이12290 22/11/01 12290 2
97036 [정치] 5대 금융지주, 연말까지 95조원 규모 유동성 지원 나선다 [41] 기찻길15053 22/11/01 15053 0
97035 [정치] 박희영 용산구청장 "역할 다 했다" "핼러윈은 축제 아니라 현상" [298] Davi4ever29088 22/11/01 29088 0
97034 [정치] 자국민 5명 사망 이란 “한국 정부 현장 관리 부실” [72] 크레토스18902 22/11/01 18902 0
97033 [일반] 내가 생각하는 임창정 노래 수록곡 Best 5 [32] 오츠이치8615 22/11/01 8615 2
97032 [일반] 요즘 J-POP을 씹어먹고 있는 역대급 천재 괴물 Vaundy Best song [36] 환상회랑18728 22/11/01 18728 14
97031 [일반] 내가 생각하는 윤하 노래 Best 5 [79] copin12342 22/10/31 12342 5
97030 [일반] [스포/장문주의] 왜 재밌는지 모르겠는데 재밌는 <안도르> 시즌1 중간정산 [16] Serapium12238 22/10/31 12238 1
97029 [일반] 휴식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참사 [53] 영소이17993 22/10/31 17993 5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