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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9/17 21:08:22
Name Farce
Link #1 전편 링크: https://ppt21.com/freedom/96563
Subject [일반] '길을 뚫다': 아즈텍 멸망사 하편 (수정됨)

(이야기가 좀 기니 오른쪽 눌러서 '반복재생'을 누르시면 계속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전편에서 이어서 두 스페인 세력 간의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지난 이야기를 잠시 돌아보도록 합시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스페인의 쿠바 총독부의 사무 관료였으며, 총독 밑에서 일하고 또 서로 경쟁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기회를 붙잡고는 한 원정대를 통째로 뺏어와서 '탈영'한 상태로 지금의 멕시코 땅에 왔습니다
비록 그가 해변에 상륙하자마자 '베라크루즈'라는 도시를 세우고 자신이 더 이상 쿠바 총독의 명령을 따를 필요없다 주장했지만,
반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코르테스가 도시를 만든게 1519년 6월이었고, 황제가 꼭두각시가 된게 동년 11월이었습니다)
그가 많은 것을 이루는 동안, 애석하게도 쿠바 총독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코르테스는 태양을 뜨게 만드는 황금의 제국 아즈텍의 심장을 움겨쥐었습니다. 가만히 쥐고만 있으면
폭압적인 인간사냥으로 유지되던 제국의 지배력이 모아두고 또 앞으로 모을 황금이 쏟아들어올 것이었죠.

하지만 코르테스는 자신의 성취를 오래 즐기지 못하고 그 손을 놔야만 했습니다.
1520년 3월, 쿠바에서 '정당한 멕시코 총독'으로 임명된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가 베라크루즈를 공격했습니다.

con-29

[그의 임무는, 정당한 지시에 불응한 '코르테스와 탈영병들'을 처벌하고 원정대를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짐꾼 노예까지 포함하면 1400명 규모의 대규모 원정이었습니다.
코르테스가 처음에 빼돌린 600명이 안되는 원정대의 두 배 이상의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 쿠바 총독이 식민지에서 야심차게 긁어모은 군세였죠.

그러나 막연히 코르테스와 부하들이 내륙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나르바에스는
대포를 설치해둔 것을 포함해서 철저하게 방비가 되어있는 베라크루즈에 부담을 느꼈고
부하를 한명 보내서 서로 싸우지말고 합류하는게 어떻겠냐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코르테스가 이렇게 중요한 곳을 맡겨놓은 '곤살로 데 산도발' 수비대장은 
젊다 못해 어린 20대 초반치고 꽤나 우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후일 다른 부하들이 코르테스의 성공을 따라하고 한 지역의 정복자로서 서로 경쟁하기 시작할때도
본래 성격 탓인지, 아니면 워낙 어려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계속해서 코르테스의 충신을 자처할 사람이었습니다.

산도발과 부하들은 나르바에스가 보낸 불쌍한 사신을 결박해서
테노치티틀란으로 보냈고, 덕분에 코르테스는 빠르게 사태를 정리할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첫 단추부터 꼬이기 시작한 나르바에스는 코르테스의 신변도 모르는 상태에서 
베라크루즈를 직접 공성하는 것으로 병력을 낭비하기보다는 무혈입성할 수 있었던
근처에 있는 토토낙 사람들의 수도 '셈포알라'를 뺏어서 주둔지를 쓰고 코르테스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여러분, 왜 전쟁에서 대대가 중대보다 무섭고, 대대보다 여단이 더 무섭습니까?
단순히 병력이 더 많아서요?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중화기의 차이입니다.

부대가 클 수록 더 전문화되고 다루기 힘든 장비들이 추가됩니다. 이 경우에는 나르바에스의 군대가 그랬습니다.
나르바에스는 최소 50기의 기병이 있었고, 코르테스의 부대를 원주민처럼 뼛가루로 만들 10대의 대포가 있었습니다.
이걸 개활지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워준다면, 기병은 소모되었고, 대부분의 대포는 곳곳의 거점에 챙겨두고
몸만 뛰어온 코르테스에게는 그야말로 학살이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정답이 뭐겠어요? 정정당당하게 안 싸워주는거죠~

1520년 5월 말에 코르테스의 병사가 도착했을 때, 그날은 워낙 비가 심하게 오고 있었습니다.
이걸 기회로 보고는 코르테스는 바로 익숙한 셈포알라의 지리를 따라서 야간기습에 들어갔습니다.
대포가 이런 날씨에 녹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 포구를 봉해놓고는 주둔지에 고이 보관하고 있었는데 거기부터 털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바로 놀라서 항복해주었다면 좋겠지만, 나르바에스의 포병들은 침착하게 저항하며 경종을 울리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코르테스의 기습대가 쓰러지는 분전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기습당한 기병들은 말도둑들에게 고스란히 전력이 뺏겼겠다,
토벌대의 보병들은 사분오열이 되어서 대부분은 그냥 항복해버렸고, 나르바에스를 포함한 소수만 정신을 차리고
멕시코 지역의 문명이 자신들의 도시의 중앙에 가장 크게 지어놓는 요새, 대신전 내부로 들어가서 싸움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이때 여러 기록에 나오는 코르테스의 쇼맨십이 등장합니다. 
"이 우둔한 것들아! 나에게 황금이 생겼거늘, 그 일을 그르칠뻔하지 않았는가! 황금을 원하나? 황금을 주겠다!"
이 일갈에 다들 무기를 내려놨고, 나르바에스는 창이 얼굴에 박혀 무력화된 상태로 붙잡히고 치료 끝에 오른눈을 잃고 맙니다.

con-32 
[코르테스는 대부분의 무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테노치티틀란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훗날의 이야기지만, 이 때 쿠바로의 강제송환을 위해서 감옥에 갇혀버린 나르바에스는 
눈 한쪽 뿐만이 아니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멕시코 북쪽에도 자신이 정복할 부유한 제국이 있을것이라 주장하면서 
지금의 미국 플로리다 지방에 원정을 떠나서, 약탈과 파괴에 의존해서는 
코르테스보다 못한 정치력과 군재를 보여주고는 지금도 시체 위치를 모를 정도로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아무튼 그건 나중의 일이고, 코르테스가 자리를 비웠으니, 테노치티틀란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다른 스페인 사람이 있겠죠?
con-00
[코르테스의 또다른 충실한 부관이자 수 많은 전투에서 수십명을 베어내는 무력을 보여줬던 페드로 데 알바라도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끝나고나서도 일신의 무력을 이용해서 과테말라를 정복할 뛰어난 전사였지요.
하지만 알바라도의 힘이 이렇게 강조되듯이, 그는 코르테스 같은 정치력이나 위엄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코르테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즈텍의 귀족들은 최근 아즈텍 제국 내부가 
('당신들이 일으킨', 이라는 말은 뺐지만 그 뜻이었죠) 정치적 변화 때문에
뒤숭숭한 상태이며, 그렇기에 더욱 이번에 딱 시기가 된 '톡스카틀' 축제를 성대하게 여는 것이 어떻겠냐고 건의를 올렸습니다.

알바라도는 이걸 거절할 경우 민중들을 통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허락해줬습니다. 
단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쓸때 없이 반-스페인 집회로 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기를 들고오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con-34

[그런데 아즈텍 사람들이 무슨 '잔치'를 하겠어요? 당연히 '식인잔치'였지요!]

수 천의 토토낙과 틀락스칼텍 원주민 군대 역시 소수의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주둔해 있는 상태였고,
'톡스카틀' 자체가 기존의 식인잔치보다 특별히 괴상한 축제는 아니었습니다. 
"여름이었다..."를 알리는, 계절의 변화를 축하하고 다가올 가을에서의 풍작을 기원하는 축제였어요.

예나지금이나 축제라는 것은 지배자가 잔치상을 뿌려주고, 노는 날을 정해주는 것인데
아즈텍에서는 당연히 제국통치의 핵심기반인 노예고기 재분배가 이 과정에서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즈텍에 지금 노예로 잡혀있던 사람들이 누구겠어요? 당연히 기존 적들이겠죠.
그러니 토토낙과 틀락스칼텍 병사들은 '아니 이놈들 무기를 들고 지배하고 있는건 난데, 
우리 동족을? 선넘네!?'라고 분개하게 됩니다.

뭐 아즈텍 귀족들 입장에서 변호해보자면 갑자기 잔치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체제 멀쩡합니다'를 보여준다면서요?

con-17

[그러면 '하던 대로 해야죠'.]

비록 황제는 유폐당한 꼭두각시 신세였지만, 어느 정권의 엘리트들이 그렇듯이
일단 현상유지만 지속된다면 계속해서 자리에 앉아있고 싶은 거물들이 테노치티틀란의 대신전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알바라도의 협약을 준수해서 무기를 내려놓고는, 몸도 가벼워졌겠다 '만찬'과 '춤'을 즐기면서
서로 사교적인 교류도 하고, 아즈텍 제국의 태평성대를 과시하면서 '정상영업'을 준비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우리 대장은 어디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는 100명도 안되는 스페인 '지배자'들에게는,
전혀 안심이 하나도 안되는 살풍경이라는 문제가 있었지요.

그러나 분개하고 있는 것은 알바라도의 스페인군과 원주민 연합군만이 아니었습니다.
코르테스의 군대에 큰 피해를 입혔던, 틀락스칼텍의 장군 시코넨카틀을 기억하시나요?
그의 누이인지 여동생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스페인 세력과 동맹을 맺으면서 코르테스와 함께하게 되었지요.
그녀의 이름은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세례를 받고 '루이사'라는 이름을 썼으며, 
페드로 데 알바라도의 현지처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도냐 루이사는 틀락스칼텍의 전쟁군주 나이 많은 시코텐카틀의 딸로, 말린체와 비슷하게도
(아니 오히려 말린체의 출신은 저번 글에서 다뤘듯이 의문점이 많습니다)
엄밀히는 (훗날 과테말라의 지배자가 되기 이전) 작위조차 없는 부사관 알바라도보다도
핏줄이나 언행의 '급'이 높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니 '도냐' 그러니까 '마님'이라고 불렸지요.
무엇보다도 알바라도가 훗날 왕의 지원을 받기 위해 다른 정략결혼을 하게될지언정,
마지막까지 진심으로 사랑할 존재였죠.

도냐 루이사가 결국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 어떻게 할 수 없나요?'  
그리고 훗날 알바라도가 변명하길, 틀락스칼텍 병사들 역시 '축제를 기회삼아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합니다.

루이사의 말이 그를 움직였을까요? 결국 알바라도는 무언가를 결심하고
몇 안되는 스페인 병사들을 모아서 귀족들의 '연회'에 도착했습니다. 
촐룰라에서도 이미 비슷한 일을 해본적이 있는 무서운 무리들이었습니다. 두번째로 못할 이유는 없었죠. 
양측의 기록이 이 점에는 동의합니다 '이들은 가장 먼저 대신전의 출구로 들어와 그곳을 막았다'
사실 뒷부분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알바라도의 스페인인들은 무장하지 않고 축제를 즐기던 아즈텍 귀족들을 학살했다'

그렇게 600명에 달하는 멕시카 거물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합니다
도대체 뒷일이 어떻게 될거라고 생각하고 저런 짓을 벌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테노치티틀란은 이걸 용서할 생각도 그냥 넘어갈 생각도 없었습니다

황제는 꼭두각시가 되었고, 나라의 일을 쥐락펴락하고, 황금까지 뜯어가더니,
이제는 아주 비무장한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이요? 저라도 화가 나겠네요.

나르바에스의 병사를 800여명이나 흡수하고 승승장구하면서 돌아온 코르테스 앞에는
저항하고 반항하며 난리법석이 일어난 테노치티틀란이 펼쳐졌습니다.

con-35

[가장 먼저 알바라도에게 "너 이 자식, 무슨 짓을 한거야!"라고 불호령부터 쳤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르테스에게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시간조차 촉박했고, 결국 잘못 판단하고 맙니다.
후일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코르테스가 해야할 최선의 행동은 도시를 버리고 나중에 다시 오는 것이었습니다.

민심은 이미 스페인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는데, 아무리 군대가 좀 늘어났다지만 인구 수십만의 도시에 들어가요?
그곳에서 제대로 고립되기라도 했다가는 어쩔려고요? 하지만 코르테스는 요즘말로 치명적인 '긍정회로'를 돌리고 맙니다

알바라도가 '조그만 실수'를 했고, 아즈텍 사람들의 소요사태가 일어났지만. '소요사태는 소요사태'라는 것이었죠.
따지고보면 꼭두각시 황제도 멀쩡했고, 테노치티틀란의 기능이나 위신에 문제가 생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온갖 명문귀족들이 싸그리 학살당한 아즈텍 사람들은 단순히 항의좀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몬테수마 2세의 동생, '쿠이틀라우아크'를 진정한 왕으로 추대하고는
사방에 격문을 보내서 온갖 부족에서 병사를 끌어오고 있었습니다.

이걸 파악 못하고 몬테수마 2세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던 스페인측의 시도는
완전히 실패로 끝납니다. 유폐되어있던 왕궁 발코니에서 밖을 바라보며 연설을 했지만
돌이 날아와서 황제(였던 것)을 초죽음으로 만들어버렸거든요. 원정대측 기록에 따르자면 이때 죽었고,
아즈텍 측 기록에 따르자면 치료를 거부하거나 쓸모없다는 것을 깨닫자 암살한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뭘 잘못했는지 따질 여유도 없이 정신 없어질 것이 "슬픔의 밤"이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매우 애통해진 나머지 이름을 그렇게 붙이게되는 처절한 전투요.

결국 코르테스는 도시에 고립되어 일주일이 지나서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냥 반란'이 아니라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콘키스타도르들은 아즈텍의 수도를 잠시 쥐어보았지만, 지금은 놓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매달리다가는 다 죽을 것이었습니다. 내키지는 않지만 결국 철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본래 군함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던 기술자였던 마르틴 로페스와 함께
스페인과 틀락스칼텍 병사들은 건물 잔해 등을 호수에 올릴 나무다리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con-18 

[새벽을 틈타 도주하던 코르테스의 병력들은 그러나 호수를 건너던 중간에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침략자들의 야반도주를 막기 위해 다리를 부셔트린 경우에는 
아즈텍 전사와 그들을 적대하는 원주민 용사가 호수 바닥에서부터 엮여서 쌓인 시체를 밟고
가까스로 도망쳤다고 기록될 정도로 처절한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이때 코르테스는 '자신 몫의 황금은 알아서 챙겨올 것'이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원주민 보조대와 기존 원정대 인원들은 적당히 자신의 몸 곳곳에 넣었지만
늦게 합류한 본래 나르바에스 소속의 병사들은 무리해서 전리품을 끌고 나가다가 대부분이 익사하거나
물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생포되어 처형당하기도 했습니다.

최대 1200명으로 추산되는 코르테스의 스페인 군세는 여기서 반 이상이 죽었습니다
보충되기 힘들고 힘겹게 이제 동료로 만든 백인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보조해줘야할 수 천명의 원주민 동료들 역시 와해되었습니다.
요새를 공략하던, 평지에서 전투를 하던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게 해줄 대포들 역시 포병들과 함께 모두 잃었고요

'슬픔의 밤'은 코르테스가 겪어야하는 마지막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아즈텍 왕은 제국 곳곳에 파발을 보내서 '이방인을 찾아 죽이자!'라고 군대를 일으키고 있었고
아즈텍의 체제가 다시 정비되자 사방에서 소규모 군대를 보내 도망중인 스페인 병사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재보급을 위해서 마을을 들렸다가 이미 항쟁을 준비한 부족전사들에게 공격을 받기도 했지요 
이 과정에서 코르테스는 한 투석병에게 머리에 돌을 제대로 맞아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지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스페인 원정대는 갈팡질팡하면서 와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해결책을 제공해준 것은 바로, 아즈텍에게 지난 이백년간 경쟁하며 목숨을 위해 싸우던 틀락스칼텍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침 인근 도시국가 촐롤라에서 정치적인 이득을 보고, 그 지역을 친-틀락스칼텍 귀족으로 채우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다시 말해 아즈텍 제국과 그 동맹들을 상대로 포위당해 두들겨 맞던 입장에서 반-아즈텍 거점으로 탄생할 
스페인 정복자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니 그 이후로도 반항을 할만한 아즈텍의 적수가 되어줄 것이었죠.
그들이라면 물과 음식도 내주고, 휴식할 곳도, 그리고 '슬픔의 밤'에서 잃어버린 지원병도 전부 만회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con-30

[물론 아즈텍 사람들도 그 정도 생각은 쉽게 했습니다.] 
'오툼바'라는 평원은 코르테스의 늘어지고 늘어진 도주경로에서
틀락스칼란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미 아즈텍군이 와있었죠.
아주 적게 잡자면 2만명이고, 소집된 병사는 대략 4만명으로 추정합니다.

스페인 병사들은요? 400명 내외 밖에 없었습니다. 살아남은게 500명이었는데, 중간에 추가로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있었고
당연히 이미 철수 할때 큰 부상을 입고 싸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오툼바 시점에서 힘이 빠진 사람도 많았습니다.
숫자로만 보자면 나르바에스의 병사를 흡수하기 전과 비슷했지만, 상황이 훨씬 끔찍해진 상태였습니다.
제아무리 콩키스타도르 본대가 숙련되었고 기술적으로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그들의 목숨 값을 아껴주던 것은 수많은 짐꾼을 제공해줬으며, 똑같이 진형을 만들어주고 공격을 같이 해주던 동맹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툼바 전투에서 이들은 살아남은 소수의 스페인 민간인들처럼 지역민들 역시 전투에 참가하지 못할 정도로
소수만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수 만의 제국군이 닥쳐오는 것을 수 백의 자칭 '정복자'들이 몸으로 받아내야했죠.

쿠이틀라우아크는 왕족 중에서 '시우아코아틀'을 아즈텍 군세의 총지휘관으로 임명해
저 외부에서 온 존재들을 최종적으로 소탕할 계획이었습니다. 아즈텍 제국의 장기가 뭡니까?
바로 물량전이었습니다. 틀락스칼텍이나 믹스텍 같은 군소 세력들이 고기제국을 이겨내지 못한 이유는
끊임없는 군세, 뛰어난 개개인의 무력, 그리고 그 많은 병사를 말 한 마리 없는 신대륙에서 인력으로 동원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슬픔의 밤'에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코르테스의 군대뿐이 아니었습니다.
이 인물에 대해서 '시우아코아틀'이라고 콩키스타도르들이 기록하긴 했는데, 본명이 아니라 관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우아코아틀이 무슨 뜻이냐면, '시장'입니다. 정확히는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행정관이었습니다.

알바라도의 신전 학살이 불러온 결과였습니다. 전쟁을 통한 노예수급이 국가의 중심을 잡고 있는 아즈텍 제국에서
당시 톡스카틀 축제날에 가장 성대한 연회를 열고 있던 사회 엘리트들은 전부 전쟁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든 군사귀족들이었습니다.
알바라도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전부 없애면서 아즈텍 제국을 이미 실질적으로 붕괴시킨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처럼 이해를 하자면, 군대를 담당하는 병조 쪽 인물들이 다 없어지고,
무관들이 전부 사라져서 책상물림인 한성판윤 영감이 직접 군대를 인솔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게 화근이 됩니다.


이순신 장군에게 12척의 배가 있었다면,
코르테스에게는 23필의 말이 있었습니다.

아마 아즈텍 사람들에게 북미 인디언들처럼 교류를 할 수십년의 여유가 있었다면 
이들도 무기를 자체생산하고 전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는 고작 1520년 7월, 베라크루즈가 만들어진지 겨우 1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포획된 말이나 분석을 시작할 강철검 및 갑주가 있어도, 제대로된 생산과정이 이루어질리가 없을 짧은 시간이었죠

유라시아의 전장에서도 강철로 만들어진 장창병으로 만들어진 창벽도 
두 부대의 수준 차이가 크다면 기병에게 농락을 당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테포스토필리'라고 불리는 흑요석 창은, 유리날이라는 특성상 
통짜 날이 아니라 나무로 된 끝에 흑요석 조각을 달아놓은 형태였습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기병의 돌격을 막는 장창으로 쓰일 수 있는 생김새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폴암'의 경우에도 날만 있는게 아니라 날카로운 꼬챙이가 필수적이라는걸 생각해보자고요) 
거기에 아즈텍이 자랑하는 흑요석 무기들은 비록 경우에 따라서 강철같은 예리함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강철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흑요석 몽둥이들은 더 넓은 반경으로 휘둘러야했기에 
말의 충격을 막아줘야할 방진조차 빽빽하지 못했고, 결국 이것이 코르테스의 기마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가 됩니다.

당연히 이런 무기로는 평야에서 완전 무장한 스페인 기병이 달려드는 동안에는 그것에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저글링이 모여서 들이닥칠려고 해도 벌쳐가 어느 정도 있으면 뭉치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죠

아즈텍 또한 오랜 전통의 폭압적인 정복자들의 사회였으며, 기나긴 군사전통이 있었기에
'슬픔의 밤' 정도의 시점이 되면, 시가전과 야간이라는 이점도 있었지만
(그러나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이 두가지 조건도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없다면 마냥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페인 기마병을 둘러싸고 말의 목을 쳐버리거나, 일제사격이 시작되면 엄폐물을 이용하는 등, 빠르게 전략을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베테랑들은 적 스페인 병사들과 함께 많은 피해를 입고 테노치티틀란에서 부상으로 요양 중이었습니다.

con-20

[노획무기로 무장하고, 코르테스를 여러번 상대한 병사들도 일부 있었지만, 나머지는 규모만 큰 평범한 부족원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다 건너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무기를 득템한 병사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건 통솔할 귀족들이었죠
그러나 대군세의 최종지휘관조차도 전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시점에서 이 모래알들은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잠시 시점을 바꿔서 여러분이 스페인 원정대를 공격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보자고요.
여러분은 테노치티틀란이 아니라 제국에 복속된 수 많은 '동맹' 도시에서 온 장정입니다
위대한 제국이 전국에 통문을 보내서 긁어온 마지막 대부대였고, 그렇기에 스페인 침략자를 소식으로만 들은 이들도 많았습니다
사람의 팔다리가 스치면 잘린다는 '신의 검', 그리고 소문 속의 거대한 네발짐승이 사람들을 밀치고 짖밟으면서 
달려와 전사들을 혼란에 빠트렸고 도저히 어떻게 대항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지휘관 시우아코아틀이 가지고 있던 군기가 빼앗겨서 저들이 괴물을 타고 오면서 흔듭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집니다 "사령관님이 돌아가셨다! 도망가! 도망가!" 

여러가지 부연설명이 붙습니다. 당시 관례화된 전쟁을 자주 진행하던 아즈텍 병사들은 지휘관이 전장을 이탈하면
신의 뜻으로 여기고 다같이 군대를 무르는 관습이 있었다고요. 결국 무리해서 일으켰던 제국의 마지막 희망은
이렇게 웃지못할 최후를 맞게됩니다. 그러나 다시 코르테스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번 '오툼바'는 기적이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그 또한 머리에 돌을 맞아 제대로 사리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몇번이나 말에서 낚아 떨어질뻔한 것을 코르테스는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남아있는 말 23필에 올라탄 것은 쿠바나 그 이전 스페인 본토에서도 칼밥을 먹고 살던 부관들이었습니다
아즈텍 제국이 알바라도의 학살로 인해서 초토화된 것에 비해서, 원정대의 장교/부사관 인재는 상당한 숫자가 남아있었습니다

정황적으로 보았을 때, 아즈텍의 입장에서 평지의 인해전술을 시도했던 것은, '기발한 수단'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훈련도가 떨어지는 병사들을 어떻게든 써먹을려는 고육지책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보이는 전선에서 사령관조차도 다른 부관을 쓰지 못하고 직접 병력을 통솔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겠죠.
코르테스는 훗날 황제에게 보내는 보고서에서 '자신이 직접 화려한 옷을 입은 지휘관을 무찔렀'다고 서술했으나,
일기장을 기록하는 인물은 코르테스말고도 원정대 내부에 많았고, 다른 버전으로는
완벽히 포위당한 스페인인들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아즈텍 병사들이 들이닥쳐 포로를 잡기 시작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가까이 다가온 적의 군세 사이로 화려한 복장을 입은 누군가가 보여, 마지막으로 부관들과 함께 기마돌격을 해서 길을 뚫었고
그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도망치던 적 지휘관이 
기마대의 기병창에 꿰뚫렸고 이어서 지휘기를 챙겨 코르테스에게 넘겨줬다 합니다

그렇게 아즈텍 제국의 대군세는 무너졌습니다. 비명을 지르면서 무기를 던지고 도망갔지요.
500명도 안되는 스페인 생존자 무리는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서 적을 추적하지도 못하고 하나둘 쓰러졌다고 합니다.
이미 머리가 박살나있었던 코르테스 역시 원주민 틀락스칼란 땅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드는가 싶더니,
누적된 부상으로 인한 혼수상태여서 틀락스칼텍 사람들이 불러온 의사가 며칠 붙어서 가까스로 그를 다시 살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기절한 용사와 달리, 세상 사람들은 오툼바에서의 승리가 아즈텍 제국을 끝장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con-03

["아주 심한 피냄새가 나는군. 자네 말고. 온 세상에."]

아즈텍 제국은 고기 없는 제국이었습니다.
말이 없고 소가 없기에 도로망도 없었고 철저한 행정체제는 단지 테노치티틀란의 것이었습니다.
그 밖의 국가들이요? 지금의 멕시코 땅만큼이나 넓게 펼쳐져있지만, 푸레페차나 틀락스칼텍 같은 적들의 땅도 있었고,
나머지는 고원을 넘거나 남부의 밀림을 넘어야 하나 둘씩 거점을 가지고 있는 도시국가들이었습니다.

구세계 기준으로는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같은 형태였습니다. 이걸 억지로 제국으로 만든 것이 고기의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을 썰고 고기를 분배하는 폭정으로 계속된 제국이 외부에서 날아온 재앙에게 피를 흘렸습니다.
승냥이들이 다가올 차례였죠. 다른 원주민 도시들이 하나 둘씩 귀순과 지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식탁에 올라가는 입장이 되는 것보다 식탁에 앉는 것이 옳다는 것을 수백년간 터득한 땅의 지혜였죠

가장 아즈텍 사람들을 씹어먹고 싶었던 것은 그들에게 수백년동안 당한 틀락스칼텍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또한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토토낙, 치치멕, 자포텍, 찰코, 심지어 아즈텍 3도시 동맹 중 하나인 테츠코코까지.
 
con-21 

['한입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한입만' 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테노치티틀란의 원주민들, 멕시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올 종말을 각오하면서 도시를 재정비하려고 했습니다.
항우의 사면초가였습니다. 이제 여태까지 그 많은 고기를 먹고도 침묵하는 신들과 자신들만 남았습니다.
무기를 내려놓는다고 해도 더 이상은 행복한 결말 따위는 없었을 것이었죠. 죽어야한다면 품위있게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슬픔의 밤'에 잡은 포로, 죽은 시체 중에서 '천연두'가 튀어나와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실 역시도 분명해졌죠 '저들 이방인들은 이 역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요.
신이 존재한다면 그들을 지켜주고 있는것은 아닐까요? 아아 어찌하여 멕시카는 이렇게 망해야하는 것입니까? 
유약했던 몬테수마 2세를 대신 계승했던 쿠이틀라우아크 황제마저 천연두에 걸려 사망하자,
사촌 '쿠아우테목'이 10대 후반의 나이로 처절한 항쟁을 준비하게 됩니다.

마침내 정신을 차린 코르테스는 상황을 확인하고, 새 동맹국들에게 테노치티틀란을 고립시키고 포위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직도 아즈텍을 지지하는 도시국가들을 공략하고 차단하려는 큰 그림이었습니다.
곤살로 데 산도발은 수비대장 경력을 살려서 곳곳에 스페인 마을들을 세우고 '점령지역'을 확고하게 조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현지 군세와 다시 회복한 스페인 병사들을 이끌고, 테노치티틀란 공략에 다시 나서게됩니다.

원정대의 대체할 수 없는 대장, 에르난 코르테스
젊은 수비대장이자 측근, 곤살로 데 산도발
친구이자 만인지적, 페드로 데 알바라도
조용히 원정대를 유지시키던 보급관, 크리스토발 데 올리드

이렇게 4명이 이끄는 4부대로 나누어서 도시를 에워싸고 호수에 작은 범선을 띄워 상륙전을 개시, 
한 구역씩 시가전으로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대포, 범선, 제국"이라는 책을 여러분은 혹시 아시나요?

con-33
[임진왜란에서도 증명이 되었듯이, 저들의 '쪽배'로는 포격전을 개시하는 군함을 공략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아즈텍측 기록에 따르자면 몇몇 용맹한 전사들이 스페인 범선에서 거리 위로 옮겨진 대포 진지를 습격해 이긴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혈전 끝에 얻어낸 대포를 빼앗아 다룰줄 몰라, 최선을 다해 호수 속에 집어던지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멕시카가 자랑하는 전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구역들도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이미 물도 음식도 사올 곳이 없이 호수에 고립되었던 대도시 테노치티틀란은 그렇게 두 달 반의 공성전 끝에 멸망했습니다.
코르테스는 한때 자신이 온전히 손에 넣었던 이 아름다운 도시가 계속되길 원하였습니다.

코르테스는 공성추까지 동원한 알베라도의 부대가 도시 내부의 마지막 시가전을 끝내고, 
곤살로 데 산도발이 쿠아우테목 황제를 붙잡자 (이때 나르바에스 원정대의 일부였던 가르시아 데 올긴이라는 인물이,
"쿠바 총독님께 바칠거다!"라고 황제를 잡고 안 놓아주는 바람에, 산도발이 계급장 운운하며 소리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런걸 보면 아즈텍이 오합지졸이 아니라 스페인 원정대 자체가 정말 코르테스 하나로 유지된게 신기할 다름이죠)

이제 도시는 정복되었으니 모든 것은 스페인 왕실의 것이라고 선언하고 더 이상의 파괴를 막아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복군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던 원주민 동맹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섭리에 따라야했습니다.

쿠바에서 작은 증원을 받은 코르테스의 병사들은 800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맹'들은 수만의 군대를 동원해 이미 몇천명이나 대신 죽어줬으며, 수십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작 1000명 정도되는 바다건너의 정복자들이 '통제'를 하려고 굴다가는 
또 다른 '슬픔의 밤'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3일 동안 테노치티틀란은 완벽하게 약탈되고 파괴되고 학살당하고 '먹혔'습니다.
그 잔해에 지어진 '멕시코 시티'만이 지금까지 존재할 뿐이지요.

자, 조금 앞으로 다시 이동하자면요.
저에게 있어서 코르테스의 모든 이야기에서 '오툼바 전투'는 가장 극적인 파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까도 이순신 장군님 농담을 했는데, 정말로 '명량해전'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이 말을 몰아서 승리했다는 것은, 미래의 나폴레옹보다 더 대단하네요.

사실 '오툼바 전투'만 다룰려는 글이었는데, 하도 앞뒤상황이 필요하다보니
결국 다 풀어적으니까 그냥 코르테스 연대기네요. 으아아아, 분량조절 실패!

제가 '오툼바 전투'를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코르테스의 서사에서 앞뒤 상황이 정말로 그를 일종의 '구원자'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는 황금이나 폭력으로 얻어내고 싶은 스페인 촌놈이었지요.
그러나, 이게 하나의 작품이라면, 코르테스의 캐릭터는 딱 오툼바에서 완성이 됩니다.

한 제국의 황제를 납치하는 치졸한 꼴을 보여주고서도, 빠른 상황 판단과 부에 대한 약속으로 다른 원정대를 흡수하는 기회주의자.
그러나 쉽게 얻은 막대한 병력을 다시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일을 크게 다치고는 그르치는 자.
오툼바에서는 단순히 스페인으로 돌아가거나, 무너질 수 있는 것을 '지역세력'의 힘을 기적적인 승리로 얻어낸 자.
크으, 어떻게 보면 운으로만 날로먹은 정복이지만, 또 엄청나게 피땀이 많았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가 오툼바에서 승리하고 틀락스칼텍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자, 오히려 부족 장로들이 해준 이야기는
'시코넨카틀이 틀렸군'이었다고 합니다. 틀락스칼텍 내부에 있던 반-스페인의 중심점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기적적인 승리에서,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상식적인 형국의 변화에서 설 자리가 없었지요
결국 젊은 시코넨카틀의 최후는 매우 짧게 적혀있습니다. '상습적으로 태업을 사주하자 코르테스가 군법을 물어 교수형 당하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나요?
이세계의 용사들 강하다! 라고 요약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모든 역사 속의 순간이 다 그렇듯이
그 안에는 수많은 인물들과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진정 '재밌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중에 정복자들의 후일담 및 더 조난과 괴담에 가까운 잉카 원정 이야기도 다룰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후일담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이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장 에르난 코르테스 본인부터가 황제에게 자신의 원정에 대한 장계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콩키스타도르들은 '그거 아닌데?'라고 자신의 몫을 주장하고 책을 출판하고, 일기를 남기고는 했지요.
그리고 새로운 식민지에 들어온 관료들 역시 자신들이 정복한 땅이 어떠하다는 것을 남기기 위해서,
기독교 신부들과 서기들은 새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남겨준 이야기의 일부를 받아 적었습니다

상투적으로 그래도 기록되어서 다행이라고만 말하진 않겠습니다. 
결국 지배자는 바뀌었고, 많은 아즈텍 기록들이 손상되고 잊혀진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con-36
[내일 우리보다 우월한 외계인이 쳐들어오고 지구의 새 지배자가 된다면 적어도 CG는 더 좋지 않을까요?]

토토낙, 틀락스칼텍, 그 밖에 많은 사람 또한 자신들이 서명한 계약서는 분명 '새로운 고기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고요
돼지, 기독교, 천연두, 살모렐라, 인종교류... 이 모든 것이 지나간 새 세상은, 
이 불완전한 기록조차도 또 다시 불완전하게 읽고자 합니다. 

말린체는 '배신자'일까요? 알바라도의 루이사는요? 
코르테스는 스스로 영원할 수 있었던 평범한 세계에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요?

저는 속시원한 대답을 주는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그냥 질문 투성이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참고한 글들 및 추가로 읽어보시기 좋은 내용들]

https://www.historians.org/teaching-and-learning/teaching-resources-for-historians/teaching-and-learning-in-the-digital-age/the-history-of-the-americas/the-conquest-of-mexico
아메리카 역사 협회 (AHA, 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에서 제공해준 내용입니다
학생이 배워야 할 것, 교사가 알아야할 것 등등 일목조연하게 나눠놓아서 아주 잘 썼습니다
하지만 가장 멋진 구성은 각 기록의 입장 비교 (Contrast and Comparison Exercises)였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내용과 양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아즈텍 이야기는 마냥 승자편으로만 써진 이세계물이 아니더군요~

Invicta 역사채널의 아즈텍 시리즈들: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Oo_Hy3liEIfqkgfQNhaaHQpGRhpBngu
Kings and Generals의 아즈텍 3부작: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aBYW76inbX5xFVjwMXSPd-UFSa3LQ_mq

한쪽은 일상 미시사, 한쪽은 전쟁사를 다루는 채널답게 전반적인 서술은 K&G에게 많이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Invicta의 통사 영상과, 2시간 동안 전문가와의 대담 영상은 그래도 어떻게 아즈텍이라는 체제가 성립되고 유지되었는지를
다뤄주는 매우 중요한 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쓸때없이 유쾌한 일상 이야기가 들어갈 곳이 없던게 너무 아쉽네요!

https://www.thoughtco.com/the-conquest-of-the-aztec-empire-2136528
ThoughtCO는 이번에 처음 사용해보는데 다양한 하이퍼링크 항목을 자랑해서 읽는게 즐거웠습니다.
주식하신다면 들어보셨을 Investopedia와 같은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서비스라고합니다.
"~~에 대한 10가지 놀라운 사실" 같은 식으로 구성이 되어있어서, 무슨 뿌슝빠슝인가 싶었는데 되게 유익합니다 크크크

https://www.history.com/topics/exploration/hernan-cortes
미국의 케이블, 히스토리 채널도 아즈텍에 대한 글이 몇개 있습니다. 솔직히 출처있는 나무위키 정도더라고요 크크크.
우리 아즈텍 덕후들이라면 이미 다 아는 내용들입니다.

에르난 코르테스, 말린체,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 등 위키피디아와 브리태니커 사전의 개별항목,
주로 일대기 내용 확인과 사건의 선후순서 확인 등에 사용했습니다.

역사소설 '깃털 달린 뱀' 1/2권, 콜린 팔코너 저 / 이창식 역, 그리고 이걸 소장하고 있던 구립도서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다만 제목이 말하듯이 제가 배제하려던 서사였던 '예언 속의 신으로 여겨지던 코르테스'라는 서사를 가지고 있어서
대충 훑어봤습니다만, 말린체/틀락스칼텍 흑막설은 다른 자료에서도 일리가 있어보여서 많이 따라서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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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yInTheLife
22/09/17 21:46
수정 아이콘
시간을 말미 드릴테니 잉카도 써오시면 됩니다?
전편에도 썼지만 우연과 결단, 타이밍을 보여주는게 콩키스타도르의 일대기이지 않나 싶어요. 악당 같다가도 사람같기도 하고, 사람 같다가도 또 악당 같기도 하고…
22/09/17 21:54
수정 아이콘
흐흐흐, 악당은 사람의 일부 아니겠습니까? 저는 전쟁터를 다루는 신파중에서 좀 비꼬면서 보는 소재 중 하나가 "이런 전쟁만 아니었어도 우리는 친구로서 더 좋은 상황에서 만났을지도 몰라"입니다. 물론 뛰어난 사람들이 어쩌다보니 꼬여버린 세상사 때문에 끔찍한 상황에서도 만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지론은... "교실에서 짜증났던 그 녀석, 일터의 그 답답한 사람을 만나볼 기회를 만들어주는게 전장이라고" 입니다.
22/09/17 22:14
수정 아이콘
'늘 하던 축제'를 보고 놀란 알바라도가 아즈텍 고위 귀족 수백 명을 싸그리 다 죽여버리고,
그게 아즈텍 전체의 대대적 반란을 불렀으며
행복회로 돌리면서 수습해보려다 결국 못 이기고 패주하다가
오툼바에서 결정적인 승리까지(슬픔의 밤에 고위 군사 지도자를 싹 다 죽여서 유리해졌다는 아이러니까지)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추천 드립니다.
22/09/17 23:18
수정 아이콘
저는 코르테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정말 영화 같지 않나요 크크크크.

아즈텍 제국 스스로야 죽어도 동의 못하겠지만 좀 거칠게 말하자면 '이야 그 친구 갈 때도 예술같이 갔네' 상을 수여받을 정도라고 제 개인적인 역사랭킹에서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기회주의, 순수한 운, 우연이 겹친 우당탕탕 원정은 필연적으로 세계의 톱니바퀴를 돌리고 세계의 운명을 바꿨으니, 이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2/09/17 23:26
수정 아이콘
필력이 대단하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적절한 짤에서도 웃었고요(근데 이제 뭐함? 애들아 피자 사왔... 등)

'신대륙 발견' 이후 구대륙의 군사력에 멸망은 예정된 운명이라 쳐도,
상륙 1년 즈음에 바로 멸망한 건 코르테스가 대단한 인물이기도 하고 운도 억수로 좋다는 거죠.
소설로 써도 메리 수 소리 들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한 현대에도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이 많은데,
저런 전근대에 저런 기적같은 전투의 승리를 목격했다면.
이 사람에겐 진정으로 신의 뜻이 함께 하는 거 같다 생각 들법해요.
아마 코르테스 본인에게 다시 하라고 해도 못할 거 같은, 이길 수가 없는 전투에서 이긴 기적이었죠.

Farce님 글 읽고 나무위키 문서 좀 뒤져보니 코르테스는 60이 넘어서도 노구를 이끌고 전쟁에서 꽤 활약을 했네요.
삼국지 무장 같은 무용을 노인이 되어서도 떨치다니 진짜 위인은 위인입니다(악행 악업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군사적 재능, 전투에서 지휘하고 사람을 이끌고 회유하는 종합전투능력이요)
22/09/17 22:29
수정 아이콘
코르테스 아니더라도 신대륙이 발견된 이상 멸망은 피할 수 없던 운명이었겠네요
22/09/17 23:11
수정 아이콘
나르바에스의 최후나, 잉카 침략 당시 콩키스타도르들 사이에서 서로 괴뢰왕에게 배팅하고는 투자비 건질려고 내전이 일어났던 것을 생각하면, 아즈텍 정도되는 거대 제국은 좀더 무식한(?) 원정대가 1차적으로 시도를 했다면 오히려 적당히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대체역사 떡밥도 좀 돌리고 싶어집니다 크크크.

하지만 또 뒤집어서 생각해보자면, 멕시코 고원 너머 북쪽의 광야들이 황금을 찾아서 온 정복자를 좌절시키고, 끝내 인구관리가 안되어서 멕시코가 미국에게 땅을 넘겨주는 계기를 만드는 것을 보면, 그냥 자연환경이 적당히 외부의 침략자가 와서 분탕을 시작할 만큼 나쁘지 않았던 탓도 있어보입니다.

아니 근데 이 살만한 땅에서 고기는 왜이리 갈취를 했을까요 그러면 크크크크.
펠릭스
22/09/17 22:40
수정 아이콘
오우 쉣. 진짜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글쟁이는 언제나 환영이야?

갑자기 신불해님이 보고싶은 밤이네요. 역시 글은 젊은(?)놈들이 잘 써.
22/09/17 23:12
수정 아이콘
저에게 피지알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지만, 그 중 한가지는 신불해님이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에도 잊혀졌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챙겨오겠습니다~
잉차잉차
22/09/17 23:38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도 계속 나오길 기대합니다.
22/09/18 19:26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또 마이너한 역사속 순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메타몽
22/09/17 23:45
수정 아이콘
코르테스는 자신의 운명을 신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낸 희대의 영웅이네요

그 영웅이 위버맨쉬가 아니라 평범하고 욕심많으면서 한편으론 의리가 있는 사람이지만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22/09/18 19:26
수정 아이콘
코르테스의 개인적인 후일담과 뒷처리 이야기는 워낙 인터넷에 많이 퍼진 이야기라 생략을 했습니다만, 확실히 그 시대의 정복자들 기준으로도 코르테스는 상당히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 참 특이합니다. 기존의 정복자들 기록을 단순히 인용한 '스페인 백인들은 케찰코아틀 신의 귀환으로 생각했다'라는 서사는 요즘들어서 반박되는 분위기도 저 또한 이번 글에서 배제를 하였습니다만, 아직까지 종교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깊이 박혀있던 16세기의 스페인 사람으로서도 참 별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말다했죠
22/09/18 00:0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2/09/18 19:27
수정 아이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더 재밌을 것이라고 약속 드릴게요!
헤세드83
22/09/18 00:34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22/09/18 19:27
수정 아이콘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몇가지 원고가 남아있으니 한번 쉬는 날에 완성시켜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신천지는누구꺼
22/09/18 03:51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인명 지명 세계관 비꾸고 소설하나 만들면 팔릴거 같습니다.

확실히 바닥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통점이 정치력하나가 굉장한 점이란게 동서고금 다통하는군요
22/09/18 19:23
수정 아이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하게 되면서 유럽에서 무리한 전쟁을 하던 스페인 제국 본국의 인재들이 아니라 몰락양반, 퇴역군인, 용병대에 가까운 인재풀들이 신대륙에 가서 벌인 사건이 이렇게 즉흥적이면서도 치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소설 같습니다
자급률
22/09/18 18:46
수정 아이콘
텍스코코 호수 물이 석회질이라 수경농업을 통한 식량조달력은 상당하지만 막상 식수로 사용하기는 어려운 편이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그래서 호숫가에 지어진 도시인데도 봉쇄당하니 물이 부조캤다더라...는 썰을 보고 참 아이러니함을 느꼈습니다.
22/09/18 19:22
수정 아이콘
테노치티틀란은 참 아즈텍 제국의 상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체제가 멀쩡히 돌아갈때는 완벽한 요새였는데 무너지기 시작하니 모든게 단점이 되기 시작했죠. 어쩌면 우리의 세상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크크크
초식성육식동물
22/09/19 17:02
수정 아이콘
얼마 전에 애들이랑 중앙박물관에서 아즈테카 전시전을 관람하고 왔었는데 글 올려주셔서 되게 반가웠어요.
멕시코 후원 전시라 촘판틀리 라든지 무릇 사람들한테 아즈텍 이야기를 하면 떠올릴 그런 내용들은 은근 뭉개고 넘어가는 바람에 다소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그덕에 애들이랑 같이 관람했지요.
덕분에 전시회에서는 못봤던 그네들의 아픈 과거를 굳이 들춰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2/09/20 13:23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봤습니다
루카쓰
22/09/20 19:16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이 떠오르는 재미있는 역사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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