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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8/15 09:41:31
Name comet21
Subject [일반] [역사] 1936년 일제 고등문관시험 행정/사법/외교 기출문제 (수정됨)
광복절과도 약간의 관련성이 있는 포스팅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일제가 본격적인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중일전쟁 개시 1년 전인 1936년에 치른 고등문관시험 기출문제입니다. (출처 : https://dl.ndl.go.jp/info:ndljp/pid/1442491 )

일제는 정부 중추 관료를 1894년부터 고등문관시험을 통해 선발하였으며, 1937년에는 시작으로부터 이미 40여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도 고시계처럼 고등문관시험 N개년 기출문제집, 고등문관시험 답안 구성 요령 등의 수험서가 출간되고 있었습니다.

일제의 고등문관시험은 한국에서는 광복,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이후인 1950년 실시된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외교과는 일제와 달리 행정과 3부로 흡수)로 계수되었으며, 일본에서는 국가공무원1종채용시험으로 계승되었습니다.

약술형 내지 논술형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일부 과목에서는 일본의 침략전쟁이 임박한 시대상이 드러나 있습니다. 군사비의 영향을 묻는 재정학, 천황기관설 사태(천황의 법적 성질을 국가의 한 기관으로 본 종래 통설이 어떻게 감히 천황을 법적 개념일지라도 일개 기관이라 격하할 수 있냐며 극우파의 공격을 받아 폐기) 직후 천황의 법적 성질을 묻는 헌법, 중국 대상 서구열강의 침략사를 묻는 외교사, 전시국제법 문제가 반드시 포함된 국제법, 자국인 일본이 탈퇴해놓고는 국제분쟁을 막는 데 있어서의 국제연맹의 무용성을 논하는 영어지문 등이 대표적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바로 이듬해인 1937년 일제가 중국(국민당)을 침공한다는 점을 고려 시 의미심장합니다.

[행정과]

필수1 : 헌법
1) 헌법의 고문(告文. 당시 일제 헌법은 흠정 헌법으로, 헌법 본문에 앞서 일본의 군주가 선대 군주에게 올리는 글을 첨부하였는데 이것을 고문이라 했다.)상의 "통치의 홍범을 소술한다"라고 규정한 의의

2) 헌법 제8조상 칙령의 효력을 논하라
- 구 일본 헌법 제8조 : 1. 천황은 공공의 안전을 지키거나 또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 긴급의 필요에 따라, 제국의회 폐회의 경우에 있어서 법률을 대신할 칙령을 발한다.
2. 이 칙령은 다음 회기에 제국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만일, 의회에서 승낙하지 아니하는 때 정부는 장래에 그 효력을 잃음을 공포해야 한다.

필수2 : 행정법
1) 관치행정과 자치행정 간 관계를 설명하라
2) 납세 의무의 발생 및 소명을 논하라

필수3 : 민법
1) 권리남용금지원칙의 법리 및 그 적용을 해설하라
2) 가독 상속인(구 민법인 당시 일본 민법 상 가독상속 개시와 함께 피상속인의 지위를 승계하는 자)이 상속재산을 타인에게 양도한 후, 그 자가 상속 결격자임이 발각된 경우, 그 재산 양도의 효력 유무

필수4 : 경제학
1) 생산요소로서의 토지의 특징을 설명하라
2) 화폐수량과 화폐의 가치 간 관계를 논하라
3) 이윤의 성질을 밝히고, 이윤의 제한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논술하라

선택과목은 20개 과목 중 3개를 선택하여 응시하였는데, 당시 시험에서 응시자수가 많은 순으로 꼽으면 형법(2,134명), 형사소송법(1,747명), 국제공법(1,184명)순. 이밖에도 재정학, 상법, 상업정책이 5-700명 선택으로 중위권.

선택 : 형법
다음을 논하라
1. 과실
2. 강도

선택 : 형사소송법
1. 공판심리의 일반적인 순서를 약술하라
2. 확정판결이 연속범에 미치는 효과를 설명할 것

선택 : 국제공법
1.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 외국에 대해 책임을 부담해야만 하는가?
2. 중립항에서 교전국 군함이 군수 기타 보급에 관한 규칙을 설명할 것

선택 : 재정학
1. 군사비의 생산성을 논하라
2. 공채(국채 및 지방채)의 정리차환을 논하라

선택 : 정치학
1. 근대국가의 특징을 논하라
2. 정당의 기능과 그 변화를 논하라

필기 합격 시, 행정법 및 행정법을 제외한 필기 응시 6과목 중 2과목을 선택하여 구술시험을 치렀음


[사법과]

필수1 : 헌법
1. 헌법 제4조를 해석하라
- 구 일본 헌법 제4조 :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고, 이 헌법의 조항에 따라 이를 행한다. (바로 직전인 1935년, 소위 천황기관설 논란이 발생)
2. "신민보익(臣民輔翼, 구 일본 헌법은 흠정 헌법으로 일본 군주의 헌법발포칙어에는 신민의 조상들의 보익에 의해 일본제국을 건설했다는 문구가 존재)"의 성질 및 종류를 논하라.

필수2 : 민법
1. 선의취득의 요건을 설명하라
2. 종류채무에서의 급부 특정을 설명하라

필수3 : 상법
1. 사원의 교체가 그 책임에 미치는 효과
2. 화물교환증과 맞지 않는 물품 인도시의 효과

필수4 : 형법
1. 중지범을 설명할 것
2. 형법 제246조를 설명할 것
- 당시 일본 형법 제246조 :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을 교부시킨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필수5 :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택1)

민사소송법
1. 민사소송법 제231조상 중복제소의 금지 원칙을 설명할 것
2. 선정당사자를 설명할 것

형사소송법
1. 공소 제기 전 강제력을 행사해야만 하는 경우를 열거하여 설명할 것
2. 면소 재판을 논하라

선택과목은 20개 과목 중 2개를 선택하여 응시하였는데, 파산법(1,891명)과 행정법(1,344)이 1위를 다투었음.

선택 : 파산법
1. 파산 원인을 설명하라
2. 별제권과 상계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하라

선택 : 행정법
1. 공무원과 직위의 관계를 논하라
2. 행정소송에서의 소송 관계자를 설명하라

필기 합격 시, 응시한 6개 과목 중 3개를 택해 구술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3과목 중에는 반드시 민법 또는 형법이 포함되어야 했음.

[외교과]

필수1 : 헌법
1. 제국 의회의 헌법상 지위를 논하라
2. 제국 헌법 제70조의 재정상의 처분을 논하라
- 구 일본 헌법 제70조 : 1) 공공의 안전을 보지(保持)하기 위해, 긴급한 수용(需用)이 있는 경우에, 내외의 정형(情形)에 의해 정부가 제국의회를 소집할 수 없는 때는 칙령에 따라 재정상에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2)전항의 경우에는 다음 회기(會期)에 제국의회에 제출하여 그 승락을 구할 것을 요한다.

필수2 : 국제공법
1. 국제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국가에 대하여 상대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
2. 교전국의 중립선은 중립화(中立貨)를 포획해야만 하는 경우를 논하라

필수3 : 경제학
1. 공업에서의 고정생산설비 증가가 그 생산품의 가격형식에 미치는 영향은?
2. 화폐의 대내 가치와 대외 가치의 관계를 밝혀라

필수4 : 외국어(영어, 불어, 독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 1개. 단, 영어가 압도적이며 불, 독어가 비슷. 나머지는 무의미)

영어
다음을 번역하라
1. The  League  of  Nations  was impossibly pretentious  in  its  aim  of  a  permanent  world  peace  and extremely  feeble,  ineffi-  cient,  and  disingenuous  in its  organization  to  that  end.  It sought  by  a  few  unsubstantial  declarations and  pledges  to  provide  that  sovereign  Governments  evolved  by  combatant  necessities,  organized  to  deal  forcibly  with  inter-State  violence,  and  sa-  turated with  a  history  and  tradition  of  conflict,  should  sett’e  down  to  liquidate  that  very  strugg'o  for  existence  among  themselves  that had  made  them  everything  they  were.

2. The nation which would keep abreast of the rapidly moving tide of material development must have capital and hence free access to the markets of the world is highly desirable to those countries that are unableto supply their needs from internal sources. Industrial development, currency stabilization, military and naval requirements and the refunding of maturing loans are among the chief reasons which impel finance ministers to approach the bankers of creditor nations for financial assistence.

선택과목은 19개 과목 중 3개를 선택하여 응시. 응시자수는 상업정책(166), 행정법(141), 외교사(104)순.

선택 : 상업정책
1. 호혜적 통상협정과 최혜국 규정 간 관계를 논하라
2. 부당 염매방지 정책의 의의를 논하라

선택 : 행정법
1. 행정청의 대리를 설명하라
2. 행정상 손실보상을 설명하라

선택 : 외교사
1. (1차)세계대전 발발 당시, 각국의 외교 교섭을 서술하라
2. 중국에서의 열강의 조차지 획득에 관한 외교를 서술하라

필기 합격 시, 국제공법, 외국어 및 국제공법과 외국어를 제외한 필기 응시 5과목 중 2과목을 선택하여 구술시험을 치렀음

------

1936년 시험의 조선인 고문시험 합격자는 8명이었습니다. (강명옥은 양과 합격) 이들의 일제 때의 행적과 해방 후 행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고령 등의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 총독부 하에서 내무관료 또는 법관/검사로 활동하여 부일 경력이 있습니다. 다만, 정재윤 변호사처럼 이른바 민족 변호사로서 시국사건에 연루된 조선인들을 변호하는 데 앞장선 인물도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귀국한 임시정부 내무부장 신익희 주도 하에 헌법 초안 등을 마련한 행정연구회에 참여한 인사(강명옥)도 있었으며, 6.25 전쟁 중 납북된 인사(이봉구)도 있었으나 대체로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행정과 : 4명]
노영빈 : 도쿄제대 법학부. 해방 전 조선총독부 평안북도 이사관. 해방 후 변호사 개업
강명옥 : 도쿄제대 법학부. 해방 전 양과 합격, 총독부 청도군수. 해방 후 법제실장. 변호사 개업
최문경 : 와세다대 법학부. 해방 전 총독부 용인군수. 해방 후 외무부 정무국장, 관선 경기도지사, 외무부 차관.
김용근 : 경성제대 법문학부. 해방 전 조선총독부 경북도청 근무. 해방 후 상공부 광무국장

[사법과 : 5명(1명 중복)]
강명옥 : 도쿄제대 법학부. 해방 전 양과 합격, 총독부 청도군수. 해방 후 법제실장. 변호사 개업
이천상 : 경성제대 법문학부. 해방 전 총독부 검사시보. 해방 후 법제처 창설 멤버. 변호사 개업
이봉구 : 와세다대 법학부. 해방 후 변호사 개업. 6.25 전쟁 중 납북
김재완 : 경성제대 법문학부. 해방 전 총독부 판사. 결핵 요절
정재윤 : 도호쿠제대 법문학부. 해방 전 평양에서 변호사 개업. 이인, 김익진 등과 함께 민족 변호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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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날흙비린내
22/08/15 10:21
수정 아이콘
시대 감안하면 문제가 상당히 빡세네요
22/08/15 10:30
수정 아이콘
어우 대학원 입시 준비하던 때가 생각나서 트라우마 올라오네요. 문제 형식이 딱 비슷해서...

이 문제집을 출판한 겐쇼도 출판사는 1901년에 창업해서 지금도 이다바시에서 영업중인 점도 흥미롭네요. 한때는 서울 명동과 만주 신경에도 지점을 낼 정도였군요. 뭔가... 광복절을 맞아서 여러가지로 생각할거리를 주는 글 감사합니다.
라멜로
22/08/15 10:35
수정 아이콘
보고 느낀 감상은
36년에도 저런 체계가 있었구나 신기하네 그러네요
22/08/15 15:02
수정 아이콘
저도 동감합니다.

일제강점기가 식민지배를 했다고 하는데 알고보면 조선인들에게 노예취급은 안하고 2등국민 취급해준 증거가 많아서 조선인들에게 일본인과 같은 기회를 주고 다녔죠 또 동양은 워낙 고시제의 역사가 깊고요
22/08/15 18:31
수정 아이콘
다만 일뽕들이 독립하지 않고 일본의 지배하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근거 중 하나로 말씀하신 2등국민 취급 증거가 많음을 대곤하더라고요
22/08/25 23:29
수정 아이콘
쿠크,크크 에휴 그런 사람들은 전형적인 책 한권만 보고 역사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이거나 객관적인 사고방식 즉 이성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특히 인터넷일경우 그냥 여론조작세력이나 중국인이겠죠... 그래야 일본에 대한 인식이 안좋아지고 한미일동맹을 없애버리니깐요...
Liberalist
22/08/15 11:20
수정 아이콘
정재윤 변호사 이 분은 정말 대단하네요.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난이도가 매우 높았을 저 고등문관시험을 합격하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이 어마어마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앞길 망치는 리스크를 다 끌어안고 본인이 옳다고 생각한 길로 갔다는게 참 놀랍습니다;;
도르래
22/08/15 11:53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이런 분이 더 알려졌으면 하네요.
22/08/15 15:20
수정 아이콘
정재윤 변호사는 평남 빈농 출신으로 당시 평양에 있던 미션스쿨 숭실전문학교(서울 숭실대학교의 전신 맞습니다. 월남한 숭실 출신 기독교인들이 재건)를 졸업한 후, 도호쿠제국대학에 유학했습니다. 도호쿠제대 법과를 졸업한 후, 숭실전문 교원으로 있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지만 민족 변호사의 길을 걸었고, 일제 말기의 대표적인 시국사건 수양동우회 사건에서 가인 김병로(초대 대한민국 대법원장), 이인(초대 대한민국 법무장관) 등과 함께 변호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이 분이 잘 안 알려진 이유는 여기까지의 설명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고향이 평남, 그리고 대표적인 평양의 고등교육기관 숭실전문을 거치고, 이북에서 자라고 활동했습니다. 결정적으로 해방 직전인 1943년 별세하였다고 합니다. 끝으로 고당 조만식의 맏사위입니다.
22/08/15 11:57
수정 아이콘
저 정도 브레인들이면 안 쓰기는 어려웠을테지만 좀 아쉽네요.
Blue Bayou
22/08/16 02:40
수정 아이콘
외교과 영문의 출처를 찾아보니 처음 글은 H.G. Wells가 같은 해 1936년 The Times의 편집자에게 보낸 서신에서 발췌한 것이군요. 일본이 일으킨 만주사변에 연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웰스가 국제연맹을 비판하게 된 계기의 하나인데 당사자인 일본이 그 글을 자신들의 탈퇴를 합리화하는 용도로 써먹었네요.

그런데 3과 시험문제 다음 맨 나중에 <법률제52호> 시험문제가 있네요. 1935년에도 <법률52호>로 등장하고요. 이건 뭔가요?
22/08/16 08:50
수정 아이콘
질문 감사합니다. 행정외무관료를 선발하는 고문 행정/외교과와 달리, 1910년대까지 법조 양성의 경우 1)판검사선발시험 및 2)(일반)변호사시험이라는 이원화된 코스로 진행되었으며, 변호사시험은 훗날의 고등문관시험과 달리 학력 요건이 없어 예비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됐습니다.

이것이 1920년대 고문 사법과로 일원화되면서 변호사시험이 폐지되었는데, 그에 따라 "사법관시보 및 변호사 자격에 관한 법률(법률 제52호)"을 제정하였고 당해 법률에서 종전 변호사시험 수험생들을 위한 경과조치로서 이들이 응시할 수 있는 별도의 시험을 만들었는데 통칭 제52호 시험이라 불렸습니다. 1941년까지 실시되었습니다.
Blue Bayou
22/08/16 13:36
수정 아이콘
관료와 법조인 선발제도의 일원화 과정에서 당장 통합되기 어려운 부문을 3과와는 별도로 잠정적으로 운용한 것이군요. 그런데 이름도 편의적으로 법률명을 가져다 쓴 것을 보면 웬지 합격생들도 비주류 취급을 받았을 것 같네요.한국인 합격자들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상세한 덥변 감사합니다.
AaronJudge99
22/08/16 05:45
수정 아이콘
외교과 문제들이 제일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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