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미있는 성경이야기. 오늘도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주제로 적는 “소설”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말이 안 될수도 있지만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성경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동감을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호수아는 근심에 빠져있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써 12지파 연합군을 이끌 때 - 여호수아의 군대는 초반 아이성 전투의 작은 패배 외에 단 한번의 전투도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는 무려 7년간 가나안 땅을 휘저으며 무려 31명의 가나안 지역의 왕들을 죽이며 승승장구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승승장구하던 여호수아를 반강제로 은퇴 시켰습니다.
단순히 은퇴 후 더 나은 지도자가 이스라엘을 바른 길로 인도했으면 좋았겠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 이후 이스라엘 지파들은 가나안 땅의 남은 원주민들을 몰아내는데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는데
[1. 이스라엘 지파들이 너무 소극적이었습니다.]
이전 이야기에서 봤듯이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여호수아 없이 각자의 힘으로 가나안의 남은 땅들을 정복하는데 소극적이었습니다.
애초에 땅 분배 받을 때부터 소극적 이다보니 정복 활동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2. 이스라엘 지파들은 서로 연합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각 지파들이 각자의 힘이 부족하면 다른 지파와 동맹하여 적들을 공격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은 여호수아를 지도자 = 독재자를 중심으로 하는 12지파의 연합군이었지, 각 지파들이 서로를 돕는 의미의 연합을 막으신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독재자 모세 & 여호수아 아래서는 그렇게 잘 똘똘 뭉치던 이스라엘 12지파들이,
땅 분배를 받고 각자의 기업이 생기자 거짓말처럼
[죽어도 연합을 안합니다].
예를 들어 므낫세 지파는 분배받은 지역중에서 A구역을 점령하기에 힘이 모자랐고, 에브라임 지파는 분배 받은 B구역을 점령하기에 힘이 모자랐다고 칩시다.
그럼 바로 서로 옆에 붙어있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서로 연합해서 먼저 한 구역을 치고, 나머지 한 구역을 치면 아름다운 스토리가 될건데.. 문제는
므낫세 : 야 에브라임아. 날 도와서 같이 우리 A구역 먼저 공격하자. 그럼 나도 나중에 니가 힘들어하는 B구역 공격에 도와줄게.
에브라임 : 콜~ 근대 니가 먼저 날 도와서 우리 B구역 공격하자. 그 다음에 내가 너희 땅 A 구역 공격하는거 도와줄게~
므낫세 : 아니! 니가 먼저 날 도와줘~ 그럼 내가 다음에 너 도와줄게
에브라임 :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내가 너 도와줬는데, 그 다음에 니가 나 안도와주면 난 괜히 죽쒀서 남한테 주는 꼴인데?
동맹이란 것은 어느 정도의 신뢰와 희생 정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12지파는 야곱이라는 한 아버지에서 나온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지독히도 서로를 향한 신뢰와 희생 정신이 없었습니다.
딱 한번, 유다와 시므온이 서로 연합해서 남쪽을 정벌을 하기는 했습니다.
유다가 동맹을 제안했고 시므온이 그 동맹 제안을 받은 형태였는데, 다만 이것은 시므온이 분배받은 땅이 워낙에 구리다보니.. 그냥 별 욕심 없이 도운 것이라 생각됩니다.
[원래 가진 것이 별로 없으면 남을 위해 희생하기가 쉽고, 가진 것이 많으면 자기 것을 희생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실제로 유다 지파의 공격 루트를 살펴보면 당시 각 지파들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본진은 중간의 “실로” 혹은 “길갈”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분배 받은 지역은 실로&길갈 기준 남쪽입니다.
그리고 그 남쪽으로 정벌을 떠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쪽 교통의 중심인
[예루살렘]을 지나야 합니다.
당시 유다지파는 그 유명한 영웅
[갈렙]이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불리는 예루살렘을 간단히 점령하고 예루살렘 성을 불태웁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유다지파는
[예루살렘을 그냥 버리고] 남쪽으로 계속 정벌을 갑니다.
버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가 분배받은 베냐민 지파의 땅이지, 유다 지파가 분배 받은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유다 지파 입장에서는 예루살렘을 점령하려고 점령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남쪽으로 공격하는 길을 트기 위해 공격한건데..
이왕이면 뒤에 베냐민 지파한테 성을 인수인계 하도록 군대를 잠시 예루살렘에 놔뒀다가, 베냐민 지파가 예루살렘을 접수하고, 그 다음에 유다 지파는 군대를 이끌고 남쪽을 정벌하면 좋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유다 지파는 괜히 자기 땅도 아닌 예루살렘에 계속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고,
그냥 예루살렘을 그대로 비워둔 채 온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정벌을 갑니다.
그리고 빈 예루살렘에는 베냐민 지파가 접수하기 전에 원래 그곳에 살던 여부스 족속이 잽싸게 돌아와 그 성을 다시 차지합니다.
그리고
[갈렙과 같은 뛰어난 전쟁 영웅이 없던] 베냐민 지파는 결국 난공불락의 예루살렘 성을 재공략 하는데 실패합니다.
아니, 단순히 지금 공략이 못한게 아니라,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약 400년간 이 중요한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하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됩니다.
물론 이것을 유다 지파의 희생정신이 없었다고 유다 지파만 욕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왜냐면 베냐민도 딱히 유다한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좋지 못한 땅을 분배 받은 유다는 예루살렘에 눈독 들이고 있는 상황일건데.. 괜히 베냐민이 유다한테 도와달라고 했다간, 설령 예루살렘을 정복하더라도 유다가 베냐민에게 예루살렘 땅의 일부를 달라고 요청할 권리가 생기게 됩니다.
유다에게 조금의 땅도 양보하기 싫었던 베냐민은 결국 유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오직 혼자 힘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하려고 애쓰게 되었던 겁니다.
대충 위와 같은 예시들로 인해 이스라엘 12지파들은 서로를 돕지 못하고 각개 격파당하며 가나안 땅 정복에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3.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 -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들은 점점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하고 가나안의 토속신 : 바알에 좀 더 마음이 끌리고 있었습니다.]
바알은 가나안의 토속신이며, 보통 그의 아내인 여신 아스다롯 or 그의 어머니이자 여신인 아세라와 같이 엮어서 등장합니다.
바알신을 간단하게 평가하면 이렇습니다.
[바알신을 믿으면 여러분 모두 농사 잘되고 부자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호수아 다음 세대 젊은이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신 - 우상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사기 암흑시대의 역사인데...
출애굽의 10가지 재앙 기적과 광야에서의 만나 기적,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 여리고가 무너지는 기적, 해가 멈추는 기적, 7년간의 모든 전쟁 승리 등등...
수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민족이 어쩌다가 딱 1세대만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 빠지게 된걸까요?
이것을 단순히 “
[그놈들이 나약해서 그래요.. 부자 만들어 준다는 바알신의 유혹에 넘어간 바보들이에요]” 라고 판단하면 사실 사사기가 그렇게 재밌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우상 유혹에 흔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저 한심해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모든 실패자들은 다 나름대로의
[합당한 실패의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가장 큰 이유는 농업 기술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원래 뿌리가 농업이랑 거리가 먼 양을 치던 유목민입니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400년간 살면서 미친 듯이 애를 낳으며 이집트 인구를 능가할 정도로 인구가 늘었지만, 그 많은 인구를 부양할 농업은 하지 않았던 민족입니다.
(관련 이야기는
https://pgr21.net/freedom/89867?sn1=on&divpage=19&sn=on&keyword=BK_Zju 참조)
광야에서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먹으며 살며 식량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가나안 땅에 입성하고나니 약 200만명의 인구를 부양할 식량 문제가 눈앞에 닥쳤습니다.
저 좁은 가나안 땅에 200만명을 먹여 살리려면 유목으로는 택도 없고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근데 처음 와보는 땅에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농사짓는 법을 누구한테 배워야 할까요??
아! 그래도 이집트에서 농사하던 것을 본 경험이 있으니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농사하면 안될까요?
그러고보니 이스라엘 민족이 마지막에 노예 생활 할 때 농사를 짓는 노예 생활도 했었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서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을수.... 가 없습니다.
농사는 절대 만만한 것이 아니고, 각 지역마다 지역에 맞는 농사법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은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농사 짓기 편한 축복 받은 땅이었습니다.
나일강의 물은 언제나 풍부했고, 그 물을 끌어와
[관개 농업]을 하면 끝!
더군다나 주기적으로 강이 범람까지하니 땅은 언제나 기름지고 말 그대로 씨만 뿌리면 농사에 성공하던 곳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가나안 땅의 농업의 난이도는 헬 중에 헬입니다.
일단 여기는 제대로 된 강이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요단강마져, 실제로 건기 때 가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사실상 시냇물에 불과할 정도의 작은 강입니다.
더군다나 요단강 주변에는 농사를 지을만한 평지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관개 농업]은 꿈도 못꾸며,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가나안 땅은 아래 그림과 같이
[계단식 농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계단식 농업의 어려움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도 설명되어 있습니다.
“계단식 농경지의 조성은 평지의 일반 경지보다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특히 논은 논바닥을 수평으로 만들어야 하며, 관개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기술과 노력이 투여된다. 그래서 계단식 논은 세계적으로 주민들이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창출해 낸] 토지 이용 경관으로 평가받는다.”
즉 이 가나안 땅에서 계단식 농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오랫동안 정착하면서 계단식 농사를 지은 원주민들의 협조와 기술 이전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협조는커녕
[가나안의 모든 원주민들 다 죽이라!!]고 명령했던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는 간단합니다.
“사람의 기술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농사를 지으면 그게 계단식이든 관개든 뭐든 상관없이 일용할 양식을 줄것이다!”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면서 그분의 은혜만 의지하고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까지 많은 성경 이야기를 통해 봐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겁니다.
애초에 성경의 이야기는 모두 “믿어라! 믿으면 내가 도와줄께”의 하나님 vs "안보이는데 어떻게 믿어요? 일단 은혜를 먼저 주면 그 다음에 믿을께요” 라는 사람의 대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라도 적었으면 모르겠는데, 하필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은 최대한 넓은 땅을 분배 받기 위해 가나안 입성 전에 광야에서 정말 있는 힘껏 아이를 낳아서 역대급 인구수를 찍은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 가나안 원주민들과 어울리면서 농업을 배워야했고,
농업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들이 믿는 토속신 - 바알신과도 친밀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애초에 모든 가나안의 농업기술이 바알신 신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땔래야 땔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존의 상황을 감안해도.. 일단 가나안 입성 1세대까지는 그럭저럭 바알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여호와 신앙을 지켰습니다.
문제는 가나안 입성 2세대부터 급속도록 바알 신앙에 빠졌다는 건데요.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특이한 인구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 문제와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자 이스라엘의 인구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원래 출애굽을 시작했을 때 광야에서 조사한 이스라엘의 인구는 20세 이상 성인 남자 기준으로 603,550 입니다.
당시 성경 세계관 기준으로 사람의 평균 수명이 약 120세 정도는 되었기 때문에
[20살 ~ 120살까지의 남자 인구가 603,550명 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수기 1차 인구 조사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여호수아&갈렙 및 12정탐꾼 사건이 터지면서, 가나안 입성이 38년간 지연됩니다.
그리고 이 38년 사이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당시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는 딱 두 사람 -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603,548명 전원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사망합니다.
그런데 38년 후 가나안 입성 바로 직전에 광야에서 다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 이것이 바로 민수기 2차 인구 조사입니다.
마찬가지로 20세 이상의 모든 성인 남자를 계수하였는데, 38년전 당시 20세 이상의 모든 성인은 다 죽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때의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 & 갈렙을 제외하고는 19살 + 38년 = 57살이 최대 연장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따라서 이번 2차 인구조사는 어쩔 수 없이 20세 이상 ~ 57세까지의 성인 남성의 인구를 계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번 1차 인구조사 때는 20세부터 ~ 120세까지가 603,550명 이었습니다.
그럼 이번 2차 인구조사 때의 20세부터 ~ 57세까지의 인구는 얼마일까요?
단순히 비율로 생각해보면 약 20세~57세가 20세~120세의 37%니까, 2차 인구조사의 결과는 약 22만명쯤 될까요?
아 아니다. 아무래도 연령이 높을수록 사망률도 높아질테니.. 정말 높게치면 약 30만명 ~ 40만명 될려나요?
2차 인구조사 - 20세부터 57세까지의 인구 조사 결과는
[놀랍게도 601,730명입니다...]
즉 1차 인구조사와 별 차이가 안납니다.
이 말은 즉 당시 이스라엘은 광야 38년의 시간동안 정말 미친 듯이 애를 낳은 전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베이비 붐]의 시대를 연겁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베이비 붐]의 역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3가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
1. 광야에서 38년간 식량 문제가 없었음. -> 1년 365일 하늘의 양식 만나가 공급되었음.
만나는 당시 천사가 먹던 영양가 100점의 음식이었음.
즉 식량 문제가 없으니 애를 마음껏 나을 수가 있음.
2. 모두가 집이 없는 제로 부동산 정책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라.. 누구는 좋은 곳에 살고, 누구는 안좋은 곳에 살게 된다면? 비교를 하면서 더 좋은 곳에 살기 전까지는 가정을 이루지 않는 습성이 있음.
근데 당시 이스라엘처럼 인구 전원이 집이 없는 천막 생활을 한다면?
비교의 문제가 없기 때문에 눈치 안보고 마음껏 애를 낳을 수가 있음.
3. 미래에 대한 투자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양육비가 훗날 내가 은퇴하고 아이한테 도움 받을 금액보다 훨씬 크다면?
아이를 낳는 투자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질 수 있음.
그런데 이 당시 광야의 이스라엘은 아이 출산 -> 인구 증가 -> 나중에 가나안 땅에서 얻을 땅의 증가였음.
따라서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더 많고 좋은 부동산을 차지할 수 있는 가점의 기회!
어찌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엄청난 이스라엘의
[베이비 붐] 세대는 가나안 땅에 처음 입성했을 때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민족에 노인이 단 2명밖에 없는 -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생산 노동에 투입 될 수 있는 엄청나게 건장한 인구 비율이었습니다.
때문에 가나안 입성 1세대 = 즉 베이비 붐 세대들은 일단 부양할 노인이 없고, 자기 자신만 부양을 하면 됐기 때문에 농업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식량 문제는 어찌 어찌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7년간 정복 전쟁을 하면서 상대방의 식량도 많이 약탈했기 때문에 이 때 식량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습니다.
자 그런데 이 베이비붐 세대 이후 세대의 인구는 어땠을까요?
일단 베이비붐 세대는 가나안 땅 입성 이후 바로 7년간 계속 전쟁터에 불려나갔습니다.
즉 7년간은 아이를 낳을 육체적&정신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7년의 전쟁이 끝난 후 이제 베이비붐 세대들이 아이를 많이 낳았을까요?
정답은 아니었을 겁니다. 왜냐면
1. 큰 규모의 전쟁이 끝났을 뿐, 나머지 땅들을 정복하기 위한 소규모 국지전은 오히려 지난 7년보다 더 치열한 상황이었고
2. 광야 생활과는 달리 식량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대책 없이 아이를 낳기도 애매했을거고
3. 이미 땅 분배는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애를 많이 낳아봤자 미래에 대한 투자가치는 없고, 오히려 식량만 모자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원래 20살 ~ 57살의 베이비붐 세대들 = 가나안 입성 1세대들이 40년이 지나면 60살 ~ 97살의 힘이 떨어진 될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때의 성경 세계관의 평균 수명은 120살 정도라서 97살까지는 힘이 없더라도 살아있는데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노인들 60살 ~ 97살의 인구를 그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아래 젊은 세대들 = 가나안 입성 2세대들이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적은 숫자의 2세대들이 어떻게 역대급 인구를 자랑하는 1세대 = 베이비붐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베이비붐 1세대들이 젊어서 경제활동을 할 때는 농업 능력이 부족해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자기만 먹고 살면 되고, 자신은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았으니까요.
따라서 여호와 신앙을 계속 유지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무책임한 1세대들이 늙었을 때는?
아마 당시 늙은 1세대들은 젊은 2세대들을 바라보며 “라떼는 먹을게 부족해도 하나님만 믿고 버텼는데 요즘 젋은이들은 나약해~~ 조금 배고프다고 하나님 안찾고 바알신이나 찾으니 말이야.. 쯧쯧” 이런 반응을 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2세대들은 1세대들을 향해 “당신들이 그때 당시에는 힘들더라도 일단 애라도 많이 나았으면 지금 우리 젊은 세대들 인구도 적지는 않을거고, 그럼 늙은 당신들을 부양하는 것이 좀더 쉬울텐데... 지금도 우리만 먹고 살려면 바알신한테 의지안하고 우리끼리 충분히 살 수 있어. 이게 다 늙은 당신들을 부양하느라 어쩔수 없이 바알신한테 가끔 의지하는거지...”
사실 이건 성경에 적혀있지 않는 단순한 저의 상상이지만..
최근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당시 이스라엘 역시 분명히 저런 세대간의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증거로 역대급 성장을 하던 이스라엘의 인구는 가나안 입성을 한 후 암흑의 400년 사사기를 끝날 때 쯤 되니
인구가 60만명 -> 40만명대로 급속히 줄어듭니다.
물론 400년간 자연 수명이 줄어들면서 인구가 줄어든 문제도 있지만, 엄청난 저출산의 문제 역시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결국 다시 처음으로 이야기를 돌아오면,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들이 여호수아 은퇴 이후 가나안 땅 정복에 실패하고 또 바알 신앙에 빠지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여호수아는 빠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간단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제대로 된 지도자]없이 갈팡질팡 하는 것이니, 제대로된 지도자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 제대로 된 지도자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되길 원했고], 이스라엘 민족들은 여호수아처럼 눈에 보이는 지도자를 원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무너져가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아직 영향력이 남아있는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을 겁니다.
여호수아 역시 자기가 애써 세운 이스라엘이라는 위대한 나라가 근본 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슬프고 또 화가 났을까요?
푸틴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름
[성공한 독재자],
[푸짜르]등으로 불리며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던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올해 결국 최악의 판단을 내리며 결국 실패한 인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됩니다.
보통 독재자들에게서 저런 성향이 자주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늙어서 힘이 없어지기 전에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한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다]라는 착각입니다.
객관적인 평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푸틴 자신은 그 누구도 못하던 무너져가는 러시아를 다시 일으킨 사람이라고 믿었을 것이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이 러시아를 끌고 갈 능력이 안된다고 진지하게 믿기 때문에
더 늙기 전에 러시아를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무모하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에도 이런 비슷한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인물입니다.
모든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건데,
성경 속의 몇몇 인물들은
[지금 내가 나서서 하지 않으면 안돼!]라는 자기 중심의 착각에 빠지며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우선합니다.
그리고 성경속의 그러한 인물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여호수아 역시 마지막에 이런 유혹에 빠질 뻔 했습니다.
객관적으로봐도 사실 여호수아만 복귀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문제를 해결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천년 만년 살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죽겠죠?
여호수아의 복귀는 임시 해결책은 될 수 있어도 영원한 해결책은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여호수아를 하나님보다 더 의지해 여호수아 자체가 우상이 될 위험이 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았기에 여호수아는 마지막까지 다시 현장에 복귀하지 않습니다.
대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12지파를 모아서 유언을 남깁니다.
사실 유언도 별것 없습니다.
그저 고리타분한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어라.. 그러면 복을 받고, 아니면 멸망당한다] 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의 유언을 남겼으면.. 뭔가 반전이 생겼겠지만
(예를 들어 태조 왕건의 훈요 십조 같은 거라던가..)
결국 아무런 반전 없이 이스라엘은 이렇게 암흑의 사사 시대로 넘어갑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암흑의 사사 시대를 살펴보겠습니다.
암흑의 시대인만큼 = 이때만큼 사람 냄새가 잘 느껴지는 시대가 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