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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5/03 00:13:11
Name 아보카도피자
File #1 unnamed.jpg (13.5 KB), Download : 74
Subject [일반]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독후감. (수정됨)


+예전에 썼던 독후감을 발견했습니다.
+베크만은 좋은 작가입니다. 강추.

좋은 책은 좀처럼 찾기 힘든 법이고, 어느새 유명작가의 책만 찾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은 아무런 고민도 없이 계산대에 들고가도 후회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하다. '오베라는 남자'는 꽤 유명하니까 다들 알고 있을까. 프레드릭 베크만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고, 그럴만하다고 생각될 만큼 잘 쓴 소설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프레드릭 베크만의 다음 작품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라고 한다.

프레드릭 베크만은 재밌는 작가다.

전작은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노인의 캐릭터와 현재의 헤프닝을 솜씨 좋게 엮어냈다. 나이 든 인물이 서술하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게 읽힌 적은 드물었다. 고집불통, 신경질, 아무리 잘 봐주어도 달변가라고 할 수 없는 인물의 이야기가 말이다.

프레드릭 베크만은 달변가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정교한 이야기꾼이다. 오베가 재밌게 읽히는 이유는 프레드릭의 달변보다 오베가 겪은 짙은 서사의 매력에서 비롯된다. 그는 이야기를 잘 만드는 작가다. 나는 달변가, 그러니까 소설의 문장력, 소위 필력이 좋은 작가보다 이쪽을 더 좋아한다.

베크만의 소설은 챕터를 잘게 나누어 하루하루 읽기 편하다. 그의 전작이 블로그에서 연재 되어 시작한 영향이 짙게 남아 있는걸까. 나는 좋은 책을 읽고 있다는 상황 자체를 좋아한다. 다만 무거운 글을 한꺼번에 읽는건 잘 못한다. 잘 안읽히는 문장은 열 페이지 돌아가 다시 읽는 일도 왕왕 있다. 너무 잘 읽히는 문장도 마찬가지로 반복해서 읽곤 한다.

이 책은 무겁진 않지만 하루에 두챕터씩 보름 가까이 걸렸다. 술술 읽히지 않는 책이라기 보다는, 책이 읽히지 않는 시기에 접해서 깨작깨작 읽다가 어느 순간 팍팍 넘기게 된 경우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오베를 주인공으로 둔 전작과 대조되게, 이 책의 주인공은 이제 '곧 여덟살인 일곱살', '미야마스의 기사', 엘사라고 한다. 책 전체에는 메르헨이 곳곳에 퍼져 있는데, 표지부터가 그 첫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곧 여덟살의 시야를 통하여 이야기는 무척 동화적인 분위기를 띄지만, 이야기에 비현실적인 요소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곧 여덟살'의 기준으로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곧 여덟살이라는 그 숫자가 절묘하다.

여덟살배기(정정해서 아직은 일곱살배기)가 가지고 있는 인생곡절이 있다면 얼마나 있을까. 전작이 노인의 짙은 채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번 작품은 여덟살배기를 중심점으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일곱살의 서술자를 통해 인물들은 좀 더 마음의 경계를 낮추고 쉽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각각의 이야기가 또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알프와 브릿마리다. 그래서 더 알프가 밉다.

일곱살의 시야로 본 이야기는 일곱살보다는 나이 든 우리에게는 신선하게 읽힌다.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얼마나 일곱살 다운지를] 그렇게 꼼꼼히 따지고 싶진 않다. 뭐 그런 부분에선 그럭저럭 합격점은 되지 않겠나. 모든 일곱살에게는 슈퍼 히어로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내내 그 말을 되풀이한다.

알렉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알렉스와 하루만에 절친이 된 엘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뭐시기 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슈퍼 히어로가 된 두명을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만으로 이야기는 성공이다. 아직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여행은 성공한 것이고, 페이지가 남아 있지 않아 슬픈 책은 명작이라 부를 수 있다. 다음을 보고 싶은 이야기는 성공한 것이니까.

그런 의미로 알렉스는 마지막에 나와야 정답이었을까. 프레드릭 베크만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니까, 나중에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둔다.

요즘 읽고 있는 [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다시 노인이 주인공인데, 일부러 아껴보기 위해 깨작거리며 읽고 있다. 읽다보니 [할미전]을 읽고 있을 때의 유쾌함이 기억나서 뒤늦은 독후감까지 쓰게됬고, 기억력이 좋지 않다보니 뜨문뜨문이나마 다시 보고 있다. 이것도 좋다. 좋아하는 책을 두번째로 읽는건 기쁜 일이다. 정말 좋아하는 책은 네번이고 다섯번이고 읽다보니까 아직 이 책을 읽을 기회가 두세번 더 남아 있다는게 안심이 된다.

+참고로 브릿마리도 재밌었습니다. 전 이 작가 책은 브릿마리가 제일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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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가자
21/05/03 05:55
수정 아이콘
오베 재미있게 읽었는데, 책 소개 감사합니다!
스테비아
21/05/03 08:57
수정 아이콘
할미전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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