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1/27 14:09:06
Name 아난
Subject [일반] 데카당한 시들의 아름다움..

보아줄 이 없이 저 혼자 아름다운 것으로 충분한 아름다움, 이 세상이 아닌 새파란 얼음 저 밑 검도록 깊은 곳 속의 아름다움, 무감동하게 흘러가는 삶의 시간들의 끝 간곳에나 있는 아름다움, 시체의 가슴을 꽃병삼아 편히 쉬라고 이별을 고해야 할 아름다움, 삶으로부터의, 세계로부터의 이 아름다움의 이탈들, 이 이탈들을 혹은 초연하게 혹은 애닯게 혹은 유쾌하게 노래하는 데카당한 시들의 아름다움..

출전: 루이스 비스만, <독일 현대시 개론> (예문, 1995)
---

1
등잔에 부쳐 (에두아르트 뫼리케)

오, 아름다운 등잔아, 너는 여전히 꼼짝않고
여기 가벼운 사슬에 우아하게 매달려 이제는
거의 잊혀진 안방의 천장을 꾸며주고 있구나.
너의 하얀 대리석 쟁반, 그 가장자리를
빙 두른 황금빛 초록 청동의 송악 꽃다발 문양,
그 위에 즐겁게 한 무리 아이들이 원무를 춘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웃으면서도,
진지함의 부드러운 정신이 전체 모습 주위에 서려 있다.
하나의 참된 예술 형상이다. 그 누가 너를 보아줄까?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제 속에서 복되이 빛을 발한다.

2
겨울 밤 (고트프리트 겔러)

세상 사이로 날개짓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하얀 눈은 가만히 눈부시게 빛을 내며 누워 있었다.
별들의 천막에는 구름 한 조각 매달려 있지 않았다.
꽁꽁 얼어버린 바다에는 물결 하나 일지 않았다.

깊은 곳에서 바다 나무가 솟아올라와,
그 우듬지가 얼음에 닿아 얼어버렸다.
나뭇가지를 타고 물의 요정이 올라와,
새파란 얼음 사이로 올려다보았다.

검도록 깊은 곳과 나 사이를 갈라놓은
얇은 유리 위에 나는 서 있었다.
바로 나의 두 발 아래서 나는
요정의 하얀 아름다움을 뚜렷이 보았다.

울먹이는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그녀는
딱딱한 덮개를 여기 저기 만져 보았다.
나는 그 검은 모습을 결코 잊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3
접어 놓은 노 (페르디난트 콘라트 마이어)

접어 놓은 나의 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물방울들이 천천히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나를 화나게 한 것도, 나를 즐겁게 한 것도 없다!
고통 없는 오늘 하루가 나의 발 밑으로 흘러간다!

나의 발 아래는 - 아, 불빛의 시야에서 사라져 -
벌써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꿈꾸고 있다:
빛 속에는 아직도 나의 많은 누이들이 있는가?

4
작은 과꽃 (고트프리트 벤)

익사한 술꾼이 수술대 위로 힘겹게 받쳐졌다.
누가 그랬는지 그의 이빨 사이에는
짙은 자색의 과꽃이 끼워져 있었다.
피부 속으로
긴 칼을 집어넣어
흉부로부터 시작하여
혀와 구강을 잘라냈을 때,
그 꽃을 내가 건드린 모양이다. 그 꽃이
옆에 있는 뇌를 향해 미끄러져 떨어졌으니까.
시체를 꿰매면서 나는 죽은 사람을 위해
가슴에 난 구멍 속
대팻밥 사이로 그 꽃을 싸 넣어 주었다.
네 꽃병 속에서 실컷 마시거라!
편안히 쉬거라,
작은 과꽃아!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명륜동시인
21/01/27 14:50
수정 아이콘
데카당..감사합니다
쿠우의 절규
21/01/27 15:42
수정 아이콘
댄스! 댄스! 데카당스 댄스! 아, 이게 아닌가...
뜨와에므와
21/01/27 16:30
수정 아이콘
번역시는 문학적으로 한계가 뚜렷하죠
내용적 번득임 말고는 전달할 수 없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게시판을 오픈합니다 → 오픈완료 [53] jjohny=쿠마 24/03/09 27690 6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49825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25965 8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48898 28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19184 3
101295 [일반] 추천게시판 운영위원 신규모집(~4/30) [3] jjohny=쿠마14421 24/04/17 14421 5
101343 [일반] 다윈의 악마, 다윈의 천사 (부제 : 평범한 한국인을 위한 진화론) [43] 오지의3614 24/04/24 3614 10
101342 [정치] [서평]을 빙자한 지방 소멸 잡썰, '한국 도시의 미래' [17] 사람되고싶다2048 24/04/24 2048 0
101341 [정치] 나중이 아니라 지금, 국민연금에 세금을 투입해야 합니다 [45] 사부작3227 24/04/24 3227 0
101340 [일반] 미국 대선의 예상치 못한 그 이름, '케네디' [56] Davi4ever7899 24/04/24 7899 3
101339 [일반] [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10] *alchemist*4104 24/04/24 4104 8
101338 [일반] 범죄도시4 보고왔습니다.(스포X) [36] 네오짱6071 24/04/24 6071 5
101337 [일반] 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결심했고, 이젠 아닙니다 [27] Kaestro5740 24/04/24 5740 13
101336 [일반] 틱톡강제매각법 美 상원의회 통과…1년내 안 팔면 美서 서비스 금지 [31] EnergyFlow4039 24/04/24 4039 2
101334 [정치] 이와중에 소리 없이 국익을 말아먹는 김건희 여사 [16] 미카노아3320 24/04/24 3320 0
101333 [일반] [개발]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2) [14] Kaestro2844 24/04/23 2844 3
101332 [정치] 국민연금 더무서운이야기 [126] 오사십오9641 24/04/23 9641 0
101331 [일반] 기독교 난제) 구원을 위해서 꼭 모든 진리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87] 푸른잔향4167 24/04/23 4167 8
101330 [일반] 교회는 어떻게 돌아가는가:선거와 임직 [26] SAS Tony Parker 2967 24/04/23 2967 2
101329 [일반] 예정론이냐 자유의지냐 [59] 회개한가인3773 24/04/23 3773 1
101328 [정치] 인기 없는 정책 - 의료 개혁의 대안 [134] 여왕의심복6217 24/04/23 6217 0
101327 [일반] 20개월 아기와 걸어서(?!!) 교토 여행기 [30] 카즈하2734 24/04/23 2734 8
101326 [일반] (메탈/락) 노래 커버해봤습니다! [4] Neuromancer821 24/04/23 821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