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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6/22 14:58:41
Name PKKA
Subject "8월의 폭풍"으로: 소련과 일본의 40년 충돌사-2 (수정됨)
* 본인은 『8월의 폭풍』의 역자이자 연재소설 『경성활극록』의 저자임을 독자분들에게 먼저 알리는 바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https://novel.munpia.com/163398

2. 10월 혁명과 러일밀월의 파탄

1917년 11월 7일(구력 10월 26일), 볼셰비키의 지도를 따르는 적위대와 수병들이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에르미타주 궁을 공격했습니다.

미국의 사회주의자 기자인 존 리드가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라고 쓴 10월 혁명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급진세력이자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을 수장으로 받드는 볼셰비키당의 정권장악과 소비에트 러시아 공화국의 수립을 가져왔습니다.


권력을 장악한 레닌은 그가 러시아 민중에게 약속한 슬로건인 "빵, 땅, 평화"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일제국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단독강화를 추진하면서, 소비에트 공화국의 외교적 노선이 "민주주의 외교"임을 천명했습니다.

이 "민주주의 외교"가 무엇인가 하니 제정 러시아를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이 국민들이나 식민지 주민에게 하나도 알리지 않은 채 밀실에서 몰래 맺은 여러 협약들을, 국민의 지지 없이 비준되었다는 이유로 전 세계에 기밀조약들을 모두 공개한 뒤 전면 파기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노선이었습니다.

예컨대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러시아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가진다는 비밀협정을 맺은 바가 있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이 비밀을 만천하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협정의 공개로 인해 영국의 지원 아래 오스만을 상대로 투쟁한 아랍인들이 결국 이용만 당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며 아랍 민족주의의 분노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는 자연히 일본과의 관계에도 적용되었습니다. 레닌의 "민주주의 외교" 선포는 포츠머스 조약은 물론이고 4차까지 맺은 모든 러일협약을
전면 파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큰일이다. 생각보다 훨씬 미친놈이야."였습니다. (;;;)

소비에트 러시아의 "민주주의 외교"는 기존의 모든 외교질서를 전면부정하고 사실상 기존 열강들의 외교관계를 다 부정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는 열강들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폭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를 시작으로 세계혁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제국주의 열강이 전복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레닌은 "민주주의 외교" 방침을 밀어붙였습니다.

더군다나 소비에트 러시아는 세계 모든 식민지 민족이 각자의 민족국가를 이룰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소비에트가 식민지 민족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천명하였습니다.

소비에트의 주도로 결성된 제3 노동자 인터내셔널인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 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에 영국,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등 협상국 국가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하여 러시아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반혁명세력인 백군을 지원하고 소비에트 체제를 무력으로 전복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정간섭이라는 고민과 논란이 뒤따랐습니다.

더군다나 영국과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전쟁이 진행중이었던 관계로 다시 대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었습니다.

피해가 상당히 적고 막대한 국력을 갖춘 미국도 워낙 고립주의가 강해서 러시아의 상황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개입 명분을 찾으며 잠깐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습니다.

소비에트의 행보는 일본의  데라우치 마사타케(초대 조선총독이자 무단통치로 악명인 높은 그사람) 내각을 경악에 빠트렸습니다.

전쟁까지 치렀지만 이제는 동맹이 되어 안보적 위협이 아니게 되었고 밀월관계를 구축한 러시아가 갑자기 동맹조약을 일방파기하고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세계 혁명운동을 지원한다니, 에도 시대 말기부터 형성된 러시아에 대한 오랜 공포증이 부활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따라 육군 내에서는 서둘러서 병력을 파견하여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점령해 공산주의의 위협에 선제 대처하고 확고한 완충지대를 만들자는 주장이 대두되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보면 좀 이상해 보이는 파병 논거도 나왔습니다.

전쟁 이탈과 독일과의 단독강화를 소비에트 러시아가 이행하면 독일군과 오스트리아군이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동진하여 일본군과 대치하게 된다는 이른바 '독오동점론'이었습니다.

좀 많이 황당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일본 육군은 상당히 진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데라우치 내각은 파병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거류민 보호 문제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소규모 함대와 병력 약간을 파병한 것 외에는 대규모 파병을 삼가고 있었습니다.

일단 내정간섭의 문제도 있었고 미국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러일전쟁 직후 동북아의 명실공히한 강자로 떠오른 일본제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러일전쟁에서는 일본을 지지하던 미국이었지만 태평양에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 적국으로 보기 시작했기에 일본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는 시베리아에 대한 파병은 물밑에서 눈치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18년 5월,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이 소비에트와 백군 간의 내전에 개입할 명분이 생겼습니다.

바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문제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소속의 체코 군인들은 오스트리아가 망하면 러시아를 비롯한 협상국의 힘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러시아군에 항복하거나, 탈영하고 러시아군에 합류한 체코 군인들은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이하 체코군단)을 조직해 러시아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런데 소비에트가 수립되고 독일 및 오스트리아와 강화조약을 맺자 체코군단은 처지가 난감해졌습니다.

라돌라 가이다 장군이 지휘하는 체코군단은 소비에트 정부에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극동으로 가서 배를 타고 서부전선으로 이동하여 중부열강과 계속 싸우겠다는 의사를 타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체코군단의 병력은 6만이 넘는 적지 않은 병력이라 소비에트 러시아에 위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소비에트 정부는 체코군단이 무장해제를 해야만 극동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내전이 시작된 러시아 땅에서 무장이 해제된 채로 저 멀리 연해주까지 간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체코군단은 무장해제에 반대하며 계속 협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강제 무장해제를 시도하고 체코군단을 억류하려 들었습니다.

이에 체코 군단은 첼랴빈스크에서 무력을 행사, 기차역들을 점령하며 시베리아로 향했습니다.

(무장 해제 시도가 먼저인지 체코 군단의 반란이 먼저인지는 소련과 서방의 주장이 엇갈리는 문제입니다.)

체코 군단 문제는, 내전 개입을 노리던 열강들에게 좋은 명분이 되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는 체코군단의 인도적 구조를 명분삼아 대대적인 내전 개입을 시작했습니다.

오데사, 세바스토폴, 무르만스크, 아르항겔스크 등 러시아의 주요 항구도시들에 미군, 영국군, 프랑스군 병력이 상륙하였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캅카스의 데니킨과 크림의 브랑겔을 비롯한 백군 세력에 물자지원을 할 항구를 확보하고 물자수송로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국내의 반대여론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막대한 병력손실을 고려해 파병 규모는 항구 당 연대에서 여단 수준으로 제한되었습니다.

그 관계로 간섭군의 실질적인 내전개입 목적인 소비에트 체제의 무력전복은, 사실상 백군 세력에 외주만 맡긴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일본에도 파병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시베리아 파병을 견제하던 미국의 윌슨 행정부가 결국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일본에 시베리아 파병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윌슨 행정부는 데라우치 내각에 미군과 일본군이 각각 7,000명 씩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하자는 계획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데라우치 내각은 미국의 제약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백군 지원이 목적인 타 열강과 달리, 데라우치 내각은 내전으로 러시아가 혼란스러워진 이 절호의 기회를 틈타서 연해주와 시베리아 일대를 통째로 집어삼켜 식민지로 만들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대대적인 영토확장을 꿈꾸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1918년 8월, 일본 정부는 12,000명의 병력을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하고 이후 필요에 따라 병력을 증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육군이 이건 너무 적다고 반발하자, 결국 2개 사단의 4만명 병력을 블라디보스토크와 시베리아에 각각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체코군단의 구출을 넘어서 내륙 깊숙히 군대를 보내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윌슨 행정부는 일본의 의도에 적잖이 불쾌해 했지만, 아무튼 이 결정을 통해 일본의 시베리아 파병 이른바 '시베리아 출병'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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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relius
20/06/22 15:08
수정 아이콘
저 6만명의 체코군단이 1차대전 종전 후 독립국가 체코슬로바키아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독립의 기반은 무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20/06/22 15:14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20/06/22 15:2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건 좀 짓궂은 논평입니다만, 좋게 말하자면 전근대의 유럽연합이라고 부를 정도로 다민족적이었던 오헝제국이었던 것이고, 좀 비틀어서보자면 독립하겠다고 탈영할 민족들조차도 세계대전을 한답시고 무장시켜야했던 체제의 모순이자 한계이었던 것이지요.
aurelius
20/06/22 15:25
수정 아이콘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헝제국은 참 기묘하고 흥미로운 정치체입니다. Martyn Rady라는 학자가 저술한 합스부르크 제국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최근 출판되었다는데 (2020년작) , 조만간 구입해봐야겠어요.
20/06/22 16:23
수정 아이콘
저도 관련도서는 한 권밖에 안 봐서 깊이 논평할 게재는 못되지만 다민족 제국이라는 점에서 참 혼란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워요.
20/06/22 15:16
수정 아이콘
오오 글렌츠옹이 만주작전도 다루셨군요?!
독소전쟁사도 재미나게 읽었는데 이 책 또한 감사히 읽겠습니다~
20/06/22 15:1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독소전쟁사 속 만주작전 내용은 8월의 폭풍을 엄청 요약한 거에요.
20/06/22 15:20
수정 아이콘
미국의 북극곰 원정 (Polar Bear Expedition)이 "나는 왜 여깄는거지, 어 여기서 뭘 해야하는거지?"하다가 어영부영 철수한 것과,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은 좋은 대조를 이루는군요. 관동군과 소련군의 전투를 두근거리면서 기다리는 연재입니다만, 이런 100년 어치 빌드업! 좋습니다.
20/06/22 16:23
수정 아이콘
흐흐 빌드업은 쌓고 쌓은 뒤 폭발해야!
Je ne sais quoi
20/06/22 15:21
수정 아이콘
체코 - 슬로바키아의 역사도 보면 중세부터 참 고생이 많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6/22 16:24
수정 아이콘
흑흑 감사합니다
20/06/22 15:57
수정 아이콘
저때 독립군이 체코 군단으로 부터 사들인 무기가 크게 도움이 된게 청산리 대첩이라고
읽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20/06/22 16:24
수정 아이콘
그렇습니다. 덕분에 북로군정서는 모신나강과 맥심기관총으로 무장이 가능했죠.
미키맨틀
20/06/22 17:22
수정 아이콘
러시아에서 벌어진 적백내전이 독소전만큼이나 잔혹행위가 많이 벌어진 전쟁이라는데 그 내용이 궁금하네요.
20/06/22 17:24
수정 아이콘
적색테러와 백색테러가 난무했는데 어느 정도인지는 저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스타더스트
20/06/27 09:28
수정 아이콘
너무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항상 추천부터 박고 읽습니다.
20/06/27 10:2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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