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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10/04 21:41:23
Name happyend
Subject [일반] 동양에도 과학이 있었다고요?
1.
17세기 청나라 북경에 있었던 예수회 신부인 조아생 부베의 편지를 받아든 라이프니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오! 이럴수가...”
미,적분학의 창시자이며 위대한 철학자였던 그를 그토록 놀라게 한 내용은 ‘주역’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태극기에도 있듯이 주역은 길고 짧은 두 개의 선으로 세상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진법이란 수체계를 막 만들어낸 그에게 주역의 세계는 수학으로 세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영감에 기초하여 가상의 세계를 단순한 두 개의 숫자,0,1로도 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그것이 현대 컴퓨터의 기초가 되는 전자계산기의 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막 서양과학이 동양과학을 때려눕힌 직후였으니 말이죠. 그 역사적인 사건은 1644년 8월 초에 벌어졌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식을 정확하게 예고한 것은 오랫동안 궁정에서 호의호식하던 중국황실천문학자들이 아니라 서양에서 온 예수회신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황실천문관의 자리엔 서양인 신부들이 차지하게 되었고, 수천년 동안 경쟁자 없이 지켜온 철밥 그릇을 빼앗긴 중국전통과학자들의 격렬한 투쟁이 있었지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잠시, 그들이 승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평기법’과 ‘정기법’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벌여 중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만 과학은 증명되는 것이지 감동시키는 일이 아니었지요. 물론, 이 논쟁은 조선 선비들의 심금도 울렸습니다. 특히 명나라 방법인 평기법을 포기하고 서양오랑캐와 만주오랑캐가 합작으로 만들어낸 정기법을 채택한 조선의 ‘시헌력’ 채택은 시골 성리학자들로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니 이 논쟁이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하지만 어떤 반대도 진실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과학의 매력입니다.
-정기법과 평기법은 예전,<역사,다시보기>중 ‘우리 역사속 달력이야기’에서 말씀드렸으므로 생략^^)

동양에서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대수학이 있었고,훌륭한 발명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근대문명을 가져오진 못했습니다. 어느 과학사학자의 말마따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주 훌륭한 발명가였지만 결국 서양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갈릴레오였고, 동양에도 훌륭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많았습니다만, 갈릴레오는 없었던 것’이지요.

아인슈타인은 왜 동양과학이 서양과학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양과학의 발전은 기하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양엔 바로 그것이 없었다.”

기하학 중심의 서양과학과 통계와 계산 중심의 동양과학.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2.

고대 이집트시대 나일강변에 제사장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밝아져오는 동쪽하늘을 초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이윽고 ‘반짝’하더니 시리우스별이 떠올랐습니다 .제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곧장 파라오를 찾아갔습니다.

“폐하. 때가 되었사옵니다. 곧 나일강이 범람할 것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대홍수가 닥칠 것이란 제사장의 말에 걱정은커녕 파라오는 매우 기쁘게 웃었지요.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기다리던 수많은 백성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일강이 범람할 것이다. 모두 기뻐하라!”
“만세!”
백성들은 모두 만세를 부르고 부등켜 안으며 기뻐했습니다. 제사장의 예언대로라면 큰일이 일어날 텐데도 말입니다. 참 이상하죠?

나일강은 일 년에 한 번 정해진 날에 범람합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만 알고 피했다가 홍수가 끝난 뒤 돌아오면 나일강변은 순식간에 옥토로 변합니다. 제사장은 일년에 딱 한 번 있는 홍수를 알아내는 일만하면 평생 남부럽지 않게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해뜨기 직전 동쪽 하늘에 시리우스 별이 떠오르면 어김없이 나일강이 범람하니까요. 제사장은 그걸 숨겨서 자신만의 비밀로 해두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제사장의 비밀은 그 자체가 그다지 비밀스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래가지 못할 운명이었습니다. 시리우스 별의 움직임을 포함해 하늘에 12개의 별자리가 정확하게 1년에 한번씩 번갈아 뜨고 그걸 ‘황도12궁’이라고 부릅니다. 해의 위치가 어느 별자리에 있는지만 알면 시골 촌부라도 언제쯤 강물이 범람하고, 언제쯤 서풍이 불어올지 알 수 있으니 말이죠. 이 단순한 걸 숨기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결국 서양의 천문(기상)학자들은 그 지위를 성직자들에게 빼앗긴 채 몰락하거나 음험한 뒷골목에서 점성술로 연명해야 했습니다. 참으로 인생무상을 느꼈을 법하지요. 그런 그들로서는 대대로 황실천문학자로 부귀영화를 누린 동양의 천문학자들이 부럽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동양천문학자의 종말을 알린 1644년의 일을 알 리가 없을테니까요.

어찌되었든 왕실천문학의 시대는 일치감치 운명을 다했던 서양에서는 그 자리를 그리스문명이 대체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그리스문명은 상업중심의 도시국가문명입니다. 오죽하면 솔론이라는 정치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상업을 가르치지 않으면 아들은 그 아버지를 부양하지 않아도 된다’
는 포고문까지 내렸을까요?
(솔론은 아테네를 개혁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했던 것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일곱명의 현자중 한사람입니다.)

그리스 초기 자연철학자들은 상인이면서 여행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문명의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더 나아가 서양 근대과학이 동양과학과의 경쟁에서 이겨낸 비밀이기도 하고요.

아테네와 이집트 사이를 오가는 상인이거나 여행가라면 지도를 스스로 머릿속에 그려보아야하고, 거리를 계산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 문명은 바닷길을 가로지르고 사막을 건너가야 하는 상인들에게 끝없는 상상력을 요구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거리를 계산하여야 하는 일은 기하학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나 메소포타미아처럼 강물이 범람하여 농지의 경계선이 무너질 때마다 새로 측량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기하학적 계산술이 발달하였다고 합니다만, 그것은 동양에서도 벌어진 일입니다. 가령 세종임금시대 수학천재였던 이순지의 주요업무는 ‘양전’즉 토지측량이었습니다. 당시 이순지가 풀었던 수학문제는 삼각형,사각형,원의 넓이를 구하는 것들이 많았지요.이 이차방정식을 푸는 방식이 철저히 대수적이었던 것은 말할것도 없지만)

특히 상업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가져다준 최고의 선물은 ‘화폐’가 아닐까 싶습니다. 상업국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무엇일까요? 바로 물건과 화폐를 교환하는 일이었지요.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그것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옷감이든 곡식이든 가구든 그 모양은 달라도 모두 돈으로 바꾼 것들이라면 이렇게 변화무쌍한 자연에도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그들은 물었습니다.

“그럼 자연의 ‘화폐’는 무엇일까?”
(이것을 철학적으로 보면 ‘아르케’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

상인 출신인 탈레스는 그것이 ‘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수많은 그리스의 과학자들은 자연의 ‘화폐’를 찾았습니다. 서양 과학자들은 그것을 찾을때까지 연구하고 또 연구하였습니다. 화폐가 눈에 보이는 것이듯이 반드시 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 그것이 근대과학을 낳았습니다.

서양근대과학은 고대 그리스문명의 재발견이 없었다면 더 더디게 발전하였을 것이고,어쩌면 동양과 같은 딜레마에 빠져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이 운명의 덫에서 구한 것은 매우 재밌게도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슬람문명’에게서 ‘기독교문명’을 되찾아오기 위해 전쟁을 벌였습니다만 정작 찾아낸 것은 ‘그리스 문명’이었던 것이지요.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문명은 초기 기독교가 로마제국과 결합한 탄압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농업문명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따라서 동양에서 그러했듯이 중앙집권형 국가에서 자연과 인간은 왕,혹은 신의 예속물입니다. 모든 것을 화폐와 교환가능한 개별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보았던 상인들의 이데올로기는 이단시되었고, 그들의 기하학과 더불어 탄압의 대상이었지요.
그리스문명은 결국 도피처를 찾아 떠나야 했습니다.처음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안식을 구했으나 그곳에도 얼마 못가 로마제국과 기독교문명이 들이닥쳤습니다.최후의 도피처는 오히려 이슬람문명이었고, 그들의 보호(?)아래 도서관에 고이(^^) 모셔져 있었던 것이지요.

십자군이 이슬람문명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깨끗한 식탁과 세련된 코스요리, 그리고 후추 외에 이 그리스문명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것은 한순간에 중세 기독교문명을 뒤흔들었습니다.

결국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모든 혼란의 종지부를 찍으며 기독교문명과 그리스문명의 조합을 선언합니다. 바로 이 유명한 말과 함께.

“하느님도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일세.”

비로소 서양과학은 중세기독교의 신학을 파괴하고 깨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문학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마침내 1644년, 서양과학은 자신들의 승리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천문학이 그리스 기하학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레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십자군 원정대에게 물건을 보급하다 부자가 된 이탈리아 상인들이 세운 파도바대학에서 나온 행운이었습니다. 파도바대학은 그리스문명을 가장 많이 챙겨온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갈릴레오가 그곳에서 연구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십자군전쟁을 통해 탄생한 상인가문들은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도 정확히 안 것입니다.‘지식과 정보’. 코페르니쿠스도 그 지식과 정보를 찾아 파도바대학에 들어옵니다.더 큰 지식과 정보를 생산해내기 위해서 말이죠.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태양과 지구의 운동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한 동심원의 숫자에 기겁해서 소리쳤습니다.
“신은 이렇게 복잡한 하늘을 만들리 없어.”

하지만 과거 그리스의 아리스타코스의 지동설을 접한 뒤 그것이 얼마나 많은 동심원을 제거해주는지 놀랐습니다. 서양의 천문학사를 바꾼 지동설은 그리스 문명이 다시 부활한 것을 알려주는 알람이었습니다. 상업의 토대위에 세워진 그리스 문명이 긴 농업문명인 중세기독교문명을 넘어 새로운 근대 상업문명속에서 제 빛을 발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천문학의 봄,서양과학의 신세계는 그리스 기하학과 자연철학의 복원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휴얼이 처음으로 ‘사이언스’라는 말을 쓴 것이 19세기입니다.이전까지는 자연철학이란 단어만이 존재했습니다.)

3.

지금으로부터 5000년쯤 전인 아득한 옛날, 중국땅에는 요임금에 이어 순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를 요순시대라고 합니다.^^ 그때엔 백성들이 모두 편안하게 지냈기 때문에 요순시대는 다른 말로 ‘태평성대’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순임금은 이전부터 말썽을 피워온 황하를 다스리는 일을 곤이라는 사람에게 맡겼습니다.그런데 곤도 결국은 갑자기 불어난 황하가 범람하자 손도 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순임금은 다시 곤의 아들인 우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철저하게 황하를 연구하여 그 물길의 흐름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래서 막힌 물길은 트고,필요한 곳엔 둑을 높게 쌓아나갔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황하의 진흙 을 누비고 다녔는지 정강이 털이 다 닳아 없어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 끝에 우는 황하의 물길을 잡는데 성공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중국의 황제가 됩니다. 아마 그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동양 최초의 과학자일 듯 합니다.

동양의 천문(기상)학자들은 꽤 직업비밀을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들의 집안은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영업비밀’을 잘 지켜서 아주 최근, 그러니까 1644년까지 잘 먹고 잘 살아왔지요.

그들이 부귀영화를 누린 배경에는 농업국가인 동양의 예측불가능한 날씨가 있었지요. 가뭄,한파,폭우,그리고 태풍까지...
동양의 왕은 강과 날씨를 다스려야 왕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늘 이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청동기시대 이후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로 칭했거든요. 하늘의 아들이 하늘의 일을 모른대서야 되겠습니까?당장,백성들은 하늘이 우리 왕을 버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별수 없이 동양의 왕들은 기상학과 천문학을 황실의 최고 업무로 여기고 이곳 소속의 ‘전문직’들을 우대했습니다.

농업국가는 작은 소국의 역량으로는 강을 다스리거나 자연재해에 맞서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한 곳에 흉년이 들었을 때, 그곳이 도시국가라면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그리고 긴 강을 나눠써야 하는 문제와 같이 지역간 이기주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농업국가는 효율문제 때문에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권국가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중앙집권국가는 필연적으로 유지비용이 들게 됩니다. 특히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이 바로 ‘반란’입니다. 동양의 천문학이 독특함은 여기에서 나왔는데요, 오로지 하늘을 12개로 나누고,해가 어느 곳에 있는가만이 중요한 서양천문학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복잡한 하늘이 만들어집니다.
12개의 별자리만으로도 점성술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서양천문학이 제사장의 실직을 낳았다면, 반대로 동양 천문학이 가진 복잡한 형태가 동양 천문(기상)학자에게 부귀영화를 안겨준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복잡하니까요.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동양 천문학도 매우 단순합니다. 반란을 직접적으로 암시했던 일식이나 월식은 ‘메톤주기’와 태양궤도와 달의 궤도가 기울어진 각도를 경험적으로 알아내기만 하면 제법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황실천문학자들은 그런 것을 비교적 쉽게 찾아내고 그 비밀을 잘 유지했습니다.

(물론,이들을 괴롭힌 마지막 문제는 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궤도였기 때문에 대수적으로는 이것을 상상해낸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서양에서도 갈릴레오는 신이 만든 가장 완전한 도형은 ‘원’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타원’을 전혀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케플러가 ‘타원’도 우주적이며 신의 만들어낸 완전한 도형이란 것을 증명해내기 전까지는 극도의 저항이 벌어집니다.)

기상학으로 가면 그 문제는 더욱 기기묘묘해집니다. 아시다시피 기상학은 국지적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 시스템을 가지고 운용됩니다. 하지만 농업국가는 여행을 기피합니다. 생산수단이 땅에 박혀있으니 그런 것입니다만 그러다보니 태풍이 적도부근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도 임금들은 기상예측을 해야 합니다.그게 바로 왕실의 권위를 의미하니까요. 그결과 동양에서는 극도로 독특한 예측방법이 발달하는데요, 그것이 ‘통계학’입니다.
흔히 주역을 비롯한 점성술 체계는 ‘통계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매년 초하루에 기상학자들(서운관원)이 임금에게 1년치 날씨 예측을 담은 책을 바쳐야 합니다.

세종임금은 이 사업을 더욱 장려하면서 중국에서 나온 기상예측모델과 통계학방법론을 담은 ‘개원점경’을 서운관에 내려줍니다. 이 책은 ‘점을 치는 방법을 담은 경전’입니다. 개원은 중국 당나라때의 연호이며, 통계학이 가장 발달했던 인도에서 온 고타마 시타르타가 당나라 현종임금밑에서 벼슬을 하며 만든 책입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기후예측 방법에는 ‘후기’란 것이 있는데요, ‘감실’이라는 이론적 공간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공기의 변화패턴을 가지고 일기예보를 합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매우 과학적입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은 ‘공기표본’을 추출해내는 과정에서부터 그를 통해 기압,습도를 알아내는 여러 가지 모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니 저기압에 습도가 높은 공기가 추출되었다면, 앞으로 비가 올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생각보다 조선시대 과학시스템들은 정교하게 짜여져 있습니다만, 그 모든 과학적 사고의 배경은 ‘주역’에 기초를 하고 있습니다. 원인을 분석하여 근본적인 인과관계를 탐색하기 보다는 변화의 패턴을 연구하는 ‘통계적’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변화무쌍한 자연에 맞선 동양의 농업국가에서 이루어진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습니다.즉, 자연의 법칙은 한가지 원인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원인이 아니라 그 현상의 진행상황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동양의 과학은 서양과학이 갖지 못한 통계적 예측모델을 매우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었고,이것은 단순하지 않은 현상들을 추상화하는데 더 유용하기도 했던 것입니다.가령,복잡한 이 세상을 ‘컴퓨터 코드’로 만들어낸다거나, 사회학적 예측 모델이나 경제예측 모델을 세운다거나 아니면 미시적인 과학세계에 적용한다거나 하는데에 ‘통계’가 더 적절한 것처럼 말입니다.

동양의 과학은 어쩌면 1644년 패배한 것만은 아닌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업자본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전지구적으로 팽창하는 지금,  그리스 문명이 부여했던 상상력을 동양철학이 부여할지도 모르니까요.

서양과학이 벽에 부딪힌 그 지점에서 동양철학이 새롭게 조명받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4.
사실,이글은 개천절날 올리려고 했는데,요즘 제가 좀 바쁘다보니 늦어져버렸네요.(그러다보니 참 뜬금없죠?)

이미 보셨겠지만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은 이름 그대로 ‘별을 관측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단’이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 얘기를 처음 하신 교수님은 저의 은사(라고 하기엔 단 한과목 수업을 들었으니....)님이시다보니 오래전 일입니다만 아직도 그 문제는 사회적 공론화는 안되고 있지요.왜냐하면,다들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과학사는 매우 관심밖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연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과학 이야기가 아니라,사람이야기로서의 ‘과학사’말이죠.

오늘 이 글이 첫 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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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04 21:46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봤습니다.
펠릭스~
08/10/04 21:57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삼각형의 세각의 합이 180라는 것은 신이라도 부정하지 못할껄세... ^^:;
명언이네요 종교와 과학에 대한 명언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조금 다르지만...
08/10/04 22:00
수정 아이콘
이런 글들이 저를 pgr에서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정기법과 평기법은 예전,<역사,다시보기>중 ‘우리 역사속 달력이야기’에서 말씀드렸으므로 생략^^

이 부분을 보고 happyend님이 쓰신 글중에 있는줄 알고 검색해봤는데 없는것 같네요.
어디에 가면 볼 수 있을까요??
ArcanumToss
08/10/04 22:08
수정 아이콘
오오~ 아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들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Darkmental
08/10/04 22:31
수정 아이콘
삼각형의 세각의 합이 180라는 것은 신이라도 부정하지 못할껄세...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으로는 변하는것이 아닐까요?
아리아
08/10/04 22:50
수정 아이콘
수학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하신얘긴데 삼각형의 세각의 합은 실제로는 180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지구가 둥그니까 삼각형을 지구위에서 그렸을때 합이 180이 안된다고 하셨어요
워낙 선생님이 개그기질이 있어서 그냥 받아들였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선생님 말이 맞긴 맞는 말 같아요
08/10/04 22:54
수정 아이콘
아리아님// 평면에서겠죠 ^^;
사실 그 평면이라는 개념도 상당히 추상적이고 이데아적인 가정이지만 말입니다
朋友君
08/10/04 22:56
수정 아이콘
저도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들 꼬옥 꼬옥 다시 읽을 수 있게 해주세욧!!!! ^^*
ComeAgain
08/10/04 23:00
수정 아이콘
수학, 과학이야말로 거대 종교죠...............

그래서 전 무신론자입니다???
;;;
08/10/04 23:14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 봤습니다.
알던 내용도 모르던 내용도 좀더 정리되어서 머릿속에 입력됐습니다. ^^

Dizzy님//
찾아보셔서 없다면.. 아마도..
테스터형님의 세상읽기에 있을겁니다. 매주 연재를 하셨거든요.
08/10/04 23:1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non-frics
08/10/04 23:20
수정 아이콘
재밌어요~~ 계속올려주셔요.
Who am I?
08/10/04 23:44
수정 아이콘
ComeAgain님// 동지를 만나서 반갑습니다..(응?)
happyend
08/10/04 23:49
수정 아이콘
Dizzy 님// <역사,다시보기>코너는 사정상 내렸습니다.이유는 묻지 말아주세요.흐엉....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만,제가 숫기가 없어서 거의 닫힌 공간으로 운영하므로....음...자게에 다시 그 글을 올렸습니다.(제가 무슨 짓을 하는건지....음....)
08/10/04 23:49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네요~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려요~
음악세계
08/10/05 01:14
수정 아이콘
재밌어요^^ 이런 재미에 피지알 오네요.
08/10/05 01:25
수정 아이콘
시리즈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언젠가 책으로도 볼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sway with me
08/10/05 08:58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08/10/05 10:37
수정 아이콘
전 가끔 하는 생각이
지구가 리셋되서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인간세상이 올 것이며 현재와 같은 서양강세가 이루어질 것인지..
결국엔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인지가 궁금하더라구요
뭐 답이 없는 그냥 망상이지만요 -_-;
성야무인
08/10/05 10:54
수정 아이콘
happyend님// 하나 딴지정도 걸자면, 십자군 원정때 유럽인에게 큰 쇼크를 준 이슬람 문화를 그리스 문화의 바탕을 둔다고 정의하기가 너무 좁지 않나요? 제가 아는 지식으로는 수리학과 통계학은 인도로 부터, 의학및 화학과 천문학은 그리스및 지중해 문화권에서 흡수되서 중동지역의 다른 문화 혹은 상위문화로 발달된것이라고 보는데요. 물론, 역사서 몇몇에선 인도의 수리학이 중동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거의 무시하는 경향도 있긴하지만요.
happyend
08/10/05 11:41
수정 아이콘
성야무인님//십자군 원정때 유럽인들이 가져온 것은 후추와 '도서관의 장서'라는 뜻입니다.즉,그리스 문명을 담은 '고서-두루마리 양피지'가 서양으로 들어온 것이고,그것이 중세유럽사회에 파장을 미친것입니다.물론,이슬람,인도,혹은 중국까지 문명의 단편들이 함께 건너갔지만 말입니다.
happyend
08/10/05 12:08
수정 아이콘
딱새 님//그런 질문을 한 일본인 종교학자가 있었지요.전공투세대이며,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 동경대 생물학과를 다니다가 우연히 호주의 원주민들이 '고등수열'을 구사한다는 이야기를 읽고,인류문명의 탄생그지점에 다시 서보고자 종교학과로 전과한 사람입니다.
나카자와 신이치란 양반인데,그분이 쓴 '카이에 소바주'시리즈가 도움이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마법사소년
08/10/05 12:1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성야무인
08/10/05 12:28
수정 아이콘
happyend님// 전 그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십자군 원정은 아시다시티 현그리스와 터키서부를 포함한 비잔틴 왕국이 이슬람군의 공격을 받을때 비잔틴의 황제가 교황에게 구원해달라는 그걸로 시작됩니다. 실제 1272년 9차원정을 마칠때까지 십자군이 유린한 땅은 현터키,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일부, 이집트 그리고 이스라엘까지 거의 중동의 문명지라고 하는 곳은 모조리 휩쓸고 다니죠. 그와중에 1204년에 십자군 의해 그당시 최강의 문화를 지녔던 콘스탄틴노플이 쑥대밭에 되서 이태리의 부를 축적시키게 된다는것도 아실겁니다. 허나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그곳에 있는 문화가 단순히 그리스 문화가 대다수이며 이슬람문화자체가 단편적이다라고 판단할수 있을만큼 축적된 정도가 편향되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의학사를 보더라도, 근대 실험의학(페르시아의 아비시나라는 과학자입니다)의 시작은 십자군에 의한 이슬람원정때 이슬람의사에 의한 획기적인 치료법을 본 십자군원정대가 충격을 받아 그 의술을 채용하게 되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의학도 이태리가 십자군 원정이후로 막강해졌죠. 따라서 단순히 문화적이라는 표현을 받아드리면야 당연히 그리스문화쪽에 십자군원정이후 유럽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단순히 과학의 영향만따진다면 그리스문화하나만으로 하실수는 없습니다..
양산형젤나가
08/10/05 13:04
수정 아이콘
추천 버튼을 누르게 하는 글
스타조아
08/10/05 13:38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될대로되라
08/10/05 16:05
수정 아이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박지원이 평소 귀동냥했던 홍대용의 지전설을 청나라 학자들에게 펼쳐보이며 지구는 구이고 한바퀴 자전하면 하루가 지난다라는 설을 이야기하는게 나옵니다. 문제는 이런 이론이 정교한 천문과학의 바탕이 아니라 서학의 자극을 받은 동양적인 철학적 사색의 결과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학계(?)에서 결코 자기 주장을 할 수 없었던 이단이기도 했구요. 당시 조선은 오직 주자만을 외치며 더욱 더 폐쇄적인 외길로 돌진하고 있었죠.
happyend
08/10/0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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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대로되라 님//본문에도 있습니다만, 홍대용의 지전설이 실험의 결과가 아니라고 한다면,코페르티쿠스의 지동설도 엄밀한 실험의 결과라기 보다는 사색과 고대 그리스의 문헌의 도움에 의해 얻어진 결과입니다.차이가 그다지 없지요.
다만 둘의 차이는 서양과학과 동양과학의 정서적 차이를 넘어 상업국가와 농업국가의 차이라는 본질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양상이 달랐던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갈릴레오에게 이어졌지만 홍대용의 지전설(이건 엄밀히 말해서 서인-노론의 이데올로기이며 그 창시자는 김석문입니다.김석문은 김육의 후예이고요)은 그 후예가 없다는 차이가 있고요.
특히 홍대용은 '실험'과 '기하학'의 요소를 동양과학에 도입하려고 했던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입니다.그는 집안마당에 연못을 파고,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천문대인 '농수각'을 만들기도 했거든요.
단지,사색의 결과라고만 하기엔,홍대용의 의미가 좀 크다고 여겨져서 말씀드려봤습니다.
성야무인님//^^
(오래전부터 궁금한건데,엔터키는 일부러 안치시는건가요?)
될대로되라
08/10/05 18:54
수정 아이콘
happyend님//홍대용이 대나무를 이용한 여러 실험,관측기구를 만든건 유명하죠. 제가 동양철학적 사색이라고 말한건 연암이 지전설에 대해 자기 의견을 피력한 부분입니다. 연암의 견해로는 지구가 구가 맞다면 구의 성질 상 돌게 되어 있다라는 식의 다소 비약적인 논리전개가 펼쳐지죠. 무리하게 해석하면 관성의 법칙을 이야기한거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근대과학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봅니다.
물론 지전설이 연암의 이론이 아니라 홍대용의 이론을 연암이 단순히 인용한거라 근대적인 과학자 상에 접근한 홍대용과 같은 인물은 연암과는 다른 과학적인 추론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불행히도 철저히 비주류였던지라 남아 있는 자료는 없는걸로 압니다. 있다면 소개 좀 부탁합니다.
될대로되라
08/10/05 19:05
수정 아이콘
happyend님//첨언하자면 조선이 자생적인 지전설이나 과학적인 성과를 폄하하는건 아닙니다. 오로지 아쉬울 따름이죠. 조금이라도 자생적인 근대성이 꽃피려하면 사문난적이니 폐관문학이니 이단이니 하며 밟아버린 당시 풍조가 안타깝습니다.
happyend
08/10/05 19:06
수정 아이콘
될대로되라 님//먼저 사실관계부터 정리를 좀 하구요.
홍대용이 만든 것은 대나무가 아니라, 정교한 천문기기입니다.대략 현재 금액으로 5000만원정도가 소요되었고요(물론 이돈은 홍대용의 부친이 지원해주었습니다.)제작자는 호남의 실학적 발명가였던 '나경적'이란 분입니다.만든 것은 '천체관측용 혼천의'(이것은 기계식 혼천의이며 이것의 모델은 송이영의 혼천의-현재 만원짜리에 있는-입니다.고려대 박물관소장)와 '모형 혼천의'(현재 이것은 숭실대 박물관에 남아있습니다.이것도 청동으로 만든 것입니다.)그리고 별자리를 담은 혼상(물레방아에 의해 움직이며,동양적 철학에 입각하여 만든 기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만들고 나서 북경을 다녀온 뒤,서양천문학의 이론을 받아들여 만들어낸 것이 측고의의 일종인 '구고의'와 간평의인 '측관의'입니다.모든 정교한 청동제품입니다.(간평의를 보시려면,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가 만든 것을 '고궁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농수각기(주해수용의 부록)에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전설에 대한 자료도 <의산문답>이란 걸작속에 매우 멋드러지게 표현되어있습니다.
성야무인
08/10/05 19:35
수정 아이콘
happyend님// 그게 머리에서 쓰고 싶은건 많은데, 쓰다보니까 삭제, 수정을 반복하는 나머지 줄띄우기가 귀찮아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양해를~~ ^^;
아나나스
08/10/05 20:01
수정 아이콘
이번 학기에 교양수업으로 한국과학사를 수강하고 있는데 이 글이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네요^^
펠릭스~
08/10/05 21:15
수정 아이콘
글쎄요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실측과 이론의 차이라기 보다는 받아 들이는 과정에서 차이가 아닐까요??

서양에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 이론이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합치되어 있던 상태에서
지동설-천동설간에 대립이 있었고 자연과학이 당시 카톨릭의 권위에 저항하면서
종교적인 권위를 획득합니다.

그에 비해서 동양에서 지동설이 큰 의미가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지동설이던 천동설이던 그걸 주장한 사람은 그냥 쓸데없는 일을 하는것일 뿐이죠..
그리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고 말죠..쓸모가 있냐 없냐 이건좀 고민하구요
지식으로 확인되더라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물에 대한 것이였고
반면에 유교문화권에서 중요하게 본것은 인간이였구요..
정확하게 말하면 지배층 입장에서 아랫사람들이 불만을 안갖게 하는 방법??

다른 왕조국가에서도 위에 사실들은 비슷했구요
지식의 발전이 왕의 위엄을 깨치는것이 아니죠 다만 수레가 무너지면 만든 사람만 처형될뿐

당시 서양과학은 종교적인 권위를 대체하고 기술발달의 치열함 속에서
인정되고 자리잡았다고 봅니다.
(과학이 기술적 발달에 도움이 된것은 19세기 후반에 2차 산업혁명때 부터라고 봅니다.)

아직도 문화적인 전통 자체가 전달되었다기 보다는
수단으로써 과학기술이 동양에 왔고 근본적으로 서양의 종교라는 왕권을 능가하는 권위??
이런게 없던 것이 근본적인 차이점 아닐까 봅니다.

동양에선 진리보단 사람이죠~~
될대로되라
08/10/05 21:34
수정 아이콘
happend님//살짝 오해하신거 같은데 홍대용이 대나무만으로 모든 기구를 만들었다는게 아니라 손수 대나무를 이용한 기구를 많이 만들었다는 얘기를 한겁니다. 즉 당시 유학자 중 가장 근대적인 실험정신을 가졌다는 얘기를 한겁니다만..
홍대용에 관해 좋은 애기를 많이 해주시니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happyend
08/10/05 21:46
수정 아이콘
될대로되라 님//^^
펠릭스~님// 전혀 그렇지 않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조선의 과학사는 개인적으로 '홍대용인가 홍대용이 아닌가'로 나뉩니다. 홍대용이외의 성리학적 세계관(특히 남인을 중심으로 한)은 중세 카톨릭적 세계관과 흡사합니다.
하지만 서인-노론(일부 소론)의 세계관은 확실하게 프로테스탄트적 세계관과 유사성을 가지고 전개합니다. 전자가 '중농주의자'이고,후자가 '중상주의자'인 것도 서양의 방식과 일맥상통합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지만,한국의 과학사도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지고 전개되었습니다.
(예전에,<역사,다시보기-'홍대용인가 홍대용이 아닌가'에서도 말씀드렸고,앞으로 과학사에 관해서 얘기할 기회가 된다면 실증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조선과학사는 이렇기 때문에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비록 그것이 찻잔속의 태풍일지 몰라도,엄연히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입니다.
펠릭스~
08/10/05 21:55
수정 아이콘
happyend님// 네...
이건 있었던 사실이 아니라 단지 다른 해석일 뿐이라고 봅니다만

전 홍대용이 당시 노론에 지식관이 틀리다는것을 밝혔더라도
그냥 노론이 수용했고 기죽는 정도에서 끝났을꺼라고 봅니다.
당시 가치관 차제가 지식이 무엇인가 보다는 인간??에 대한 탐구와
교양이였으니까요 수용했을 것입니다.

지식적인 것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그것이 어떤 권위를 획득할순 없어다고 봅니다.
happyend
08/10/05 22:06
수정 아이콘
펠릭스~님// 급하게 쓰셔서 그런건지,제가 잘 이해 못했는지 모르지만,말씀하신게 이런건가요?
'홍대용이 왜 노론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느냐?'
이것인가요?

이게 맞다면 홍대용은 노론 핵심가문사람입니다.박지원과 더불어서요.석실서원자체가 노론,그중에서도 낙론의 이론중심지였거든요.
(보충하자면,노론도 도시화와 세계화 속에서 분화되어 서울중심의 도시파인 '낙론'과 시골 선비들 중심인 '호론'으로 나뉩니다.)

낙론의 이데올로기가 홍대용의 사상을 낳았지요.그러니 수용하고 자시고 할 것은 없습니다.그러나 결정적으로 낙론과 홍대용이 결별한 것이 바로 '우주관'때문입니다.홍대용은 우주를 현실적 실험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었고,낙론의 김원행(홍대용의 스승)의 제자들과 일부 서울의 소론들은 관념적 우주로 '주역체계'를 벗어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가령,이익도 '서양의 천문학도 모든 걸 말할 수 있지 않다면 주역이 옳은게 아닐까...'라고 독백합니다.

서양의 우주관은 17세기 시헌력의 도입과 만국곤여지도의 수입,천문략과 오위역지와 같은 서양 천문학서가 들어오고 난뒤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숙제를 던졌습니다. 오로지 홍대용만이 '기하학과 실험,관측'으로서 우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이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그의 이론을 수용할 준비가 안된 조선사회의 문제도 있었겠죠.대부분의 학문은 '서원'이나 '문도'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홍대용은 평생 벗이라곤 '박지원'하나 뿐이었고,제자도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홍대용의 생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북학파'라는 정치문화적 흐름으로 표현되었고,그들의 사상이 '개화파'에게 이어졌고,일부는 '최한기'의 '기론'으로 전수되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르러 홍대용은 다시 재조명되고 있으니 외로운 사상가이긴 하지만 고립된 사상가는 아닙니다.
펠릭스~
08/10/05 22:14
수정 아이콘
happyend님// 음..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조금 다르게 생각한것은

과학적인 사실?? 이것을 가지고 문화적으로 싸움이 일어나고
격론이 일어날 환경이 아니였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홍대용은 그것이 중요하다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중요한지..
아니 사실은 천국이라는 존재를 허용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을 기반으로 구성되었던
중세 기독교적인 좀 특이한것이긴 합니다만....
우리 문화권에선 그런 기하학적,천문학적 지식이 중요한것이 아니였으면..

주역적인 우주관이 틀렸다?? 라고 말하지만 유교철학 자체가 과학적인 사실을 엄밀하게 추구했다고 보기 어렵고
지식이란 측면에서 쉽게 수용했을거라고 봅니다.

다만 유교적 체제에서 과학이 발달할수 있는 여건은 오히려 좋았는데
왕이 닥치고 관리 임용시험에 필수로 넣었으면... 폭팔적으로 발전했을거라고 봅니다.
지금도 비슷하구요..
Neo_Knight
08/10/06 13:13
수정 아이콘
글도 댓글도 흥미진진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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