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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2/27 09:57:45
Name aurelius
Subject [역사] 태국의 그리스인 총리 - 콘스탄틴 파울콘

최근 루이14세 관련된 책을 읽다가 전혀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1684년 시암왕국(태국)이 루이14세에 사절단을 파견한 적이 있었더군요. 시암의 사절단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14세를 알현하고, 프랑스는 이들을 크게 환대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오스만제국의 사절보다 더 융숭히 대접했다고 합니다. 시암의 사절단은 오늘날로 치면 "대사급"이었는데, 오스만제국의 사절은 오늘로 치면 일개 "서기관급(?)"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사절단은 베르사유를 둘러보고 파리시내도 둘러보았다고 하는데, 정작 이들이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는 따로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당시 시암왕국은 생각보다 개방된 국가로, 여러 서양국가들과 친교를 맺고 있었습니다. 당시 국왕 나라이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프랑스 상인들과 교류하고 있었고, 심지어 외국인을 총리로 기용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콘스탄틴 파울콘. 

콘스탄틴 파울콘은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는 베네치아령 이오니아 제도의 케팔로니아 출신으로, 아버지가 그리스인 어머니가 베네치아인이었습니다. 
본명은 콘스탄티노스 게라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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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팔로니아 (이오니아 제도) 

그리고 13세 무렵에 영국선박을 따라 그리스 촌락을 벗어나 영국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영국에서 그는 이름 게라키스(매)를 영어 Falcon으로 바꾸고 훗날 동남아에서는 파울콘Phaulkon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이민자가 으레 그러하듯이 사회에서 가장 기피되는 직종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는 아마 선원으로 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제2차 영란전쟁에서 영국을 위해 싸운 것으로도 추정됩니다. 

그 후 뱃사람의 경력을 살려 영국 동인도회사에 취업하게 되는데 회사의 중진급과도 친해졌다고 합니다. 굉장히 뛰어난 친화력의 소유자였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는 동인도회사를 따라 1675년 시암왕국에 상인자격으로 도착하였고 불과 몇년만에 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뛰어난 재무감각과 어학실력(그는 태국어 외에 영어, 불어, 포어, 말레이어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을 바탕으로 시암의 국왕 나라이의 신임을 얻게 되고 그의 궁정에서 일하게 됩니다. 

콘스탄틴은 대단한 야심가였습니다. 그는 시암왕국과 거래하던 외국인 상인들(특히 페르시아 상인들)의 비위를 발각하면서 국왕의 신뢰를 얻고, 국고를 탄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과거 동인도회사의 동료들을 스카웃(?) 해왔고, 다수의 영국인들이 시암궁정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는 1682년 영국성공회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포르투갈-일본 혼혈인 마리아 구요마르와 결혼하게 됩니다. 마리아 또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로 아버지는 포르투갈 동인도회사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가톨릭 대탄압을 피해 망명(?)한 일본인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콘스탄틴의 행동을 몹시 못마땅해했습니다. 자회사의 고급인력을 빼앗아가고 무역특권도 빼앗아가니 당연 좋게 보일리가 없겠죠.

콘스탄틴 파울콘이 적극적인 "친프랑스 정책"을 펼친 것이 이 무렵이었습니다.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손을 잡았고, 프랑스인들에게 여러 특혜를 부여했습니다.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예수회 선교사들을 보호하였으며 프랑스 상인 및 군인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러하듯이 "중용"이 필요한 법. 그의 과도한 친프랑스정책, 친가톨릭 정책은 시암왕국의 보수파들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한편 영국 동인도회사는 앞에서 보았듯이 시암왕국과 여러 문제가 있었고, 당시 동인도회사 마드라스 책임자였던 엘리후 예일(Elihu Yale - 훗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우리가 아는 예일대학교를 설립합니다) 은 무력시위를 지시합니다. 그 와중에 시암 보수파는 콘스탄틴이 데리고 온 영국인들이 동인도회사와 내통한다고 간주하여 이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콘스탄틴은 이에 대해 분개, 국왕을 설득하여 책임자의 처형을 요청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인도회사에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여 시암왕국과 동인도회사는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전투는 거의 없었다고....)

아무튼 이런 배경 하에 콘스탄틴은 프랑스와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노골적인 친프랑스 정책을 펼칩니다. 
심지어 프랑스 장교까지 초빙하여 시암왕국의 군대를 유럽식으로 훈련하는 것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했던 것은 이방인이었던 그가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홀로 독점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무렵 국왕의 병세가 악화되었는데, 보수파는 국왕이 죽으면 그가 왕세자를 통해 전권을 휘두를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서 제거하지 않으면 시암의 전통이 무너지고 나라가 통째로 가톨릭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1688년 쿠데타가 발생, 콘스탄틴과 그의 세력은 모두 처형당했습니다. 

반란의 주모자 페트라차는 나라이 왕의 서거 후 스스로 국왕 자리에 올랐고 도쿠가와 일본과 유사한 쇄국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프랑스 및 영국과의 모든 통교를 금지하면서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는 교류를 유지하는 것. 


이오니아 촌락에서 런던으로 이민간 그리스인
동인도회사에서 일하면서 인도, 말레이시아를 거쳐 태국에 도달
포르투갈-일본 혼혈인과 결혼하고 현지에서 총리직까지 오르는 영광을 경험 
과욕 끝에 현지 귀족들에게 처단

대단히 파란만장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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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時雨
19/12/27 10:29
수정 아이콘
그야말로 풍운아네요.
삼성전자
19/12/27 11:12
수정 아이콘
아유타야 왕국의 역사군요.
그런데 왕이 반란자로 바뀌었는데 왕국 계보의 정통성은 그대로 유지한 모양이네요?
Lord of Cinder
19/12/27 12:10
수정 아이콘
아유타야 왕국이라는 나라는 그대로 이어지지만 왕조(Dynasty)는 Prasat Thong 왕조에서 Ban Phlu Luang 왕조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반란의 주모자도 원래부터 국왕의 조카 내지는 왕가와 매우 가까운 신분이라고 전해지고, 1688년의 반란에서 왕세자를 죽이고 왕의 유일한 딸과 결혼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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