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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2/26 04:58:42
Name Colorful
Subject [일반] [11] 동반자살


자살은 어렵다.
하지만 같이 할 사람이 있다면 왠지 용기가 날 것 같았다.

'고시원이 왜 있는 줄 알어?'
교수님께선 공부도 같이해야지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깐.






약속을 잡았다.
나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
나가지 않았다.
무서웠다.

'내일까지 방빼주세여'
사람에게 감당하지 못할 위기가 찾아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낯설어 지는구나
정신이 번쩍들었다.
진지하게 약속을 잡았다.
수치스러운 삶을 이젠 정말 끝내야 했다.

가는 지하철에서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죽는 척하고 나만 살아오면 어캐되지?

의식장소는 재개발이 이루어질 버려진 아파트
같이 죽을 사람이 못생기고 뚱뚱한 것을 본 순간 이미 어느정도 마음을 지었다.
그 사람이 주는 졸피뎀을 (수면제) 먹는 척 했다.
나는 고통스러운건 싫으니 탄은 최대한 늦게 피우자 했다.

냄새가 너무 역해서 조용히 나왔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아파트를 돌아보았다.

사람이 죽는다니
뭔가 흥분되었다.
대리만족인가
아니면 살인을 했다고 느낀건가

어쨌거나 그 순간 내 몸에 피가 파도타는 것을 느꼈다.
이런 감정은 오랜만이었다.
죽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버렸던 짐들을 다시 찾아왔다.






목표가 생겼다.
나같은 사람들의 삶의 구원하는 것

졸피뎀을 얻기 위해선 정신병 진단이 필요했다.
자해를 많이 했다. 약은 먹지않고 나중에 써야되기에 먹었을 때 어떤지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다.
생각보다 같이 먹어야 할 약이 많아서 그에 대한 것들도 알아야했다.

아프고 힘들지만 이렇게 보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자기 전 들던 만성죄책감도 사라졌다.





생각보다 사람을 만나기 힘들었다.
연락하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만날 때 되면 핑계며 잠수며
화장실 간다하고 없어지고

자살은 어렵다.






죽어있는 그들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모았다.

마지막에 속인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난 내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만나서 솔직하게 대화하며 절망적인 그들에게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한 번은 잠을 하루 2시간밖에 못자는 사람이었다.
동반자살의 계획을 알려주면서 먼저 잠을 푹자고 병원도 가자고 설득해 나갔다.
어느 정도 정상 상태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함이었다.

그 사람은 자살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지만
나의 컬렉션에는 나름 자격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 자격의 기준은 객관적인 나의 직관이지만
굳이 다른 사람들이 감 잡을 만한 표현을 하자면 '진심'정도가 되겠다.
진심이 아닌 것 같으면 병원부터 소개시켜주거나 운동도 같이하자고 설득하면서 그 사람이 '진심'에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도왔다.

힘들었다.
대부분 자살을 원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매너는 없고 대화라는 것을 힘들어할 가능성이 컸다.
그 사람의 진심을 알기 위해선 대화가 필요했으나 대부분 재미없고 그냥 만나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그러다 나의 신념을 뒤흔드는 사람을 만났다.
약속을 이미 한 번 펑크낸 사람이었다.
여자였다.
내 컬렉션에도 여자는 있지만
이 여자는 이뻤다.

대부분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뚱뚱하거나 못생기거나 행동부터 찌질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하고 차분하며 관심은 사람에게 없었다.
처음만났을때 들썩이던 그녀의 입술에 집중이 몰렸다.

가끔씩 공감과 대화를 해주는 것만으로 위로를 찾는 경우도 있다.
그녀는 아니었다.
통과 1 2 3 단계 중에 이미 바로 나의 컬렉션에 들어가도 될 3단계를 통과했다.
그녀는 확고했다.
약도 먹고 있고 어느정도 루틴을 가지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원하는 사람에게 바로 작업을 실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녀가 예전에 한 번 펑크낸 것이 망설인 증거라는 해석을 차용해 아직은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을 통해 판결을 연장하기로 했다.

그녀랑 연락하는 것이 즐거웠다.
슬픈 가족사는 내 마음을 울렸고
그녀의 과거 실수들이 마치 내가 반성해야될 것처럼 느껴졌고 미안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의식을 요청했지만
나는 나도 같이 할 것이며 준비한 계획을 알려주고 천천히 진행하자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가 기존에 회복해서 나와 새로운 관계를 구성했던 기존의 고객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설레였다.
그녀는 구원을 받고 천사로 거듭나게 해준 메시아에게 무한한 신앙심을 들어낸다.
물론 그런 사람은 없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녀에게
'낼 영화 같이볼래요?' 문자한다
같이 자살도 할 건데 뭐 오해는 없겠지.

답장이 없었다. 보기 싫었나 보다
그럴 수 있다.

휴대폰을 만지작대다가 '언제 죽고 싶어요?'라고 보냈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항상 오늘이던 내일이던 빨리 죽고 싶어했다.
후회가 해일처럼 몰려왔다.




'크리스마스날 계획한대로 할까요?'



'지금은 머해요?'




현재 시각 새벽 4시 59분
지금까지 답장이 없다.








내가 만든 컬렉션을 다 없애고 싶은 충동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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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BoxeR
19/12/26 05: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오늘이든 내일이든 빨리 죽고 싶어도 지금 죽기로 한게 아니니 그녀도 이 시간에는 자고 있겠죠

라고 생각했는데 루틴이라는 단어가 맘에 걸리네요
19/12/26 07:38
수정 아이콘
연락이 없다는 건 그 사람이 죽어 없다는 것과 비슷하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LucasTorreira_11
19/12/26 12:12
수정 아이콘
와 이 흡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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