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6/09 23:45:02
Name aurelius
File #2 18377390_7FDE_46E1_9293_3EFF90E883F8.jpeg (2.52 MB), Download : 11
Subject [일반] [여행기] 샤를마뉴의 수도 아헨


신혼여행으로 파리에 왔는데, 시간에 여유가 있는지라 당일치기로 독일 아헨에 왔습니다. 역사덕후인 저로서는 꼭 가보고 싶었던 도시인데, 다행히 아내도 무척 만족해서 기쁘네요

아헨은 오늘날 아주 작은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사실 아주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이곳은 카를대제, 프랑크 왕국의 왕,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수도로 삼은 곳이며, 그가 건설한 제국으로부터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가 파생되었습니다.

따라서 아헨의 주요 볼거리는 당연 카를대제가 건설한 “아헨대성당”입니다. 아헨성당은 알프스 이북에 건립된 최초의 석조 대성당으로, 서기 805년에 완공되는데요 당시 알프스 이북에는 이렇다할 석조 건물이 없었는데, 카를대제는 이탈리아에서 로마시대의 대리석 기둥을 가져오고, 로마의 기술자들을 불러 웅장하고 화려한, 이탈리아나 동로마(비잔틴)에 뒤지지 않는 성당을 짓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카를 본인이 속한 프랑크족을 포함한 미개한 북쪽의 야만족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품게 만들 목적으로 건설된 정치적 프로파간다였죠.

그래서 아헨대성당의 모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유럽의 다른 고딕성당들과 다릅니다. 아헨대성당은 팔각형의 중심부를 따라 비잔틴 양식의 아치가 세워져있고, 거대한 돔이 그 위에 놓여있다. 또한 천장은 불빛이 없어도 실내를 밝게 비출 것만 같은 금박 모자이크와 성화들로 가득한데 사실 이런 황금 모자이크는 동로마제국 고유의 양식으로, 오늘날 배네치아, 라벤나, 그리고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카를대제는 아헨대성당을 통해 자신이 로마의 후계자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로마의 기둥을 알프스 이북 저 멀리 아헨까지 가져왔고, 이탈리아에서나 볼 수 있던 모자이크를 모방하였으며 또 외형과 내부 디자인까지 로마의 그것을 답습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시대는 중세였고, 로마와의 연속성 못지 않게 중요했던 것은 바로 종교, 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카를대제는 본인이 로마의 후계자일뿐만 아니라 기독교세계의 수호자임을 드러내고자 했고, 그 상징물 또한 이곳 아헨대성당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카를대제의 “왕좌”입니다. 그냥 보기엔 아주 심플하기 그지 없는 왕좌입니다. 그냥 맨돌이 아닌가?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고 화려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이 왕좌는 그 어떤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왜?

사실 이 볼품없는 왕좌는 예루살렘에 위치한 예수의 성묘(holy sepulchre)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이 돌은 정말로 중동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왕좌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곳에 앉는 이는 기독교 세계를 관장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과 기독교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아헨성당, 과연 카를대제의 성당이라 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화해하고 또 미래를 약조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본래 하나였던 프랑스와 독일을 상징하는 도시, 로마 이후 중세 서유럽의 발상지라 하는 이 도시에서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화해하고 미래를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올해 1월에 양국은 이곳에서 아헨조약을 체결하여 그 우정을 재확인했습니다

아헨.


당일치기로 보기에 약간 아쉽지만, 분명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서지훈'카리스
19/06/10 00:17
수정 아이콘
사진이 거꾸로
Conan O'Brien
19/06/10 00:37
수정 아이콘
여기가 아헨 공대 있는 그 아헨인가요?
그린우드
19/06/10 00:43
수정 아이콘
여기 가보고 싶은데 제가 유럽여행 갔을때는 지금 정도의 역덕이 아니라서 아무것도 모르고 대도시만 돌고 왔네요
Jedi Woon
19/06/10 04:20
수정 아이콘
역덕이나 교회사, 건축에 관심 많은 분들에겐 가볼만한 곳이죠. 그렇지 않은 일반 관광객은 하루짜리 유럽 어느 소도시 코스구요.
그리고 여기가 벨기에, 네덜란드 국경이 모인 곳이라 핸드폰 기지국이 네덜란드로 잡히다 독일로 잡히다 오락가락 하는 곳입니다.
독일 유심 멀쩡한데 갑자기 네덜란드로 로밍됬다는 문자가 와서 황당했었죠 크크
19/06/10 04:48
수정 아이콘
2차대전때 무사했나보네요 다행
응큼중년
19/06/10 09:32
수정 아이콘
거꾸로 봐도 멋지네요. 잘 즐기고 오세요.
MC_윤선생
19/06/10 09:50
수정 아이콘
샤를마뉴라면 .. 아스톨포밖에 떠오르지 않아ㅜㅜ
사랑기쁨평화
19/06/10 19:12
수정 아이콘
사진이 꺼구로니 한동안 피카소 그림 같은건가 유심히 살펴봤네요.
19/06/10 20:46
수정 아이콘
신혼여행에 휴양지, 쇼핑대도시를 제끼고 역사소도시라니..
인생을 건 도박에 성공하셨군요!
19/06/10 22:04
수정 아이콘
결혼 축하드립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1498 [일반] 홍콩의 범죄인 인도조약이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61] 홍승식14773 19/06/15 14773 10
81496 [일반] 친일파, 6.25지휘관, 사학재단, 국회의원 김석원이란 사람 [45] 10211333 19/06/15 11333 10
81495 [일반] 간단히 쓰는 넷플 다큐 추천작들(주관적) [35] 평범을지향15088 19/06/15 15088 7
81494 [일반] 法 "성폭행 무혐의 결정나도 여성 무고죄 직접 증거 안돼" [151] 삭제됨16166 19/06/15 16166 5
81493 [일반] 홍콩에서 불리는 임을위한 행진곡 [28] 어강됴리12853 19/06/15 12853 12
81491 [일반] 홍콩 대학생들이 한국어로 쓴 호소문 [109] 미적세계의궁휼함17144 19/06/14 17144 46
81489 [일반]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왜 바닥일까요? [83] 인간흑인대머리남캐12096 19/06/14 12096 3
81488 [일반] 국 이야기. [21] 유쾌한보살6596 19/06/14 6596 17
81487 [일반] 드디어 새차를 받았습니다. [34] 겨울삼각형11221 19/06/14 11221 1
81486 [일반] [여행기] 프랑스 신혼여행 후기 [24] aurelius9352 19/06/14 9352 11
81485 [일반] 차이잉원 "홍콩 사건, 일국양제 수용 불가 이유 보여줘" [24] 나디아 연대기13560 19/06/14 13560 3
81484 [일반] 자극적인 보도들이 불러온 음모론 참사 [102] 마법거북이16979 19/06/14 16979 11
81483 [일반] 궁내체고의 가수 various artist의 곡 듣고 가시죠. [36] 설탕가루인형10454 19/06/14 10454 3
81482 [일반] No.10 플레이메이커가 이끄는 언더독 팀의 매력 [9] 쿠즈마노프9320 19/06/14 9320 5
81481 [일반] 한때 내가 찬란했던 때의 추억 [10] 태양연어6543 19/06/14 6543 1
81480 [일반]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2척 어뢰 피격 추정 공격받아, 1척 침몰 [31] 후추통16390 19/06/13 16390 3
81478 [일반] 내가 스미싱에 당할 줄이야..... [72] handmade28853 19/06/13 28853 15
81477 [일반] 중국의 국가정보법 -전 국민의 정보원화 [20] 사악군9609 19/06/13 9609 14
81476 [일반] 리사수 : 인텔 중저가 라인업도 장사를 접도록!!( [90] 능숙한문제해결사16015 19/06/13 16015 2
81475 [일반] 개인적으로 느끼는 한국 보수의 스펙트럼(2) [67] Danial11201 19/06/13 11201 52
81474 [일반] 직원들에게 아이스크림, 붕어빵 사주는게 사내복지 해결책인가요? [108] 쿠즈마노프16690 19/06/13 16690 10
81473 [일반] 홍콩 범죄인 인도 반대 시위가 격화되고 있습니다. [49] 캐모마일11938 19/06/13 11938 10
81472 [일반] 고유정은 어쩌면 연쇄살인마일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55] 마빠이16158 19/06/13 16158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