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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27 18:44:20
Name Farce
Link #1 https://en.wikipedia.org/wiki/Cybele
Subject [일반]  최초의 여신과 고자 아들이 로마제국에 취직한 이야기 - 키벨레와 아티스 (수정됨)
지난 글 보기 : 고기가 먹고 싶었던 제국 - 아즈텍 : https://pgr21.net/?b=8&n=78859

저번 아즈텍 제국에 대한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종교라는 것은 참 괴상합니다.
빠지면 정말 모든 것이 말이 되는 매력을 가지는데,
음 이걸 밖에서 보면 말이지요...

사람들이 이래서 자신을 이해 못 해주는 이교도를 싫어하는 거라니까요.

오늘 할 이야기는 최초의 여신 '키벨레(Cybele)'와 그의 남편이자 아들이자 고자인 '아티스(Attis)'의 이야기입니다.
cybele-et-attis
this-is-crazy
[아이고 맙소사... 이걸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한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좀 풀어서 적는게 좋겠지요?
시작이 조금 느려도 재미있는 이야기니까(그리고 남자라면 아플 수도 있지만...) 한번 같이 들어주시겠어요?

사람은 동물의 일종입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음식을 주워 먹고 다니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동물은 네 발로 기어 다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국 언젠가는 두 손을 (그렇죠, 발이 아니라!) 어딘가에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80px-G-bekli-Tepe-Urfa
터키에 존재하는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유적은 인간이 지금으로부터 만 이천년도 더 전에,
주워먹기를 포기하고, 한 곳에서 식물을 기르는 행위를 시작했음을 알려줍니다. 바로 농경의 시작이지요.

그런데 최초의 농사가 먹고 살기위한 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이 사람들이 주변에 쌓아놓은 돌덩이가 많습니다.
그것도 무슨 실용적인 쓸모가 있는 돌덩이가 아니라, 힘들게 깎아서 하늘을 향해 세운 맨들맨들한 돌덩이들이요.

즉 괴베클리 테페는 하나의 신전도시였습니다. 
수천 명을 부양했는데, 이게 수천 명을 부양하다 보니까 신전도 생긴게 아니라.
신전에서 수천명 을 부양하다 보니, 농사법이 개발된 게 아니냐는 상상도 못 한 역발상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로 대표되는, 풍요, 다산, 여성성의 상징 덩어리는 인간이 최초로 만드는 '예술품'의 원형이었는데요.
괴베클리 테페로부터 수천 년 뒤 유적인 "차탈회위크(Çatalhöyük)"의 경우에는 
제대로된 '신상'이 여러 개 발견됬습니다. 이 '신전'의 주변에는 농경지가 만들어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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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을 바쳐, 나의 총애를 얻어라.]

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지금 터키라는 나라가 있는, 소아시아는 최초의 농경지이자 최초의 종교발상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 인류 최초가 아니라 해도, 상당히 빠르게 독자적으로 농경과 종교가 시작된 곳인 것은 분명하지요. 

IE-expansion
[소아시아는 철기시대를 거쳐서, 인도-유럽어족의 문화권의 영향권에 놓이게 됩니다.] 

아직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퍼트렸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멀리까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정복하기에는 너무 인류에게 이른 시기라, 
보통 농사법과 장사법을 타고 인도-유럽어족의 언어와 문화가 퍼지고, 기존 종족들이 동화되어 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누군가는 인도-유럽인들이 농사법을 발명하여 자신들의 언어와 함께, 농사법을 퍼트린 자들이라 하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오히려 농사꾼들의 마을을 파괴하고 지배한 최초의 유목민들이었다는 정반대의 가설도 있습니다.

마침 이때 즈음 일어난 대혼란기를 역사학자들은 이름도 무서운 "청동기 시대 붕괴"라고 하는데요.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철기시대가 열리는 시점입니다.
철로 농기구를 만들어서 인구는 폭발했고, 철로 무기를 만들어서 전쟁이 기존시대보다 사람을 확실하게 죽이는 행위가 되자,
뭐 다음에 일어난 일은,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인구이동과 정복전쟁이었고, 역사기록은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이미 미노스 섬을 중심으로 문명을 세워나가던 그리스인들의 예시를 들자면,
기존에 잘 만들어서 쓰던 문자체제가 한번 다 잊혀지고 
(이때는 온라인 백업이 없었으니, 쓰는 법을 아는 사람이 많이 죽고, 있는 기록도 많이 박살 나면...) 
처음부터 새로운 문자체제를 다시 발명해야 했던 '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문자를 발명하고, 다시 문명을 세운 그리스인들은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번에 그리스인들이 선택한 방법은 고작 '도시국가'였습니다.)
자신들의 땅 바로 북부 발칸 반도에서 괴상한 모자를 쓰고 다니던 양치기들이었던, 프리기아 사람들이 
그 사이에 바다를 건너서 소아시아에 왕국을 세운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어떻게 발견했느냐고요?
트로이 전쟁을 할 때, 적국 트로이와 동맹국이면서, 그리스 군인들이랑 말이 통했거든요.

Phrygian

[요 괴상한 양치기 모자, 또는 프리기아 모자를 기억해주세요.]

프리기아와 그리스는 같은 문화권에 속했기에, 신들의 체제를 공유했지요. 세부적인 사항은 조금씩 달랐지만요.
이들의 '키벨레' 여신은 그리스 본토의 '데메테르' 신앙에 해당했습니다. 땅, 곡물, 재생의 여신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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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유행했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신 분이라면 '데메테르'라는 이름이 친숙하실 겁니다.]

다만, 프리기아인들은 키벨레를 '아주 오래된, 산속의 여신', '산속의 어머니', '모든 것의 어머니'라고 '따로' 불렀습니다.
이미 그 시대 사람들이 키벨레와 데메테르를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로마인들조차도 자신들의 비슷한 여신 '케레스'를 '데메테르'와 동일시해놓고도,
키벨레를 따로 다른 여신으로서 가져와서 숭배했다는 점에서, 키벨레만의 특별한 점이 있었다는 것이 추측 가능합니다. 

이게 여러 신을 숭배하다 보니 생긴 오류라고 볼 수도 있지만,
프리기아인들이 아까 위에서 보고 오신, 이미 소아시아에서 숭배되던 '대지모신'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즉 키벨레가 인류 '최초의 여신'이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재미있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증명은 어렵지만요.

Cybele-enthroned
[곡물을 바쳐, 나의 총애를 얻어라.]

그리고 키빌레는 (잠시 후 보다 자세히 설명할) 아들 아티스와 함께 로마에 취직합니다.
2차 포에니 전쟁시기 (기원전 218 ~ 202년)를 전후해서 로마인들이 온갖 종류의 신들을 사방에서 다 모셔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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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지역강국 중 하나만의 승자만 남는다면? 제국이 탄생합니다.]

로마와 카르타고라는 두 개의 지역강국 사이의 전쟁은 로마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제 로마공화정을 이은 로마제국이 두 지역강국의 영토를 모두 지배할 체제로 등장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제국은 하나의 거대한 이념이 필요했습니다.

기왕 제국이 있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같은 날에 제사를 지내고, 울고 웃으며, 지도자를 뽑는게 좋으니까요.
일본의 '후지타 쇼조'는 제국을 만든다는 것은, 맞지 않는 달력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 생일이 아닌데도, 주변에 축하할 일이 없어도, 황제의 축하 잔치를 크게 벌여서, 먼 마을 사람까지 똑같이 알아야 하며,
마을 사람과의 계절과는 상관없는 새로운 달력이 새로운 휴일과 새로운 축일, 새로운 새해와 함께 배포되야 하고,
내가 곡식을 언제 걷냐가 아니라 제국 수도의 '추수철'에 언제 도착하냐가 더 중요한 그런 복잡한 시스템이요. 

그런데 봄에 축제 뭐하고, 가을에 추수 전에 행사 뭐하고, 겨울에 놀 때 놀이 뭐하고, 왕은 어떻게 새롭게 즉위하고...
이런 달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바로 특정 신을 믿는 사제들입니다. 어느 신의 달력을 쓸 것이냐는 문제가 발생하지요.

polytheism
기원전 27년 로마제국의 성립부터
기원후 380년 로마제국의 기독교 국교화까지
[알려진 서방의 모든 신이 새로운 제국의 지배신앙이 되기위한 신앙전쟁을 열게 됩니다.]

일단 낙제인 녀석들부터 추리고 시작하지요. 바로 로마 신들입니다. 
로마인들도 사람인지라 기도도 해야 하니, 이건 농사의 신이요. 이건 달의 신이요. 있기는 있는데,
아무래도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근동의 신들하고는 요즘 말로 '짬밥'이 달랐거든요.
이미 농경이 시작된 지 수천 년입니다. 그동안 고대 사제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너희 신화는 얼마나 자세하냐, 다른 신들이랑 안면은 텄냐? 
권능에 대한 증거가 전설로 내려오는 장소가 몇 개나 되냐? 우리 왕국 도시 이름이 누구누구 따온 건 줄 알아?
봐봐 여기 호수는 이 신이 파준 거고, 이 돌은 이 신이 악마와 씨름해서 세워준 거다. 너희 신은 뭐 했느냐?
우리 신은 말이야, 이런 효능도 있고, 이런 분야도 관리하고, 이런 것도 예언하고, 이런 전쟁도 이기고...
 
"로마의 옛 종교들은 요즘 '교회'라는 단어처럼 진부하고 흘러가 버린 존재였다. 
이에 대항하는 무신론과 영지주의는 지금도 그렇듯이 기존 체제를 말끔히 부수고, 인간에게서 희망을 앗아갔다.
민중의 소망에 대한 해답은 "동방의 빛(lux ex Oriente)"의 형태로, 알지 못하던 곳에서 찾아왔다.
이 시기에 제국을 따뜻하게 비추어준 것은 소아시아, 이집트, 근동의 신앙들이었다.
머나먼 동방에서 온 종교들은 서방 사람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삶', '살고 싶어지는 상태'를 주었다."
(Godwin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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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피라미드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로마인들에게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고대 유적'이었고, 관광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유럽인들이 공원의 일부를 이국적인 형태의 일본식 정원으로 꾸미듯이,
로마의 부자들은 이집트의 건축물을 본떠서 자신들의 정원을 꾸며서 자랑했습니다.

잠시 잠시만요.

[종교라는 잠시 단어를 잊고, 같이 상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부분은 좀 천천히 읽어주세요. 지금의 현대인이라면 너무나도 다르게 생각할 부분이라서 그래요.

잠시 잠시만요.

지금 '종교', '신앙'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어떤 신을 믿고, 어떤 교회 건물을 들어가냐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때는 고대입니다. 머나먼 고대입니다. 제대로 된 책은 있지도 않던 시절입니다.

이집트 신을 믿는다는 것은, 그들이 나일강에서 수천 년 동안 배운 모든 지식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 그동안 나일강을 따라서 어떤 조화에 따라서 수천 년 간의 범람이 있었는지, 
수천 년을 버틸 피라미드를 세울 왕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별을 통해서, 사제와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큰 물줄기와 어떻게 소통하고 재앙을 피하고 풍작을 얻어내는지 안다는 것입니다.

반면 그리스 신들을 믿는다면, 플라톤의 세상에 대한 통찰은 어디서 온 것인지, 세상은 어떻게 4원소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의 조화는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리스의 어떤 산과 호수의 정령으로, 
어떤 바닷바람으로 그동안 아테네 해군이 에게해를 지배했는지 안다는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페르시아의 미트라를 믿는다면, 하늘 모두, 12궁 모두를 지배하는 '태양의 왕'은,
하늘에서 각기 다른 별자리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전쟁에서 승리, 병의 치료, 건축의 견고함, 연애의 성공을 포함한
12가지 분야에서 복을 받을 수 있으며, 
수천 년 어치의 천문학자, 의사, 석공들의 연구자료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을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미신, 뒷산에 있는 님프들과 사티로스 같은 잡귀에게 홀려서 죽거나 실종된 사람이야기,
그리고 마을 의사가 쓰는 민간요법, 풍작을 주는 마을 행사 같은 동네 이야기도 빠삭해야, 
동네 인기인이되고 오래 건강히 살겠고요.

카르타고의 식인 괴물 몰렉에 대해 남은 기록을 연구한다면, 그리스의 바람의 신 제피로스를 믿지 않고도, 
몰렉을 믿던 티레와 같은 근동의 무역도시와 순풍을 타고 무역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두 신 모두를 이해하는 것으로, 최고의 뱃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요.
금지된 악마의 속삭임은 이렇게 달콤하게 시작되었을 겁니다.

그들의 과학, 그들의 역사, 그들의 행사, 그들의 언어, 그들의 행운과 실패와 성공.
모두 특정 신의 이름으로 적혔습니다. 

연금술사, 대장장이, 약사의 언어는 원소명이 없었어요! 상표명도 없었고!
장군, 모험가, 언론인, 시인의 언어는 통일된 사건명을 쓰지 않았고! 달력도 달랐습니다!

이러니, 
농사꾼은 그리스의 데메테르, 크레타의 레아, 이집트의 이시스, 프리기아의 키벨레, 트라키아의 디오니소스, 로마의 케레스, 
장사꾼은 그리스의 헤르메스, 이집트의 토트, 가나안의 바알, 페르시아의 아이온, 
군인은 그리스의 아레스와 헤라클레스, 로마의 마르스, 켈트의 이집트의 호루스와 오시리스를 
알아서 잘 섞어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신이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둥글둥글해서 이리저리 나이롱 신도로 적당히 믿기 좋은 신도 있었지만,
화끈한 광신을 권장하는 신들도 많았거든요. 
아니, 그들 딴에는 광신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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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 황제 엘라가발루스(Elagabalus)의 기행] 

대표적으로, 시리아 출신이었던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기행이 있습니다.
꼭 왕조 역사에 하나씩은 껴있는, 미륵보살... 아니 자칭 신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로마 다신교에 자신 또한 신으로서 껴놓고 싶어 했지만,
이 친구는 너무 심취했던 나머지, 자신이 시리아에서 믿고있던 바알 신앙의 한 종류를 강요했습니다.

바알 신앙은 지금도 유명하지요. 건강한 여자 사제와 건강한 남자 신도 사이의 성관계를 권장하는 것으로...
그리고 신과 직통되는 대제사장을 자처했던 엘라가발루스는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고, 
여장을 했으며, 향수를 뿌리고, 신전에서 매춘을 했다고 합니다.

음. 흥미롭지 않나요. 4년 만에 암살당해서 너무나도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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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만신전(판테온): 아무튼 엔간하면 받아줍니다. 제발 선만 지키라고 좀!]

그런데 단순히 "알려진 땅의 어머니 중 가장 유명한 형태" 정도로 키벨레의 자리를 마련해둔 로마인들이었지만,
곧이어서 아티스 신앙을 포함한 동방의 키빌레 교단이 같이 로마로 들어오자, 
만취폭력과 만취난교를 사랑하는 트라키아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 교단 못지않게
고자신 아티스를 숭배하는 '제정신 아닌 놈들'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프리기아인들은, 그리스 문화권의 땅의 여신들을 뛰어넘는 키벨레만의 고도의 종교체제를 만들었습니다.
그 신앙의 핵심은 바로 '키벨레'의 아들 되시는 '아티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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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님 늦둥이 순산하셨네요 ^^7]

아티스는 프리기아의 왕자 중 한 명이었으나 누명을 쓰고 도망쳐 양치기가 된 인물이었지요.
사람들은 아티스가 프리기아 양치기 모자와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다른 신과 구별했습니다.

키벨레는 불쌍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잘생긴 아티스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만물의 어머니보다는, 지상에 있는 수많은 유혹이 아티스를 빼앗으려고 했고,
결국 아그디스티스(Agdistis)라는 존재와 사랑에 빠지는데, 

Agdistis

아그디스티스는 원래 어떤 산의 이름이고, 제우스가 자기 어머니 가이아와 금지된 밀회를 즐기다가 흘린 '생명력' 덕분에,
태어난 존재였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아름다움, 
[그러니까 남성이고 여성이고 초월한 중성적 아름다움으로 아티스를 홀렸습니다.]
아티스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요.

키벨레는 아티스에게


you-are-gonna-kill-me

[그러게 왜 아그디스티스인가 뭔가 해서 이 모양이냐. 아이고 어머니 제가 죽는다고요.]

goza

[내가 고자라니!]

사죄의 뜻으로 거시기를 자르게 만듭니다.
버전이 워낙 많습니다만 
죄책감에 자진납세를 했다는 얘기도 있고,
어머니를 떠나보낸 괴로움에 홧김에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강제로 뜯어갔다는 (으아아아아아) 이야기도 있고,

아무튼 아티스는 과다출혈로 죽었습니다.

(Vermaseren 91-92)

그러나 키벨레는 다시 육체로부터의 모든 번뇌 (불교용어이지만, 워낙 적절해서 쓰겠습니다.)로부터 해방된 아티스를 되살렸고.
(어차피, 모든 육신을 가진 것, 대지, 재생의 여신이니까요.)

아티스는 다시는 한눈파는 일 없이, 키벨레가 물질, 물욕,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여신임에도,
그 어머니이자 아내인 키벨레를 내조하면서 사람들에게 정신적 깨달음, 즉 영적인 구원을 퍼트렸다고 합니다.

해피 엔딩이라고 말하면 될까요?

Relief-of-Archigallus

[아무튼, 갈루스(Gallus) (복수형 갈리(Galli))라고 불린 사제들은 전부 고자였습니다.]
그리고 키벨레 여신의 형상을 하는 것을 최고 미덕으로 여겨서, 화장을 하면서, 여장을 했고, 반지, 팔찌를 차고
색색으로 염색된 옷을 입었습니다. 특히 머리의 경우에는 기르는 김에, 
키벨레 여신을 따서 호화롭고 복잡한 형태로 티아라 같은 장식물을 올린 머리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피의 날(dies sanguinis)이라는 날에는 단체로 입단식 겸 고자되기를 펼쳤고요.

당연히, 로마의 키벨레 신전 바깥으로 종교행사가 없을 때는 나돌아다니지 말 것,
그리고 로마 시민 중에서 새로 발탁해서 쓰지 말고, 
사제가 더 필요하면 소아시아에서 더 수입해오는 것이 자체 규정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급 사제들은 거세하지 않은 로마 시민 중에서도 충원되었지만,
상급 사제인 아치갈루스(Archigallus)는 항상 소아시아 출신의 열심을 당하는 신도들이었지요. 아아.

(Vermaseren 97-98)

로마인들이 '위대하신 어머니 (Magna Mater)'라고 부를 정도로, 
키벨레는 대표적인 모성의 상징으로서 숭배되었습니다.
로마의 유노 또는 그리스의 헤라가 근엄하고, 가정을 수호하며, 처녀들에게 (아르테미스처럼) 몸조심을 가르친다면,
키벨레는 그리스 동쪽의 신앙들이 모두 그랬듯, 디오니소스처럼 희생제사, 참회, 기원, 풍부, 풍요, 번식 같은 좀 더 
짜릿한 분야를 담당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로마 달력에서 키벨레의 축제 이름은
"메갈레시아(Megalesia)"인데요. 4월 4일. 먹고 노는 축제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먹고 놀다가, 세상의 이치나, 지나친 욕심에 대해서 인생의 후회가 오신다면,
갈루스들은 항상 아티스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지요.


taurobolium
타우로볼리움(taurobolium)이라는 '피의 세례'의 형태로 말이지요.

키벨레 교단은 모든 남성이 아티스를 따라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고자가 되는 것을 장려했습니다만...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타우(tau) 그러니까, 소로 대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스님들이 머리를 미는 것처럼 현실의 번뇌에서 해방되고 새로 태어나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기독교의 세례의 기분 좋은 새 시작과는 달리, 상당히 찝찝하면서도, 불완전한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사제들은 끔찍한 모습이 되었고 (pontifex visu horridus), 무리는 경배했으나 가까이 오지 않았다 (adorant eminus)]

왜냐면, 이건 차악의 선택이니까요. 진짜배기는 자신의 몸으로 증명해야...

(Vermaseren 103)

키벨레와 아티스 신앙은 계속해서 로마 제국의 종교관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결말을 알고 있지요.
예수 그리스도와 크리스트교 교회가 로마 제국의 공인종교로서 선택되었다는 것을요.

Buddy-christ
[아아. 그분이 오셔버렸어.]

다른 신 모두를 거부한 사막 유일신에서 시작되어, 로마 제국 안에서 꽃핀 보편주의 교회.
어떻게 기독교 교단이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을 따로 써야 할 것이기에,
이번 글에서는 언급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이번 글의 주인공은 키벨레와 아티스니까요.

키벨레와 아티스 신도들은 점차 크리스트교를 믿는 로마 제국에게 핍박당해 사라졌지만,
그들이 모두 죽었고 이들의 신앙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가혹할지도 모릅니다.

pieta

[모든 옛 신들이 그렇듯이. 새로운 신에게 자리를 넘겨주었을 뿐이니까요.]

"아티스가 로마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티스는 자신과 연관이 있는 키빌레 여신만이 강조되는 방식으로 탄압당했다.
아티스라는 이름은 로마인들 사이에서 '성불구자(eviratus)'라는 의미로 쓰였다. "
(Vermaseren 178)

"(원로원 의원)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Quintus Aurelius Symmachus)와 함께 귀족과 학자 무리가 
동방에서 전해진 모든 신앙을 수호하고자 했다. 먼젓번 트라야누스 황제가 기독교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것처럼,
이제 (기독교도 황제에게) 기존 로마에서 받아들여지던 신앙에게 관용을 부탁한 것이다. 
그러나 심마쿠스는 밀라노의 대주교 암브로시우스와의 논쟁에서 패배하였고, 
대주교는 자신이 섬기던 테오도시우스 1세를 비기독교인들을 마침내 굴복시킨 황제,
즉 (기독교를 첫 공인시킨) 콘스탄티누스 황제보다 위대한 자로 만들었다."
(Vermaseren  180)

키벨레와 아티스의 이야기는 종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누군가에게 종교는 전혀 의미 없는 협잡입니다.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신심은 보이지 않고 지배욕이 가득 찬 인간만이 보이지요.
다른 누군가에게 종교는 뒤틀린 광신입니다.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망상, 자살, 자해의 허공이 존재하지요.

하지만, 과학이 없던 시대, 과학이 아니라, 신에 대한 경외로만 세상이 적히고 읽히던 시대,
아직까지는 신에 대한 광신이 시대착오적인 실수가 아니었던 시대,
저는 오늘 수많은 신들이 도전했던 보편제국의 종교에 도달하지 못한 어떤 실패한 신앙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옛 여신, 
어쩌면 인류에게 최초로 모든 것을 시작하라고 농사를 내려줬을지도 모르는 잊힌 여신에게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까요. 

참고 도서: 
Vermaseren, Maarten Jozef. "Cybele and Attis: the Myth and the Cult". Thames and Hudson, 1977.
Godwin, Joscelyn. "Mystery Religions in the Ancient World". Harper & Row,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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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11/27 18:59
수정 아이콘
100억 받기VS고자되기를 실천한 멋진 로마인들.
심영, 사마천 선생님이 꿈꾸는 곳이 저기 있었네요
18/11/28 04:51
수정 아이콘
궁예가 말한 깨우친 종교 정치의 정체가 설마 이것이었을까요. 크크크...
cluefake
18/11/27 19:48
수정 아이콘
그니까,
그 시절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보다는
테크트리 타는 것에 가까웠다는 뜻이네요?
필요하면 문명 정책 전통 자유 이런거 섞어찍듯 섞어 믿고?
18/11/28 03:40
수정 아이콘
당 부분은 비약이 좀 있습니다. 우리가 유교를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해서 복희나 여와를 믿은 것이 아닌 것처럼요.
18/11/28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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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 이와 기, 음양, 사주팔자, 궁합, 풍수, 종묘제례, 사서오경, 제사상...
비약이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남의 나라 제사법, 생각하는 법, 세상을 구성하는 법 빌려온건 마찬가지니까요.

자본주의(프로테스탄티즘), 음란마귀, 천국과 지옥, 크리스마스 선물, 서구 판타지 문화산업 상품 (영화, 게임, 소설 등등)을 지금 현대 한국이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해석을 또 늘려나가듯이요.
18/11/28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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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부분을 빌려와서 수용하는 건 비약이 아닙니다. 다만 문화의 부분을 빌려오는 것을 신을 믿는것과 동치시키면 그것은 비약이며 허구지요. 물론 낭만적이기야 합니다만...
18/11/28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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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인식론(epistemology)의 문제입니다. 지금은 과학이 있으니, 아 이건 문화고, 이건 미신이고, 이건 신학이다라고 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만, 당시에 제사장이 신 없이 음악을, 약사가 신 없이 약초를 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제마와 허준에게 오행없이 약을 설명해달라고 할 수 없듯이요. 복희와 여와는 유불선에 들어가지 못한 중국 신화의 창조신들입니다. 하지만 공자, 부처, 신선은 어떻습니까? 정치논문에 공맹이 빠진적이 있습니까? 선비의 시에 충효와 신선에 대한 비유가 빠진적이 있습니까? 그걸 서구 기독교 문명에게 복잡한 주석 없이 읽게 만들 수 있습니까? 반면 지금 한국의 서구 상징들에게 익숙한 화자가 아니라, 유교 구신론을 지은 박은식이 플라톤의 정치논문 '국가' 또는 단테의 예술작품 '신곡'을 읽으면서 무엇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서구를 이해하면서, 서구의 고대인이 느꼈던 경외의 일부분 또한 체험하게 되는 것이고, 서구 또한 동양인의 해석을 통해, 그들이 미처 알지 못할 과거의 사상들의 조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8/11/2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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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물체를 아는 것은 그 물체의 부분을 아는 것과 같지 않다는 말을 했습니다. 거기에 기반해서 생각해보죠.

사람이 나무라는 물체를 보고 아는 것은 보는 행위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여기에 대해 부정하신다면 특이한 관념론적 인식론을 주장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나무를 알기 위해서 그 잎사귀들이 어떻게 빛과 상호작용하여 녹색 빛깔을 내게 되는지, 혹은 그 나무가 어떻게 영양분을 섭취하고 살아가는지 알지 못 해도 나무가 거기 있다는건 인식할 수 있는 것이죠.

어떤 문화에 있어 신이라는 것도 비슷합니다. 제우스나 아폴론이 그리스 문화에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필연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4원소설을 가능케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추가로 애초에 원소설은 소아시아의 밀레토스인부터 그 역사가 내려오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와는 더더욱 관련이 없지요.). 따라서 그들의 신을 받아들이는 것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죠.

누군가가 한국의 무당이나 점괘문화를 이해해야 한국의 현대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그 주장이 아마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겁니다. 큰 접점이 없기 때문이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와 비슷합니다.
18/11/28 08:25
수정 아이콘
(수정됨)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특정 신에 대한 의식적인 숭배나, 신학적인 이해가 없어도, 특정 문화권의 문물을 향유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라는 말씀이시군요.

부분적으로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민간신앙, 복희, 처용, 고블린이야 큰 그림을 이해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겠지요. 전자역학을 몰라도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이데아, 원자론, 원죄 같은 핵심원리를 모르고도 완전히 남의 세계, 사상, 문물의 조화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제가 말하는 인식론(Epistemology)이란, 지금 과학의 자연법칙(Law of Nature)과 같은 하나의 닫힌 계를 말합니다. 신들이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원리"로서 존재하는 이치구조요. 그것이 남의 것에서 빌려온 이야기, 사상, 발명품의 짜집기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논문에 쓰이는 학회의 언어, 로고스로서의 신과 신앙을 저는 다루고 싶었습니다. 발명품만 사오고, 이공계를 멸시하면서 나라를 세울 수는 없듯이요.

연금술사들의 원소기호였던 별자리와, 뱃사람들의 GPS였던 별자리, 조선이라는 국가의 윤리와 그에 마땅한 법을 만들던 이와 기 / 사단과 팔정, 그리스 문학의 비유법이던 반신 영웅들, 기독교 문학의 비유법이던 지옥의 아홉 구덩이들처럼요.
18/11/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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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와 재밌네요 해당 분야의 지식체계를 신으로 설명하는 해설이 아주 인상깊어요
18/11/28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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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뛰어난 문학작품이고, 전투보고서이며, 역사기록이고, 재미있는 전설인 '일리아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신이시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현대소설처럼 적혀있는게 결코 아니었지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째도피중
18/11/28 00:22
수정 아이콘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런 자료 매우매우 환영합니다.
18/11/28 04:58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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