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09/17 00:32:01
Name 말랑
Subject [일반] 일본여행 이야기
작년 이맘때쯤,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목표는 오로지 하나. 디즈니랜드였습니다.

당시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꼽자면 최우선으로 나올 것이 바로 디즈니랜드 한 번 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연이 좋아 친구와 함께 일본여행 같이 할 겸 가게 되었죠. 솔직히 일본 다른 곳에서 뭐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합니다. 디즈니랜드의 기억만 오롯이 박혀있지요. 첫 날은 아쿠아리움을 보았고, 둘째 날은 아키하바라를 쫙 돌았습니다. 셋째 날이 디즈니랜드였는데 계속 비가 오다가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 즈음에 그치더군요.

도쿄 디즈니랜드의 피날레는 신데렐라 성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적당히 영상미있게 편집해서 쏴 주는 것입니다. 신데렐라 성이 저에게 보여준 것은 디즈니의 추억이었는데, 저는 그 추억에서 제가 살아온 날을 조금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일본 여행을 함께 갔던 걸 부러워했던 나날.
그런 친구가 없던 게 왠지 서글펐던 시절.
여자친구의 장애를 핑계로 여행 한번 제대로 한 적 없던 멍청한 사랑.
분명히 그럴 여유가 있었는데도 아니야 됐어 하며 숨을 놓았던 기억.

조금 더 인생을 효율적으로 놀아봤으면 어땠을까.
내가 그 때 조금만 더 여유를 부렸다고 해도 지금이랑 그렇게 다른 삶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 때 한 번 눈 딱 감고 결심했으면 그녀와의 추억도 더 컬러풀했을 텐데.
왜 나는 이제야.

왜 나는 이제야....


저는 1년 이상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 경력은 디자인과 장비관리 뿐인데 얼마 전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는 예비 프로젝트 매니저라며 생전 처음 해보는 프로젝트 사무직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삶이라는 게 워낙 예측불가능이라지만, 이렇게 흥미도 없고 능력도 없는 일에 오만 스트레스와 야근을 받으며 월급 받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도대체 일학습병행제는 뭔데 절 퇴직도 못하게 하는 걸까. 물론 지금 나이에서 더 구직이 늦어지면 진짜 큰일난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백수가 아니니 백수가 그립습니다. 평생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제야 조금 회한이 쌓입니다. 그 전까지 한 일은 열심히 하면 늘었는데, 이번 일은 열심히 해도 늘 것 같지 않습니다. 불안정에 대한 안정감이 나날이 터져나갑니다.

그냥 오늘도 그 때 찍은 신데렐라성을 보면서, 철이 없어야 했을 때를 조금은 후회합니다.
이렇게 살 줄 알았으면, 조금은 더 즐겁게 살아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루트에리노
18/09/17 06:23
수정 아이콘
힘 내세요 인생에 좋은 날이야 또 오겠지요
이민들레
18/09/17 10:17
수정 아이콘
아직 결혼도 안하신고 같은데.. 충분히 놀시간 많이 남았어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8268 [일반] 인도적 체류자도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11] 달과별6576 18/09/18 6576 6
78267 [일반] 제 주변 여성들 이야기 [59] 히화화14491 18/09/18 14491 10
78266 [일반] (생각거리) 기억은 나인가 [33] 유유히6293 18/09/18 6293 9
78265 [일반] 넷플릭스 신작 애니 '힐다' [5] 인간흑인대머리남캐11078 18/09/18 11078 3
78264 [일반] 고려 판 여진족 시빌워 - 누가 진정한 여진의 왕인가? [17] 신불해14562 18/09/18 14562 56
78263 [일반] 문재인과 페미니즘 [283] 윤광15271 18/09/18 15271 51
78262 [일반] 경기의료원 수술방 CCTV 도입 결정 [78] ZzZz10198 18/09/17 10198 13
78261 [일반] 다스뵈이다 32회 정세현, 시리아 그리고 언인플루언싱 [17] 히야시13935 18/09/17 13935 15
78260 [일반] 미용실 남자모델 되어주실분 계실까요? [35] 다비치이해리9802 18/09/17 9802 1
78259 [일반]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다? [316] 아하스페르츠18716 18/09/17 18716 72
78258 [일반] 카카오톡 5분내 삭제기능 도입. [39] 캠릿브지대핳생11043 18/09/17 11043 1
78257 [일반] 여론조작 및 선거개입 정황이 담긴 이명박씨의 녹취록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71] The xian13773 18/09/17 13773 35
78256 [일반] 일하다 죽는 사람이 남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찾아보니.... [177] 마르키아르17787 18/09/17 17787 36
78255 [일반] 영화 <미쓰백> 예고편에 대한 감상 [8] GGMT6015 18/09/17 6015 1
78254 [일반]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남녀차별? [112] 완자하하16824 18/09/17 16824 63
78253 [일반] 눈치 안보는 아이 [16] Secundo5289 18/09/17 5289 12
78252 [일반] 일본여행 이야기 [2] 말랑6174 18/09/17 6174 11
78251 [일반]  하나뿐인 내편을 잠깐 본 소감. [21] 아타락시아19188 18/09/16 9188 2
78250 [일반]  [뉴스 모음] No.194. 게임업계의 노조 이야기 외 [26] The xian9496 18/09/16 9496 18
78249 [일반] 첫 한국형 시험발사체 ‘누리호’ 10월25일 발사한다 [51] 홍승식9167 18/09/16 9167 2
78248 [일반] 눈치보는 아이 [36] 혜우-惠雨10587 18/09/16 10587 27
78247 [일반] 황당한 대리운전 [105] 비개인오후18344 18/09/16 18344 4
78246 [일반]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상품 국립굿즈 충동 구매기 [50] 김솔로_35년산14699 18/09/16 14699 6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