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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9/13 00:25:55
Name 치열하게
Subject [일반] 쫄아야 한다

‘쫄지말고 자신감을 가져라.’


저와 같은 모태솔로가 참지 못하고 울분을 토하거나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이 의기양양하게 하는 조언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자신감을 느끼는 것은 모든 일에 중요합니다.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든, 글을 쓰든, 피아노를 치든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즉 지나가던 개도 할 수 있는 말이죠. 알고 싶은 중요한 것은 쫄지 않고 어떻게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느냐인데 말이죠.



요리할 때도 중요합니다. 남의 요리에 쫄지 말고 자신의 요리를 만드는 것.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과감하게 재료를 손질하고 비비고, 굽고, 튀기고, 찌고, 끓여야 합니다. 단 한 가지만 빼고요. 자신감은 차치하더라도 쫄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밖에 나가서 사 먹을 때 된장찌개를 시키지 않은 이유는 김치찌개, 생선구이 등과 같이 집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된장찌개가 쫄지 않은 것도 큽니다. 그 걸쭉하고 찐한 느낌. 깊은 된장의 맛. 한 숟갈 떠서 밥에 부으면 눅눅하게 들러붙어 입에 넣으면 짭짤한 맛 된장과 다디단 밥의 맛이 어우러집니다.



한창 쫄아버린 된장찌개와 함께면 밥 한 공기는 뚝딱이었습니다. 그래서 다 먹으면 더 해달라고 하고, 새로운 된장찌개를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이 자신감 넘치는 된장찌개는 그 맛이 아니라 경쾌했던 숟가락이 시무룩해집니다. 어쩌면 제 소나기 밥은 이런 비극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는 떡볶이에도 해당합니다. 어렸을 적 저는 떡볶이 포장마차 앞에서 20분 넘게 서서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500원어치 떡볶이를 먹으러 갔을 때 끓고 있는 떡볶이를 본 기분은 우울했습니다. 떡볶이 국물이 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당당하지만 밍밍한 국물도 맛있긴 해도 역시 진득하게 쫄아 있는 국물보다는 못 합니다. 20분의 기다림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습니다. 다만 현재 나이가 들어서인지 팔팔한 국물을보면 그냥 다음 기회를 노립니다.



수프도 당연히 걸쭉해야지요. 군 시절 남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던 햄버거 식단을 좋아한 것도 찐득한 수프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햄버거 빵에 딸기잼이나 포도잼을 발라 수프에 찍어 먹으면 소시지야채볶음이부럽지 않았습니다. 수프가 너무 묽어서 빵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 제 눈물과 같았습니다. 쨈과 같이 수프가 빵에 찰싹 붙어있어야 웃음이 생겼지요.



그렇다고 제가 짜게 먹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곰국을 먹을 때 소금을 아예 하나도 넣지 않고 먹기도 하니까요. 범위가 넓어 웬만한 짠 것도 싱거운 것도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쫄아있을때의 맛을 너무 좋아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안 그러신가요?





이런 저지만 불행히도 근래 10년 넘게 먹지 못한 쫄은 맛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보통 항상 위풍당당하기 때문이죠. 바로 오징어무국. 빨간 국물에 오징어와 무가 어우러진 이 국은 칼칼하고, 얼큰하고시원한 맛을 자랑합니다. 맛있죠. 하지만 이 오징어무국인 쫀다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먹어보았습니다. 쫄아있는 오징어무국. 그것은 마치 소스와도 같습니다. 밥에 비벼 먹으면 그 어떤 밥보다 맛있었습니다. 오징어볶음이나 낙지 볶음과는 다릅니다. 그런 것들은 매운맛이 강조되지요. 오징어무국은 달랐습니다. 매콤하면서도 뭇국에서 나오는 시원함.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저에게는 또 그 점이 좋았지요.



보통 국에 밥을 말아먹는다는 표현을 쓰지만 쫄아버린 오징어무국은 비벼 먹는다는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맛있게 비벼 먹을 땐 김을 잘게 잘라서 넣으면 그 맛이 더해지지요. 평소 잘 먹지 않던 무도 잘 먹게 됩니다. 숟가락으로 국을 떴을때 투명함 없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빨간 바다, 아니 빨간 늪. 저는 그 늪에 허우적대는 것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최근엔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 어머니와 할머니께 물어봐도 쫄아서 그렇다는 말만 들었지 그 후엔 투명한 오징어무국이었죠. 그래서 언젠가 제 손으로 재현해보려 합니다. 그 빨간 늪을. 얼마 전 친척 형에게 큰어머니께서 그런 스타일로 만드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쫄 시간은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쫄아버린 맛은 어떤 맛인가요?


===============================================================


본문은 얼마 전에 썼던 글이고,

여기서부터는 자랑입니다.






hSZ5yhS.jpg
j7ZH6An.jpg

이 쫄아있는 자태.

군침이 돌고 없던 식욕을 자극하는 이 모습

당장 검색창에 오징어무국을 쳐보시면

이런 모습의 오징어무국은 찾기 힘드실 겁니다.

위 본문처럼 실제로 저 오징어무'국'에 밥을 말아보면

밥을 만게 아닌 비빈것 처럼 변합니다.(비빈 사진은 개인차로 인해 모양새가 안 좋을 수 있어 제외했습니다.)

맛은 뭐 말해 무엇하겠습니다.

옛 맛을 재현해 주신 어머니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만드는 법이야 그냥 쫄고 쫄리고 쪼리는...... 다만 오징어를 너무 오래 끓이거나 볶으면 딱딱해지니 따로 넣으신다고.


한편으론 슬프기도 합니다.

쫄아야 맛있는데

쪼그라든 간처럼

양이 줄어드니까요

하지만

이런 모순(?)을 견뎌야

혀는 맛의 진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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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3 00:29
수정 아이콘
새벽에 이게 무슨 ㅠㅠㅠ 너무하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18/09/13 00:30
수정 아이콘
글의 오프닝과 주제의 불일치가 아름답습니다.
18/09/13 00:44
수정 아이콘
Don't be a chicken?

No! let's be a chicken!
치킨은 사랑이니까요~
걸그룹노래선호자
18/09/13 01:03
수정 아이콘
요즘 인터넷 이슈를 보면 남성은 감히 기펴고 다니지 말고 혹시 내가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불편함을 끼치지 않을까 스스로 조심하면서 다녀야하기 때문에 쫄아야하는게 맞습니다.

인터넷 이슈에 의한 여성단체의 진정한 요구는 나한테 절대 티끌만큼도 닿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고, 나를 불편하게 하지도 말아야하니, 알아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성이 문제를 제기하면 남성은 감히 반박하지 말고 반드시 상대 여성의 입장이나 헤아려서 사죄나 하라는 것입니다. 여성과 시비가 붙는다는 사실 자체를 남성이 두려워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즉 남성이 여성한테 쫄라는 얘기죠.

여성단체의 논리는 "남성이 여성한테 쫄아서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된다면 성범죄는 자연스럽게 줄어서 안전한 사회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이 정도 되겠죠.
걸그룹노래선호자
18/09/13 01:29
수정 아이콘
그러나

무엇 때문에 여성을 상대로 기상천외한 짓거리를 해대는건지 알 수도 없는 "이상한 남성" 들을 조준사격하는게 아니라

그냥 성별이 남성이면 다 똑같은 놈들이지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게 문제겠죠. 이렇게 생각하는건 일부 여성 뿐만이 아니라, 일부 남성도 존재합니다. (자기 환경에서 봐온게 그런거라서 남성은 다 그런짓하는걸로 알고 있거나, 나만 나쁜놈일 순 없으니까 "어이 거기 남자들, 너네도 똑같으면서 깨끗한 척 하기 있기없기?" 이런 식으로 물타기하면서 나만 나쁜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고 싶어서 그런다거나)

남성이고 여성이고를 떠나서 규칙에 구멍이 뚫려있으면 그 구멍을 이용해서 이득을 보려는 인간이 나오는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지금처럼 말만 그럴듯하게 해서 신고하면 들어주는 체제 하에서는 반드시 무고하게 엮이는 남성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일반 남성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1. "이상한 남성"의 기상천외한 짓거리 때문에 남성이라는 성별 자체가 잠재적 뭐시기로 몰리는 상황에 분노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2. 불운하게도 무고하게 엮여서 법적 절차로 가게 됐을 때, 여성 측 입장만 잘 들어주고 본인(남성) 입장은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이 공포감을 일으킬겁니다.

한번도 이상한 짓 안 하는 남성은 있어도, 한번만 이상한 짓 하는 남성은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상한 짓을 하는 남성은 꼭 여러번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니(이상한 남성과 당한 여성이 1대1로 대응되는 것이 아님)

[당한 여성은 (남성의 생각보다) 많고
이상한 남성은 (여성의 생각보다) 적다는]


말을 동시에 하여도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이것에 대한 체감 차이가 크다는 점이 성별 간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로 쓰려니까 이만 줄입니다.
걸그룹노래선호자
18/09/13 02:29
수정 아이콘
죄송합니다. 딱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이런 여성단체 주장으로 인해 나타나는 적폐가 있는데 개별 사건 하나하나를 따로 보려하지 않고 오직 그들의 목표, 그들의 입맛에 맞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무조건 반발하려든다는데 있습니다.

사건 경우의 수야 무궁무진하게 많고 당연히 하나하나를 따로봐야하는데 개별 사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로 본인들(여성단체)의 입장에만 깊이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남성이 무고한 것으로 보는게 올바른 사건이더라도 본인들 입장에 맞지 않는 결론이기 때문에 거세게 반발하는 것입니다. 본인들의 입장을 헤아려야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다른 이들의 입장을 살펴볼 생각은 하지도 않는 이중성(내로남불)인 것입니다.
이방인K
18/09/13 02:45
수정 아이콘
무슨 말씀인진 알겠는데 이런 글에서조차 성대결 댓글을(그것도 장문댓글 세 개씩이나) 봐야하는 건 좀 너무하네요.
걸그룹노래선호자
18/09/13 02:47
수정 아이콘
"쫄아야 한다" 라는 제목을 보고 생각나서 적은 댓글인데 쓰다보니 계속 보충해야할 내용이 생각나서 길게 적게 되었습니다. (원래 원댓글만 적으려 했는데 그렇게 끝내면 여성단체를 옹호하겠다는 말로 보일까봐 보충설명이 길어졌습니다.)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댓글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계속 내용보충이랍시고 장문댓글 다는게 제 고질병이었는데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지 오늘 또 도졌나봅니다. 꼭 고치도록 할겁니다. 죄송합니다.
이방인K
18/09/13 08:08
수정 아이콘
릴랙스하시면 좋겠습니다.
18/09/13 11:26
수정 아이콘
심정은 이해가 가나 번지수를 잘못 찾으신 것 같네요.

오늘도 가해자 안당하는 무사한 하루 되세요ㅠㅠ
아점화한틱
18/09/13 01:54
수정 아이콘
아오... 꼭 밥때 아닌 때에 정성스레 사진까지 첨부해서 올리시는 분들의 정성은 진짜... 닉 몇개 기억하고있습니다... 라면 물올립니다...
부화뇌동
18/09/13 04:40
수정 아이콘
크크 이런 진지한 오프닝인척하는 뜬금글이라니 센스 굿이네요
doberman
18/09/13 06:03
수정 아이콘
걸죽한 카레야말로 쫄아야 제맛입니다.
18/09/13 07:43
수정 아이콘
펀치라인?? 크크 쫄이는게 할머니표 된장찌게의 비법이죠.
Zoya Yaschenko
18/09/13 09:25
수정 아이콘
오징어 값이 너무 올라서 흑흑
슈퍼디럭스피자
18/09/13 10:45
수정 아이콘
저런 국 먹을 만큼 작은 냄비에 덜은 다음에 소면 넣고 끓이면 소면이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국물이 자연스레 쫄더군요. 소면은 소면대로 국물이 베어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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