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02/23 01:46:08
Name Right
Subject [일반] 나쓰메소세키의 '문' 감상
나쓰메소세키의 대표적 3부작 : 산시로 - 그 후 - 문으로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세 작품이 완전히 이어지는 스토리는 아니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슷한 주인공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산시로'는 대학시절의 방황과 풋풋함을, '그 후'는 사회로 나아가기전의 내적 갈등과 금지된 사랑을, '문'에서는 죄의식과 평범한 부부생활을 다룹니다. 작품의 재미나 기억에 남는 정도로만 따지면 '문'은 앞선 두 작품에 비해서 좀 떨어진다고 느껴집니다. '산시로'에서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나, '그 후'에서 처럼 강렬한 갈등요소가 없이 평탄한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갈등이라봐야 약간의 돈 문제, 그리고 과거에 본인이 벌인 일에 대한 죄의식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금슬좋은 부부생활에 대한 서술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한번쯤 읽어볼만한 이유는, 나쓰메소세키의 생생한 현실 묘사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간결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은 문체를 통해 잔잔한 이야기도 술술 읽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문이 각 개인이 극복해나가야 할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데미안'의 '알을 깨는 새'처럼요. 누구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남들에겐 말할 수 없는 컴플렉스, 약점, 수치스러운 부분이 있을것입니다. 잊고 살려고 해도 시시각각 떠오르는 그것입니다. '문'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경우엔 불륜으로 결혼한 과거였습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그들이 불륜을 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 평생 가지고 가야할 두려움, 불안, 죄책감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이처럼 강렬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특정 대상, 사건에 대하여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 소스케는 이 문을 끝내 열어내지 못했습니다.

[그 자신은 오랫동안 문밖에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도 없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통과하지 못할 문이라면, 일부러 여기까지 고생 끝에 닿는다는 건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도저히 왔던 길로는 되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그는 앞을 바라다보았다. 앞에는 육중한 문짝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는 문을 통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을 통과하지 않고 끝날 사람도 아니었다. 결국 그는 문 아래에 꼼짝달싹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 265p

하지만 그 문을 열어내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목표는 '문'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문'을 통과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희노애락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평범한 노력과 과정 속에서 소스케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계의 극복이 아니라 수용입니다.

["정말로 기뻐요. 이제 봄이되어서".  "응, 그렇지만 또 겨울이 올거야"] - 277p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02/23 12:04
수정 아이콘
나쓰메 소세키... 제가 소설은 많이 않읽지만 예전에 강상중 교수님이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쓴거보고 한번 읽어봐야지 마음만 먹고 있는데 한번 참고해봐야겠네요
18/02/23 14:27
수정 아이콘
마음이라는 소설 추천드립니다
18/02/23 13:31
수정 아이콘
저는 예전에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었는데요. 참 이채로운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20세기초 풍요로운 일본제국의 모습이 그랬어요. 굶어죽을 걱정이 없고 몸이 편하니 잡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마음에 얽매이고 고통받는 거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본인들은 남다른 데가 있어요.
18/02/23 14:29
수정 아이콘
바쁘게 살다보면 잡생각이 줄어들기도 하죠. 일본인들만의 집요하게 파고드는 감성이 있긴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6094 [일반] 워싱턴포스트 칼럼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나야 한다" [82] 텅트14762 18/03/11 14762 6
76093 [일반]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29] Hallu12355 18/03/11 12355 61
76091 [일반] 왜 자유당은 미투가 없냐면서 놀라는 분들을 위한 선물. [137] 동굴곰23430 18/03/10 23430 11
76090 [일반] 성범죄는 아니지만 성범죄와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는 행위 [105] rhrhaus19313 18/03/10 19313 26
76089 [일반] 민병두 전 의원 성추행 의혹에 대한 인터뷰가 나왔습니다. [214] 티르22408 18/03/10 22408 1
76088 [일반] 고기의 모든 것, 구이학개론 #13 [43] BibGourmand15301 18/03/10 15301 32
76087 [일반] [뉴스 모음] 아직도 은폐할 게 남았던 세월호 참사 외 [24] The xian17509 18/03/10 17509 45
76086 [일반] 일본은 왜 한반도 평화를 싫어할까? <재팬패싱>이란? [56] 키무도도19156 18/03/10 19156 112
76085 [일반] 이번 한-북-미 정상회담 합의와 문대통령의 롤 [42] 삭제됨10210 18/03/10 10210 29
76084 [일반]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 말고 싸우는 친구들에게 [12] VrynsProgidy7879 18/03/10 7879 13
76082 [일반] (정치) 벌써 일년 [15] 라플비7257 18/03/10 7257 7
76081 [일반] 쟤는 뭐 저렇게 잘되는거야.. 싶은 정부에 대해서 [103] 염력 천만16167 18/03/09 16167 27
76080 [일반] 건담은 [35] 생선맛있네요8778 18/03/09 8778 1
76079 [일반] 헌터X헌터 요즘 여단 [60] 생선맛있네요14860 18/03/09 14860 1
76078 [일반] 정봉주에게 알리바이를 제시하지 말라고 하네요 [318] LunaseA32751 18/03/09 32751 81
76077 [일반] '미투 가해자 의혹' 조민기, 광진구서 숨진 채 발견(1보) [372] 킹보검31696 18/03/09 31696 2
76076 [일반] 적응하기 힘든 남북 정상들의 말 (+주모) [251] 덴드로븀22558 18/03/09 22558 31
76075 [일반] 테슬라 운전자, '오토파일럿'으로 운전법규위반 딱지 기각 [39] 타카이11367 18/03/09 11367 1
76074 [일반] 전 국회의원 정봉주씨가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356] 키토25703 18/03/09 25703 27
76073 [일반] [역만없]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60] 홍승식18131 18/03/09 18131 6
76072 [일반] 펜스룰과 뉴스룸의 호들갑에 대한 단상. [50] 삭제됨10667 18/03/09 10667 18
76071 [일반] 오랜만에 코인 글 한번 올려볼까요. 존버러들 모여보아요. [136] 뀨뀨16462 18/03/09 16462 6
76070 [일반] [갤럽] 대통령 지지율 전주대비 7%p 상승한 71% [162] Ahri17718 18/03/09 17718 1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