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01/24 20:45:34
Name TheGirl
Subject [일반] 육아일기 (수정됨)
아들놈이 14개월차 되었고 이제는 잘 걷는 수준을 넘어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녀석은 지치지도 않는지 하루종일을 움직입니다. 금세 지치고 들어눕게되는 나의 몸둥아리와는 상반된 녀석을 보며 하는짓이 꼭 지 아비 어릴적같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세월이 흘렀고 나이가 들었음을 체감합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수많은 역사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나의 어릴 적 사진과 아들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어쩜 이리 똑같냐고 신기해합니다. 나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아버지가 보이기도, 장인어른이 보이기도 합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진첩을 들춰보면 나를 돌보고 사랑스러워 하는, 나의 기억속 그녀보다는 훨씬 젊었던 할머니가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2년 전쯤부터는 우리집에서 지내셨는데 치매가 걸리셔서 기능을 많이 상실하셨고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냄새가 났고 종종 집안에 대변냄새가 진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할머니와는 들며 나며 인사정도를 건내고 스쳐지났던 것 같습니다.

몇일전 나보다 먼저 깬 아들 녀석이 아직 잠에 반쯤 취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고개를 들어 녀석을 봤을 때 문득 기력이 쇠한채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보이더군요. 아마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할머니를 외면했던 그때가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배게에 묻고 말았습니다.

나의 얼굴에는 나를 사랑해준 여러사람의 모습이 서려있을 것이기에 아직은 꽤나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이 생 동안에 부끄럽지 않게 지내야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흙이 되고 나를 닯은 아들녀석과 그 아들의 아들, 딸들이 자신의 얼굴에 일부나마 새겨져 있을 나를 웃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아유아유
18/01/24 20:56
수정 아이콘
와~글 잘쓰시네요.추천합니다~~
지바고
18/01/24 20:56
수정 아이콘
저와 느끼는 것들이 비슷하시네요...
놀고 또 놀아도 지치지 않는 26개월쯤되는 아들하나와 곧 태어날 둘째를 생각하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이뻐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아들들이 보고 있는데 잘 살아야겠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자식들은 인생의 선생님이 되는것 같은 요즘입니다
18/01/25 02:59
수정 아이콘
아니 댓글이 거의 없길래 이런 훈훈한 글을 못 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보시도록 댓글을 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8/01/25 04:08
수정 아이콘
저희집 둘째는 할머니를 거의 못보고 자랐는데... 하는짓, 웃는 방식이나 장난치는게 정말 똑같은거 보고 유전자의 무서움을 봤습니다. 보고 배우는게 아니라 태어 나더군요... 와이프는 가끔 자기애 같지 않다고 합니다.
18/01/26 02:05
수정 아이콘
아이한테서 가끔 부모님이 보이는 경우가 있죠..
근데 단점도 보이잖아요? 그럼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건 다시 태어나도 못고치는거구나.
18/01/26 12:39
수정 아이콘
같은 침대에 누워 쳐다봤을 때 예쁜 건 아내만이 아니란 걸 알게해준 아들녀석.
5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너무 사랑스러운 아들때문에 어젯밤도 뽀뽀를 몇번이나 했는지...
가끔 자는 귀에다 사랑한다 말하면 베시시 웃어주어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5891 [일반] 현실적으로 사형 집행이 한국에 손해가 되는 이유 [83] Misaki Mei20720 18/02/21 20720 89
75890 [일반] 억울할 때만 눈물을 흘리는 누나였다. [30] 현직백수12337 18/02/21 12337 117
75888 [일반] 어금니 아빠 1심 사형 [31] 미사쯔모14079 18/02/21 14079 1
75887 [일반] 대충대충 쓰는 오키나와 여행기 (6 끝) [23] 글곰8839 18/02/21 8839 15
75886 [일반] 일본제 봅슬레이 썰매 근황... [34] 한쓰우와와17205 18/02/21 17205 11
75884 [일반] 군인 외출 외박 구역 제한 폐지·사관생도 이성 교제 제한 개정 [41] 자전거도둑11218 18/02/21 11218 6
75883 [일반] 북한이 영변 경수로를 재가동하려한다는 기사가 났네요. [12] 홍승식8285 18/02/21 8285 0
75882 [일반] 재채기와 탈룰라 [8] azalea5961 18/02/21 5961 5
75881 [일반] 라스트 제다이는 어떻게 시퀄까지 박살냈나 [72] 공격적 수요12722 18/02/21 12722 6
75880 [일반] 지엠자동차 정부지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32] metaljet14999 18/02/21 14999 3
75879 [일반] 이름모를 강아지를 떠나보내며 [9] VrynsProgidy5852 18/02/21 5852 14
75878 [일반] 혼자 떠난 후쿠오카 여행기 下 (용량주의) [18] 응원단장8325 18/02/21 8325 10
75877 [일반] [뉴스 모음] 박근혜씨 결심 공판 이달 말 유력 외 [17] The xian12535 18/02/21 12535 44
75876 [일반] 교실 공기 청정기 시범 운영 현장 체험 효과 미미에 대한 반박 [32] 아유10099 18/02/20 10099 0
75875 [일반] 흙수저 고딩의 인생이야기 [37] 삭제됨10605 18/02/20 10605 33
75874 [일반] 한국 여권(Passport,旅券)의 영향력 [50] 급진개화파15070 18/02/20 15070 5
75873 [일반] 팀추월 관련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 SBS 반박기사 추가 [90] 길갈24741 18/02/20 24741 8
75872 [일반] [후기] 프랑스의 수도 파리, 짤막한 여행 후기 [42] aurelius9842 18/02/20 9842 8
75871 [일반] 김보름, 박지우 선수와 빙상연맹에 대한 청와대 청원이 역대 최단시간에 2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390] 사업드래군29333 18/02/20 29333 17
75870 [일반] 장수지, 김보름 인터뷰 논란에…“이게 같은 나라 국민들이 할 짓인지” [37] P1us16114 18/02/20 16114 2
75869 [일반] 혼자 떠난 후쿠오카 여행기 上 [18] 응원단장8321 18/02/20 8321 9
75868 [일반] 여자 팀추월 경기. 추악한 사회생활의 민낯을 보이다. [380] mak_ID34586 18/02/20 34586 119
75866 [일반] 사이트에 가입후 처음 글을 적습니다 [23] 한이연7816 18/02/20 7816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