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
2017/11/30 15:03:54 |
Name |
현직백수 |
Subject |
[일반] 좋은 경험인가 쓸데없는 시간낭비인가 (수정됨) |
아무래도 상관없다.
후회만 없다면 뭐가 그리 중요할까
1.
오픈한지 얼마 안된 닭갈비집에서 행사를 진행할 MC를 구한다는 글을 보았다.
단기, 혹은 일당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돈도 경험도 날아가기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몇 시간에 얼마지? 어느 닭갈비집이지? 어디쯤이지? 알아보고 검색하는 순간
이미 모집은 끝나기때문에, 한 눈에 '노예 모집이네;;' 라는 생각만 안들면 못먹어도 go
동종업계 경쟁이 판치는 대로변에 위치한 닭갈비집이었다.
고객유치를 위한 민속놀이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었고 당당히 마이크를 잡게되었다.
거대한 스피커를 설치하고, 민속놀이 4종세트를 깔아두고,
마이크를 쥐고있으면 MC다.
재기를 20번 차면 막국수(대자) 무료 쿠폰을 주고
어린아이가 줄넘기 15번을 넘으면 우동사리와 음료수 무료쿠폰을 주었다.
투호와 윷놀이도 종목에 있었다.
나는 그냥 손님들이 오면 게임하고 가시라고 꼬드기고, 게임을 진행하고
적당히 칭찬해주면서 커트라인을 낮춰주면 그것으로 본분을 다 한 것이다.
허나 나중엔 손님이 없어서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호객행위도 해야만 했다.
2.
개인적으로 인테리어를 하는 분이 구인글을 올렸다.
3시에 인테리어 설치 약속이 되어있는데, 시간이없어서 청소를 못하니 미리좀 해달라는
내용이었고 자그마치 시급이 만원이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달렸다.
청소업체에서 꽤나 오랜시간 다져놓은 실력으로 2시간짜리 작업을 30분만에 끝내놓고 쉬었다.
가구를 들어내고 설비를 뜯어내는 것이 아닌이상 단순 청소는 내가 흘리는 땀, 농땡이 피우는 정도에따라
끝낼 수 있는 시간이 천지차이이다.
나중에 사장님이 와서 쓱 둘러보시더니 돈과 함께
함께 일이나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는데,
"아직 해보지 못한 일이 많습니다." 라는 개똥같은 헛소리를 핑계라고 댔었는데
집에와서 생각해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만화 주인공인줄
3.
여러의미로 삼성의 역대급 스마트폰이었던 데스노트7이 나올무렵
성수기와 겹쳐 인근 디지털후라자에서 단기계약직을 구하고있었다.
당시 기업공채시즌이었는데 스마트폰 및 IT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공채따위가 눈이 들어올리 만무했다. 지금돌아보면 지극히 멍청했지만
그때 공채에 합격해 직장인이 되었을거라는 보장도 없다며 스스로 위로해본다.
뭔가에 홀려 열심히 이력서를 써서 냈고, 지원자 54명중에 가장 인상깊은 이력서였다며
나를 뽑은 컨설팅업체 직원분이 칭찬해주셨다.
핸드폰 판매보조로 대강의 데스노트7 기능 설명 및 시연을 해주는 아르바이트였는데
정작 해당 업무는 마케팅팀과, 따로 꾸려져 온 팀이 대신했고
나는 그냥 ...모든 일을했다.
출근해 에어컨과 김치냉장고를 구루마에 실어 밖에 내놓고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창고에서 찾아서 가지고 내려오고.
판매사원보다 핸드폰에 관심이 더 많고 지식이 약간있어서
판매사원이 바쁠때 상담을 대신 해주고 계약서를 쓰기전에 판매사원에게 토스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 것만 수십 건이 될텐데 술 한번을 안사주더라. 모진사람들....
하드웨어적인 문제는 대부분 서비스센터로 보내고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나 잔 버그,
암호해제 등은 '갤럭시 컨설턴트'라는 남방입은 사람들에게 보낸다.
한 달쯤 일하니 정기적으로 찾아와서 불평을 하거나 핸드폰 사용법을 물어보시는
할아부지 할무니들이 입구에서부터 나를 찾았다 .
저 총각이 잘 가르쳐준다고.
수 많은 일을 하면서 보람차고 뿌듯했던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달랐다. 사명감이란게 이런것인가?
1시간 동안 스마트폰에 대해 궁금한 점을 알려드리고, 이것저것 가르쳐 드리니
주머니에 살짝 돈을 찔러넣어주시는 할머니도 계셨고
건달 같은 아저씨에게 소모품에 대해 설명해드리니
지갑에서 멋드러지게 CGV영화권을 꺼내서 주신 적도 있었다.
딸의 예전 핸드폰에 있는 사진들을 노트북에 옮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신 어머니에게 노트북과 휴대폰을 받아
퇴근 후에 다 옮겨서 다음 날 드렸더니, 1회용티슈를 받은 적도 있었다.
나중에 옷에 커피를 흘려 물티슈를 쓰려고 꺼내보니 휴지와함께 5만원권 두장이 들어있어서
놀랐던 기억이있다.
계약기간이 연장되어 자연스럽게 두 달 일을 더하고 그만 둘 무렵
갤럭시 컨설턴트나 휴대폰 판매사원을 해보지 않겠냐는 지점장님의 물음에
조금 더 다른 일 겪어보고 취업준비도 해보다가 안되면 돌아올게요 라고 대답했다.
이젠 쪽팔려서 돌아가지도 못하겠다.
4.
디지털후라자 생활을마치고, 내 장래와 미래에대해 고민하는 척을 하던 시기에
아는형님의 소개로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을 하게되었다.
하는일이 한 두가지는 아니지만 큰 요지는
미혼모, 혹은 자녀를 키울여건이 도저히 안되는 사람의 아이를
보살펴주고 양육해주며,
불임 혹은 여러가지 이유로 아이를 가지지 못한 부부에게 입양을 보내주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미혼모와 소장님의 상담이 이루어지며
나는 각종 서류와 상담내역을 받아 적어 기록하고 정리해야했다.
미혼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무겁다고 생각한 내 삶의 무게가 누구에겐 솜털같을 수도있다.
누구나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갖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부부의 사연들도 안타까웠다.
입양을 하는 부부는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선정된 부부이며
대체로 재력이 평균 이상인 분들이 많다.
아이를 위해서도, 아이를 보내는 미혼모의 입장에서도 어쩌면 다행인 부분이겠지만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수척해진 미혼모를 만나고, 그녀의 품에서 아이를 받고
아이가 임시로 있을 거처로 출발 할 때 즈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이 엄마의 떨리는 눈동자와
내 품에 안긴 아기의 비릿한 살냄새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