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희망찬 새해가 동산 너머로 떠올랐다. 대머리 햇님이 빠알간 이마를 드러내는 순간, 산 너머로부터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들려왔으리라. 이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추위에 얼어버린 빠알간 콧망울을 훔치며 꿈과 희망의 새해를 기원했으리라. 아마도 그랬으리라... 하지만 나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느라 알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며칠 전부터 하늘 공원으로 새해맞이 가자고 가자고 부탁했건만, 나는 해 뜨던 시각에 안전한 이불 속에 고이 처박혀 있었다. 위험천만한 이불 밖으로 나가기에는 당시의 나는 몹시도 허약했었다.
새해 첫날 부터 감기에 걸려부렀다. 알바도 결근하고 이불 속에 드러누워 왼 종일 골골골... 열은 펄펄 끓는데 땀 한 방울 안 나오더라. 기절하듯 잠들었다 깨어나길 아침에만 두어 번. 깨어나 시계를 보니 정오가 다 되어갔다. 배고팠다. 그런데 밥 먹을 힘이 없더라. 누가 밥 좀 차려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적이 없었다.
도대체 조물주는 무슨 생각으로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처먹어야 하는 몸뚱어리를 만들었을까? 밥 안 먹어도 사는 데 지장 없으면 좋을 텐데. 나쁜 식습관에 따른 각종 암, 혈관 질환, 심장 질환, 비만, 당뇨병 등을 방지하며 원스톱 암보험 짬짜먹는 기적의 건강 증진을 이루리라. 똥도 안 쌀 테니 치질도 안 걸린다. 가난의 고통은 줄어들 것이고, 치사하게 애들 밥 가지고 정쟁이나 벌이는 다섯 살 수준의 꼴 사나운 정치인도 안 나오겠지. 음... 하지만 굴러간 스노우 볼을 생각하니 좀 아쉽다. 개꿀잼이었으니 인정. 아직도 현역인 점이 기가 차는 각이긴 하다. 역시 밥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 밥만 안 먹었어도 인류의 평균 행복지수는 훨씬 높았을 것이다. 인간도 식사 대신 광합성을 해야 한다. 뭐 피부색이 슈렉이나 헐크마냥 초로딩딩하겠지만, 별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슈렉이랑 헐크가 못생긴 건 피부색 탓이 아니다. 그냥 걔들이 못생긴 거다. 가로나와 가모라를 보아라. 초록색이어도 섹시하지 않은가. 자매도 아닌데 성(姓)도 같구나. 음... 가자매라... 음...

어제는 푹 쉬었다. 보통 사람들은 주말에 쉬지만, 나는 주로 수요일에 쉰다. 정규직은 누릴 수 없는 알바의 장점이다. (너무 좋아서 막 눈물이 난다) 대개 영화는 수요일에 개봉한다. 개봉작을 상큼하게 조조로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와 느적느적 문구를 고민하며 짤평을 만들다 보면 금세 퇴근 시간이 된다. 뭐랄까... 쉬는 날은 짤평 쓰러 출근하는 기분? 그런데 어제는 도저히 어딜 쏘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누워서 푹 쉬고 싶었다. 아직 미열은 남아있었고, 열 때문에 설사를 몇 번씩 했다. 그냥 집에 있어야 마땅했다. 그래서 집에 있었다. <너의 이름은>이 몹시 보고 싶었지만, 보다가 좌석에 설사를 지리며 레전드로 남느니 안전한 이불 속에서 평범한 소시민으로 남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일 알바 끝나면 보러 가자. 원래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는 거다. 그리 생각하며 약 기운에 취해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잠이라는 게 무한정 잘 수 있는 게 아니더라. 한참 잔 줄 알았는데 눈 떠보니 또 정오였다. 귀찮으니 라면 끓여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힘든 게임은 못하겠고, 스팀을 켰다. 겨울 할인 기간에 <위쳐3 - 블러드 앤 와인>을 사놨는데 설치도 못 했었다. 위쳐나 하면서 몸 좀 추스르며 하루 좀 허비하는 게 건강에 좋을 듯싶었다. 게임을 깔고 과감히 '새 게임'을 시작했다. 목욕하는 게롤트. 알몸의 예니퍼. 역시 위쳐는 좋은 게임이다. 그렇게 오프닝이 끝나고 구울과 첫 전투를 했는데... 죽었다... 음... 키 설정이 원래대로 돌아가서 그렇다. 익숙한 설정으로 바꾸고 다시 고고싱. 또 죽었다... 오버워치보다 빡센 것 같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겜알못의 분노를 삭힌 뒤 조용히 난이도를 한 단계 낮추었다. 그래 아프니깐 난이도 좀 약하게 가자. 쉬어야 하니깐. 절대 내가 한물간 게이머라 실력이 줄어서 난이도를 낮춘 게 아니다. 깰 수 있는데, 아파서 그런 거지.
그렇게 하루치 인생을 깔끔하게 낭비하고 상쾌한 오늘을 맞을 줄 알았으나... 이놈의 감기는 나의 목구멍에 병마의 흔적을 남겼다. 목구멍이 살랑살랑 간지럽더니 쏟아지는 기침이 멎을 생각이 없다. 5분에 한 번꼴로 폐를 뒤집어 까듯이 기침이 나오는데 아주 죽을 맛이다. 노오란 콧물과 가래가 멎은 걸 보니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승리한 것 같은데... 역시 전쟁은 후유증을 남긴다. 이대로 극장을 갔다간 관람 내내 콜록대며 민폐를 끼치겠지;; 그런 고로 이번 주 짤평은 쉬려 한다.
그런데 다음 주 후보작 선정을 마냥 넘길 수가 없더라. 왜냐면 역대급 닦이들이 경쟁하는 주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역대급 갓무비도 개봉한다. 면면이 화려하다. 그래서 이렇게
뻘글로나마 다음 주 후보작을 추천받고자 한다.
다음 주에 짤평으로 만나고 싶은 작품을 골라주세요.
<얼라이드>
롤링스톤과 할리우드 리포터에서 2016 최악의 영화로 선정되었다. 로튼 초반 47%로 썩토를 찍었으나 현재는 61%로 썩토는 면했다. 그러나 브래드 피트는 캐스팅 실패이고, 마리옹 꼬띠아르의 연기는 어색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2000년 이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던 로버트 저메키스가 이번에는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예상대로
얼라닦이가 될 것인가?
※로버트 저매키스의 대표작 : <백 투더 퓨쳐 시리즈>, <죽어야 사는 여자>, <포레스트 검프>, <콘택트>, <캐스트 어웨이>... (쩔잖아?)
<폴라 익스프레스>, <베오울프>, <크리스마스 캐롤>, <플라이트>, <하늘을 걷는 남자>... (같은 감독이라고?)
<어쌔신 크리드>
각종 최악의 영화 리스트를 장식함은 물론이고, 로튼 성적 17%로 썩다 못해 문드러졌다. 감독 저스틴 커젤은 과거의 영광도 로버트 저메키스에 비하면 희미한 수준인데, 이번에 거하게 말아 드신 바 앞으로 헐리우드에서 계속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연기력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마이클 패스밴더, 마리옹 꼬띠아르(또?), 제리미 아이언스, 브렌던 글리슨... 이 배우들을 모아서 어떻게 만들면 썩토 17%가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과연 엉덩이 엉덩이 안의 신조답게
궁디닦이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의외의 재미를 선사해 줄 것인가?
※ 브렌던 글리슨의 이름은 생소하지만, 그의 얼굴은 많이들 알 것이다. <해리포터>의 '매드아이' 무디, <28일 후>의 택시 기사, <킹덤 오브 헤븐>의 망나니 기사 샤티용 등을 맡았다. 조연으로 다작하는 배우이나, 작품마다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필자의 뇌리에 남은 배우다. 아들이 <어바웃 타임>의 주연 배우 도널 글리슨이다.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
작년 <자백>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저널리즘 다큐다. 이명박 정부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언론인이 해직되었다. 그들은 노조 간부도 아니었고, 입방아에 오를만한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요구한 것은 공정 방송뿐. <7년>은 해직된 언론인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들이 부재한 공영방송이 왜 '기레기'라 불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EBS <지식채널e>를 연출한 김진혁 PD가 감독을 맡았다.
<모아나>
개봉 초기 로튼 지수 100%를 달성하더니 현재까지도 95%를 유지 중이다. 심지어 메타크리틱 점수도 81점으로 극찬을 받았다. (<겨울왕국>이 74점이었다) 개봉 시기가 <신비한 동물사전>과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사이에 끼었음에도 그사이에 3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주토피아>와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주 최고 기대작이다.
<모아나>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이성과 상대를 아끼고 배려하는 훈훈한 감성을 가진 분이라면 <모아나>를 추천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줄 요약
감기 걸려서 극장가면 민폐일 것 같아서 쉽니다.
<모아나> 뽑아주싶셒슾
Written by 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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