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 나도 나갔어야 했는데. 부산에서도 할건데."
"나갈거면 했는데가 아니라 나가야지. 진짜 나갈 생각이었으면 벌써 나갔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장소 나올건데."
"... 니 요새 잔소리 많이 늘었다."
-_-a 정작 지는 안 나가놓고. 일 때문에 나갈 여유가 없는 친구긴 합니다.
저 친구 말고는 주변에 정치에 관심 있는 친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친구들과도 정치 얘기 신나게 하면서 욕하고 있죠. 새누리만 찍는 어머니와도 요즘 정치 얘기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쪽팔린다고, 자격 없다고, 더 큰 일 생기기 전에 빨리 물러나야 한다고 하시네요. 야당 정치인 싫다고 하시면서도 정권 교체돼도 되겠다 하시는 걸 보면 정말 큰 충격이긴 한 것 같습니다.
#1-1
LED 촛불이 대세라고? 다이소에서 판다니 가 봐야겠다. 그런데 왜 자동문이 동작을 안 하지? 어 힘으로 미니까 열리네.
"오늘 마감했어요"
"아 네"
#2
"다음 정거장까지 오래 걸립니데이. 내릴거면 지금 내리이소. 중간에 내리달라 해도 안 열어줍니다."
한명이 내렸고, 뒤늦게야 열어달라는 아줌마랑 기사님의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결국 안 열어주시더군요. 한 정거장 가는데 차암 오래 걸립니다. ㅡ _ㅡa 처음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빨리 가봐야 이렇게 차가 밀리고, 본진은 저어어어멀리 있습니다. 앞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 가까이 가기도 힘드네요. 스피커에서 뭐라 하는지 정확히 들리지도 않고 앞에 애는 컵 태워먹고... 촛불 파도타기를 하는데 대체 어디서 하는지, 화면에선 오고 있는데 어디까지 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다 같은 얘기를 하다가 오 온다 하니까 촛불을 듭니다. 그 멋진 파도타기는 이렇게 되는 거죠 뭐. 저번엔 비 오는데 앉아달랍니다. 맨몸으로 온 사람은 어쩌라고. 근데 안 앉으면 안 보입니다.
시위의 중심에서 옷가게 한다는 지인의 지인은 장사 안된다고 열받았답니다. 반면 중심에서 떨어진 (음식점이라든가) 가게들은 손님이 제법 는 모양입니다. 사람 많은 데도 싫고 버스에서 서서 가는 것도 싫은데 언제까지 이래야 될까요?
부산에서도 이런데, 대체 광화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상상하기 힘드네요.
이번에 안 가면 피크일 건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솔까 이번에는 가야지, 뭐 이런거죠. 이제 연말이고 날 추워지고 망년회 있을건데 사람 줄겠지 했네요. 그런데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갈수록 더 중요하고 피크인 것 같네요? -_-;; 아쉽게도 이번엔 정말 피크일 것 같은 어제는 못 갔습니다. 이래놓고 다음주가 정말 피크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젠데...
#3
과외하던 애가 모 사이트에서 하는 드립을 친 적이 있습니다. 아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여러 얘기 해 보니까 옳은 생각 하는 친구입니다. 시간이 남았을 때 현대사 연표를 좀 읊어줬었습니다. 부마항쟁 얘기하니 놀라더군요. 그래서 그 때 만약에... 이런 얘기도 해 줬습니다. 다른 얘기들도 많이 해 줬었죠. 이것도 어느새 시간 많이 된 얘기네요. 이번 시위에서 부산은 4.19 때도 부마항쟁 때도 6월 항쟁 때도... 뭐 그런 얘기 나오니까 생각납니다. 최소한 부산에선 많이 알려져야 될 얘기 아닌가.
#4
결론이 어떻게 날까 모르겠습니다. 결국 하는 건 정치인들입니다. 시민들은 그들을 압박해서 이 길로 가라고 할 뿐이고, 그들은 돈, 뒷공작, 정치공학 등으로 다른 길을 택할 수 있으니까요. 애초에 가장 큰 하나의 목표만 일치할 뿐, [국민] 혹은 [시민]이라는 우리들의 생각은 다 다르지 않겠습니까.
말하면 정말 많겠지만, 또 말을 하자니 정말 많이 안 나오네요. 진행되는 걸 보면 아몰랑 상황이긴 합니다. 네 아 몰라요. 일단 그냥 밀어붙였으면 좋겠어요. 어찌됐든 밀어붙였네요.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떤 마음이 들지 궁금해집니다.
100% 만족하는 결과가 나올 거라는 기대까진 안 합니다. 그 동안에도 그랬잖아요. 한계가 컸거나, 오히려 너무 나갔다고 욕 먹거나... 어느 쪽이든 포장을 벗겨내면 그렇죠. 애초에 사이다의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구요.
그래도, 한국사의 큰 수치 중 하나로 기록될 이 시기에, 한국사의 큰 자랑 중 하나로 기록될 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여기에 촛불 하나를 더 얹는,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을 할 뿐입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길,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제 눈으로 볼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9일, 부디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길... 그 후로도 갈 길은 멀겠지만요.
이래저래 역사 얘기들 끼워맞추고 (이 결론이 제일 예쁘죠?) 장문의 글을 써볼까 시도는 해 봤는데 ( '-') 뭐 이게 차라리 나을 거 같네요. 이 정도면 집회 참가 후기 되죠? ㅠ
연산군과의 비교하는 게 있었죠. 그런데 정말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가족의 비극 때문에 동정받는 부분이 말이죠. 선조니 인조니 하는데 조선 최악의 왕은 누가 뭐래도 연산군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막장으로 다뤄도 엄마를 잃은 슬픔이라는 동정하는 시선으로 그려지는 게 많죠. 여기서 더 나아가서 시대의 문제가 낳은 희생양 수준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동정하는 시선이 불편하긴 했습니다. 그 시대 백성들이 지금 이러는 걸 보면 대체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걸 현대로 옮겨온 게 딱 이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할 수 있는데 얻고 나니까 아닌 것도 그렇구요. 연산군의 집권 전반기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많습니다. 전제군주로 발전하는 부분도 긍정적이라 평가할 부분이 있죠. 하지만 그 절대권력을 얻고 나서는? 흥청망청이었죠.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렇게 욕 많이 먹은 전 정권도 무언가를 목표로 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어요. 이번은 그런 것도 없었죠. 정말 집에 돌아오기까지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엔딩을 봐야되는데 현실은 게속되죠. 하고싶은 것도 생각해놓은 것도 없는데요. 이러니 자신이 그리도 의지해 온 사람에게 다 맡기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지죠.
누군가에 깊이 의지하는 모습도 비슷하구요. 장녹수를 대하는 연산군의 모습에서요.
물론 결정적인 차이는 많죠. 뭣보다, 최소한 연산군은 지 의지대로 폭정을 저질렀거든요. 한 걸로 따지면 욕을 더 많이 먹을 다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구요.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긴 것도 아니고 말이죠. 배후가 있더라도 나름대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어야지 이건 뭔지.
그나마 한국사에서 비슷한 걸 찾으라면 민비의 진령군이 있겠는데요. 사건 초에 이미 koze님이 글을 올리셨죠. 민비를 욕할 여러 문제점 중 하나고 참 많이 닮았습니다. 근데 제가 아무리 민비를 싫어해도 국내외에서 능력은 인정받았고, 일본이 (고종 협박용이라 해도) 제거해야 될 정도의 위협은 됐습니다. 진령군 문제도 의지를 많이 했다면 모를까 자기가 허수아비라 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죠.
이거 참 한국사에서 참 보기드문 일이 나온 거죠 뭐 - 0-. 근현대사로 따지면 라스푸틴 외에 비교할 케이스가 또 있나 정말 모르겠습니다. 국격 돋네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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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는 무슨 일이... 어... 음... 뭐라 설명을 해야 할까...;;
그냥... 4대문 안의 모든 대로에 차가 안다니고, 사람들만 걸어다녔습니다.
남대문에서 출발해서 광화문 찍고, 종로 거리를 중앙선 따라 걸어서, 동대문 즈음에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정도면 설명이 되려나요?
맞아요 "으아아아..." 크크크크 저 혼자 갔을땐 뭐 깔려죽기야 하겠나 했는데 키 작은 여자분이랑 갔더니 좀 걱정됐어요. 애들 데리고 오신 분들이나 애들 본인은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체구가 작을수록 가급적 인파에선 좀 떨어져있는게 좋을 듯. 덩치 크다고 인파에 이길 수야 없지만 시야가 막히면 폐쇄감 느껴짐...
집이 근처다보니 시위에 관해선 많이 보게 됩니다. 요즘엔 맨날 우리집 앞을 지나가서 행진하는데 그 큰 도로를 꽉채우는 무리들을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하죠. 근데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흔히 말하는 조방앞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제법 신기한 동네입니다. 동네를 지나갈 때마다 풍경이 확확 바뀌는 곳이죠. 공구상가에서 보석상가, 쓰러질것 같은 낡은집에서 국제금융센터 그런식으로요. 그래서 많은 젊은 사람이 이곳을 일터로 삼지만 정작 사는 사람들은 노인분들이 많습니다. 목욕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데 그 시위행진 옆에서 북치고 장구치는 동네 노인 사물패가 있더군요. 이 동네에서 노인분들이 어떤소리를 하는지를 알긴 하지만 흥미로운 광경이었습니다. 저 북치는 노인분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심지어 지나가는 시위대들은 거기에 호응을 해주고 있었단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