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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1/17 16:33:42
Name 김제피
Subject [일반] 당신의 사후(死後), '현실'을 삽니다. 헐값에
#1

4월 한 달 동안 3번의 장례식에 갔다.

모두 친구 부친의 장례식이었다. 이 중에서 2번째 장례식이 자꾸 목에 걸린다. 친구가 많이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다른 두 친구는 (최소한 식장에서는) 씩씩했던 반면, 그 친구는 식장에서 1번 혼절했고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집에 데려다 줘야 했으며, 부친의 삶의 흔적 덕분인지 쏟아지는 문상객에 2시간도 쉬지 못한채 다시 나와서 식장을 지켜야겠다.

2번째 장례식에서 밤을 지새우며 상주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시덥잖은 얘기가 오가던 중 "주말에 돌아가시는 게 고인이 당신의 아들, 딸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모 노릇'라는 말을 그에게서 들었고, 씁쓸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밤새도록 3갑의 담배를 피웠다. 덕분에 나도 2갑 피웠다.

또한 몇 번이나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겁에 질린 채 절대 그러지 말라고 꼬박꼬박 대답해줬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다음날 출근을 걱정하며 자기혐오에 빠졌다

날아갈 듯 상쾌한 봄날에 몇 번의 죽음을 마주하고 나니, 계절이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다.

#2

장례식 덕분인지 최근에는 잊고 살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죽으면, 어쩌면 좋지, 어떻게 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가,
천국이니 지옥이니 사후세계 같은 걸 생각했다가,
나 종교 없잖아? 이런 x신! 했다가,
그래도 만약에 가게 된다면 역시 지옥이겠지 했다가,
뜬금없이 장례식장에 사람이 많이 오려나. 나 친구 없는데 했다가.
x발,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해버리고 마는 것들이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떠올리면 현실의 걱정들은 시시한 걱정따위가 돼버리지만.

아직 죽진 않았으니까.

#3

"당신의 사후(死後), '현실'을 삽니다. 다만 이미 돌아가셨으니 헐값에 파세요 일테면 월 2만원 정도. 아니 19,900원에"

요새는 돈이 없으면 맘대로 죽지도 못한다. 개인의 죽음은 상조가 대신한다. 아무렴, 현대인은 바쁘니까.

갑작스런 죽음 앞에 벌벌 떨지 말고 한 달에 2만원씩만 내라는 상조회사,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말고 자기 장례비는 자기가 마련하라는 가슴철렁한 멘트로 광고하는 보험사들이 많더라.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순재옹도 큰 역할을 하고 계시다. 엉엉.

그들의 생기 가득한 광고 카피는 아마 많은 이들을 움직였을 것이다. 자식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부모님들.엉엉.

문득 10년 후에는 고독사가 흑사병처럼 번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고독사 방지 소모임이라도 만들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건 어떨까.

회사 동료는 자신이 높은 확률로 고독사 할 것 같으니 10년에 한 번 안부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낄낄거리며 그러마 했는데 나도 부탁할 걸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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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썼던 건데 생각나서 올려 봅니다. 파릇한 봄이었는데 이제 초겨울이네요.

회사 옮기고 힘들어요. 엉엉.

직장인 여러분들 파이팅.

수험생 여러분들은 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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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시안
16/11/17 17:17
수정 아이콘
수험생입니다.

10년 전에 맞이했던 가까웠던 첫 죽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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