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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9/11 13:18:55
Name 캐리건을사랑
Subject [일반] 내가 다녔던 회사 이야기 [대부업체]
이 재미없는 얘기는 2010년 즈음 있었던 일입니다..

1. 딱히 잘난 거 없는 지거국을 탱자탱자 놀면서 졸업했고[문송합니다.] 저에게 남은건 백수란 단어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2. 다른 분들도 경험이 있겠지만 아무 준비 없이 취직을 하는사람들은 보통 사람인 필터링에 지역 / 대졸 / 연봉 / 신입을 필터링해서 이력서에 이름만 바꾸어 지원을 합니다. 대여섯 군대를 넣었다 당연히... 실패의 쓴맛을 본 저에게 눈에 띄는 구인 정보가 있었습니다.

연봉 2,400, 근무지 집 부근, 주요 업무 고객 대응 및 채권 관리...

3. 바로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부업체 구인 공고였습니다..

4. 그 당시만 해도 '일에는 귀천이 없다' '뽑아주기만 하면 노예처럼 일하겠다'라는 절박함에 앞뒤 안가리고 이력서를 제출했고 하루만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5. 면접은 그 지점을 관리하는 지점장과 1:1이었는데 보통 면접은 면접관이 질문을 던지면 면접자가 대답을 하는 방식인데 이곳은 달랐습니다.
- 여기는 한달에 얼마를 받고 무슨 수당이 따로 붙고 주 5일 근무 이러쿵 저러쿵...... 캐리건씨 괜찮겠어요?
제가 '네'라고 대답을 하는 순간 전 그 다음날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6. 대부업체에서 남자 직원과 여성 직원이 하는 일은 조금 차이가 있는데 우선 공통적인 업무는 고객에게 오는 전화 응대입니다. 여기서 기존 고객이냐, 신규 고객이냐에 따라 나뉘게되는데 신규 / 추가 대출 문의는 여성 직원이, 대출금 상환에 대한 업무는 남성들에게 전화를 돌려줍니다.

7. 보통 고객들은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대출받은 돈을 문제없이 지정 날짜에 꼬박꼬박 갚는 모범 고객, 연체중인 불량 고객 [이건 제가 임의로 정한 명칭입니다.] 이 둘 고객에 대한 태도는 조금 다릅니다.
- 모범 고객의 경우...꼬박꼬박 고객님 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말투도 최대한 상냥하게 응대하지만..
- 불량 고객의 경우 고객님이란 단어를 빼버리고 아무개씨로 호칭이 바뀝니다. 원래 한달에 한번씩 보내는 납부 요청 문자도 한시간에 한번에 보내고..돈갚으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언성도 높아집니다.

8. 전화상으로 연체고객에 대한 업무가 진행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불량 고객 리스트를 만들어 직접 방문을 시작합니다. 하루에 약 15군대를 방문하게 되는데 보통 당사자를 만나는 경우는 1한 될까말까하고 대부분 아무도 없거나, 이미 이사를 갔거나, 제 3자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경우 이웃사람이나 주위 정황조사 후 [수도 메타기가 돌아가는지, 우편물 리스트에 다른 연체 기록이 있는지 등등]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물론 당사자를 만나는 경우 금액 회수 협상을 하는데 전화상으로는 서로 욕하며 싸운 사이라고 해도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면 의외로 서로 공손하게 진행이 됩니다...
이렇게 한건이라도 회수가 완료되면 그날은 성공한 날이라고 할 수 있죠

9. 제가 다닐 때만 해도 이런저런 수당을 합치면 그당시 약 2,600정도가 실수령 액이었습니다.

10. 직급 체계는 약 4개 정도 되었는데 사원 / 부지점장 / 지점장 / 과장 순이었습니다. 승진 기준은 철저한 실적 [연체금액 회수실적]이었고 사원에서 부지점장으로 승진 시 약 천이백 정도 인상이 되었죠. 이 업무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2년 정도면 부지점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11. 보통 사람들은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뭔가 우락부락할 거라 생각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제가 있던 지점 1인자는 실제 사채쪽에 있다 온 사람이었는데 얼굴 / 목소리 / 말투가 딱 그쪽[?] 계통이다 라고 느낄 정도의 마초적인 남자였지만 또 바로 아래 2인자는
밖에서 보면 예체능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행동 하나가 섬세하고 여성스러웠습니다. 결국 이 바닥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살아남는 곳이더라구요

12. 여기도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니만큼 그들만의 프로 정신 및 노하우가 있었는데 나름 인상 깊었던 것은
-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는다 [고객과 얼굴이 빨개지도록 큰소리 치고 화를 냈더라도, 그 다음 전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절하게 응대합니다.]
- 인적사항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한 대출금 회수 전략을 세운다.
- 채무자의 심리를 이해하여 밀고 당기기를 전략적으로 진행합니다.
- 근무자들간의 나름 두터운 정 [아무래도 이직률이 매우 높다 보니 살아남은 직원간의 팀워크가 좋았습니다.]

13. 저의 퇴사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몇가지 꼽아보자면
- 감정 컨트롤의 힘겨움 - 연체 고객에게 미친듯이 화를 내다 10초도 안되서 다시 친절하게 응대하는 감정 변화의 컨트롤이 힘들었고 [화를 내서 높아진 톤으로 일반 고객을 상대한다던지..]
- 발성이 안되어 목이 자주 쉬었습니다. [하루종일 전화받고 목을 써야 하는데 목이 자주 쉬더군요]
- 대학 전공 [경영]을 살려 일반 제조 업체로 가고 싶었습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신나게 백수 및 게임 라이프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이후 취업은 게임만 하다가 6개월 후에...

14. 입사를 결정했을 때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대부업체 근무 경력이 이후 구직 생활에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었는데..
- 실제로 영어 점수를 올린 후 여러 번의 면접에서 저의 대부업체 이력을 물어봤고 이게 실제 당락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불합격 했습니다. 이걸 이력서에 안쓰면 1년 공백이라 안쓰기도 참 뭐했지요



15. 그런데 웃긴 건 결국 취업에 성공한 회사에서는 대부업체 이력 때문에 합격했습니다. 그 당시 한참 김미영팀장이라고 알려졌던 대출 문자에 그 당시 저의 면접관이었던 공장장님이 짜증이 나있었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저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셨는데 전문가(?) 였던 저는 깔끔하게 대답을 해 드렸고.. 그 버프를 받아 취직에 성공합니다.
나중에 공장장님이 하는 말씀이 "이 녀석은 6개월 정도면 여기서도 이 정도로 남에게 설명해 줄 정도로 빨리 밥값은 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뽑으셨다고 하네요
물론 1년 반만에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로 다시 이직을....  하게 됐지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예전 회사에 대한 글보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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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16/09/11 13:28
수정 아이콘
김미영 팀장님 얘기를 해주세요..
개과종굴이
16/09/11 13:31
수정 아이콘
22.. 궁금하네요.
파랑파랑
16/09/11 13:29
수정 아이콘
대부업체 얘기재밌네요 흐흐
전기공학도
16/09/11 13:34
수정 아이콘
사람 대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몇 없죠..
16/09/11 14:02
수정 아이콘
타업체 영업하시면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크크 매출채권 회수 잘하는 경력을..
맥아담스
16/09/11 14:21
수정 아이콘
취준생이라 그런지 요즘 이런 이야기가 너무 재밌네요.
시간 되시면 다른 썰도 풀어주세요 크크
최초의인간
16/09/11 14:23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하게 읽었네요. 일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 말씀해주셔도 꿀잼일듯!
Jon Snow
16/09/11 15:06
수정 아이콘
햇살론에서 전화 좀 그만오게 못하나요 ㅜㅜ
살려야한다
16/09/11 16:40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흐흐 썰은 항상 재미있네요.
16/09/11 17:04
수정 아이콘
범상치 않은 경력이시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6/09/11 17:09
수정 아이콘
우와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른 얘기들도 궁금합니다 흐흐
박루미
16/09/11 17:38
수정 아이콘
뭔가 카우카우 파이넌스가 생각나네양 ~ 후후 -_-
영원한초보
16/09/11 19:13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모리건 앤슬랜드
16/09/11 20:13
수정 아이콘
대표적인 하이리스크ㅡ로우리턴이 대부업이라 생각합니다.....고생많으셨겠네요
16/09/12 15:32
수정 아이콘
하이리스크 - 하이리턴이 맞아요
본문에 언급된 소위 '진상'고객을 빼더라도 워낙 이자가 쎄기 때문에 돌아가는 사업구조라고 봐야 할 겁니다
16/09/11 20:51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16/09/12 00:04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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