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스키아입니다~!
마르셀 뒤샹에 관해 이야기해보기 전, 조금 더 재미있고 유익한 작품감상을 위해
미술사에서 빠져선 안될 필수적인 용어인 '시뮬라크르'를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근, 현대에 들어서 복잡하고 난해하며, 일반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는 그런
미술같지도 않은 미술들이 많이 등장을 하는데요, 이 모든 근현대 미술의 기반에는 이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난해한 현대미술의 10중 7은 이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감상을하면 그런대로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볼 수 있을거에요.)
미술에 관심이 있으시고, 즐기기를 원하신다면 이 시뮬라크르라는 용어는 어느정도는 '상식'처럼 안고가야할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정말 말도많고 탈도많은, 일반인들 기준, 불호를 넘어 미술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미술의 중심, 그리고 태초(?)에는 마르셀 뒤샹이 있었기에,
뒤샹을 이야기해보기전 짚고 넘어가보고자 준비해보았습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최대한 재밌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저 역시 철학전공자 또는 전문가도 아니고, 딱 일반인들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제가 이해하는 선에서만 그대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크크)
그럼 시작해볼까요!
아, 이 시뮬라크르라는 용어는 미술사를 떠나 전 분야에 적용이되는 철학적 개념이기에 제대로 각잡고 얘기하면 한도끝도없이 길어지니
'미술'쪽에서 생각되어 지는 시뮬라크르의 개념 위주로 설명하겠습니다!
시뮬라크르, Simulacre
Simulacre, '시뮬라크르'는 기본적으로 '복사본'을 뜻하며, '재현' 이라는 뜻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그냥 대중매체같은 곳에서는 어떠한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재현이라고 하며 연기자들이 연기하고 그러죠? 그런 것 등에서 보셨을 단어입니다.
재현, Representation 은 단어 그대로 해석해보면 [Re : 다시], [Presentation : 증정하다, 보여주다, 발표하다] 두 단어의 합성으로서,
'다시 보여주다'라는 뜻이죠. 다시 보여주다라는 말은 즉, '원래 있던 무언가를 다시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원래 있던 무언가를 다시 보여주는 것? 원래 있던 무언가는 무엇이며, 보여준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문을 하나 들며 얘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작년 7월 구름이 조금 낀 어느 날, 여자친구와 롯데월드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행히 아직 헤어지지 않은 여자친구와 함께
1년전 우리가 무엇을 했었나 같이 즐거운 수다를 떨다가, 문득 그날의 즐거웠던 감정을 다시금 꺼내 함께 공유하고자, 핸드폰을 꺼내 그날 찍었던 사진들을
함께 봅니다. 그 사진들을 보며, 우리는 다시금 그날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자, 이 예문에서 '원래 있던 무언가' 는 '작년 7월 롯데월드에서 보낸 즐거운 하루' 입니다. 그날의 즐거움을 다시 현재에 느끼기 위해서, '다시 보여주는' 무언가가
필요하죠. 사진은 훌륭한 도우미입니다. 사진은 '그날의 즐거움'을 '다시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사진은 우리에게 그날의 '재현'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그날의 순간과 그날의 행복함을 보여준다고해서, 그 날과 동일한 사물일까요? 사진은 단지 그 날을 '재현'해주고 있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즉, 작년 7월경 보낸 즐거운 하루가 원래 존재했던 '실체' 라면 사진은 그날의 '복사본'인 것이죠.
우리는 '그 날의 즐거움'이라는 원본을 '사진'이라는 복사본을 통해 다시금 기억하고,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 즐거움은, 복사본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기 때문에, '그 날의 즐거움' 그 자체가 절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사진은 너무나 노골적인 재현물, 복사본, 즉 시뮬라크르 중 하나이며,
미술가들의 풍경화, 정물화는 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린다고 한들, 어떠한 풍경의, 어떠한 정물의 '한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복사본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옛날부터 존재해왔었는데요, 플라톤의 '이데아'에서는 '모방(Mimesis)이론' 이라는 개념으로 존재했습니다.
엣날 그때 그 시절, 신을 모시고 신을 섬기며 신에대한 동경으로 신과 관련된 예술작품들을 생산해내던 그 시절이죠.
예술가들은 신과 관련된 '이데아'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세상을 재현, 즉 모방하려고 애썼을 것인데, 문제는 어느 누구도 이데아의 생김새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누가 이데아를 정확히 알까요. 단지, '왠지..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하며 떠올린 'Image'가 있었을 것이고,
예술가들은 그 이미지를 재현해내었을 것입니다. 그림으로든 건축으로든.......
결국 신전이든 신을 표현한 그림이든, '진짜 이데아'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이데아는 이러지 않을까?'라고 생각되어지는 이미지를 재현한 것입니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미지의 모방을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시뮬라크르'를 그다지 좋지않은 존재로서 여겼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이미지의 복사본'이라는 뜻을 지닌 시뮬라크르는 시대가 변하며, 의미도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다시한번 그녀와 함께한 롯데월드에서의 추억 예문으로 돌아가볼까요
[그 사진은 아이폰 어플 푸x카메라를 이용해 찍은건데, 따땃함이라는 필터가 적용되어져있었습니다.]
여기서 변수가 하나 생기게 됩니다. 사진이 그날을 재현해주고 있기는 한데, '따땃함'이라는 필터가 덧씌워져 보정되어 재현해주고 있는거죠.
7월경 그날의 그 순간에는 구름이 조금 껴있었지만, 따땃함이라는 필터가 적용되어 맑고 화사로운 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사진은 그날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주는 것이아니라, 한번 왜곡을 해서(변화시켜서) 재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다시 돌아가서, 저와 여자친구가 오늘 보았던 그 사진은, '작년 7월경 그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순수재현물 일까요, 사진이라는 놈이
중간에 한번 자신만의 요술을 부려 변환시킨 재현물일까요?
요술을 부려 변환시킨 재현물은 그저 단순한 복사본일까요, 실체와는 많이 달라졌기에 복사본이긴하지만 새로운 2차 실체가 된 복사본일까요?
이 사진속에서는, 작년 7월 그날의 구름낀 어둑어둑하고 먹먹한 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름낀 어둑어둑하고 먹먹한 그 것이 진짜 오리지날이고,
사진은 분명 실체를 재현하는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날의 요소가 사라져있고, 자기만의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어져 있는 재밌는 상황이 되었네요.
이제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진은 그날의 즐거움을 어쨋든 간직하고 재현하고 있으니 복사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원본에는 없는 독자적인 요소를
추가시켰으니 복사본이라고 부를 수 없을까요?
사람들은 어찌되었든 그 사진은 담고 있으니까, 그날의 즐거움을 [최대한 재현하려고 한] 복사본이라고 합니다.
근데 복사본을 보면서 화사하고 따뜻함만을 보고 느낄 수 있지, 구름낀 어둑어둑함을 보고 느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복사본이 원본이랑은 다른,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사진을 보고 그날이랑 100%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큰 착각이 되며, 사진은 사진만의 새로운 이미지를 우리에게 심어주며
제 3의 그날의 즐거움을 선사해주게 된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디즈x'사의 '미키마우스'를 보면, 미키마우스만을 생각하고, 미키마우스에 대한 느낌만을 생각하지, 미키마우스의 원본인
실제 동물 '생쥐'가 가진 느낌을 미키마우스를 보며 느끼는 사람이 있긴 할까요? 미키마우스는 생쥐에게서 파생된 복사본임은 맞지만,
엄연히 원본인 실제 동물 생쥐와는 다릅니다]
뭐 이런거죠...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실 그렇습니다. 당장 사진이나 그림같은 것이 아니고, 자연물만 보더라도, 인간만 보더라도 말이죠.
지금 우리 집앞에 있는 잡초는 그 잡초자체가 진짜 원본일까요? 아니면 조상(?) 잡초를 닮은 후손 잡초겠죠. 근데 100% 똑같은 판박이는 아니고, 정말 닮기만한
다른 잡초일 것입니다. 조상잡초와 지금 집앞에 있는 잡초는 분명 이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재현이 맞을텐데, 복사본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그냥 '우리 집앞에 있는 잡초' 라는 나름대로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조상잡초의 재현물인 것입니다.
현대시대에는 더욱더 노골적입니다. 세상에 복사본이 아닌게 없습니다.
공산품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길거리에 수많은 광고판과 광고, '매혹적임' 이라는 느낌을 재현하려고하는 매혹적인 아이돌
유행하는 옷, 유행하는 노래, 유행하는 풍조 등....
실체를 닮은 '이미지'와 '기호'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 누구도 복사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진짜 같고, 아니, 진짜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장 보드리야르라는 철학자는 마치 '사막'과도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막에는 그 어떤 오리지널도 없습니다.
사막이 만들어내는 신기루, 모래폭풍 등.... 잠시 존재하지도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다시금 사라지죠. 사라진 뒤에 다시 생긴 그 것들은 또 다 다릅니다. 실체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모든것들이 실체인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기존의 미술품들을 봐볼까요. 그러고보니.....
'미술'이라는 것은 애초에 정말 실체 그대로인 것은 단 1개도 존재하지 않는 분야였습니다.
모든 것이 어떠한 모습을 똑같이 그려내려고 노력한 재현물, 즉 복사본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하나 둘씩 싹트기 시작하면서,
딱히 기존과는 크게 다름없이 변화하던 미술계에 큰 요동을 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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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을 들어가며, 되게 옆에 붙어서 말해주는 것처럼 하려다보니 다소 쎄게(?) 설명이 되어버렸지만,
시뮬라크르는 이러한 생각의 일환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뮬라크르에 대한 자각이 생기면서,
기존의 작가의 1점밖에 없는, '진품'이라는 평가를 '그런건 애초에 없다'고 부정하며 마구 뽑아내는 누군가도,
기존에 즐기던 미술이 어쨌든 다 무언가의 복사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대놓고 공산품을 다른 미술작품들과 동일선상에 올려놓아버리는 누군가도,
복사본은 어쨌든 원본을 100% 주지않고, 자기만의 제2의 느낌을 주는 것이니깐, 그대로 복사해서 보여준다 한들 원본을 보는 느낌이랑은 다를 것이니까
그냥 그대로 복사해 자기꺼라고 주장하는 누군가도 생겨나게 됩니다
그를 통해, 피어나는 제3의, 제4의, 제5의 새로운 생각들을 즐기는 거죠. 그렇게 뿜어져나오는 새로운 생각과 느낌들은 다시 또 제6의, 제7의 생각들을 만들어내게 하고요.
물론 저 '누군가' 들이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을 듣고 생각하게되며 저렇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시뮬라크르는 비교적 최근 시대에 핫해진 개념인데,
어떤 일련의 역사적 사건 등으로 인해 생겨난 파장속 피어난 사람들의 생각들이 점차 커지게 되며 그러한 현상을 보고 시뮬라크르라고 개념되어진 것입니다.
(현대의 시뮬라크르 개념으로 유명한 '장 보드리야르' 역시 마르셀 뒤샹과 앤디워홀의 작품을 보고 생각이 든게 많다고 하니,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이 먼저인 것은 분명 아닙니다)
글을 읽고 '그래그래 어쨌든, 그래서 시뮬라크르가 정확하게 뭐라는거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음... 글쎄요? 그냥 이 글을 읽고 본인이 느끼는 그 생각. 그게 시뮬라크르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에.... 잘 몰라서 답변회피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 이거도 35%정도 있긴합니다 크크크크크 저도 전문가가 아닌 비루한 일반인이다 보니...),
미술작품을 관람하다, 난해한 작품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 글을 봤을때 느낀 그 생각들을 지닌채 난해한 작품을 감상하면,
'아...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 사람은 왠지 저렇게 생각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군... 난 좀 동의못하겠는데?' 또는 '나랑 비슷하게생각하나보네'
등의 생각이 들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 저는 마르셀 뒤샹의 이야기를 열심히 준비해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